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문학이 된 이별, 불멸로 남은 연인 [공연]

뮤지컬 ‘올랜도 인 버지니아’,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by 이다연 에디터
2025.08.30 18:03

 

 

뮤지컬 <올랜도 인 버지니아>


 

올랜도인버지니아 포스터.jpeg

 

 

뮤지컬 <올랜도 인 버지니아>(Orlando in Virginia)가 뉴프로덕션의 창작으로 2025년 7월 9일부터 10월 9일까지, 2달 동안 링크아트센터 드림(구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초연된다. 이 작품은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랜도(Orlando)』(1928)를 기반으로,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와 귀족 출신 작가 비타 섹빌웨스트의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 소설 『등대로』, 『댈러웨이 부인』을 비롯한 작품들을 집필하며 페미니즘 문학과 근대 소설의 형식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어린 시절 친척에게 당했던 성적 학대 사건의 영향으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병을 앓았던 인물이다. 기록으로 남은 애인, 비타 섹빌웨스트와의 관계에 구체적인 상상력을 더해 이 작품이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비타와 버지니아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극중극이 되는 소설 『올랜도』의 내용이 병치된다.

 

『올랜도』 속에서 귀족 소년으로 태어난 올랜도는 엘리자베스 1세의 축복을 받아 불멸의 존재가 되었고, 영국을 위해 헌신하며 지위도 높은 곳까지 오른다. (비타와 전 연인이었던 바이올렛과의 ‘도주’를 연상시키는) 올랜도와 러시아 공주 샤샤와의 스캔들이나 영국을 위해 참전하거나 대사가 되어 헌신한 일, 콘스탄티노플에서 성별이 바뀐 일 등 소설 속에 언급되는 사건들이 무대 위에서 극중극의 형식으로 재현되며, 엘리자베스 시대부터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20세기까지 기나긴 시간을 압축해서 다루고 있다. <올랜도 인 버지니아> 속에서 올랜도의 탄생은 비타와의 만남에서 영감을 받은 것임이 명시되고 있고, 실제 두 여성 모두 결혼한 상태에서 처음 만난 후 가까워지는 과정이 곧 소설 『올랜도』의 창작 과정으로 표현된다.

 

귀족적이며 용맹한 비타의 모습은 불멸의 축복을 받은 올랜도의 모델이 되었으며, 비타가 영국의 상속법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사한 가문의 영지 놀(Knole)을 상속받지 못한 일은 올랜도가 여성이 된 이후(’레이디 올랜도’)로 상속 문제를 겪는 극적 사건으로 승화된다. 극중극과 병존하는 현실 속에서 버지니아의 정신 이상의 심화, 그리고 절망에 빠진 비타를 거치며, 극중극이 된 올랜도를 연기하는 배우가 비타 역 배우에서 버지니아 울프 역 배우로 전환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실제 기록으로 남은 역사에서 비타와 버지니아는 갈등을 겪고 사이가 틀어졌지만, 버지니아가 자살한 1941년 이전부터 다시 교류를 이어갔다고 한다. 극중극의 올랜도가 원하지 않는 정략 결혼을 피하려고 하던 중 미국의 탐험가 셸머딘을 만나며, 원작의 정보를 참고하자면 셸머딘은 올랜도와 비슷하게 성별이 바뀐 불멸의 존재다. 이 작품은 마치 환상적인 존재인 것처럼 묘사되는 셸머딘과 올랜도의 미래를 암시하고, 셸머딘과 올랜도라는 캐릭터가 현실 속 비타와 올랜도와 겹쳐지며 이야기는 끝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억압적인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자살로 끝난 버지니아 울프의 삶 속 찬란한 퀴어 로맨스의 경험에 주목하고, 비타와 버지니아의 삶에 위로를 보내는 뮤지컬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뮤지컬이라는 형식 속에서 기존의 『올랜도』에 관한 누적된 영문학 연구의 성과를 구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원작이 다루고 있는 영국의 ‘르네상스’인 엘리자베스 시기부터 시민혁명과 왕정복고 시기, 그리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퇴행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모순과 20세기 이후를 향한 희망까지 올랜도의 삶에 녹아든 기나긴 영국사와 그 속에서 젠더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해 이 작품은 충분히 서술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영국의 역사에 대해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깊이가 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같은 ‘여왕’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영국사 속 젠더의 맥락에서 (미국의 ‘버지니아 주’와도 연관되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빅토리아 여왕의 시기만 비교, 대조했어도 더 재미있어졌을 것이다. 또한 영문학계에서는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속 퀴어-페미니즘적 의의나 젠더퀴어로 읽는 현대적인 퀴어 비평의 시각을 담아내지 못했고, (비슷하게 레즈비언 코드가 있는 창작 뮤지컬인 <해적> 속 앤과 메리의 모습과는 달리) 작품 속에서 비타나 올랜도가 겪는 ‘억압’이 상속이라는 재산권이나 결혼의 문제로만 재현되면서 그 당시 백인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주목받는 흔한 방식이 그러하듯 전형적인 백인 페미니즘의 한계에 머무르는 식의 극적 재현으로 귀결된다. 물론 <올랜도 인 버지니아>는 학술적인 목적이 담긴 작품이 아니라 상업 창작 뮤지컬 작품이고, 음악이 동반되는 뮤지컬이라는 형식은 창작에 있어서 텍스트의 담론을 끝도 없이 확장하기보다 생략과 압축이라는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선택과 집중’이 간혹 더 나은 선택일 수 있기에 이러한 서사의 흐름이 이해가 간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Shakespeare in Love)


 

셰인럽 공연사진1.jpg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쇼노트(shownote)의 제작으로 2025년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제작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셰익스피어와 비올라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1998년 개봉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마크 노먼과 톰 스토파드의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고, 영화를 2014년 영국의 작가 리 홀이 연극화하며 한국의 경우 2023년 라이선스 초연을 거쳐 현재 재연이 공연되고 있다. 계속 글을 써내야 하는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해적의 딸, 에델’이라는 희곡을 쓰기로 결심하고, 부유한 상인의 딸이자 연극과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여주인공 비올라(비올라 드 레셉스)가 남성만 연극 무대 위에 설 수 있었던 영국의 르네상스 시기 남장을 하고 ‘토마스 켄트’라는 이름으로 오디션에 합격하게 된다. 당시 시대의 상징인 엘리자베스 여왕, 셰익스피어의 친구로 등장하는 크리스토퍼 말로우(‘키트’), 훗날 작가가 되는 소년 존 웹스터가 등장하고, 연극 속에서 머큐쇼를 맡은 배우 네드 앨린(본명은 에드워드 앨린)이나 극장주 헨슬로 같은 실존 인물들도 등장한다.

 

셰익스피어가 친구 크리스토퍼 말로우와 함께 무도회에 잠입하면서 비올라와 사랑에 빠지고, 비올라의 약혼자 웨섹스 경과 대립 관계를 형성하지만 그가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크리스토퍼 말로우와 착각하면서 이야기는 꼬이기 시작한다. 또한 그는 공적으로는 작가로서 극단의 연극을 지휘하면서 토마스 켄트와 가까워진다. 1막 후반에 토마스 켄트와 비올라가 동일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그들의 사랑은 어느새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버린 연극 제작과 병치된다. 헨슬로에게 돈을 받아야 하는 고리대금업자 ‘페니맨’ 역시 연극에서 ‘약재상’을 맡으며 연극 제작에 몰입하게 되고, 로즈 극장이 폐쇄된 상황 속에서 라이벌이었던 극단이 자신의 극장을 열어준다. 모두 교수형을 당할 위기 속에서 연극을 올리기 위해 몰입하는 모두의 모습, 성공적으로 연극을 마친 뒤 엘리자베스 여왕이 법적 관습을 현명하게 회피한 채 셰익스피어의 연극과 비올라의 연기를 인정하면서 이 작품은 ‘the show must go on’이라는 연극의 대전제와 공명하며, 이 이야기는 ‘연극에 대한 연극’의 전형이 된다. 비올라가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너무 사랑하기에 이별하게 된다는 것과, 셰익스피어가 배를 타고 신대륙(미국 버지니아 주)으로 떠난 자신의 연인 비올라를 난파된 배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로 시작하는 희극 『십이야(Twelfth Night)』 속 주인공 남장여자 캐릭터 ‘비올라’로 새롭게 살게 만든다는 결말 역시 마찬가지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흥미로운 점은 비올라와 원작 속 파리스 백작을 연상시키는 웨섹스 경의 결혼이 예정된 상황 속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와 병치된다는 것이다. ‘줄리엣’이라는 이름과 원수가 된 베로나의 두 가문이라는 기본적인 설정에 대한 아이디어를 셰익스피어에게 제공한 키트 말로우가 역사대로 허무한 죽음을 맞으며 이는 원작 속 머큐쇼의 죽음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 여왕이 집권하고 있음에도 ‘여자는 무대에 서서는 안 된다’는 그 시대 영국의 모순적 법이 마치 싸움을 금기한 베로나 영주의 명령처럼 기능하는 상황 속에서 그 금기는 깨어지고, 결국 여왕 엘리자베스가 그 관습의 빈 틈을 이용하며 마지막 운명과 결말을 결정짓는다. 또한 로미오가 로잘린에게 실연을 당하고 캐퓰릿 가에 몰래 잠입해 줄리엣에 빠져든다는 전개, 유모와 줄리엣의 대화, 줄리엣의 집 발코니에서 로미오가 하는 사랑 고백은 셰익스피어와 비올라의 사랑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자신의 친구 머큐쇼를 죽인 티볼트를 죽이고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로미오가 줄리엣과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은, 셰익스피어가 고향 스트랫포드(Stratford)에서 결혼했다는 것이 비올라에게 알려진 것과 키트 말로우의 죽음 이후 비올라의 방으로 셰익스피어가 찾아오는 장면과 병치된다. 특히 원래의 연습과 다르게 급하게 로미오를 맡은 셰익스피어와 줄리엣을 맡게 된 비올라가 펼치는 2막의 ‘극중극’ 장면은 웨섹스와의 결혼 이후 버지니아로 떠나야 하는 비올라의 상황과 기묘하게 맞물리며, 약을 먹고 죽은 로미오를 바라보며 자살을 택하는 줄리엣의 독백 대사(비올라가 연기)는 예정된 이별을 앞둔 극적 맥락 속에서 셰익스피어를 향한 비올라의 사랑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셰인럽 공연사진2.jpg

 

 

이처럼, 원작인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올라라는 이름의 남장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십이야』는 이 작품의 중요한 골격이 되고, 셰익스피어의 시 ‘소네트’가 직접적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웨섹스 경이 비올라를 통제하려고 하는 부분은 카타리나를 자신의 아내로 길들이려고 하는 페트루키오가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속 대사를 떠오르게 하며, 작품 속 페니맨을 연상시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등장하고 주인공의 아내가 남장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베니스의 상인』 역시 마찬가지다. 파리스가 셰익스피어를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유령이라고 착각해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장면은 『햄릿』 속 아버지의 유령이나 『멕베스』의 벤쿠오 같은 비극 속 유령의 존재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강력한 상호 텍스트성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미래 작품을 예언해 뮤지컬로 만들려는 ‘닉 바텀’이 등장하는 뮤지컬 <썸씽 로튼>과 결을 같이 하기도 한다.

 

중간에 등장하는 연극적인 유머는 예정된 이별로 향하는 비극적 분위기를 풀어주어 연극에 지속적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의 규모와 맞먹는 무대 세트와 장치, 의상의 화려함은 이 작품이 왜 3층까지 있는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에 올라올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하게 만든다. 연극(극중극)과 그 백스테이지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대 위 ‘막’을 활용한 연출은 신선하며, 배를 타는 장면 역시 실제 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출만으로 관객의 몰입을 유지시킨다. 배우 역시 이 작품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워너원 출신의 배우 옹성우는 아이돌에서 매체 배우로, 매체 배우에서 연극 배우로 변모하며 다양한 장르를 넘는 진정한 배우가 되었음을 알린다. 연기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주연을 쉽게 맡는 일부 아이돌 출신 배우들과는 달리, 연기의 다양한 문법을 경험하며 더욱 성장해 갈 그의 배우로서의 삶이 기대된다. 배우 박주현 역시 기존의 매체 연기에서는 뽐내기 어려운 ‘남장 여자’에서부터 ‘사랑에 빠지고 점차 성숙해가는 소녀’라는 비올라 캐릭터의 다양하고 복잡한 면을 잘 소화한다. 극장주 헨슬로 역의 김대종 배우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엘리자베스 여왕 역의 장예원 배우 역시 위엄있는 연기로 관객들을 집중시킨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서 ‘세상은 무대’이며 ‘모든 사람은 배우’라고 말했다. 이 작품을 보면 왜 연극이 삶을 관통할 수밖에 없는지, 엘리자베스 여왕이 왜 연극이 삶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는 비올라의 견해를 인정했는지 납득하게 될 것이다.

 

 


이다연 (1).jpg

 

 

이다연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드라마 '옥씨부인전' 속 퀴어 재현의 맥락 [드라마/예능]
  2. 02 [Opinion] 뮤지컬 명성황후 30주년 공연, 공연을 둘러싼 맥락 [공연]
  3. 03 [Opinion] 그들이 ‘No day But today’를 외친 이유, 뮤지컬 '렌트' [공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