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마와 나이가 들수록 좋아하는 것이 줄어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어릴 때는 좋아하는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 예전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일단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야 하고, 그것을 알아갈 시간도 있어야 하며, 때로는 별다른 이유 없이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을 쏟아야 한다. 꽤나 수고로운 과정이기에 좋아하는 일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과정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한다'라는 것 자체가 이유가 되었던 순간들은 사라지고, 점차 조건을 따지게 된다.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얼마나 가치 있는 시간인지. 취미를 이야기할 때조차 그것이 자신의 능력이나 취향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고민한다. 결국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도 충분했던 일에 이유와 설명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서까지 언제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면, 그건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예뻐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충분했던 순간을 잃지 않고, 그 마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좋아하는 일에도 쓸모와 가치를 따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좋아하는 일은 반드시 무언가를 남겨야만 의미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일까.
우리가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
무엇을 하든 그 시간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는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가 중요해진 사회에서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않는 시간은 무의미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쉬는 시간마저 재충전을 위한 시간으로, 취미마저 새로운 능력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취향을 드러내는 방식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소비를 통해 신념을 표현하는 미닝아웃처럼, 무엇을 좋아하고 소비하는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물론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마저 자신을 설명하고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면,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충분했던 일에도 또 다른 이유를 찾게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몇 달간 유행했던 말랑이가 문득 떠오른다. 손으로 주무르고 만지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얻는 말랑이에는 특별한 기술이나 성과가 필요하지 않다. 물론 말랑이가 어른들 사이에서 유행한 이유를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일상에서 별다른 목적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일을 잃어버리는 순간
언제부터 좋아하는 일에 쓸모와 가치를 따지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과목을 배웠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역사를 배울수록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는 게 재미있어 세계사를 선택했다. 학기 초만 해도 수업을 듣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하지만 방대한 역사를 외워야 하는 암기과목이었던 만큼 성적에 대한 부담이 커졌고, 학기 말에는 가장 힘들고 짜증 나는 과목이 되었다.
세계사 자체가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내용도, 가르치는 선생님도 똑같았지만 공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즐거웠던 시간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좋아하는 일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성취하는 것은 즐거움의 일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보다 얼마나 잘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가 중요해지면 좋아하는 마음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나의 취미는 춤이다. 춤을 추는 순간에는 온전히 그 순간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춤추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해야 할 일이 많아지자 춤출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졌고, 결국 취미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돌이켜보면 좋아하는 일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는 건 그만큼 일상이 버거웠다는 뜻이기도 했다. 언제나 재미있게 느껴지던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는 건 그만큼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니까.
좋아하는 마음에는 자격이 필요한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좋아하는 작가가 몇 명쯤은 있어야 할 것 같고, 영화가 좋다고 하면 유명한 감독의 작품이나 고전 영화 몇 편쯤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좋아하는 분야를 깊이 알아가는 과정은 즐겁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만큼의 지식과 경험을 갖춰야 취향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새 잘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서 혜진이 한 말이 떠오른다. 혜진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는 하리의 모습을 보며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예뻐 보이고 싶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말이다.
이 장면이 인상 깊었던 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잘해내거나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나 자신이 좋기 때문에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통해 얻는 결과보다 그 일을 선택하고 즐기는 자신의 모습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을 온전히 누리는 일은 다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즐거움을 더해줄 수도 있지만,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정작 좋아하는 마음을 놓치기도 한다. 좋아하는 일에 반드시 쓸모가 있어야 하는 것도, 그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 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바나나우유를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얼마 전 사촌과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촌은 빙그레 바나나우유를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한참 웃었지만, 생각할수록 좋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옳았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확인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을 해내고,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때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해야 한다. 그런 일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모든 시간과 활동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다 보면 좋아하는 일마저 또 하나의 과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일을 잘하지 못해도, 특별한 의미를 찾지 못해도,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어갈 수 있는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내가 어떤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춤이든, 책이든,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