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문화권을 떠올릴 때, 우리는 그 강고한 종교적 전통으로 인해 예술 역시 신앙의 틀 안에서 이해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신앙과 삶이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사회에서 아름다움 역시 종교적 의미 속에 놓여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아랍 문화에서 예술과 아름다움이 언제나 신앙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된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은 때로 신앙과 나란히, 때로는 그로부터 분리된 채 독자적으로 사유되고 향유되었다.
도리스 베흐렌스-아부세이프(Doris Behrens-Abouseif)의 저서『 Beauty in Arabic Culture』를 한국어로 완역한 『아랍 문화의 미학: 꾸란에서 장식까지, 아랍 세계가 사랑한 아름다움』은 초기 이슬람 시대부터 중세 후기에 이르기까지 약 천년에 걸친 아랍 문명의 지적·예술적 전통을 탐구하는 학술서다. 저자는 예술 작품뿐 아니라 꾸란과 법률 문서, 종교 및 수피 문헌, 문학 비평, 과학과 철학 문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교차해 읽으며, 아랍 문명권에서 아름다움이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이 실천되었던 방식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1장은 아랍 미학의 종교적 사유를 다루고 있다. 이 장에서는 문학적 완전성의 정점으로 평가되어 온 꾸란의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아랍 사상가들이 전개해 온 주요 미학적 논의들이 소개된다. 저자는 특히 알 가잘리의 사유에 주목하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사랑이 하나의 연속선 위에서 이해되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플라톤적 개념을 흡수한 수피 사상과 빛의 상징주의를 통해 아름다움과 사랑이 우주의 질서를 작동시키는 근본 원리로 받아들였음을 설명한다. 여기서 미적 경험은 단순한 감각적 향유를 넘어 존재론적 근거를 갖게 된다.
2장과 3장은 미학적 논의를 종교적 영역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옮겨가며, 자연과 육체, 시와 음악, 사랑 등 아랍인들이 미적 대상으로 인식해 온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다. 저자는 아랍 문화에서 아름다움이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으로 적극 수용되었음을 강조한다. 에로틱하고 다의적인 표현들로 가득 찬 수피의 시, 화려한 장식, 연회, 육체적 기쁨으로 충만한 꾸란 속 낙원의 묘사는 이러한 미학적 감수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저자가 특히 비중 있게 다루는 예술 장르는 문학, 그중에서도 시다. 근대 이전 아랍 사회에서 시는 모든 예술 가운데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장르였다. 아랍 시는 교훈과 도덕적 목적을 중시했던 동시대 그리스 시와 달리, 감동과 기쁨 그 자체를 추구하는 예술로 이해되었다. 선과 아름다움을 구분하고, 예술을 종교적·도덕적 규범에 종속시키지 않는 이러한 태도는 중세 사회에서는 드문 것으로, 아랍 문화가 이미 근대적 미학 감수성을 내포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4장은 회화, 건축, 복식 등을 중심으로 아라베스크와 기하무늬, 장식과 같은 이슬람 미술의 대표적 요소들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이러한 양식들이 흔히 이해되듯 형이상학적 상징이나 은유의 산물이 아니라, 예술가의 기술적 완성도와 지적 훈련, 그리고 장식에 대한 세속적 취향이 오랜 시간 축적되며 형성된 결과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성격은 특히 건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모스크를 포함한 아랍 건축 양식은 종교적 요구에 의해 고정된 형식을 따르기보다는, 당대의 일반 건축 전통과 기능적 필요 속에서 끊임없이 변모해 왔다. 장식 역시 교리나 이념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간을 아름답게 구성하고 감각적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미학적 선택이었다. 저자는 아랍의 시각 예술의 핵심적 특징을 바로 이러한 ‘무목적성’에서 찾으면서, 예술은 무언가를 뜻하도록 요구되지 않았고, '그 자체'로 사유되고 감상되어 왔음을 밝힌다.
아랍 문명은 오랫동안 외부의 시선 속에서 단순화되거나 왜곡되어 왔고, 이슬람권 내부에서도 페르시아 문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어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아랍 세계에서는 도시 문명과 제국의 후원 아래 시와 음악, 건축과 장식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이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예술은 자율적이고 중립적인 영역으로 존중받으며 풍부하게 향유되어 왔다.
『아랍 문화의 미학』은 이러한 아랍 미학의 감각성과 세속성, 그리고 현대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중동을 종교와 분쟁의 이미지로만 이해해 온 기존의 인식에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아랍 미학을 종합적으로 다룬 연구가 드문 현실에서, 이 책은 예술뿐 아니라 철학과 종교, 일상에 이르기까지 아랍 세계의 다양한 측면을 포괄적이고 심도 깊게 살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랍 문화의 미학』은 아랍 미학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려는 연구자에게는 물론, 아랍 세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일반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