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가닿을 수 없는 풍경의 안쪽을 향해

여행작가 노중훈이 담은 스무 편의 여행지 기록 <풍경의 안쪽>
글 입력 2024.05.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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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안쪽을 향해 가는 사람


 

광활하고 머나먼 우주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작고 넓은 푸른 공덩어리, 지구. 생명체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을 전부 탐험해보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일 것이다. 바다건너 저 멀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곳, 내 삶에서 먼 이야기가 존재하는 미지의 공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에게 풍경으로만 존재하던 저 멀리의 공간으로 뛰어들어 그 일부가 되는 일, 우리는 몸으로 경험하고 살아내며 잠시나마 꿈꾸던 삶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린 채 그곳에 존재하는 나를 카메라로 찍어 기록한다.


나는 당신의 삶을 살 수 없다. 그러나 살아볼 수는 있다. 결국에 내가 그곳을 지나쳐온다면 관광객에 불과할 것이고 잠시 머무른다해도 여행자에 불과할테지만, 잠시라도 당신의 삶을 살아보는 일은 우리가 서로의 삶을 부딪히여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뜻이고 그 자체로 놀라움과 경이의 연속일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혹은 사건)을 잊지 못한다고 했던가. 여행이 주는 특정한 종류의 기대감과 설렘에는 어떤 암시가 포함되어 있다. 나와 내 주변에서 찾지 못했던 무언가를 찾게 될거라는 감각과 지루하고 지난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뛰쳐나간다는 해방감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향하는 곳은 분명 ‘풍경의 안쪽’이다.



눈에 확연히 보이는 풍경도 기쁘고 좋지만 풍경의 겉면에만 머무르지 말고 발품과 마음 품을 팔아 안쪽으로 조금 더 진입해 보자. 진입해서, 풍경을 일별하고 돌아가는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풍경의 안쪽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귀 기울여, 누구나 감탄해 마지않는 거대한 풍경보다 무심코 흘려보내기 쉬운 작은 풍경을 더 담아내 보자. - 4페이지

 

 

여행작가 노중훈님의 여행에도 이런 면이 함께 있었던 듯하다. 수련회에서 관광명소에 스탬프 찍듯이 지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사람과 삶에 집중하는 모습의 여행.


MBC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의 진행자이기도 한 그는 1999년 4월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을 단 후 줄곧 여행지를 방랑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간 쌓인 여행지의 목록과 풍경과 이야기들은 이번 책에서 네 가지의 틀로 설명된다.


1부 압도의 풍경(미국 유타, 독일 블랙포레스트, 중국 쓰촨, 브라질 & 아르헨티나 이구아수폭포, 캐나다 노바스코샤)

2부 느림의 풍경(인도 케랄라, 몰타 몰타 & 고조 & 코미노, 슬로베니아 블레드 & 피란, 알바니아 티라나 & 두러스 & 베라트, 세이셸 마헤 & 라디그 &프랄린)

3부 예술의 풍경(스페인 발렌시아, 네덜란드 로테르담, 이탈리아 마르케, 프랑스 프로방스, 츠랑스 아키텐)

4부 사람의 풍경(미얀마 바고 & 양곤, 튀르키예 말라티아 & 산리우르파, 코소보 프리슈티나 & 프리즈렌, 스웨덴 스톡홀름 & 예테보리 & 말뫼, 그리스 산토리니 & 낙소스 & 아테네)


이제는 사람들이 그가 다녀온 곳을 묻고, 그가 먹은 것을 따라 먹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여행에 관해서는 대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그가 그동안 모아온 풍경들과 이야기를 이번 책 <풍경의 안쪽>에 가득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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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노중훈이 담은 스무 편의 여행지 기록


“기억 속 그리움으로 부유하던 여행지의 풍경을 담아내다”

 

작가는 서문에 가닿지 못한 ‘풍경의 안쪽’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풍경의 안쪽’에 가닿지 못한 안타까움은 앞으로 성취해야 할 작업의 원동력으로 삼겠다고, 나아가고 나아지겠다”고 말한다. 독자로서 반가운 일이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채찍질하는 사람의 엄격함만이 빚어낼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여행은 돈과 시간뿐 아니라 크나큰 결심과 용기와 체력까지 필요한 일이라, 마음 한 켠에 꿈꾸면서도 망설이고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 여정을 카페 의자에 앉아서도 지켜보며 함께 체험할 수 있게 해주고, 떠나고자 할 때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계속해서 앞장서서 걸어주기를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으로나마 바라본다.


그리워할 수 있는 공간이 집 또는 모국 하나가 아니라 전 지구에 걸쳐 펼쳐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자유로움을 탑재하고 불확실성에 계속해서 노크할 수 있는 삶의 단단함을 나는 동경한다.


책은 <풍경의 안쪽>이라는 제목답게 여행지의 풍경들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한다. 어떤 종류의 여행기들은 결국 여행지를 통과한 자신의 이야기로 방향이 기우는 경우가 많은데, 노중훈 작가는 여행지의 풍경을 필름사진을 늘어놓듯이 설명하는 쪽에 노력을 기울인다.


이 지점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만의 시선이나 생각들 역시 책에 담겨있으나, 여행과 이국 풍경에 대한 경험을 좋아하고 그의 여행을 대리만족하고 싶은 이들에게 보다 적합한 책이다.


꽤 많은 양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 보는 재미도 뛰어나다. 심각한 사색에 빠져들 틈 없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사진을 보여주고, 또 다른 것으로 화제가 넘어간다. 자신만의 이야기로 자꾸만 빠져드는 여행 에세이가 혼자 조용한 바닷가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경험은 수준높은 가이드가 상주하는 패키지 여행에 가깝다. 분명히 이런 경험을 좋아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세계의 다양한 장소를 여행하기를 꿈꾸는 아버지에게 선물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삶의 깊은 영역까지 다다를 수 없는 건 여행자의 분명한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사진 속 우리는 분명 그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잠을 잤다. 풍경의 안쪽이란 가닿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향해 가는 우리의 모습은 분명히 어떤 풍경의 일부였다고. 또 다른, 그것도 아주 기억할만하고 누군가 편입되고 싶어할만한 어떤 풍경의 안쪽의 모습이라고. 지나온 나의 여행 속 풍경들을 떠올리며 적는다.



주문한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시는데, 옆자리의 할아버지가 엷은 미소를 띠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앉은 이 자리가 동네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랍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세상일에 달관한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이 스며 있었다.

 

_p.290~293, 「동네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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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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