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을 가득 채우는 탄산, 찰나의 기포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미미한 감각들. 마치 그런 순간을 닮은 시집이 있으니, 바로 고선경의 <샤워젤과 소다수>이다. 마치 한 통의 딸기 맛 물약과도 같은 작품들, 그 곁에서 건네받았던 향을 이곳에 살포시 남겨 본다.
당신에게 향기로운 헛것을
“너에게 향기로운 헛것을 보여주고 싶다.”
책의 펼치면 가장 먼저 마주할 수 있는 시인의 말이다. 이러한 말처럼 고선경은 우리에게 본인만의 향기와 이름 모를 형체를 끊임없이 전한다.
너에게서는 멸종된 과일 향기가 난다.
(...)
네 손의 아이스크림과 내 손의 소다수는 맛이 다르다 너의 마음은 무성하고 청보리밭의 청보리가 바람의 방향을 읽는 것처럼 쉬워
무한히 터지는 기포
- 샤워젤과 소다수 中
표제작 <샤워젤과 소다수>의 첫 문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감각은 다름 아닌 후각이다. 이때 향기의 출처가 익히 아는 대상이 아닌 추상적인 멸종 과일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향기로운 헛것’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해당 시에서 함께 부각되는 또 다른 감각은 미각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스크림’과 ‘소다수’는 독자가 활자 그 자체만으로 맛을 연상하도록 한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은 마치 단맛이 혀에 한동안 잔류하듯 우리 안에 남게 되며, 그렇게 시는 독자에게 본연의 분위기로 기억되는 것이다. 무한히 터지는 기포의 간지러운 따가움을 괜스레 상상하게 되고, 이러한 순간의 연상은 결국 독자가 형성하는 작품의 이미지로 굳어진다. 그리하여 고선경의 시는 여타 작품과 달리 향기와 맛으로 설명된다. 텍스트는 독자에게 어떠한 향과 맛을 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기어코 그 한계를 보란 듯이 넘는다.
이러한 특징은 시집 내 수록된 다른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마을에는 청바지 공장과 젤리 공장이 있다 나는 젤리 공장 공장장이 되고 싶을 만큼 젤리를 좋아한다
소다맛 설탕맛 돌고래맛 혼잣말
- 토마토 젤리 中
말랑한 식감과 달콤한 맛이 떠오르는 ‘젤리’라는 대상은 작품의 제목이자 빈번히 등장하는 시어로, 독자에게 활자를 통해 미각을 경험하도록 한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시 <샤워젤과 소다수>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토마토 젤리>를 처음 읽는 이들 중 일부는 아마도 ‘엉뚱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소다맛’과 ‘설탕맛’, ‘돌고래맛’, 그리고 ‘혼잣말’의 나열은 저들 간의 어떠한 연관성도 없기에 더욱 엉뚱하게 느껴진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현 심정이야말로 고선경의 작품을 가장 잘 나타낸다. 그는 유기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당황스럽고, 설명되지 않는 전개는 시인의 작품에서 빈번히 포착된다. 기존 기성 작품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우리는 고선경의 시에서 경험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어딘가 모르게 특별한 것이다. 실소이건, 폭소이건 고선경은 결국 독자에게 웃음을 안겨준다.
헛것이 투영하는 세계
하지만 고선경의 ‘헛것’에는 현실이 어렴풋이 스며있다.
아르바이트를 잘리고 가게를 나서기 전
얼음물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물었다
물을 마시면서
세상에는 야무지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겁니다
쯧, 훈수를 둔 뒤 사장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후로도 나는 몇 번쯤 고용되었고
하루에 몇 시간씩 노동했다
사는 게 좋았던 적
사는 게······설렜던 적
있다
(...)
전전하던 이 집 저 집 통째로 데리고서
스위스에 가고 싶다 빙하가 흐르는 알프스산맥을 두 눈으로 보고 싶다
죽기 전에 못 가보면 어쩌지?
괜찮아, 너만 못 가는 거 아니야
어 그래, 좀
위로가 되네
- 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 中
독자를 환상 속으로 데려가던 시인이지만 해당 작품에서 화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며, 그는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고서는 알프스산맥을 죽기 전에 볼 수 있을지 생각하며, 그것이 단지 혼자만의 처지는 아니라는 말에 위로받는다. ‘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라는 제목은 현실과 사뭇 동떨어져 보이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단지 비현실적이라 할 수 없다. 현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혹은 익숙할 법한 상황은 시인의 세계에 단지 환상만이 존재하지는 않다는 걸 증명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사랑도 하고 싶은데 잘하고 싶은 거지
나를 구성하는 재료의 빛깔과 질감
누가 좀 만져줬으면 좋겠어
옷장 속에서 남몰래 축축해질 때도
누가 나를 꺼내 좀 털어줬으면
모처럼 단잠에 빠졌다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그런 걸 소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내 주변엔 많다
어제나 오늘로 충분한 게 아니고
내일이 과분해서
그런데 사랑은 해야겠지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까 돈과 노동과 사랑 앞에서
정직한가 돈과 노동과 사랑은
만져지지 않는 부위가 만져지기를 바라는
그런 걸 소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
-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 中
더 잘 살고 싶은 욕망, 그러나 쉽사리 실현되지 않는 현실. 시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는 그런 모습을 반영한다. 돈을 많이 벌고, 사랑도 잘하고 싶은 화자는 욕망을 지니는 우리 사회의 개인과도 닮아 있다. 또한 누군가가 만져주기를, 축축한 자신을 꺼내주기를 바라는 화자의 모습은 고독과 고립의 도처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리를 표상한다. 그러므로 시 전반부를 채우는 수많은 바람은 이른바 ‘희망 사항’이라 일컫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씁쓸한 세상 속에서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분명 생동(生動)하고 있다. 고선경은 이러한 순간을 포착하여 시의 언어로 기록했다.
멀미하던 시절을 지나서
우리에겐 그런 시절이 있다. 방황하여 혼란스럽다가도 방황할 수 있으니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던 그런 날들이. 시집의 말미에 다다를 때면 과거를 향한 그리움의 기포가 살며시 일렁인다.
나는 노래도 못하고 악기도 못 다루지만
밴드부에 들어가고 싶었어
중학교 때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절반쯤 기억나지 않고
또 절반쯤 여전히 멋지다
무한궤도 서태지 패닉
뒤늦은 사랑이라는 말은 말이 되지만
뒤늦은 그리움이라는 말은 말이 안 되지
그리움에는 제철이 없어서
(….)
눈을 뜨면 절반쯤 기억나지 않는 꿈
또 절반쯤은 여전히 기다려지지
나는 붓질도 못하고 색채도 모르지만
화가가 되고 싶었어
그리움을 모르는 소녀가 되고 싶었어
- 세기말을 떠나온 신인류는 종말을 아꼈다 中
화자는 서툴지만, 그럼에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던 시기를 떠올린다. 그는 당시 사랑하던 것들이 절반쯤은 기억나지 않지만 절반쯤은 여전히 멋있다 생각하고, 꿈이 절반쯤은 기억나지 않지만 동시에 절반쯤은 여전히 기다린다. 시간을 통과하며 점차 현실과 타협하는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가슴 한구석에는 아직도 습관 같던 취향이, 뜨거웠던 열망이 자리하는 것이다. 마치 과거의 흔적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처럼 말이다. 그러니 ‘세기말을 떠나온 신인류’는 어쩌면 현재의 우리일 수도 있겠다. 제철 없는 그리움의 곁에서 살아가는 우리,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우리.
페인트사탕을 빨아먹고 혀가 파래지면 다른 생물이 된 것 같았던 사춘기 나는 배우고 싶은 영법이 많은 학생이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코피가 쏟아졌다 이제 얼굴과 목소리가 희미해진 선생은 사춘기의 방황이 일종의 멀미라고 말했다 황급히 자라느라 매 순간이 어지럽고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 물속의 어항 中
시인은 그리움이 향하는 곳으로 우리를 기꺼이 인도한다. 이른바 사춘기, 고선경이 발화하는 사춘기란 그런 것이다. 혀만 파래져도 다른 생물이 된 것 같던 시절, 황급히 자라느라 멀미하던 시절. 늘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이보다 사랑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무어라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었던 감정을 그는 자신만의 언어로 기록한다. 지나온 날들에 멀찍이 떨어져서, 다만 조금 그리워하며 묵묵하게 적어낸다.
그렇다. 우리는 멀미하던 날들을 횡단하여 다음 세기에 도착했다. 이 사실이 때로는 얼마나 위로가 되어 주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울렁거리던 순간을 거쳐 기어코 살아가고 있다. 씁쓸한 세상을 향해 보란 듯이 통렬한 웃음을, 엉뚱한 말들을, 솔직한 욕망을 내던지는 시인. 고선경의 소다수야말로 이 사회의 신인류에게 전하는 단 하나뿐인 딸기 맛 물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