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온도계와 차가운 미래에 대한 상상
겨울이 되면 동네에 사랑의열매 모금 온도계가 설치된다. 사거리의 한복판에 서 있는 그 온도계는 언제나 그다지 높지 않은 온도에 머물러있어서, 내 시선은 매년 비슷한 높이에 닿는다. 100도까진 아니어도 조금 더 높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본인이 너무 추워서 서로를 바라볼 틈도 없이 웅크리기 때문일까.
기부라는 행위 자체가 현 자본주의 형태와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기술 사회에서 모순되는 것임에도 내가 이상주의자라서 혼자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익에 바쁘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은 주식의 한 종목으로 변해가며, 누군가를 돕는 일은 여유 있는 사람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변색되는 것 같다. 기부는 점점 특별한 이벤트가 되고, 일상에서 밀려난다.
사이버펑크를 주제로 한 영화들을 볼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차가운 기계와 네온빛으로 가득한 도시, 인간보다 더 정교한 인공지능, 그리고 그 속에서 점점 감정을 잃어가는 사람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효율적인 존재가 되지만, 동시에 더 외로워진다. 필자는 그런 세계관을 볼 때마다 인간성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안타깝다, 너무나도. 기술 앞에서 인간이 가지는 대체될 수 없는 마음은 너무 쉽게 퇴색되는 건 아닐까 비관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기부트렌드 2026』은 이 두 장면—겨울의 온도계와 차가운 미래에 대한 상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연결한다. AI 시대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감과 연민이며, 바로 그 감정이 기부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남아 있고, 기부는 그 선택의 가장 분명한 형태라고 이 책은 말한다.

기부트렌드 2026 속 기부
『기부트렌드 2026』은 AI와 기부를 단순히 대비시키지 않는다. 이 책은 기술을 적으로 설정하지도, 무조건적인 해결책으로 찬양하지도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기부의 방식은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기부의 이유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먼저 AI가 만들어낸 새로운 기부 환경을 짚는다. 데이터 기반 분석, 자동화된 추천 시스템, 맞춤형 모금 전략은 분명 기부의 효율을 높인다. 누가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지, 언제 기부할 가능성이 높은지, 어떤 메시지가 더 효과적인지까지 계산할 수 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AI가 제공하는 ‘도움’일 뿐, 기부의 출발점은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 그 원초적 따스함이다.
기부는 여전히 따스함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상황을 상상하며 마음 아파하는 능력, 그 상황을 무시하고 외면하지 않으려는 태도, 그리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결심. 책은 이 지점을 반복해서 강조하며, 모든 데이터가 예측의 대상으로 변해가는 AI 시대일수록 오히려 기부의 인간적 의미가 더 또렷해진다고 말한다.
변화한 기부자, 달라진 질문들
『기부트렌드 2026』은 기부자를 이상화하지 않는다. 이 책 속의 기부자는 선의와 감정으로 기부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많이 질문하고, 더 신중해졌다. 이 기부는 정말 도움이 되는가, 지속 가능한가, 나의 가치관과 맞는가. 극도의 현실주의가 기부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부는 더 이상 충동적이지 않다. 도움이 필요하다며 외치는 정보와 선택지 사이에서 기부자는 가장 최선의 결정을 나름대로 행한다. 이 과정은 기부가 감정 소모로 끝나지 않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가능성을 내재하므로 기부자가 질문을 던질수록, 기부는 더 단단해진다.
스토리텔링에서 스토리두잉으로
책의 중반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전환점은 ‘스토리텔링’에서 ‘스토리두잉’으로의 이동이다. 과거의 기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의 기부는 그 이야기에 기부자를 직접 초대한다.
『기부트렌드 2026』은 감동적인 서사만으로는 더 이상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한다. 대신 참여의 경험이 중요해졌다고 분석한다. 기부자는 기부를 통해 변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집중한다. 이것은 기부를 갑이 을에게 행하는 소비 또는 관용이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로 인식하게 만든다. 즉, 모두 함께 연대하여 행동하고 책임지는 경험이 기부가 가진 역할이 된다. 이로써 기부는 다시 일상이 되는 것이다.
기부는 여전히 강함을
『기부트렌드 2026』을 읽으며 느낀 점은 결국 AI는 기부에 있어서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거나 악영향을 끼치는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AI는 계산할 수 있지만, 연민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은 여전히 강하다. 내가 겨울마다 느꼈던 안타까움과, 차가운 미래를 향한 불안은 결국 인간이 가진 이 작은 힘을 믿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부트렌드 2026』은 2026년 기부의 현실을 무작정 보고하는 책이 아니라 AI 시대 속 인간이 잃어버려선 안될 마음을 상기하는 책이다. AI 시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인간이 놓지 말아야 할 것, 그건 연민과 공감이다.
기부는 여전히 사랑의 열매 온도계마냥 천천히 낮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적되는 행위가 인간적이고 사랑스럽다. 이 책은 그 느린 감정들이 여전히 사회를 움직이고 있음을 조용하지만 단단한 언어로 증명한다. 그것으로 우리는 인간임을 잊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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