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2018년의 8월, 나는 뜨거운 여름의 열기에 지쳐있었다. 허겁지겁 교실로 들어가면 에어컨 바람에 살짝 몸이 으슬해지다가도, 몸 안 쪽까지 파고든 더운 기운이 여전히 남아있어 추위와 더위 속에서 몸부림을 쳤다. 그래서 곧장 책상에 한 쪽 뺨을 가져다 대면, 차가워진 그 표면에 얼굴 한 쪽의 감각이 마비되는 것 같다가도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학창 시절의 마지막, 10대의 마지막이라는 순간에 불안했던 감정이 미지근해짐을 느꼈었다. 곧 9월 모의고사에, 곧 수능에, 곧 성인이 된다는 이 기분이 너무 이상했고, 너무 허무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고, 그런 날 위로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참 좋을텐데. 친구들은 모두 나와 같은 입장이고, 당장 나도 다른 무언가를 할 여유는 없는데. 참, 심란하기만 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친구가 알려준 노래가 있었다.

    

"이 노래 한 번 들어볼래?"

"누구 노래야?"

"잔나비라고, 밴드래."

"잔나비? 처음 듣는데 유명해?"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

 

친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려준 노래의 첫 인상을 말해보자면, 구수했다. 누룽지 숭늉 같이 노래가 올디했는데, 뭔가 세련되게 빈티지스럽기도 하고. 뮤직비디오를 보니 색감도 디자인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올드한데, 그게 어떻게 딱 내 취향에 딱 맞을까? 춤을 추자니, 지금 이 시기에 춤을 추자니! 춤추는 법을 알아야 달리는 법도 알게 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는데, 너무 잘 알겠어! 이 복잡한 감상평을 내린 노래의 제목은 'Good Boy Twist'. 지금도 너무나도 좋아하는 노래이다.

 

 

1-c00f4ca8.png

 

 

잔나비라는 밴드가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그들은 힙한 게 싫고 뜨거운 게 좋다고 한다. 그 소개글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나는 이 밴드를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 라고. 그 당시에는 정규 1집과 'She' 와 같은 음악이 나왔던, 밴드의 초창기였다. 자습실에서 사감 선생님들을 피해 몰래 그들의 노래를 들어봤다. 일단 가장 먼저, 1집의 타이틀곡인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을 들어봤다. 이 기분 좋은 기타 선율은 뭐지? 이 여름밤 특유의 약간은 서늘하고도 열기가 남아 나른한 분위기를 잘 표현했으면서 가사는 또 약간은 삐딱한 이 노래에 빠졌다. 보컬의 개성있는 창법, 정제되지 않은 듯한 이 날 것에 마음을 뺏겨버린 게 컸다. 가장 내 마음을 흔든 건 'Hong Kong'.  실제 홍콩을 갔다왔고, 홍콩을 좋아해서 궁금해서 들은 노래인데, 와! 이 더욱 구수한 노래에 마음을 뺏겨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뒤로 잔나비 노래를 계속 듣다보니, 몇 개월이 지나서 정규 2집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창 재수를 하느라 울적해하던 나는 2집 '전설'을 항상 들으며 한강을 대교를 직접 걸어 집에 갔었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보다 더 내 마음을 이끈 건 앨범명과 동일한 명의 곡, '전설'과 '꿈과 책과 힘과 벽'이었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갈거야' 라는 가사를 들으며 괜히 훌쩍거리기도 했다. 잔나비의 노래들은 고맙게도 내 재수 생활을 내내 함께하며 무너지기 직전까지 힘들었던 상황에서도 날 지지해주었다.

 

솔직히, 재수를 끝낸 이후부터는 그 이후로 발매된 잔나비 앨범들에 대해서는 많이 듣진 않았다. 잔나비 소곡집 1과 3집 환상의 나라는 취향과 안 맞아 잘 듣지 않았었고,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을 조금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저 당장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았다. 여유 같은 건 없었고 당장 이뤄내서 보여야하는 성과에 허덕였던 시기들을 지났다. 그러다보니 사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어릴 적 내가 꿈꿨던 어른이 된 모습은 이런 게 아닌데. 왜 열심히 해도 성과가 보이질 않지? 왜 나는 끝없이 지치지만 달려야 할까. 무수한 의문을 품어도 답은 알 수 없었다. 그럴 시간에 노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잘하고 싶어서 노력을 했는데, 노력을 해도 못난 게 계속 보였다. 우울한 어른이 되어, 커다란 세상 속 노동자가 되어 부품을 조이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문득 고등학생 시절, 나와 함께 크게 웃었던 친구들이 그리웠다. 그래서 한 명씩, 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연락을 주도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보고 싶은 마음을 참고 연락을 하지 못하고 받기만 한 게 미안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잔나비가 4월에 정규 4집을 발매했다는 걸 알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잔나비의 앨범을 들을 때, 타이틀곡이 아닌 수록곡을 더 좋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잔나비 4집, 'Sound of music pt. 1' 역시도 '모든 소년 소녀들' 시리즈 두 곡이 더욱 끌렸다. pt. 1 은 버드맨, pt. 2 는 무지개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뮤직비디오도 상당히 재미있는데 버드맨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무지개는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하늘만을 응시하다 버드맨과 함께 자유롭게 춤을 췄다. 두 곡 뮤직비디오가 상당히 상반되는데, 버드맨에선 학생들이 모두 밝게 웃고 있고 이리로 오라는 듯 손짓을 한다. 그리고 보컬 최정훈은 카메라를 세팅하다 학생들 가운데에 섞여 들어가며 역시 웃음을 짓는다. 반면 무지개는 직장인들이 모두 무표정으로, 심지어 양복을 입고 그 위에 탈을 쓴 '버드맨' 마저도 무표정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더니 몸을 틀어 춤을 추러가는 버드맨과, 그를 따라가는 직장인들은 이윽고 춤을 추며 활짝 웃는다. 마치 버드맨의 학생들이 직장인이 되었다가 다시 어릴 적으로 돌아가 웃음을 짓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 추리가 마냥 허구만은 아닌 게, 버드맨의 마지막 멜로디와 무지개의 첫 멜로디가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한 줄로 두 곡을 요약하자면 버드맨은 '과거에 존재한 모든 소녀 소녀들에게', 무지개는 '모든 소녀 소녀들이었던 당신들에게' 로 표현해보겠다. 두 곡 모두 지극히 현실적이고, 약간은 우울한 느낌이 있다. 과거의 난 찬란한 꿈을 꾸었지만 지금의 난 그러질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잔나비는 모두를 위로한다.

 

 

그곳엔 어떤 바람이 불었기에

땀 서린 모자를 벗어 보였던가?

우린 꿈이라 했던, 날이 선 눈빛으로

노려보던 언덕 위를 이제는 떠나는가?

(...)

멍하니 서 있었던 이유는 무언가

길 없는 길 위에서 길을 잃었나

그 시절에는 알았고 지금의 난 모르는

그저 그런 질문들에 또 하루가 지는가

 

- 모든 소년 소녀들 pt 1. 버드맨

 

 

과거에 꿈을 꾸던 모든 소년 소녀들. 꿈이라는 이유로 땀을 흘리고 길 위를 걸으며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

오늘을 살아가려

비로소 난 내일을 죽였네

호주머니 속 들은

몇 개의 약속을 까먹으며

(...)

땀에 절어본 우린

시원한 바람도 안다네

그리고 꿈의 용도

그저 꾸기 위함이었다네

 

- 모든 소년 소녀들 pt 2. 무지개

 

 

하지만 현재 어른이 된 모든 소년 소녀들은 오늘을 위해 내일을 포기하는 삶을 산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이, 땀에 절어보았던 '버드맨' 속 우리였기에 시원한 바람을 비로소 알고 꿈이라는 것을 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버드맨' 속 웃고 있는 교복을 입은 소녀와, '무지개' 속 무표정으로 정장을 입은 어른에 대입하게 된다. 왜 나는 그렇게 꿈을 꾸었을까. 왜 그렇게 땀을 흘렸었을까. 그리고 왜 나는 지금 허무한가. 그리고 동시에 그런 마음이 든다. 나도 '무지개' 속 사람들처럼 버드맨을 따라 춤을 추고 싶다. 폴짝 폴짝 뛰면서 이유도 없지만 그저 뛰고 싶다. 웃으면서 달리고 싶을 뿐이다. 그렇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안심이 된다. 비로소 꽁꽁 숨겨왔던 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는 그렇게, 과거의 나를 잃지 못하고 힘들어했던 나 자신을 위로받을 수 있었기에, 과거의 나와 안녕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 시간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고, 그저 인정하고, 그저 과거와 현재임을 깨닫고, 그저 미래를 위해 과거를 품고 현재를 걸어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쉬운 건 아니다. 어쩌면 그리워했고, 어쩌면 원망도 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모든 시간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흐느적거리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버드맨을 쫓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난, 커피포트에 물 올려 무언가 끓는 꼴을 보려하면서도, 땀 서린 머릿결을 쓸며 뒤를 돌아보려 한다.

 

 

 

20241209221448_xethmmon.jpe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