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도서/문학]

글 입력 2022.1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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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虛無) 「명사」

「1」 아무것도 없이 텅 빔.

「2」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져 매우 허전하고 쓸쓸함.

('허무', 표준국어대사전)

 

삶은 필연적으로 허무하다. 신이 부재한 우연의 세계 속 유일한 필연 법칙이랄까. 그 필연성에 왜를 묻는다면 그저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허무는 「1」 ‘상태’이나, 때론 그 자체로 「2」 ‘감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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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 스기모토, <카브리해, 자메이카>, 1980년

 

 

그는 배나 고래나 새나 인간 같은 것이 완전히 소거된 바다와 하늘을 찍는다. (...) 간명한 수평선만 남은 풍경. 그 풍경은 단지 수평선을 묘사 혹은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나는 그 이미지들이 수평선을 활용해서 부재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러한 수평선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굳이 강변할 필요가 있을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기에 원한다면 당신이 무엇인가 담을 수도 있다. 인생에 정해진 의미가 없기에, 각자 원하는 의미를 인생에 담을 수 있듯이. (43쪽,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 아무것도 없어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는 말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인생에 정해진 의미가 없기에, 각자 원하는 인생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말이 희망적이게만 느껴지는가. 인간은 과연, 신이 부재한 우연의 세계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자신감을 얻고 또 다른 신, 개척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나에게는 왠지 인생의 의미가 없다는 말이 무섭게만 들린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불안한 나는, 무정(無定)의 세계 속에서 무정(無情)함을 느낀다. ‘인간은 자유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유가 주는 고독과 불안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는 프롬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아직까지 이 무정을, 무의미를 응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제껏 취해왔던 방식의 일관성이 파괴될 때, 무정(無定)하다는 사실의 무정(無情)함은 더욱 심화된다. 하나의 공간에 갇혀, 하나의 정답이 있는, 하나의 문제를 풀기 위한, 하나의 수업을 들은 우리에게 그 무엇 '하나' 없는 수평선은 가혹하기만 하다. 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싶거든, 당장 하나의 의미를 발견해 내야만 한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표준을 참고하여 하나의 이상을, 의미를 만든다. 각자 원하는 인생을 치열히 고민하여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것을 빠르게 담아 해치워버린다. 부, 외모, 명예, 권력 등등.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유를 내어준 대가로 얻는 것은 안정감이다. 덕분에 더는 허무가 없다. 대신 애써 메운 허무 뒤로 허무감(「2」)이 따라 붙는다. 바라는 무언가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 언젠가 모든 것은 상실된다는 것이 허무감을 형성한다.

 

여기서 잠시, 상실이란 표현에 의문을 품어보자. 무엇이든 득(得)이 있어야 실(失)이 있는 법이다. 소유한 적이 있어야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욕망하는 그것들을 한 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는가. 그것들은 가질 수 있는 것들인가. 더욱이 ‘상실’을 정의하는 시선은 과히 인간적인 것 같다. 우리가 바라는 그 무언가들은 애초에 없었거나 우리보다 더 오래 남는다. 상실되는 건, 사라지는 건 언제나 인간인 우리 쪽이다.


삶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내가 감히 이러한 삶의 형태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재단할 수 없다. 무엇이 좋은 삶이고 나쁜 삶인지 차안에 있는 인간은 완벽히 알 수 없을 테니까. 중요한 것은 그걸로 충분하냐는 것이다. 허무감을 ‘가끔 알사탕을 꺼내 핥듯이 기호품의 일종처럼 음미’하며 사는 게 괜찮은지. 그 정도의 허무감인지. 만일 그게 안 된다면, 내가 선택한 삶의 의미, 목적에 의문이 든다면, 허무감을 넘어 자꾸만 허무 그 자체에 시선이 간다면, 이 책을 슬며시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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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인류 보편의 문제, ‘허무’에 대한 김영민 교수님의 칼럼을 엮은 책이다. 북송시대 문장가 소식의 「적벽부」를 모티프 삼아, 허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이어 그에 대한 다양한 해답들을 검토하고, 마침내 자기만의 결론을 내리며 마무리한다.

 

김영민 교수님 특유의 유머를 맛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다소 묵직한 제목에 겁을 먹고 물러나는 일은 없을 테지만, 초면인 독자들을 위해 살짝 귀띔해 주겠다. 김영민 교수님은 지상 최고의 무게 조절 달인이시다. (전생에 저울이셨나) 김영민식 유머와 폐부를 찌르는 통찰 덕에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허무를 응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인생의 허무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위로를 받고 결국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부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삶이 변했다! 책에서 권유하는 것은 '산책', '언덕 오르기'지만 나는 매일 10분씩 명상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무엇도 듣지 않는 단 10분 확보하기. 그 10분을 통해 나는 아무것도 얻지 않고 아무것도 잃지 않는 연습을 한다. 허무감을 넘어 허무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매일 10분씩 삶을 산책하게 되었다.

 

 

 
[박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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