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다. 호기심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책의 첫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미술 작품은 세 번 태어난다. 맨 처음은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두 번째는 작품이 거래되는 미술시장에서, 세 번째는 그 작품이 소장된 미술관이나 컬렉터의 집에서 말이다.
이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품의 가치는 단지 그 자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글로벌 아트 디렉터이자 큐레이터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여러 실무 경력을 통해 미술의 생태계와 시장의 흐름에 대한 경험들을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저자는 미술 작품의 의미와 형식미뿐만 아니라, 그 작품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사회적·경제적 측면 또한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술적 가치와 시장에서의 가치는 동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대부분 정치, 경제, 권력의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거나 시대에 따라 다른 가치와 목적을 가진다. 그렇기에 미술은 그 자체로 순수한 예술적 표현 수단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더욱 큰 시야로 바라본다면 미술은 역사적 산물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최고의 부가가치를 지닌 상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책은 총 6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목차별로 서양미술의 여러 면면을 미술 생태계 속에서 소개한다. 그전까지는 미술을 그저 미적인 작품으로만 바라보았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미술 인프라를 구성하는 다양한 유통과 예술 경제의 흐름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먼저 소개하려 한다. ‘순수한 미술은 애초에 없었다’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부분은 그동안의 미술의 가치를 뒤흔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4년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영향으로 한국 작가가 글로벌 미술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홍콩의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한국에 경매 전문가를 보내며 비밀리에 6명의 경매 작가를 선정한다. 그중 한 명이 바로 김동유 작가이다. 그는 당시에는 별다른 유명세가 없던 작가였다.
김동유 작가는 2006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3억 2,300만 원에 <마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을 낙찰시킨다. 무척 놀라운 사건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책에서는 꽤나 명쾌하게 답을 알려준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만들어진다는 미술시장의 간단한 논리와 어마어마한 글로벌 미술시장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 작품의 가치를 구성하는 데 시장의 역할이 이렇게 클 줄이야. 정말 놀랄 일이다.
현대에 와서는 지역과 취향, 커뮤니티에 따라 다원화된 미술시장도 두텁게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미술관이나 유명 컬렉터가 소장하지 않았다고 해도 일정한 사람들이 지지한다면 그 작품의 가치 또한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즉, 작품의 시장 가치는 단순히 유명세에 달려 있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언급한 내용 말고도 미처 말하지 못한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있다. 시대에 따라 작품의 가치와 값이 달라지기도 하고, 유명 고전 작가의 그림이 예술적 가치보다는 상업적 가치를 더 띠고 있기도 하다.
요즘에는 더더욱 미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더 이상 미술은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시대에 중요한 정책 용어가 하나 있다. 바로 창조산업이다. 창조산업은 개인의 창의성과 기술, 재능에 기원을 두고, 지식재산의 창출과 활용을 통해 부와 일자리를 만들어낼 잠재력을 지닌 산업이다. 개인의 재능이 곧 국가의 창의성까지 나아간다는 뜻이다.
이러한 창조산업은 현대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업의 적극적인 아트 마케팅, 한국의 K-컬처 등도 창조산업의 한 예시이다. 미술의 가치는 비즈니스에서 더욱 활발히 보인다.
때문에 미술 생태계와 우리 시대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는 세계화가 활발히 진행 중인 이 시점, 모든 이에게 세상을 읽는 새로운 안목을 제시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