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중 많은 작품이 기존에 있는 도서를 원작으로 하고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위키드>, <캣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도 소설에 기반해 뮤지컬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소설은 인물과 감정선이 잘 구축되어있어 뮤지컬로 각색해 만들기에 유리하다. 그러나 소설과 뮤지컬, 두 장르가 만나면서 이야기의 변형은 불가피해진다.
각색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핵심 주제를 유지하면서도 인물이 재해석되어 등장하거나 서사가 압축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원작의 감동은 조금 변화될 수도 있지만 어떤 작품은 원작보다 더 큰 인기를 얻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문학 작품이 각색되어 뮤지컬로 재탄생해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준 작품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레베카> 댄버스 부인의 재서사화
뮤지컬 <레베카>는 '나'가 '막심'과 결혼하여 새로운 저택 맨덜리로 들어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대체로 원작소설의 이야기 플롯을 많이 따른다. 그러나 한 인물의 존재감이 확연히 높아진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각색의 예로 주목할 만하다.
소설 <레베카>는 '나'의 심리와 시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댄버스 부인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편이다. 주로 주인공인 '나'의 상상 속에서 등장하거나 간접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차갑고 무표정하며 무관심한 듯한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며 레베카를 추종하는 것을 드러내고 '나'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뮤지컬 <레베카>에서의 댄버스 부인은 '나'와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또한 감정을 절제하기보다 화를 내거나 절규를 하는 등 관객 앞에서 자신의 집착과 슬픔, 레베카에 대한 애착을 노래한다. 이처럼 댄버스 부인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에 맞게 감정적으로 입체적인 인물로 재탄생했다.
이러한 각색은 글의 갈등구조와 감정 흐름에 몰입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만약, 원작처럼 댄버스 부인의 비중이 제한적이었다면, <레베카>는 지금처럼 강렬한 시각적 서스펜스를 만들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며 긴장감을 이끄는 댄버스 부인은 뮤지컬 <레베카>의 확실한 중심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프랑켄슈타인> 같은 질문, 다른 관계로
<프랑켄슈타인>은 최초의 과학 소설로, 당시 천재로 불리우던 메리 셸리에 의해 탄생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욕망과 과학의 윤리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선구적인 소설로 다양한 매체에서 재해석되어왔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원작의 중심 소재를 그대로 가져가되 나머지 이야기는 거의 새로운 이야기로 탈바꿈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원작에서는 생명 과학에 관심이 많던 대학생 '빅터'가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생명에 대한 고찰과 괴물의 자아 탐색에 대한 내용이 주로 다루어진다. 반면 뮤지컬에서는 빅터가 사랑하는 친구 '앙리'를 되살리기 위해 그의 머리를 이용해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후 프랑켄슈타인이 인간에게 받은 배신과 상처를 인간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
두 이야기는 모두 '인간은 창조되어질 수 있는가?', '인간을 창조하는 창조자는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가?'의 두 개의 질문의 큰 틀 안에 있지만 뮤지컬에서는 보다 인간적인 감정과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그 결과 과학과 철학이라는 자칫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는 주제로 관객의 공감을 자아내는데 성공했다.
<드라큘라> 악의 재해석
뮤지컬 <드라큘라> 또한 중심소재를 가지고 주변 이야기를 재구성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냈다. 다만 <프랑켄슈타인>은 기존의 인물을 없애거나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킨 반면 <드라큘라>는 등장 인물은 유지한 채 중심 인물의 성격과 서사를 크게 변화시키고 주변 인물들은 원작의 성격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브램스토커의 원작 소설 <드라큘라>에서는 드라큘라는 악, 나머지 인물은 선으로 구분지어져 선명한 대립구도를 형성한다. 그러나 뮤지컬에서의 드라큘라는 이와 다른 모습으로 해석된다. 그는 사랑을 느끼는 인물이며,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라면 스스로까지 내던질 수 있는 희생의 아이콘으로 묘사된다. 드라큘라가 사랑하는 여인인 '미나' 또한 원작에서는 드라큘라의 피해자로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만 뮤지컬에서는 그를 운명이라 느끼고 그를 보호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스릴러인 원작에 '사랑'이라는 코드를 넣으며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고, 드라큘라를 인간성이 있는 캐릭터로 각색해 관객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드라큘라>는 원작의 긴장감과 감정적 서사를 조화롭게 결합해 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큰 인기를 끌고있는 뮤지컬로 자리잡았다.
각색이 만들어낸 새로운 공감의 길
위의 세 뮤지컬은 스토리 라인과 인물의 서사가 원작보다 단순화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약 2시간 남짓한 시간 내에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서사를 압축하고 인물의 감정선을 명확히 표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감정선은 오히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을 녹여내는 힘이 된다. 뮤지컬에서는 친구와의 우정, 연인 간의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 등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주제들이 잘 녹아들어가 있다. 이처럼 각색된 이야기들은 서사를 과감히 덜어내는 대신 감정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각색된 이야기는 문학의 일부 서사가 무대 위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순간이며, 시대와 장르를 넘어 예술과 관객이 만나는 또 하나의 길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진심으로 마음을 움직였는가'하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