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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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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果(파과)

흠집이 난 과실, 여자의 나이 16세를 이르는 말(破瓜)

 

영화 '파과'는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며 40년간 킬러 생활을 한 '조각'과 평생 조각을 쫓으며 킬러계의 유망주로 떠오른 '투우'에 관한 이야기다. 60대의 여성 킬러 조각은 세월이 지나 점차 낡은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던 중 지키고 싶은 존재가 생겼고, 그런 조각을 지켜보던 투우가 그를 약점으로 잡고 조각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조각이라는 킬러


 

영화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내용은 조각의 어린 시절이다. 조각은 어린 시절, 킬러 '류'를 처음 만나고 그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한 살인을 계기로 류에게 킬러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손톱'이라는 이름과 함께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고요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류의 가족이 원한을 가진 조직에게 살해당하고 그들을 가족처럼 여겼던 조각 역시 큰 슬픔에 빠진다. 류는 조각에게 '우리 이제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자'고 말하고 조직을 소탕하러 떠난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조각이 따라 나섰으나 류는 이미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 조각은 조직을 혼자서 소탕했고 킬러계의 전설이 된다. 사건 후 손톱은 스스로 '조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신성방역 내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이후 조각은 지켜야 할 대상을 만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낸 동료도 규칙을 어긴다면 죽이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그런 조각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단순한 호의로 자신을 구해준 의사에게 이유 모를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조각을 찾아 지켜보던 투우는 그 의사의 가족을 볼모로 조각을 협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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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의 시선은


 

투우는 과거 조각의 목표물의 아들이었다. 당시 조각은 목표물을 없애기 위해 가정부로 변장해 집에 들어왔었다. 중학생이던 투우는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자신을 챙겨주던 조각을 많이 따랐다. 애정이 부족하던 투우에게 조각은 기댈 품이 되어주고, 흑백이던 집에 색을 불어넣어준 존재였다.

 

'방역'이후 투우는 아버지를 죽이고 떠나던 조각을 따라가려 했으나 조각이 거부했고, 투우는 그렇게 평생 조각을 찾아 헤맨다.

 

투우는 조각이 만든 과실이었다. 원칙대로라면 목격자는 죽여 없애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투우는 조각을 따라 킬러가 되었고 여러 방역 업체가 탐내는, 그야말로 탐스러운 인재가 되었다. 투우는 조각을 찾기 위해 일생의 대부분을 바쳤지만 투우와 조각이 만났을 때, 조각은 투우를 알아보지 못했다.

 

킬러로 살아가려면 잊어버려야 한다. 지킬 것 또한 없어야 한다. '류'가 조각에게 알려준 것이다. 기억은 그의 약점이 되며, 지킬 것들은 반드시 상처가 되기 때문이었다. 평생 사람을 '방역'하며 살아온 그들이 그 기억을 평생 지니고 산다는 것은 큰 짐을 지니고 산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조각은 투우를 잊어버렸다.

 

투우는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평생을 조각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았던 투우는 조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모습을 보고 절망에 빠졌다. 그러던 중 조각이 지키고 싶어하는 대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그 대상이 아니라는 것에 질투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 가족의 일원을 납치하고 조각과 혈투를 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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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지킬 게 있었던 킬러, 투우


 

투우는 조각에게 "당신은 나 절대 못이겨. 난 잃을 게 없고, 그 쪽은 지킬 게 있거든."하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투우는 간절히 시키고 싶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조각을 계속 관찰하고 위험에 빠지면 구해주었다. 끝에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조각의 모습에 깊은 절망을 느껴 혈투를 벌였지만 사실 그 혈투의 결과는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투우가 조각을 얼마나 바래왔는가는 투우 역을 맡은 배우 김성철이 직접 부른 ost '조각'의 가사에서 알 수 있다.


잃어버린 날들 속에도 지워지지 않는 이름

고통 속에서도 숨쉬는 이유 나는 다시 살아가

끝나지 않는 이 여정 속에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조각

 

이처럼 조각은 투우의 고통이자 삶의 이유였다. 투우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결핍이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며, 그의 질투심과 절망은 관객들에게 동정심까지 불러 일으켰다.

 

 

 

 

영화 파과는 구병모의 장편 소설 [파과]를 원작으로 한다.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 있는 원작 파과를 읽어보는 것도 영화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성 액션'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영화 '파과'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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