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손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그려내는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 최산호

글 입력 2024.05.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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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소년의 질문이 있다.


우리는 일상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일상을 살아가게 할 만한 꽃 한 송이는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 도대체 인생은 살아볼만한 것인가? 세상은 내가 바라고 꿈꾸는 대로 쉽게 이뤄지지는 않고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과 상황들은 하루종일 말해도 부족할 정도로 우리 삶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최산호 작가는 이렇게 대답해준다. “나쁜 일에는 항상 좋은 것이 숨어있다”고.


최근에 한 영상에서 성공한 사업가와 연예인들이 ‘젊은 날의 성공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다. 빠르게 무언가를 이뤄내면 볼 수 있는 시야가 달라지지 않나, 인생이 유의미한 궤도에 오른 이후부터는 눈덩이처럼 복리로 불어나는 지점이 있지 않나.


나는 잘 모르겠다. 얼른 무언가가 되고 싶다. 의미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고, 안정을 찾고 싶고, 내 삶과 주변을 책임질 수 있는 그럴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질 때는 한 발 앞서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게 된다. 어른의 목소리가 그리워, 한마디라도 건네주기를 기대해본다. 그런 마음으로 인터뷰를 청했다.


그가 담담하게 건네주는 자기 삶의 이야기는 마치 냉침한 밀크티 같은 것. 긴 시간을 천천히 우려서라도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맛이 있다. “만약 그때 내가 그림을 전공하고 작품활동을 했다면 지금도 그림을 그렸을지는 모르겠다.” 카페 일을 거쳐 서른 중반의 나이에서야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산호 작가는 말한다.

 

“지금은 그림 말고 다른 삶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돌고돌아 도착한 곳에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다. 결국에는 삶이 드러내주는 길이 있고, 걸어가는 길에 혹여 사랑할 수 없는 것들만 가득해보이더라도 그 안에는 분명 사랑스러운 면면들이 자신을 발견해주길 기다리며 숨어있다.


손으로 일상의 소중함과 꽃 한 송이처럼 아름다운 면면들을 담아 그려내는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최산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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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최산호를 만나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림을 그리고, 카페 겸 작업실을 운영중인 최산호입니다.


예전에는 저를 소개하는 일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작가가 먼저인지 카페 운영이 먼저인지, 그 수식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그림 그리는 작가라고만 소개하기에는 그게 맞는지 모르겠고, 카페나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게 제 전부는 아니니까요.

 

지금은 여기저기서 전시도 꾸준히 하고, 운영중인 카페공간 내에서 시 낭독회도 하고, 하고있는게 많다보니까 하나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전시도 벌써 다음주면 16번째에요. 작가이지만 다른 예술가를 상대하는 일도 하고 카페를 운영하기도 하고, 하는게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다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해요. 종합예술을 하는 사람이랄까요.



2. 나의 삶을 에스프레소로 뽑아낸다면 어떤 향과 맛일까요? (본인 자신, 혹은 스스로의 삶을 센서리해서 커핑 노트로 표현해주세요!)


이 질문이 어려웠어요. 에스프레소라기에는 짧은 시간내에 강하게 압축하는 그런 모양이 제 삶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는 폭발적인 삶을 살았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차라리 음료에 비유한다면 냉침한 밀크티처럼 오랫동안 우러나오는 그런 모습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맛을 떠나서 만들어내는 제조과정에 있어서요.


또는 음료로 나를 소개해야 한다면 이 메뉴를 고를 것 같아요. 전에 ‘폴의 머랭공장’이라는 메뉴를 만든 적이 있어요.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위에 머랭쿠키를 올려서 만든건데 10년이나 됐는데도 아직 기억에 남아요.


그 메뉴를 아직도 기억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메뉴에 대한 책이 나와있기도 하고, 인스타도 없고 이러던 시절인데도 인기가 많았어요. 사실 카페에서 다른 메뉴들이 결국 아메리카노를 이길 수는 없는데, 그걸 이겨보겠다는 마음에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이긴 적도 있었고. 가장 사랑받았던 메뉴라서 기억하는 것 같아요. 그때 그 카페는 사라지고 없어졌는데 최근에 다른 카페들에서 비슷한 메뉴를 팔고 있기도 하더라고요. 신기했어요.


그렇게 인기있는 메뉴있데 운영중인 카페에서는 안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베이킹도 해야하고(웃음) 그 메뉴가 전시와 같이 연계해서 만든거라서 그 공간에 대한 아이덴티티와 연결된 부분이 의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그 메뉴를 하는게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 본인의 작품과 연결된 다른 메뉴를 만들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림 그리기도 바빠서(웃음), 거기 일을 그만두고 저는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메뉴를 개발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잖아요. 무언가 만드는 일이 없으면 심심해진 것 같아요. 창작을 해야하는 사람이 어느 날 된 것 같아요.


그럼 그 공간이 일종의 작가님을 부화시킨 공간이었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제 인스타 아이디가 개나리거든요. 가끔 사람들이 이유를 물어봐요. 전에 운영카던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메뉴가 개나리였거든요. 그 이후로 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니까, 개나리가 저한테는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된 시작했던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아이디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3. 대표작과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너를 만나러.JPG

 

 

2019년도에 그린 작품이고, “너를 만나러”라는 이야기 그림중에 한 장면이 대표작인 것 같아요.


저 작품이 안희연 시인의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의 표지로 사용하게 됐어요. 당시에 그 그림을 보고 시인분께서 그림을 사용하고 싶으셨나봐요. 먼저 연락을 주셔서, 책의 표지 그림으로 처음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 책이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최산호는 몰라도 표지 그림은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더 많을 거에요.


이 그림으로 시랑도 인연이 더 깊어져서 많은 시인분들도 알게 됐고, 저라는 작가를 세상에 많이 알려준 것이 이 시집이라서, 앞으로도 계속 대표작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그림은 지금 작업하고 있는 그림책의 가장 핵심 장면이기도 해요. 그림책의 이야기는 내 안에 숨어져있는, 숨기고 싶은 나라는 존재가 바깥으로 나가면서 자신을 찾는, 온전히 본인의 선택으로 나가서 찾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에요. 이 장면은 누군가 나를 스쳐지나가는 한 장면입니다.



4. 그림을 통해 평생에 걸쳐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평생이 너무 까마득한거에요. 그래서 이 질문을 처음 봤을 때 평생 하고싶은게 떠오르지는 않았어요. 대신 질문을 바꿔서 ‘근데 너가 한 가지만 이야기를 해야 해’ 라고 하면 무엇을 말하고싶니? 라고 물었을때는 할 이야기가 생기더라고요.


무언가를 찾아헤메는 이야기들을 그리지 않을까. 그게 나 자신일수도 있고 사랑일수도 빛일수도 있고 뭔가 찾아헤메는 그런 것들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직 찾는 중이신가요?


맞아요. 그래서 답을 못하는 거기도 해요.


어떤 단서들을 찾아다닌다거나 막 구체적으로 찾는 것 같지는 않고, 그건 그냥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만나는 것에서 저게 뭘까하고 찾는 것 같아요. 찾았다고 계속 그것이 정답일 수도 없고 조금씩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정답 없이 무언가를 찾고 바뀌어나가고 그럴 것 같아요.


그냥 찾았다 하고 마침표를 찍고 말면 좋겠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였네 하는 순간도 있었어요.


 

 

좋은 것은 분명히 있다


 

너의 바람.jpg

 

 

1.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그리긴 했어요. 대학은 안 갔지만 입시미술도 했었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었어요.


성인 돼서는 전시와 카페를 함께하는 공간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거기를 안 갔다면 그림을 다시 그렸을지 모르겠어요. 거기서 오래 일하면서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전시 공간이 함께 있는 카페다 보니까 많이 보기도 하고, 전시에 맞는 메뉴를 개발해서 만들기도 했거든요. 그림을 그리진 않았지만 무언가를 계속 만드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들을 하게 되다보니까 나는 이런걸 좋아하는구나 느끼게 됐고, 결국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림 그리기를 잘했다 이런 순간이 있을까요?


많은 순간들이 있는데, 예술가들이랑 친구할 수 있는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아니었다면 그냥 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계였을 거고. 작업을 하는 입장이 되다보니 작업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잖아요. 전시로도 시로도 책으로도 만나고 동시대에 작업하는 분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그런게 좋아요. 좀 더 가까워지기 좋은 위치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예술 장르 있으세요?


시, 제가 몇 번 이야기했었어요.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들은 시인이다.’ 실제로 그림을 그리다보니 시인분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팬심이 있는데 그게 어떻게 잘 연결돼서(웃음) 그래서 많이 생각해요. 내가 그림을 그려서 시인분들과 친구도하고 일도 하고 그게 참 좋아요.



2. 주로 다루는 소재나 주제는 무엇인가요?


제가 이제 그림을 그린지 5년차거든요. 처음에 그림을 그릴 땐 내가 어떤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돌아보니까, 밝아 보이는데 들여다보면 약간의 우울감이나 쓸쓸함이 있는 걸 그리는 일을 좋아하더라고요. 저한테는 그게 주된 주제인 것 같아요. 그런 지점에 대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건 아마도 제가 그런 것들을 추구하고, 떠올리기 때문인 것 같아요.


힘든 순간에도 항상 좋은 것들이 있다고 믿으시나요?


요즘은 힘들어도 좋은 순간이 있다고 생각을 바꾼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요. 목에 디스크가 심하게 와서 왼팔이 안 좋아요. 되게 우울했어요. 지금도 치료중인데, 순간 오른팔이 아닌게 어디야. 양손을 다 쓰기는 하지만 그림은 오른손으로 주로 작업하니까, 오른팔이 아니어서 이건 축복이다 생각했어요. 그런 순간들? 그건 찾아야하는 것 같아요. 슬픔에서도 나를 계속 굴려가는 것들을 찾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고 믿어요.


반대로 좋은 순간에는 좋은 것만 받아들여야죠. 안 좋을 때는 좋을 것들을 찾고요. 찾으면 있더라고요.


최근에 찾은 좋은 일 있으세요?


좋은 일은 너무 많죠. 4월에 전시도 하고싶던 공간에서 전시를 했었고, 1월에 한 전시도 공모전이었는데 제가 됐었고, 지금 인터뷰도 사실 좋은 일이고, 앞으로 나올 그림책 작업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왼팔만 저린 것도 좋은 일이고, 찾을수록 많더라고요.



3. 작가님의 인스타를 보면, 그림과 함께 적어둔 짧은 문장이나 글까지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글을 먼저 쓰고 그림을 그리시나요? 혹은 그 반대인가요? 작품 제작의 프로세스가 어떻게 되나요?


그림이 먼저에요. 문장보다는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요.  그림을 그려가면서 그게 어떤 거였지 찾는 거에요.


예전에는 그림 그리기를 숙제처럼 했었거든요? 훈련처럼 했었어요.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안 되더라고요. 애정의 문제라기보다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어요.


작품의 프로세스는, 그리고싶은 무언가를 만나야 시작되는 것 같은데, 만나는 순간들을 아주 다양하게 있어요. 네, 만나야 하는 것 같아요. 만나서 떠올린 것들을 들여다보면서 고민하죠. 그릴지, 말지, 혹은 그냥 보관할지.


작품에도 단편적인 작업들이 있고 장편적인 작업들이 있거든요? 1월에 진행한 전시의 경우에는 한 덩어리의 이야기였어요. 별도의 각각 다른 주제가 아니라 한 주제로 이어져있는 스토리가 있었고 보는 순서가 있었던 거죠. 그런 작품은 시간을 많이 할애하죠.


같은 공간에서 반복된 일을 하시는데 일상에서 영감을 찾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냥 가만히 나에게 오겠거니 하면 찾기 힘든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해서 얻는 것도 있을테지만요. 우리가 일상적으로도 만나는 것들이 엄청 많잖아요. 그게 다 소재일 수 있는데 가만히 기다리면 안 되고, 나가야죠. 작업 모드라고 하죠. 찾으려고 애를 쓰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컴퓨터를 하는데, 친구랑 약속이 있어요. 그럼 가끔 정신이 다른데 갈 수 있잖아요. 컴퓨터를 하면서도 머리로는 다른 생각이나 일을 하는 그런 것처럼. 일상을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집중해서 찾아야하겠다는 생각을 한 켠에 계속 두는 것 같아요. 그림에 관한 씨앗 하나를 구석에 숨겨둔 것처럼 가지고 생활을 하죠.



4. 암울할지언정 그런 현실쯤은 작은 꽃 한송이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도 아닌 “이긴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작가님의 꽃 한송이는 무엇인가요?


너무 많은 꽃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고르자면 결국에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나를 내 자신이 가지고 사랑해 주는게 커요. 그게 없으면 안 되는 것 같고, 제가 지금 가장 큰 꽃인 것 같고. 그걸 가장 많이 사랑해주어야 하지 않나.

 

 

5. 빈번한 절망과 잔잔한 슬픔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 한 송이를 피워낼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작은 의지들이요.


그런 내용의 전시가 1월에 한 살아내기라는 전시였어요. 나를 살게 하는 어떤 순간이 뭐가 있을까, 근데 그게 너무 별게 아닌 거에요. 크게 뭔가를 해야하는게 아니라 지금 내 삶을 유지하는게 제일 중요한거고, 힘들다고 넋놓고 있는게 아니라 양치도 해야하고 밥도 먹어야하고, 사과라도 한 입 깨물어 먹어야하고 그런 작은 의지들이 있잖아요. 잠깐 나가서 산책을 한다든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든가 그런 사소한 것들? 그게 나를 지켜주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것부터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전시도 그런 이야기였어요.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은 순간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그쵸. 실제로 제가 그러고 있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고 살아내는 것들이니까, 그게 작업으로 나오는거고 그런거죠.



6. 최근에 삶과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묻고있는 ‘핵심 질문’이 있을까요?


(웃음) 그게 뭐가 있지 많이 생각했어요. 그냥 어떤 방향에 대해서 생각하더라고요. 아까는 작품을 통해 한 가지만 이야기를 해야한다면 무슨 말을 할지 골랐지만, 이렇게 넓은 질문이라고 한다면 그냥 방향을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될 것 같으세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걸 알면 너무 좋은데.


그래도 어떤 방향으로 갈지 결정할 때 생각하는 판단기준이 있으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그림의 의미가 뭐냐는 질문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스스로를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다 하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그림도 그렇거든요. 아주 많은 방향들을 균형있게 가지고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그림을 그리지, 왜 그리지, 무엇을 그리지 생각을 할 때가 있기는 한데, 결국 그냥 하는 거에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떠오르는 게 그림 하나밖에 없어요.


내가 앞으로 계속 하고싶은게 그림이라는 걸, 어떻게 찾으셨어요?


저는 조금 늦게 시작했다고 생각하거든요? 30대 중후반에 그림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더 이른 나이에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면 달랐을 것 같아요. 지금 다른 길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금은 늦게 시작하고, 지금은 이게 맞다고 생각하고 가고 있으니 이제는 이 생활 말고 다른 게 떠오르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하는 거에요.

 


7.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나 최근 꽂혀있는 문장이 있을까요?


꽂혀있는 문장 중에 하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큰 사랑이 있다.” 이소연 시인님이라고 계신데 얼마 전에 그 분 북토크에 갔어요. 관객중에 한 분이 물은거에요. ‘가장 큰 사랑이 무엇일까?’ 궁금하잖아요. 뭐가 있을까. 사랑에는 여러 종류나 대상이 있는데 그 중에 가족일까? 뭐가 있지. 시인의 대답으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 사랑이 있다’는 거였어요. 저는 그 말이 좋았어요. 생각보다 내 주변에 큰 사랑이 많았구나. 그렇게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내 주변에도 많았구나. 그걸 더 폭넓게 생각하면 지금이 그런 사랑의 순간이구나. 그게 좋았어요.



8. 그리워하거나 오래 생각하는 장면이 있을까요?


이건 제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요. 오래된 장면, 그림의 원형적 이미지 이런 질문인거잖아요. 미리 생각해봤는데 모르겠더라고요. 보통 저는 그런 순간들이 아픈 기억들이어서, 그런게 없다는 건 지금 마음상태가 좋다는 것 같기도 하고.



9. 그림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림 그리기는 그냥 하는 거고 그거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지만 한 가지는 있어요. 저를 좀 뒤를 덜 돌아보게 하는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면 그래도 뒤를 덜 보는 것 같아요.


해소라고 해도 될까요? 그림 그리면서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나 그리움을 떨쳐버리시는 건지.


그림 그린다고 해소되는 느낌은 없는 것 같은데,


(웃음) 그럼 보통 무슨 생각하면서 그리세요?


망치지 말아야지.(웃음) 제 작업대에 붙어있거든요. <망치는거 두려워하지 말기> 집중하는 순간에는 뭔가 크게 느낀다기보다는 어떻게 잘 완성해야하나 이런 생각뿐이에요. 얘를 언제 칠하고 있지 이런 단순한 마음인 것 같아요.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잘 완성해야 하니까.



10. 나만이 말할 수 있고 그릴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그걸 제가 너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별점이 뭐가 있을까? 오히려 제가 그걸 알고싶더라고요. 나만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지? 그거 알면 좀 편하긴 하겠다. 앞을 내다보는 느낌이랄까요.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고, 그림을 잘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세부적으로 어떤 부분을 잘 그릴까를 고민하니까 어렵더라고요. 기자님한테도 묻고 싶더라고요.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주변에 묻는 편이에요.




나만의 계절을 살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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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현 시인님과 듀엣 낭독회를 진행하고 계신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카페를 열고 김현 시인님이 종종 놀러 오셨어요. 종종 놀러오셔서 친분을 쌓다가 제가 시를 좋아하는 걸 알고 계시니까, 혹시 여기서 낭독회를 하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해주셨어요. 그때 바로 좋다고 했어요.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까.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가 시인이거든요.


듀엣낭독회는 어떤식으로 진행되나요?


진행자인 김현 시인님이 다른 시인 한 분을 초대하시고 같이 시를 읽으세요. 김현 시인님은 최근에 쓴 시를 위주로 읽으시고, 짝꿍시인님들도 같이 읽으시고요. 저는 짝꿍 시인분의 포스터를 하나씩 그리고 있는데 12번 하게 되면 그림을 모아서 달력을 내기도 하고요. 그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어요. 어쨌든 제가 있는 공간에서 매달 하는 거잖아요.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19번째라 신기해요. 매달 넷째주 금요일이나 셋째주 금요일에 7시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페 인스타 계정으로 신청을 받고 있어요.



2. 슬픔은 정말 작은 조각으로 가려질 수 있나요?


제 작품 제목 중에 ‘한 조각으로 가려지는 슬픔’이 있었죠. 가려질 수 있는가에 대답은 제가 해드리는 것보다, 이 시집을 건네드리고 싶어요. 유현아 시인의 시집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중에 ‘오늘의 달력’이라는 시가 있거든요. 한 조각으로 가려지는 슬픔이라는 제목은 이 시에서 출발한 부분이 있어요. 꼭 찾아서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3. 4월에 진행한 전시 <어떤 계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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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전시의 뒷이야기인데, 그림은 몇 장 안 되지만 할 이야기가 되게 많았어요. 이전에 진행한 전시 <살아내기> 마지막 장면을 보면 커다란 산이 있고 그 사이로 꽃을 들고가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 마지막 장면을 부정적으로 해석해서 보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희망적인 부분인데. 작품의 해석은 관객의 몫이지만 그럼에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긍정의 이야기여서, 그 뒤의 이야기를 추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눈 덮인 산으로 갔던 사람이 좀 더 정말 말 그대로 밝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떤 계절> 첫 작품은 그 꽃을 들고 평화롭게 자고 있는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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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는, 거기에도 호랑이가 있었을 거에요. 맨 앞 대표작 그림에서 소개드렸던 풀밭의 그 호랑이요. 그림 중 일부에는 이렇게 세계관을 섞어놓은 것도 있어요. 산에 갔던 사람과 풀밭의 호랑이는 사실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제목은 어떤 계절이라고 지었어요. 겨울이나 봄이라고 확정해서 적지 않고 어떤 계절이라고 말한건 누군가의 겨울은 따뜻할수도 있고 누군가의 봄은 여름이거나 눈이 내릴수도 있는 거니까, 그걸 명확히 나누고싶지 않았어요. 누구든 그림을 보면서 자신만의 계절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가을에도 겨울에도 나는 풀밭을 일구어낼수도 있고, 같은 계절에도 나는 풀밭이고 누군가는 산일 수 있고 이런 것들을 버무려놓은거죠.


앞으로 작업할 작품들의 세계와도 이어져있는 부분이 있어서, 작품들을 따라 읽으면서 계속 발견해나갈 수 있는 부분도 있으실 것 같아요. 



4. 결국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면 좋을까요? 작가님이 바라고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어떻게 해야한다고 제가 말씀은 못 드리지만, 저는 이렇게 살아간다라고 말씀드려요. 긍정의 마음과 유머가 좀 필요하다. 계속 그런 것들을 찾으려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픈 것도 마찬가지고, 그 안에서 자꾸 어떤 작은 조각들을 찾는거죠. 100프로 모든게 다 최악인건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 건 백프로가 맞아요.(웃음) 그렇게 생각하려고요. 그러나 나쁜건 그러지 않을 것이다.



5. 삶에서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나 존재나 무엇이 있을까요?


밤새 말 할 수도 있어요. 낮술도 마셔야하고. 하지만 여기서 다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좋은 것들을 나열하기에도 바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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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반대로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까요?


현재로는 꽃과 시라고 생각해요. 둘 다 한 글자네요. 제가 지금 화단 관리를 하고 있는데, 되게 좋아하는 일이에요. 햇빛도 잘 안 들어오는데 포기하지 않고 돌보고 있거든요. 가끔 그 꽃들을 잘라서 선물로 드릴 때가 있어요. 그게 그렇게 좋을수가 없더라고요. 꽃집에서 사다준 꽃이 아니라 직접 심고 키우는 것으로 드리는 거잖아요. 그걸 드렸을 때 어떤 값진 선물을 드리는 것보다 기쁘고, 뭔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꽃 한송이들 심어주고 가는 느낌? 그런 순간들 자체가 ‘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꽃도 시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은 것들이에요. 그래서 아름답고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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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마음에 품고다니는 시 한 편 추천 부탁드립니다.


최지은 시인의 시집 <봄밤은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중에 ‘목소리’라는 작품이요.



8. 좋아하는 콘텐츠 추천해주세요!


만화 좋아해요. 가리지 않아요. 애니메이션 웹툰도 종이책도 다 좋아해요. 너무 덕후같아서(웃음) 다 말하지는 않을게요. 루틴이 있어요. 자기 전에 30분 보거나 저녁 먹으면서 보통 봐요. 늘 만화를 좋아했어요.



9.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 부탁드립니다.


재미있었어요. 답변을 준비하면서 하면서 되게 성의없게 느껴지는 말일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결국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구나 느끼는 때도 있었어요. 단순한 답으로 보여도 그 안에 존재하는 깊이들이 있기도 했던 것 같아요. 미사여구나 억지로 만든 그럴듯해 보이는 부분을 다 퍼내고 남은게 이거라서 이게 알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빠르게 일정이 잡혀서 진행된 인터뷰였는데, 솔직한 마음들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어요. 오래 준비했다면 자꾸 뭘 만들어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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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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