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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삶은 힘을 향한 의지다 [도서/문학]

결핍과 허무를 넘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 『우울한 날엔 니체』를 읽고

by 서연화 에디터
2026.11.0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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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진단하기 : 허무주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질병




      허무주의는 인간의 정상적인 상태다. 인간이 앓고 있는 본원적인 질병이다.
       

      우리는 허무주의를 직시해야 하고 삶에 의미가 없는 것을 그럭저럭 견뎌내야만 한다.
       

       

      인간만이 유독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니체의 관점에서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삶의 목적을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는 인간의 조건에 있다. 동물의 삶이 생존이라는 본능적 목적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와 방향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고, 목적을 설정하며, 자기만의 질서를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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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삶에 의미가 본래부터 주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더욱 확실한 의미를 찾으려 한다. 때로는 종교나 이념, 절대적인 가치에 자신을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니체가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태도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수고를 피하기 위해 외부에서 주어진 의미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것. 그것은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가려두는 일에 가깝다.

       

      삶에 본래적인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도 그 불확실성 속에서 자기만의 목적을 만들어가는 것. 어떤 절대적인 가치에도 자신을 온전히 맡기지 않고 매일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어쩌면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진정한 방법은 의미를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Ⅱ. 이해하기 : 알량한 도덕은 버려라



      이제 우리는 무의미가 삶의 의미임을 선언한다. (...)
       

      귀족의 도덕에 대한 첫 번째 판단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 삶을 향한 감사에서 온다. (...)
       

      우리의 특권은 우리가 높은 단계로 오르도록 강요하는 의무다. 우리에게는 우연히 갖게 된 고유한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니체에게 삶의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힘을 확장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힘을 향한 의지’다. 여기서 힘은 단순히 권력이나 지배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고, 스스로를 극복하며,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근원적인 생명력에 가깝다.


      그런데 사회에는 이미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 수많은 가치가 존재한다. 종교와 도덕, 관습과 규범이 대표적이다. 니체는 특히 현실의 삶을 부정하고 다른 세계에서 구원을 찾으려는 도덕적 태도를 비판한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에서 비롯된 가치들은 삶을 긍정하기보다 삶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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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한 가치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현실에서 찾기보다 자신의 욕망과 본능에서 찾는다. 자연스러운 욕망을 죄악으로 여기고, 현실의 삶보다 이상적인 세계를 우선시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긍정할 힘을 잃어버린 사람은 점차 원한과 자기혐오에 사로잡히게 된다. 니체가 비판하는 도덕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의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가치 체계다.

       


      도덕은 자신의 고유한 목적에 대해 질문하는 노력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상이라는 도피처를 제공한다.
       

       

      이러한 니체의 비판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이러한 가치들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마치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유일한 삶의 정답처럼 받아들여진다는 데 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애써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질문해 보기도 전에, 이미 주어진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길이 존재하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한 채 내게 맞지 않는 자리에 스스로를 끼워 넣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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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니체는 묻는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과연 각자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당신의 마음을 진정 사로잡고 있지만 어떤 칭찬도 받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거기에 비밀스러운 당신의 길이 있을 수 있으니 이것을 충분히 탐색하라. 당신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일이 있는가? 당신에게만 의미 있고 다른 누구에게도 의미 없는 일이 있는가? 당신은 무엇이든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다른 누구도 아니고 당신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고유하고 적절한 일이다.
       

       

      내가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것은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일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의무라는 점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감수성과 욕망,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을 충족하는 데에만 삶의 에너지를 쏟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사회의 기본적인 규칙과 도덕을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것들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가치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만의 기준을 발견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 니체가 말하는 자기 자신의 길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Ⅲ. 적용하기 : 자기 자신이 되어라

       

      그렇다면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약해짐은 행동의 불능이 아니라 행동하지 않음의 불능이다.


      강해지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니체가 제시하는 첫 번째 방법은 ‘느림’이다. 이는 단순히 행동을 늦추거나 게으름을 피우라는 뜻이 아니다. 충동에 이끌려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고, 충분히 내면의 힘을 축적한 뒤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을 사용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갑작스러운 변덕과 성급한 반응은 자신의 힘을 낭비하게 만든다. 반대로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무엇을 할 것인지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느림은 자신의 힘을 관리하는 태도에 가깝다. 내면에 충분한 힘이 축적되면 그것을 머뭇거림이나 불필요한 투쟁에 낭비하지 않고, 정말 필요한 순간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강해진다는 것은 무조건 더 많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어디에 사용할지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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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방법은 '본능과 무의식의 회복'이다. 니체는 인간의 이성이 모든 행동을 통제하고 정당화하려는 태도를 경계한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체화하고, 본능과 충동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 역시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우리는 곧바로 수많은 이유를 떠올린다. 지금 해야 할까, 조금 있다가 하는 것이 나을까, 정말 필요한 일일까. 그러는 사이 처음의 작은 의지는 사라지고 만다. 이성은 때로 행동을 돕기보다 행동하지 않기 위한 이유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물론 이성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모든 행동을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정당화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생각과 감정이 우리 존재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경험한 것 중 가장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부분은 언어로 설명되기 이전에 형성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분석하는 일뿐만 아니라, 때로는 생각을 멈추고 자신의 본능과 감각을 따라가 보는 경험도 필요하다. 자신을 발견하려면 자신을 잃어야 한다.



      우리 내면의 어떤 것은 너무나 확고부동해서 다양한 변형의 종착지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에 부딪혀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지, 무엇을 견디기 어려워하는지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다. 가만히 앉아 자신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여러 경험을 통과하고 때로는 자신이 예상했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마주하면서 비로소 내면의 고유한 성향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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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완성된 자아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 자신을 끊임없이 구성해 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초월할 수 없는 맹목적인 지점, 개선할 수도 깨우칠 수도 없는 어리석음의 한 형태라는 약점이 본성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약점을 예술적 구성을 위한 요소로 이용하는 것이 허용된다. 예술가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삶 자체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날것의 재료를 조직해 각 부분을 초월하는 작품을 만듦으로써 삶의 주인이 된다.
       

       

      여기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약점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고쳐야 할 결함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니체는 모든 약점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약점은 자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일부일 수 있으며, 그것을 인정하고 삶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에 비유한 점이 흥미롭다. 예술가는 주어진 재료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열하고 구성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약점과 한계, 불완전함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어떻게 조직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신을 가지고 하나의 삶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Ⅳ. 내다보기 : 순간은 영원하다

       


      우리는 지금 무용수의 가벼움과 섬세함이 강한 제약에 의해서만 획득될 수 있음을 안다. 우리는 가벼워지기 위해서 무거운 중량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능한 한 가볍게 살기 위해 요구되는 무게, 우리가 가장 강한 집중력으로 삶을 즐기기 위해 요구되는 무게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가 이 놀이에서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게임을 할 때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모든 장애물이 사라졌을 때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다. 그렇다면 삶 역시 지나치게 심각하게만 받아들이기보다 하나의 놀이처럼 대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마주한 어려움을 반드시 피해야 할 재앙으로 여기기보다, 삶을 구성하는 여러 경험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삶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가벼움은 충분한 무게를 견뎌낸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압도되지 않는 태도. 니체가 말하는 가벼움은 그런 종류의 강인함에 가까울 것이다.



      네가 살고 있고 살았던 이 삶을 너는 한 번 더 그리고 무한히 다시 살아야 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이것을 무한히 하고 싶은가?' 이 질문은 가장 무거운 무게다.
       

      내가 지금까지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면서 허용하거나 참고 견딘 것을 나에게 금지한다.
       

      왜냐하면 나의 미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념이다. 우리는 보통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지금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생각은 때로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어차피 한 번뿐인 삶이라면 지금의 고통을 끝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영원회귀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는 과연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선택하는 행동과 태도, 내가 반복하는 일상과 관계까지도 다시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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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질문은 단순히 매 순간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교훈보다 훨씬 무겁다. 내가 지금까지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며 미뤄왔던 것들, 언젠가 상황이 나아지면 시작하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언젠가 도착할 별개의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물론 매 순간 완벽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후회와 아쉬움이 전혀 없는 삶이 가능할 리도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외면하는 대신, 그 안에서 무엇을 긍정할 수 있을지 질문하는 태도다. 영원회귀의 사유는 결국 지금의 삶을 얼마나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초인은 영원회귀의 시험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만이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니체에게 관건이 되는 것은 인간은 자기 현실에서 도망침으로써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현실적인 존재로 만듦으로써 초월함을 보이는 것이다.



      신이 되기를 열망하는 대신에 온전한 인간이 되길 열망해야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된다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능동적인 과정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발견은 어딘가에 이미 완성된 자아가 존재하고 그것을 찾아내는 일과는 다르다. 자신이 가진 욕망과 약점을 인정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능성을 탐색하며, 때로는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 전체가 곧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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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전히 겁이 많고, 때로는 불확실한 상황 앞에서 쉽게 위축된다.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바라보며 결핍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약점들을 모두 없애야만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내가 가진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삶의 재료로 삼아 나만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삶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이미 주어진 의미에 자신을 맞추는 것도, 모든 불행을 피해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부정하고, 때로는 망설이고, 때로는 실패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구성해 나가는 일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가진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더 큰 가능성으로 확장해 나간다.

       

      삶은 힘을 향한 의지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거나 타인을 지배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넘어 더 넓은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다. 결국 우리가 열망해야 할 것은 현실을 초월한 완벽한 존재가 되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 속에서 더욱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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