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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여름은 이렇게 귀엽고 시끄럽다 - 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도서/문학]

달고 상큼한 여름, 엉뚱한 농담

by 오가영 에디터
2026.07.29 13:09

어떤 책은 읽는 순간 특정 계절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고선경의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를 펼치면 여름이 온다. 제목부터 그렇다. 샤워젤의 향긋한 거품과 소다수의 톡톡 터지는 기포는, 땀을 씻어낸 뒤 마시는 차가운 음료를 떠올리게 한다.

 

시집 곳곳에는 슬러시와 아이스크림, 메론소다와 과일 향기처럼 달고 차가운 것들이 가득하다. 그 사이로는 예능 프로그램과 모바일게임, 인터넷 밈들이 아무렇지 않게 끼어든다. 덕분에 이 시집의 여름은 감성적이고 아련하기보다는 귀엽고 시끄러운 편에 속한다.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시집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웃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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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입안에서 시작된다


 

표제작 「샤워젤과 소다수」는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너에게서는 멸종된 과일 향기가 난다

 

 

그냥 과일도 아니고 ‘멸종된 과일’이라니. 정확히 어떤 향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어딘가 달고 상큼한 냄새가 먼저 떠오른다. 시에는 아이스크림과 소다수, 청보리밭과 유리병 안에서 무한히 터지는 기포도 등장한다. 이 시집의 여름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보다도, 코끝에 스치는 향과 입안에서 터지는 기포로 먼저 느껴진다.

 

「여름 오후의 슬러시」에서는 하나뿐인 빨대를 함께 쓰다가 감기까지 나눠 먹는다.

 

 

슬러시에 꽂힌 빨대 하나로

너와 감기를 나눠 먹는 생각

 

 

우리는 흔히 감기를 '옮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시 속에서는 슬러시처럼 둘이서 나눠 먹는 것이 된다. 하나뿐인 빨대를 함께 쓰다가 감기까지 나누게 되는 장면이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좋아한다는 말을 직접 꺼내지 않더라도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다.

 

멸종된 과일 향기가 나고, 소다수의 기포가 터지고, 슬러시와 감기를 나눠 먹는 여름. 「샤워젤과 소다수」의 여름은 푸른 바다보다도 이런 작고 달콤한 장면들 속에서 그려진다.

 

 

 

시는 어디까지 웃겨도 될까


 

「샤워젤과 소다수」에는 읽다가 실제로 웃음이 나는 시도 많다. 시집을 읽다 보면 예능 자막과 게임 알림창, 인터넷 댓글에서 보던 말투가 불쑥 끼어든다.

 

「스트릿 문학 파이터」는 제목 그대로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을 패러디한다.

 

 

세계 최초 시 서바이벌 오디션이 시작됐습니다

지금 바로 투표해주세요

 

 

시 습작생들은 상금과 출판 계약을 두고 경쟁하고, 금지어 미션과 악마의 편집, 문자투표까지 거친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도 빠지지 않는다.

 

 

[시 쓰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함?]

 

 

카메라 앞에서 평가받고 편집되는 시인들의 모습은 황당하지만, 실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문법을 제법 충실하게 따라가기에 더욱 웃음을 준다. 문학과 예능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세계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섞인다.

 

「살아남아라! 개복치―몰라 몰라 내가 죽은 진짜 이유를」에서는 모바일게임의 설정을 가져온다.

 

 

교수님이 무서워서 돌연사! 

애인이 생기지 않아서 돌연사!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죽는 개복치처럼 화자도 일상의 고민 앞에서 계속 돌연사한다. 이 시집은 시가 반드시 고요하고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능 자막과 게임 알림창, 인터넷 밈까지도 얼마든지 시가 된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말들이 한데 섞이는 동안 문장들은 소다수의 기포처럼 통통 튀어 오른다.

 

 

 

반듯하지 않아서 더 사랑스러운


 

「샤워젤과 소다수」가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단지 여름을 제목에 넣은 작품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슬러시와 아이스크림, 과일 향기와 기포가 여름이라는 계절의 맛을 만들어내고, 게임과 예능, 밈과 말장난이 그 계절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 시집 속 여름은 반듯하고 우아하지 않다. 슬러시를 나눠 먹다가 감기에 걸리고, 사소한 고민 때문에 돌연사하며, 사랑을 쓰려다가도 금지어에 걸리곤 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생생하고 사랑스럽다. 달고 상큼한 이미지와 불쑥 터지는 농담이 뒤섞인 시들. 「샤워젤과 소다수」는 여름을 눈부신 풍경으로 그리는 대신, 입안에서 터지는 기포와 웃음으로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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