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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막론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사랑 이야기에 매료된다. 영화계에서도 '사랑'은 가장 꾸준히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다. 이성 간의 사랑, 동성 간의 사랑, 우정, 가족애까지. 메인 주제가 사랑이 아니더라도 부차적인 이야기 속에서 사랑은 늘 중요한 축을 차지한다. 특히 결혼을 앞두고 두 사람 사이에서 선택을 앞둔 이야기는 반복되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지난 8월 8일 개봉한 영화 <머티리얼리스트>다. 예고편을 봤을 때 자연스럽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오르는 이 작품은,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루시의 여정을 따라가며 선택의 순간을 보여준다. 매력적인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의 패션이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루시 역을 맡은 다코타 존슨의 패션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실 전개 자체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흐름이었지만, 각 인물들의 캐릭터 설정과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랑과 결혼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머티리얼리스트에 대해


 

<머티리얼리스트>는 결혼정보 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 루시(다코타 존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루시는 자신이 성사시킨 고객의 결혼식에서 업계에서 '유니콘'이라고 불리는 뉴욕 최고의 싱글남 해리(페드로 파스칼)에게 대시를 받는다. 동시에 결혼식장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전 남자친구 존(크리스 에반스)과 마주치면서 루시는 두 사람 사이에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해리는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하고 집안 환경도 좋으며, 큰 키와 매력적인 외모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나 루시와 해리의 사랑은 깊고 뜨거운 진실한 사랑과는 거리가 있다. 반대로 존은 배우를 하며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할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루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루시에게 반한 해리는 루시와 지속적으로 데이트하며 구애하지만, 루시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이성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고객으로 대하며 거리를 둔다. 그러나 해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루시와 연인이 된다. 이후 해리와 함께 지내지만, 이때 루시에게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되는 한 사건이 발생한다.


오랜 고객 소피 L이 데이트 중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루시는 매칭 매니저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과연 조건 맞는(비슷한 경제환경, 비슷한 정치성향, 비슷한 가정환경) 사람들끼리의 비즈니스적인 결혼이 과연 맞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때 루시는 자신의 힘든 심정을 해리가 아닌 존에게 털어놓으며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준 존이 자신에게 더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임을 깨닫고, 해리와 헤어지고 존을 선택한다.


영화는 사랑과 결혼이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결론적으로는 '결혼은 사랑이다'라는 동화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존과 해리(가난하지만 진심으로 루시를 사랑하는 존, 부유하고 안정적이지만 감정적으로는 깊지 않은 해리)의 극단적인 캐릭터 설정은 영화 메시지를 선명하게 만들지만, 현실에서는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밸런스 게임'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올해 초 방영된 <커플팰리스>처럼 현대 사회의 결혼에서는 조건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그런 현실 속에서 루시와 존의 순수한 사랑은 부러움과 함께 희망을 느끼게 한다. <머티리얼리스트>는 결혼의 본질적인 이유를 되묻는 동시에, 조건을 넘어선 사랑이 가능하다는 마지막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영화였다.

 

 

 

만약 루시가 해리를 선택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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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가 해리를 선택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현실적인 결말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루시였다면 해리를 선택했을 것 같다.


영화 중간 존과 루시가 헤어졌던 날이 재연된다. 기념일을 맞아 레스토랑을 예약한 두 사람은 존의 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비싼 주차비 때문에 존은 계속 차를 돌리고, 루시는 예약 시간을 맞추기 위해 빨리 주차하라고 다그친다. 처음에는 사소한 충돌로 보였지만, 이는 둘 사이에 균열을 만들고 결국 헤어짐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앞으로 반복될 수 있는 경제적 제약과 일상 속 피로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루시가 해리와 결혼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또 다른 형태의 안정적인 행복을 가진 삶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된다. 해리가 깊은 사랑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꾸준히 애정을 표현했고, 무엇보다 부유한 경제적 환경은 루시를 사회적으로 존중받게 만드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루시가 존을 선택한 결말은 관객에게 더 큰 정서적 울림을 준다. 현실적인 결말, 즉 해리를 선택했다면 설득력은 있을 수 있지만 감정적인 짜릿함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존과의 선택은 진실한 사랑과 희망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 관객에게 지금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낭만과 깊은 감정을 잠시나마 체험해 볼 수 있게 만든다.

 

 

 

비슷한 작품에서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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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떠오른 작품들이 있다. 많은 이들이 인생 책으로 꼽는 소설 <모순> 역시 <머티리얼리스트>와 일정 부분 비슷하다. 주인공 안진진은 나영규와 김장우라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한다. 디테일한 캐릭터 설정은 존과 해리와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나영규는 해리와 김장우는 존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안진진은 김장우에게 더 매력을 느끼고 끌리지만, 자신의 깊은 고민이나 집안 이야기는 나영규에게 훨씬 편하게 털어놓는다. 결국 안진진은 여러 고민 끝에 안정적인 나영규를 선택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이처럼 <모순>이 보여주듯, 모든 선택에는 늘 양면성이 존재한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을 잃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루시가 존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에게 정답이 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장면이 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금명이 충섭과 결혼하는 날 이 내레이션이 나온다.


 
"모두가 가장 뜨거웠던 사람과 결혼을 할까? 크기가 아니라 온도가 다른 사랑이었다. 나를 나답게 하는 나의 온도. 나는 나의 왕자님을 만났다."
 

 

이 대사는 결혼에서 중요한 것이 순간의 불꽃같은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곁에 머물며 지치지 않고 살아 있게 하는 '온도'임을 보여준다. 루시와 존이 헤어지게 된 날 역시, 사랑이란 결국 사소한 일상 속 갈등에서도 그 '온도'를 지켜낼 수 있느냐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머티리얼리스트>와 그리고 <모순>, <폭싹 속았수다>를 연관시켜 생각해 보면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조건'이 아닌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하고, 그 삶을 감당해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각자의 선택에는 언제나 장단점이 공존하며, 완벽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맞는 온도, 나를 지탱해 줄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선택의 기준이 아닐까.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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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그 사람은 나를 가치있게 만들어주니까.", "내가 가치있어지니까"와 같은 표현이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처음 이 말이 나온 건 루시가 매칭시킨 커플의 결혼식 장면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혼란스러워하는 자신의 고객에게 루시는 왜 저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는지를 떠올려보라고 한다. 그때 고객은 "언니보다 더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언니가 부러워해. 마치 언니를 이긴 기분이야."라고 말한다. 이때 고객이 이런 마음으로 결혼하는 자신이 머쓱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루시는 "결국 나를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네"라고 말해준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에 등장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루시의 언변에 감탄하며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후 결혼을 이야기할 때마다 비슷한 표현이 반복되다 보니 마냥 좋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왜 꼭 남이 나를 가치있게 만들어줘야 하는 걸까. 스스로를 먼저 가치있게 여기고, 내 안의 중심을 올바르게 세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당 메시지가 영화가 강조하려 했던 메시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먼저 나를 가치있게 여기자는 메시지가 가장 크게 와닿았다.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을 존중할 수 있다면, 함께 하고 싶은 파트너를 고를 때 조건이 무슨 상관일까. 결국 중요한 것은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일 것이다.


<머티리얼리스트>는 과정은 현실적이지만 결론은 희망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어 관객들의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과 결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날카롭게 짚어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머릿속에 여러 질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관객에게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머티리얼리스트>는 충분히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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