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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옛날, 아주 먼 옛날, 주먹도끼를 쥔 손으로 가축을 사냥하던 우가씨는 오늘따라 본인이 잡은 멧돼지가 거대해보였다. 우쭐해진 우가씨는 본인을 비롯하여 함께 이 멧돼지 사냥의 여정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자랑을 대대손손 남기고 싶었다. 뾰족한 수가 없나 고민하던 우가씨는 좋은 묘수를 떠올렸다. 본인이 살던 동굴 내벽에 돌로 이 광경을 긁어 남기는 것이었다. 우가씨는 열심히 멧돼지와, 본인과, 여정을 함께한 이들을 동굴에 새겼다. 우가씨의 그 날은 현대에 이르러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로 현대인들이 기억하게 되었다.

    

우가씨처럼 본인이 '기억하고 싶어서' 예술이라는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떠나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하물며, 일기라는 것도 하나의 '에세이' 라는 장르로서 문학의 길을 잇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시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남겨진 '안네의 일기'다. 아마 안네 프랑크도 그 일기로서 본인이 기억'되고' 싶어서 일기를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내가 그 하루와 그 감정을 기억'하고'싶어서 일기를 작성한 것이 후대에 이르러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료이자 문학작품의 하나로서 남겨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기억'하고' 싶어서 행한 예술이 미래에도 쭉 남아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중에서도 기억되는 고전(classic)이란, 어떤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예술이 기억되는 이유


 

예술은 정보를 전달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되지만, 원초적으로는 내면을 표현하고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예술을 관람하며 새로운 사실을 깨닫기도 하지만 관람하는 행위를 통해 발생하는 감정을 깊게 느끼곤 한다. 그 감정이란 기쁨이 될 수도, 슬픔이 될 수도, 분노가 될 수도 있다. 여러 감정이어도 괜찮다. 관람자가 감정을 느끼게 되면, 그 감정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다른 이의 감정을 이해 또는 존중한다. 그 과정 자체가 예술이 하나의 인류 문화적인 행위로서 하나의 사회를 결합하게 만드는 '본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물론, 사적인 의견이므로 이것이 100% 정확하다거나, 혹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예술을 통해 타인과 감정의 교류를 수행하는 현상에 대해 집중하며, 그것이 예술이 가진 역할 중 하나로 이해하는 바이다.

 

누구에게는 기쁨의 내면, 누구에게는 부끄러워서 치부하고자 하는 내면 등에 대해서 예술은 하나의 '대나무숲'마냥 표현할 수 있게끔 한다. 예를 들어, 양반의 횡포에 분노와 설움으로 가득찼던 평민들은 탈춤 등의 평민 예술을 통해 양반을 풍자하고 비판한다. 억울하고도 지친 평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평민 예술은 평민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고 내면을 위로하면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반 또한 본인이 풍자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용인하고, 함께 공유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예술까지도 모두 탄압하였다면, 아마 본인에게 돌아올 수 있는 봉기 등의 위험 요소가 더욱 커졌으리라. 또한, 본인의 말을 거역하는 이들로 인해 본인의 일상생활부터가 당장 무너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술은, 대중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해주게 하는 하나의 방법론이자 다른 계층에서도 그 예술에 기재된 내면을 이해하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물론, 예술이 언제나 '내면'만 전달한 것은 절대 아니다. 프로파간다로서의 예술은 분명, 정치적 또는 사회적 이념을 전달하기 위함의 용도가 존재하기에 순수 인간의 내면을 다룬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 말할 고전(classic)이 왜 지속해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지 생각해보자면 그것은 분명 내면을 다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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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발생하는 이유


 

먼저,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고전이 무엇인가에 대해 명시하겠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고전은, 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현대까지도 하나의 기준선이 되는 작품을 말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고전이 두 가지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바흐, 모차르트 등 음악의 '고전'(여기서의 고전은 '클래식 시대'가 아니다!)은 각 음악가들의 엄청난 실력을 토대로 각 음악 시기를 대표하는 정립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흐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며, 대위법 등을 음악에 녹여내는 특징을 가졌다. 모차르트는 형식미를 중요시 여긴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당시 고전주의 음악의 다양한 장르에서 빛을 발했다. 그들은 분명히, 남들과 비교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 이후 음악 시기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까지 하나의 음악적 이론이면서도 음악 예술의 classic으로서의 존재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내면, 내면을 예술에서 무시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필자는 두 번째 고전의 발생 계기로 해당 작품이 얼마나 대중들의 내면을 표현하고, 그것을 공감할 수 있는지의 정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요즘은 영화 작품이 정말 많다. 1년에도 수없이 많은 영화가 다양한 국가에서 만들어진다. 여기서, '꼭 기억되어야 할 영화'를 꼽아보면 많은 의견들이 나오지만 중복되는 영화들이 적지 않다. 그건 단순히 '짜임새가 좋다', '영화의 미적 요소가 좋다'라고 표현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영화들은 보통, 국가나 인종을 망라하고 모두가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는 것들이 많다. '인생 영화'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은 사실적이거나 깊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닐 지언정 모두가 한 번쯤은 그 영화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는 영화가 많다. 그것은 역시, 인류가 가진 내면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정확히 이해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실력이 좋고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것은 하나의 고전으로서 후대에까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무지성으로 '인간의 내면을 쫓는 예술만을 지향해야 한다' 류의 이분법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예술이 발전하게 된 것,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의 기준이 되는 고전이 발생하는 것은 인간 내면의 깊은 감정과 생각이 큰 영향을 주었음을 말하고자 한다. 필자는 다양한 예술 장르의 발전을 지향하지만, 그와 동시에 또 다른 현대의 고전 예술이 등장하는 것 또한 소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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