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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숫자 너머의 미술 -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 [도서]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로 읽는 미술의 가치와 가격

by 김민주 에디터
2026.09.2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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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2001)이 국내 첫 미술품 투자계약증권의 기초자산으로 청약 대상이 되었다. 열매컴퍼니는 작품을 1만 2,320주로 나누어 주당 10만 원에 모집했다. 모집금액은 12억 3,200만 원이었고, 최종 신청금액은 72억 980만 원으로 청약률은 650.23%를 기록했다.

       

      미술품을 직접 소유하지 않고도 작품에 투자할 수 있다는 조각투자가 주목받으면서 미술은 감상의 대상인 동시에 투자 대상으로도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아트테크는 미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보고 가격 변동에 따른 수익을 기대하는 활동이다. 조각투자는 그중 하나로, 고가의 미술품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든 방식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진다.

       

      수억 원짜리 작품을 여러 개의 지분으로 나눌 때, 그 가격은 무엇을 근거로 정해지는 것일까.

       

      이지윤의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는 이 질문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투자 안내서는 아니다. 대신 미술의 가치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 사례를 보여준다. 저자는 작가와 작품만으로 미술을 설명하지 않는다. 작품을 주문하는 사람과 판매하는 딜러,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 전시하고 연구하는 미술관, 경매회사와 비영리기관, 국가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와 제도를 함께 살펴본다.

       

      책의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작품이 지금과 같은 의미와 위치를 갖게 된 과정에는 작품 자체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선택과 관계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술의 가치는 하나의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시와 거래, 수집과 연구 같은 활동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변화한다. 그렇다면 작품 앞에서 마주하는 가격 역시 단순한 숫자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

       

       

       

      작품의 가격을 본다는 것


       

      아트테크에서 투자자가 먼저 확인하는 것은 결국 가격이다. 공모가격이 얼마인지, 과거에는 얼마에 거래되었는지, 앞으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가격만 보면 정작 그 숫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놓치기 쉽다.

       

      책의 사례들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에 대한 예술적 평가와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가격에는 여러 요소가 함께 작용한다. 작가가 어떤 전시를 했는지, 어느 갤러리에서 작품을 판매했는지, 미술관에 소장되었는지, 경매에서 어떤 가격에 거래되었는지 등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시장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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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기록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시와 거래가 이어지고 비평과 연구가 축적되면서 작가와 작품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늘어난다. 어떤 작가는 오랜 시간 시장에서 거래되며 가격의 기준이 쌓이는 반면, 어떤 작가는 아직 충분한 거래와 평가의 기록이 축적되지 않았을 수 있다.


      따라서 미술품의 가격을 살펴볼 때는 작가가 유명한지만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유명세를 뒷받침하는 전시와 소장, 거래와 연구의 기록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각투자의 가격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조각투자의 가격을 살펴보는 일도 조금 달라진다. 조각투자는 고가의 작품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든 방식이지만, 투자자가 작품을 직접 보관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2022년 테사, 서울옥션블루, 투게더아트, 열매컴퍼니의 미술품 조각투자 상품에 대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상품들이 미술품의 공동소유권과 함께 작품의 보관·관리·매각·손익배분 등을 사업자가 수행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즉 투자자가 사는 것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 작품을 둘러싼 운용 구조에 대한 지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격을 판단할 때 살펴야 할 대상도 작품 하나에서 그 구조 전체로 넓어질 수밖에 없다.

       

      조각투자 상품을 볼 때는 작가와 작품만 확인해서는 부족하다. 공모가격은 어떤 자료를 근거로 정해졌는지, 작품은 누가 보관하고 관리하는지, 매각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관련 비용은 무엇인지 등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작품의 가격뿐 아니라 그 가격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구조까지 살펴봐야 하는 셈이다.

       

      쿠사마 《호박》의 높은 청약률 역시 작품의 유명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국내 첫 미술품 투자계약증권이라는 점, 잘 알려진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 기존의 전시와 거래 기록 등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청약률 자체가 향후 투자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했는가'만이 아니라 '왜 이 작품이 이 가격으로 제시되었는가'에 가까울 수 있다.

       

       

       

      한 작품의 가격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작품의 가격은 처음부터 정해진 기준에 따라 형성되는 것일까.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를 읽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미술시장과 작품의 가격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주체가 개입하며 만들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미술품이 상품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이후 딜러와 컬렉터, 경매회사와 미술관 등이 등장하면서 작품을 둘러싼 거래와 평가의 방식도 함께 변화해왔다.

       

      그 변화는 한 사람의 선택에서 시작해 점점 더 큰 단위로 옮겨가는 흐름으로 읽을 수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앙브루아즈 볼라르다. 볼라르는 세잔의 작품을 대량으로 확보하고 개인전을 열면서 당시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세잔을 미술시장에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한 명의 딜러가 작품을 선택하고 전시하며 판매하는 과정이 작가의 시장적 위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세잔의 현재 평가를 볼라르 한 사람의 활동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떤 작품을 발굴하고, 누구에게 보여주고, 어떤 방식으로 시장에 소개하는지가 작가에 대한 관심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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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딜러의 선택이 시장에 작가를 소개하는 일이었다면, 컬렉터의 선택은 그 작품에 맥락과 의미를 더하는 일에 가까웠다. 새뮤얼 코톨드는 작품을 단순히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 작품을 직접 살펴본 뒤 자신의 컬렉션을 구성했고, 거트루드 스타인은 자신의 살롱에 마티스와 세잔의 작품을 함께 걸어두며 당시의 예술가들과 작품이 교류하는 장을 만들었다. 이처럼 컬렉터는 이미 형성된 시장에서 작품을 사는 사람인 동시에,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작품을 함께 보여줄 것인가를 통해 작품의 위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렇게 개인 단위에서 시작된 선택은 구겐하임 가문의 사례에 이르러 개인의 취향을 넘어 미술관과 컬렉션이라는 제도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작품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하나의 컬렉션으로 구축하는 일은 특정 작가와 미술의 흐름을 사회에 소개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이후 미술관과 같은 제도적 공간에서 작품이 전시되고 연구되면, 개인이 선택한 작품은 다시 공적인 감상의 대상이자 미술사의 기록으로 자리 잡는다. 결국 한 작품이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작가의 작업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작품을 선택하고 수집했으며 어디에서 전시하고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했는지가 축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미술시장은 작품이 완성된 뒤 그 가치를 평가하는 장소라기보다, 작품에 대한 평가가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과정에 가깝다. 갤러리에서 작품이 판매되고, 컬렉터가 작품을 선택하고, 경매에서 거래 기록이 쌓이고, 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작가와 작품을 바라보는 기준이 형성된다. 책에서 말하는 '작품 밖의 사람들'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품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작품 자체만이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선택과 관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미술품 가격을 과거의 거래가격이나 작가의 유명세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가격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전시와 거래, 수집과 연구, 그리고 이를 둘러싼 여러 사람과 기관의 판단이 함께 반영되어 있다. 아트테크에서 작품의 가격을 살펴볼 때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숫자가 얼마인지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숫자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시장과 관계, 기록이 축적되어 왔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다시, 책을 본다면


       

      처음 쿠사마의 《호박》을 보며 궁금했던 것은 주당 10만 원이라는 숫자였다. 하지만 책을 통해 여러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질문은 조금 달라진다.

       

      왜 이 작품이 지금 이 가격으로 평가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가격을 만들어온 것은 무엇인가.

       

      물론 이 글도, 그리고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도 주당 10만 원이라는 숫자가 정확히 어떤 감정평가와 근거로 산출되었는지까지 답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분명해지는 것은 있다. 그 숫자를 믿을지 말지를 판단하려면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그 기준만큼은 이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작품을 둘러싼 작가와 갤러리, 컬렉터와 미술관, 경매와 전시 같은 여러 관계가 시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작품에 대한 평가와 가격이 형성된다. 결국 미술의 가치를 이해하는 일은 작품 자체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이 시장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를 읽은 뒤에는 아트테크를 단순히 미술품에 투자하는 문제로 바라보지 않게 한다. 하나의 가격이 만들어지기까지 미술과 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작품 앞에서 마주하는 숫자 역시 미술계의 여러 관계와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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