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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몽유도원 메인포스터.jpg

 

 

제작사 에이콤(ACOM)의 창작 뮤지컬 <몽유도원>은 2026년 1월 27일부터 2월 22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2026년 4월부터 5월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몽유도원>은 『삼국사기』의 ‘도미전’과 고구려 밀정에 의해 살해당한 백제 개로왕의 이야기를 결합한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를 원작으로 창작된 작품으로, 같은 제작사에서 2002년에 만들어진 <몽유도원도>와 도미 설화라는 기본적인 줄거리를 공유하지만 오상준 작곡가에 의해 새롭게 창작된 음악을 활용하고, 연출과 대본을 보다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리뉴얼하면서 재탄생한 작품이다. 제작사 에이콤은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 한국의 역사를 기반으로 창작한 작품과 최인호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겨울나그네> 등 여러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몽유도원> 역시 이러한 경향의 일관성 속에서 창작되었다.

 

뮤지컬 <몽유도원>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백제의 왕 여경(개로왕)은 꿈속에서 본 아랑의 모습과 사랑에 빠져 그녀를 왕비로 삼으려 하고, 백제와는 떨어져 있는 섬에서 평등한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던 마한 목지국의 부족장 도미의 아내였던 아랑에게 접근한다. 여경은 신하 향실의 도움을 받아 도미에게 바둑 내기를 제안하여 바둑을 이긴 대가로 아랑을 요구한다. 모든 마을 사람들과 자신의 운명이 달린 결정 속에서 도미와 아랑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왕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여경은 도미의 눈을 뽑고 배에 태워 보낸다. 여경과 아랑의 국혼이 있던 날, 일식이 일어나고 아랑은 그 틈을 타 도망치게 된다. 여경은 아랑을 찾기 위해 광기에 휩싸이고, 도미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아랑과 마을 사람들은 여경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랑은 자신이 이러한 비극적 운명에 처한 것이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 때문이라 생각하고 갈대로 얼굴을 짓이겨서 추하게 만들고, 눈이 먼 상태로 피리를 불고 있던 도미와 재회하여 살아간다. 신하를 죽이며 광기에 휩싸인 여경은 정사를 돌보지 않고 고구려군의 화살에 살해당하는 결말을 맞는다.

 

 


작품을 구성하는 대립적 모티프들, 그리고 그 의미


 

도미의 부족은 백제의 의해 복속되었다고 알려진 마한 목지국의 후손으로, 도미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지도자인 ‘읍차’로 등장한다. 혼례와 장례 등 마을의 종교적인 의례를 담당하는 ‘천군’인 ‘비아’ 캐릭터의 존재는 도미가 이어간 목지국이 신권과 왕권, 즉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부족 사회임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도미와 아랑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백제에게 복속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역모’로 낙인 찍힌 부족의 후손이라는 점이 암시되며, 그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간다. 문제는 도미와 아랑의 혼례가 진행되며 잔치가 벌어지는 중, 속내를 숨긴 여경과 향실이 평화로웠던 이들의 마을에 ‘침입’하면서 발생한다. 여경의 백제는 귀족들과 왕이 나라를 통치하는 봉건적 사회로서, 아랑을 왕비로 삼겠다는 여경의 욕망은 목지국의 후손 역시 백제의 일부로 복속시키려는 정치적 계략과 얽힌다. 도미와 아랑의 순수한 사랑이 여경에 의해 위협받고, 마을 사람들이 군사들에게 쫓겨 새 터전을 찾아 헤매는 장면은 위계적인 권력자에게 부당하게 억압받는 민중이라는 구도에서 나타나는 울분, 억울함, 안타까움 등이 표출되며 한국 고유의 한(恨)이라는 정서에 가 닿는다. 이때 봉건적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귀족들의 권한과 왕권의 견제 관계, 바둑을 좋아했다는 개로왕의 실제 기록,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와 동맹을 맺어야만 했던 국제 정세 속 백제의 위치 등 실제 역사적 배경과 기록들이 이 작품을 구성하는 맥락으로 작용하며 서사적 개연성과 핍진성을 더한다.

 

여경을 필두로 한 백제와 도미가 꿈꾸었던 마을은 신분과 위계에서 비롯된 국가와 평등을 꿈꾸는 부족이라는 대립적 구도를 구성하며, 아랑을 욕망하기 때문에 ‘소유’하려는 여경의 태도와 아랑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있는 도미의 결정이 대비된다. 아랑이라는 ‘사랑’을 대하는 여경과 도미가 보여주는 차이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물론 한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의 차이로 확장된다. 이때 흥미로운 소재는 이 작품의 제목이 가지는 의미이기도 한 ‘꿈’의 의미다. 여경의 꿈에서 나타난 아랑의 존재는 여경이 애욕이라는 세속적인 욕망에 기반한 헛된 꿈에 사로잡히게 하여 이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도록 하지만, 도미와 아랑은 모든 이들이 평등한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꾼다. 일반적으로 이상과 목표라는 의미와, 환상과 망상이라는 부정적인 의미 모두를 가지고 있는 ‘꿈’에 내포된 이중성 안에서 양자가 추구하는 방향은 극명하게 갈린다.

 

자연물인 ‘강’은 눈이 뽑혀 앞을 볼 수 없는 상태로 배에 태워진 도미를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는 마을로 안내하며, 도미를 찾아 도망친 아랑에게 배를 띄워 주어 아랑의 도피를 돕는다. 서사 속에서 마치 ‘마법’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흐르는 ‘강’, 즉 물이 상징하는 것은 곧 정도(正道)와 순리로서 이는 이 작품에 내재한 동양적 철학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다.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에 맞게 업보를 쌓은 이가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지 못하는 결말은 세속적인 욕망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강조하며, 길거리에서 가면을 쓰고 광대 짓을 하는 아랑과 도미의 삶을 ‘행복한 부부’라고 논평하는 노인의 대사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다. 또한 달에게 도미의 무사귀환을 비는 제사장 비아와 아랑의 넘버에서도 알 수 있듯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달’ 역시 ‘자연’의 은유로서 작품의 주제에 기여한다. (‘해’가 이란적으로 권력자의 은유임을 고려해본다면) 다소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던 여경와 아랑의 혼인 당시 발생했던 달이 해를 가리는 일식은 자연, 즉 정도를 거스르는 행위에 대한 ‘경고’이며 해의 붉은 심상은 도미의 눈을 뽑은 여경의 ‘죄’이자 그의 운명이 될 피를 연상시킨다. 작품이 제목이기도 한 ‘몽유도원’, 즉 꿈 속 이상적인 세계를 향한 인간의 이상은 보편적이지만, 이를 현실태로 실현시키기 위해 행하는 것의 방향성과 가치에 따라 그 의미와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몽유도원>은 이러한 간결한 철학을 욕망과 사랑, 권력과 정치가 뒤엉킨 서사를 통해 풀어낸다.

 

 

 

아름다운 무대 연출과 영리한 서사적 장치들


 

1. 여경 민우혁.jpg

 

 

뮤지컬 <몽유도원>의 음악은 서양 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연주를 기반으로 국악 선율과 한국의 정통 성악인 정가나 구음 등의 형식이 결합된 결과물로서, 아리랑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음악이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수묵화의 번짐과 질감을 표현하기 위한 LED 스크린 등 영상 기술이 사용되었고, 웅장한 궁궐이나 고요하고 아름다운 강가 등 다양한 무대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 세트와 영상 기술이 융합된다. LED 스크린에 묘사되는 수묵화와 갈대밭과 강을 표현하는 자연의 경관이 서로 조화되면서, 이 작품의 주제이기도 한 경이로운 자연, 즉 모든 것의 순리를 주관하는 존재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몽유도원>만의 독특한 연출 기법이 돋보이는 장면 역시 존재한다. 1막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여경이 향실의 도움을 받아 바둑을 잘 두는 도미를 이기기 위해 사실상 ‘함정’인 바둑 내기를 제안하고, 둘이 긴장감 넘치는 바둑 시합을 이어가는 장면이다. 바둑을 둘 때 흑돌과 백돌이라는 대립적인 이미지를 앙상블의 의상으로 표현하고, 상대의 수를 읽어야 하는 ‘두뇌 싸움’이자 단순한 바둑 시합이 아니라 아랑과 부족의 운명이 달린 치열한 경기가 승패로 향하기까지의 긴장과 해소를 앙상블의 안무로 표현된다. 다소 추상적인 표현이자 연출이지만, 바둑 시합을 묘사하기 위한 현실적인 표현이 무대 연출과는 완벽히 부합하지 않는 상황에서 바둑 시합에서 나타나는 긴장감과 불안함, 희열과 그 밑에 깔린 지략과 판단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 영리한 연출 방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눈을 잃은 도미와 도미를 찾아 떠나는 아랑이 탄 배가 강 물결을 따라 이동하는 장면은 스모그 효과를 통해 실제 배가 도무지 그 밑의 공간을 가늠할 수 없는 강물 위를 떠내려가는 신비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몽유도원>의 연출은 에이콤의 이전 작품인 <명성황후>와 <영웅>에 사용되었던 연출과 장치의 연속선상에서 읽어낼 수 있다. <명성황후>에서 나타났던 신하들의 대립이나 서구 열강들이 각기 통상 수교를 위해 접근하는 장면은 <몽유도원>의 진씨 가문(진림)과 해씨 가문(해수)을 바탕으로 한 귀족들의 대립과 유사하다. <명성황후>에서 등장하는 진령군의 수태굿 장면을 연상시키는 비아의 혼례 및 장례 의례는 같은 제작사의 이전 작품에서 쌓아 왔던 에너지와 시각적 효과를 가져오면서 의도와 맥락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다시 도원으로’라는 넘버에서 새로운 터전을 꿈꾸는 부족민이 부르는 ‘아리랑’의 멜로디는 <영웅>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아리랑’을 떠올리게 했고, 이들의 에너지는 <영웅>의 독립군과 <명성황후>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조선의 망령들과 닮아 있다. 이 외에도 <명성황후>에 등장하는 궁중 무용의 모습이 백제의 왕실 행사를 표현하기 위해 유사하게 등장한다는 점, 도원과 아랑이 연을 맺는 혼례식에서 민속적인 춤이 사용된다는 점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에이콤이 보유하고 있는 기존의 레퍼토리의 연속성 속에서 익숙하고 전형적인 무대 구성이나 공통적인 요소를 차용하면서, 동시에 이를 더욱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다듬고 맥락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몽유도원>의 무대 연출은 특별하다.

 

 


새롭게 창작된 <몽유도원>, 그 가능성


 

4. 아랑 유리아.jpg

 

 

뮤지컬 <몽유도원>은 ‘한국적인 것’, 즉 한국의 실제 역사적 기록에서 비롯된 소재를 활용해 뮤지컬을 창작했던 에이콤의 고유한 ‘토대’를 유지하며 최근의 창작 경향성을 따랐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뮤지컬 <몽유도원>의 전신은 2002년 뮤지컬 <몽유도원도>라고 할 수 있고, 그 바탕이 되는 원작은 도미 설화에서 기반한 최인호의 『몽유도원도』라는 소설이다. 원작 소설과 원작을 기반으로 한 2002년의 <몽유도원도>를 새롭게 각색하면서 ‘원본’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는 도미 설화에 대한 재-독해를 시도했다는 점, <몽유도원도>의 내용을 기반으로 새롭게 창작하면서 서사의 흐름을 더욱 매끄럽게 수정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하다. 무엇보다, 여경이 내기에서 이기면서 아랑을 원하는 과정에서 아랑이 합방 당시 자신의 시녀를 대신 들여보내거나, 월경을 핑계로 합방을 유예했던 원작의 설정을 생략하고, 이를 아랑이 국혼에서 도망치는 것으로 간략하게 표현했다는 점은 서사의 흐름을 더욱 박진감 넘치게 하면서 다소 ‘날 것’의 내용을 순화했다는 느낌을 준다. ‘비아’ 캐릭터 역시 <몽유도원도>(2002)에서 묘사되었던 아랑의 시녀 역할이 아닌, 부족의 정신적 지주를 맡은 ‘천군’으로 새롭게 바꾸어 창작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아랑을 향해 집착하는 여경의 캐릭터는 2002년 <몽유도원도>와 달리 향락보다는 애정을 갈구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작품을 구성하는 로맨스를 더욱 강조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아랑과 부족에 대한 정복과 소유를 원하는 권력자인 여경과 백제에 경합하는 도미와 부족민들의 애환은 ‘도원’을 지향하는 가사를 통해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는 피억압자의 서사가 된다. 또한 <춘향전> 같은 고전을 다시 읽는 다양한 창작물들이 그렇듯이, 여경을 피해 도망치는 아랑의 결정을 단순히 정조를 지키기 위한 것을 넘어 ‘사랑’과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성에 대한 것으로 읽어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2막 중반부 도망친 아랑과 여경이 재회한 후 아랑이 자신의 갈대로 짓이겨진 얼굴을 드러내며 여경의 ‘꿈’의 비현실성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부분에서 절정에 달한다. 전반적으로, 창작이 이루어졌던 시간대에 대한 시차도 있겠지만 새롭게 창작된 <몽유도원>은 도미와 아랑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진정하고 순수한 사랑과 대비되는 권력자 남성의 집착적 사랑이라는 전형적인 코드를 로맨스의 차원에서 영리하게 활용하면서, 그 속에 다양한 권력의 역학과 역사적 기록을 얽히도록 만든다.

 

배우 역시 무대라는 공간의 한 요소가 된다. 먼저, 민우혁의 ‘여경’은 흥미롭다. <마리 앙투아네트>나 다양한 매체 연기에서 보여주었던 순애보의 모습과,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나 <프랑켄슈타인> 같은 작품에서 나타났던 광기와 어두운 면이 동시에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연기의 기반에는 <영웅>이나 <레 미제라블>에서 보여주었던 강하고 단단한 면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리아의 ‘아랑’은 그가 기존에 맡아 왔던 필모그라피의 다양한 면이 동시에 보였고, ‘유함’과 ‘강함’이라는 두 가지의 연기적 역량 모두를 발전시켜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경을 두려워하거나 도미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멤피스>의 세 펠리샤 중에서 가장 여린 면이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게 했고, 동시에 <리지>의 용기와 <영웅>에서 나타났던 신념은 ‘아랑’이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근원이 신의와 신념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모래시계>와 <영웅>에서 보았던 두 사람의 케미를 다시 보게 되어 기뻤다. 도미 역 이충주의 ‘순정’, 향실 역 서영주의 ‘충성심’, 비아 역 홍륜희의 ‘카리스마’에서 비롯된 매력, 그리고 진림(유성재)과 해수(김진수)의 익살스러움 역시 관람 포인트다.

 

(공연예술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를 단순히 소재주의적으로만 활용하거나 심각한 수준의 고증 오류나 왜곡이 이루어지는 작품이 범람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역사적 기록과 그 공백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탄생시킨 뮤지컬 <몽유도원>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다연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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