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로운 것들로 가득한 작품 : 뮤지컬 '금악' [공연]

글 입력 2022.03.2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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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뮤지컬을 사랑하는 데에는 다양한 요소가 개입된다. 그중 다른 요소들은 제하고 작품 그 자체로서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난 8월에 관람한 뮤지컬 <금악>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작품이어서 관람을 시작한 것이었지만, 시즌이 끝나갈 즈음에는 그 뮤지컬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관람한 다른 뮤지컬에서는 쉽게 보지 못한, 다양한 매력 포인트가 존재하는 뮤지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점들을 자랑하고 싶은 한 팬의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1. 우리의 소리가 가미된 사극 뮤지컬



 

 

뮤지컬 <금악>은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하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사극 뮤지컬이다. 사실 대극장에서나 중소극장에서나 사극 장르의 뮤지컬을 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우선 사극 장르를 다루는 것 자체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어느 시기를 중점으로 잡을 것인지, 거기에 픽션과 현대적인 요소는 얼마나 가미할 것이고 고증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대중에게 어떻게 매력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사극 뮤지컬은 굉장히 귀하다.


이 작품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잘 맞추었다고 생각한다. 내용 면에서 실제 사건과 인물(효명세자 ‘이영’과 세도정치의 중심인 ‘김조순’ 등)을 배경으로 두면서도 거기에 허구의 인물인 ‘성율’을 중심인물로 등장시킨다. 성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면서도 이영의 실제 이야기와 신념을 넣어 사극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연출의 면에서도 금악을 통해 깨어나는 ‘갈’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판타지 장르의 화려하고 신비한 성격을 더하고, 장악원과 진찬연 장면을 통해 전통적인 연출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국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뮤지컬 <금악>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국악관현악단인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주관의 뮤지컬로, 뮤지컬 넘버도 국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뮤지컬이 시작하기 전 오케스트라가 조율을 시작했을 때, 보통의 뮤지컬 오케스트라와는 전혀 다른, 국악기로 가득 찬 소리가 들려오던 것이 너무 신기했다. 실제로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국악기들도 더욱 자세히 구경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소리꾼이 배역을 맡아 등장하기도 하고,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성악단이 앙상블로 참여하여 전통적인 우리의 소리를 뮤지컬에서 들을 수 있었다.

 

 

 

2. 여성 성장형 히어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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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성율’은 그동안의 여성 주연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과는 또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성율은 우리나라 고전 소설에 등장하는 히어로상과 매우 흡사하다. 어린 시절에 고난을 겪고,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하다가 어느 갈등 앞에서 조력자의 도움을 받고 또 스스로 성장하며 정의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영웅 캐릭터이고, 성율은 이러한 면모와 합치하면서도 거기에 또 다른 특징을 부여받는다.


소리를 듣는 능력이 뛰어난 성율은 부모님의 죽음을 겪고, 남장을 하며 살아가다가 제 정체성을 찾고자 궁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자신을 늘 도와주는 단짝 ‘임새’와 더불어 궁에서 만난 ‘이영’이 그녀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리고 금악을 통해 깨운 ‘갈’이라는 캐릭터는 그녀의 뛰어난 능력을 더욱 초월적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의를 따르는 영웅들과는 다르게, 성율은 인간미를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캐릭터이고, 그것은 욕망으로 대변된다. 그렇기에 이 욕망을 상징하는 ‘갈’은 그녀의 조력자임과 동시에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이 불완전함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완벽한 히어로가 아닌, 공감의 대상이 되는 성장형 히어로를 만들어낸다. 제 개인적인 욕망 앞에서 성율은 갈등하고, 그 과정에서 고난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 고난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궁극적으로 성율은 제 정체성을 찾아내며 정의를 향해 가는 히어로의 길을 밟게 된다. 여성이 주연이 되는 작품은 상대적으로 적고, 거기에 성장형 히어로가 만들어내는 해피엔딩의 작품은 더군다나 보기 쉽지 않다. 히어로 서사 자체는 전형적일 수도 있지만, 거기에도 특색이 더해져 <금악>만의 매력을 만들어낸다.

 

 

 

3. 젠더프리(Gender-Free)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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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금악>에는 여성과 남성이 동시에 같은 배역을 맡는 젠더프리 캐릭터, ‘갈’이 존재한다.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젠더프리 캐릭터를 접하게 되었고, 그 매력을 깨닫게 되었다. 음역도, 외관도 굉장히 다른 두 배우이다 보니 같은 캐릭터여도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처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전혀 다른 음역과 음색을 듣고는 등골에서부터 소름이 쫙 돋았던 기억이 난다.


윤진웅 배우가 연기한 갈은 인간이 아닌 듯한 신비로운 느낌이 강하면서 (데스노트의 ‘류크’를 닮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묵직하게 다가오는 위압감이 있었고, 추다혜 배우가 연기한 갈은 선과 악의 경계가 아직 모호한 순진한 꼬마와도 같으면서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비록 캐릭터 해석의 차이는 단순히 젠더프리뿐만 아니라 여러 작품의 캐릭터에서 생겨나는 일이지만, 서로 다른 성별이 주는 색다른 면모는 이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젠더프리 캐릭터는 매력적임과 동시에 공들여야 하는 부분이 많은 캐릭터이다. 서로 다른 음역을 고려하여 작곡할 필요가 있는 것이 가장 주된 부분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여러 차례 시즌을 거친 작품은 새로이 작곡하면서까지 노력을 들이기가 힘들고, 초연작이어도 그 도전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어려움을 알기에 안타깝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팬으로서는 이러한 새로운 캐릭터들이 더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그런 면에서 뮤지컬 <금악>의 과감한 시도에는 감사를 표하고 싶다.


*


뮤지컬 <금악>은 흔히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과감히 섞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색 있는 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끝난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 작품을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벌써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 될 정도로 많은 매력이 담겨 있는 뮤지컬이니, 이른 시일 내에 다시 <금악>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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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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