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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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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렌트(Rent)> 한국 라이선스 10연은 2025년 11월 9일부터 2026년 2월 22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렌트>는 1996년 1월 뉴욕의 오프-브로드웨이에서 프리뷰 공연을 거친 후 같은 해 4월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작품으로, 작곡가이자 극본과 연출을 맡은 조나단 라슨(Jonathan Larson)에 의해 만들어졌다. <렌트>의 한국 라이선스 공연은 제작사 신시컴퍼니의 주관으로 2000년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되었고,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 25주년이자 10번째 시즌이다.

 

뮤지컬 <렌트>는 19세기 파리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La Boheme)>을 뉴욕 이스트 빌리지를 배경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으로, 여주인공 미미를 비롯해 <라 보엠>의 로돌포가 로저로, 마르첼로가 마크로 이름이 변화하고 또 다른 캐릭터들이 추가되거나 원작 속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이 섞이면서 <렌트>의 주된 인물들이 구성되었다. 이 외에도 <라 보엠>의 로돌포는 시인이지만 <렌트>의 로저는 작곡가가 되었고, 주인공 미미가 앓는 병이 결핵에서 HIV/AIDS로 바뀌는 등 변화를 겪었다.

 

집세 내기를 거부하는 가난한 예술가인 다큐멘터리 감독 마크와 전 여자친구의 죽음으로 낙담한 작곡가 로저, 그리고 클럽의 쇼걸로서 질병의 고통 속에서 사랑을 꿈꾸는 미미를 중심으로, 드랙퀸 엔젤과 대학 시간강사 콜린의 헌신적인 사랑, 마크의 전 여자친구이자 행위예술가인 모린과 레즈비언 변호사 조앤의 불꽃 튀는 사랑, 그리고 부유한 부동산 재벌과 결혼해 이들을 배신한 건물주 베니가 극의 주된 등장인물들이다. 뮤지컬 <렌트>는 뉴욕을 배경으로 빈곤과 HIV/AIDS, 주거 상실, 연인과 친구의 죽음 등 고통 속에서도 ‘오직 오늘 뿐(No Day But Today)’이라며 사랑을 하고, 저항 정신을 잃지 않는 예술가들의 단면을 제시한 작품이다. 오프-브로드웨이 프리뷰 공연 전날 밤 원작자 조나단 라슨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던 비극적인 비화 속에서, 그의 사후 <렌트>는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받으며 렌트의 팬을 지칭하는 ‘렌트 헤드(rent-head)’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았다.

 

* 뮤지컬 <렌트>의 원작자인 조나단 라슨의 삶을 비롯해 <렌트>와 <틱틱붐>이 공유하는 지점 등 선행 지식을 더욱 알고 싶으시다면, 작년에 발행된 뮤지컬 <틱틱붐>의 리뷰 기사를 참고하길 바랍니다.

 

 

 

‘렌트(rent)’의 사회경제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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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렌트>의 배경이 되는 영미권의 1980~90년대를 지배하는 레짐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영국의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사회 경제적 리스크를 개인화하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은 사회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심화시켰다. 뮤지컬 <렌트>의 경우 빈곤과 주거권의 상실 등 자신의 취약성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고 마약 중독과 HIV/AIDS 감염자를 향한 낙인을 마주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공동체성이 상실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모순과 불화는 죽음을 기다리는 로저와 미미의 태도와, ‘컴퓨터 시대의 철학 강사’라는 콜린의 직업, 행위 예술가 모린의 퍼포먼스, 그리고 친구들에게 닥친 비극을 예술의 방법론을 활용해 기록 및 재현하려는 마크의 모습에서 강조되어 나타난다. <렌트>의 캐릭터들은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근본적 취약성을 떠안으며, 시대와 근본적으로 불화하면서 이를 통해 대안적 가치를 발견하며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들이 가진 삶의 유한성을 상기시키는 조건인 HIV/AIDS라는 질병에 초점을 맞춘다면, 뮤지컬 <틱틱붐> 리뷰 기사에서 자세히 언급했던 것처럼 ‘질병’은 단순히 독립적 개체의 속성으로 여겨지는 건강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환경과 이를 정치화하는 담론의 문제다. <렌트>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후반, HIV/AIDS 바이러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방관은 공적이고 사회적인 보건의 문제를 개인화하고 감염자와 퀴어 커뮤니티에 대한 낙인을 생산했으며 이는 구조적 혐오로 이어졌다. 또한 <렌트>의 미미가 그러하듯 ‘약물(마약) 사용’이라는 계급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층위가 상호작용하면서 발생하는 개인의 실천 혹은 상태를 병리화하고,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원인으로 증가하는 약물 사용자를 단순히 신자유주의적 교정(carceral) 권력 하에서 범죄화함으로써 낙인과 배제의 악순환을 가속화하고 사회 구조적인 맥락을 지우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렌트>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정치 경제적 체제와 통치성이 삶의 구체적인 단면에서 심화되어 드러나는 양상은 바로 본래 자산으로 여겨지지 않던 영역에 배타적인 소유권을 부과하는 자산화라는 구체적인 자본주의의 메커니즘과, ‘지대(렌트)’를 통해 자본을 축적 및 확장하는 지대 추구자(rentier)들의 존재다. 경제학에서 지대(렌트)는 노동이나 생산 없이도 특허권과 토지, 재산권 같은 자산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의미하고, 지대추구 자본주의(rent-seeking capitalism)는 생산보다 자산을 점유해 이익을 얻는 ‘추출’에 초점을 두는 자본주의의 극화된 흐름을 의미한다. 당장 같은 원작자의 작품인 <틱틱붐>이 그러하듯 기존의 신자유주의 정권과 통치성, 신자유주의 정책이 수반하는 삶의 근원적인 불안정성과 소수자 혐오에 대한 비판을 담은 문화 예술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렌트>가 특별한 이유는 기존의 비판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시기 심화되는 지대 추구와 자산화의 논리가 어떻게 삶에 침투했는지를 보여주며 이를 작품의 핵심 메시지와 연결한다는 점이다.

 

 부동산 재벌 집안의 딸(앨리슨)과 결혼한 베니는 자본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의 친구들이었던 마크와 로저에게 과거의 약속을 바꾸어 집세를 내길 강요하고, 마크와 로저를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살던 '스쿼트(Squat, 빈 건물을 무단으로 점유하는 행위)' 공간이거나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던 예술가들의 공간을 '사이버 랜드'라는 첨단 상업 시설로 바꾸려는 인물이다. 이는 199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서 발생했던 임대료(집세)를 높이거나 노숙인 등 주거 취약 계층을 추방하는 등 레이건 정부 주도의 재개발 정책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반영하며, 공유지로 대표되는 ‘공공성’의 사유화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때 ‘지대’이자 ‘집세’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 렌트(rent)는 이상향으로 제시되는 보헤미안적인 삶의 방식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행위자들을 위계적인 자본주의 질서로 포섭하려는 수단이면서, 공적이고 개방적인 공간을 자산으로 전환시키면서 가치를 추출/수탈하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하는 자본의 힘을 의미한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은 집세(렌트)를 ‘못’ 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내기를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 <렌트>는 ‘소유’와 ‘지대(렌트’)의 논리와 문법에 대한 저항으로서 모든 것은 빌려온 것이라는 메시지를 제시하며 부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즉, 실질적인 첫 넘버인 ‘렌트(rent)’에서 나타났듯이 집세를 내지 않겠다는 등장인물들의 선언은 지대추구 자본주의 속 부채(debt)의 도덕과 자산화의 회로 속에서 자산을 소유하고 그로부터 가치를 추출하려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상징이 된다. 이때 예술의 가치는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로 환산하고 수량화하는 힘에 대항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되며, 이는 점점 더 삶의 많은 영역과 존재를 인격적 관계에서 탈락시키고 위계적인 서열을 부착하는 시장의 논리, 즉 ‘가치화’의 메커니즘*을 의문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대표곡 ‘Seasons of love’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분 단위로 환산한 52만 5600분의 시간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지 묻고 그 답을 ‘사랑’으로 제시하는 것처럼, 이 작품은 모든 것이 (도구적) 합리성에 기반해 생산성의 가치로 평가될 때, 수익과 효율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인생의 가치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또한 시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잠시 빌린 것이라는 실존적 통찰 속에서, <렌트>가 보여주는 사고의 전환은 ‘오직 오늘 뿐(No day but today)’라는 작품의 메시지와 연결되어 유한한 삶과 사랑을 소중히 여기게 하는 전제가 된다.

 

* Muniesa, F., Millo, Y., & Callon, M. 2007. An introduction to market devices. Market Devices, 55(s2), 1–12.

 

 

 

오직 오늘 뿐(No day but today)이라는 저항의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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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불안정한 관계의 형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현실을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성장의 과정 속에서, ‘미래’가 함의하는 허상의 정상성과 규범성이 아니라 ‘현재’를 받아들이고 향유하는 일탈성을 더욱 강조하는 렌트의 시간성은 원작자 존의 이야기와 맞닿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뮤지컬 <틱틱붐> 리뷰 기사 발췌)

 

 

뮤지컬 <렌트>는 (명사로서의 의미를 넘어 동사/형용사로서의 의미를 포괄하는) 퀴어(성), 마약, HIV/AIDS 감염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호불호’ 강한 작품이라고 설명되기도 하고, 청춘이라는 연령적 특성 혹은 예술가만의 특수성이라는 점에 집중되어 작품의 일탈성을 단순히 극적 유희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방식으로 홍보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퀴어의 존재론과 마약 사용자들의 경험, 질병이라는 극적 요소는 단순히 ‘젊음’과 ‘예술가’의 특수함을 강조하는 소재라기보다 그 당시의 실제 삶의 단면들이면서 <렌트>라는 작품에 내재한 메시지에 필요한 골격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HIV/AIDS에 의해 제기되는 삶의 유한성이라는 실존적 조건이 직접적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오늘’이라는 현재성의 가치를 긍정하는 부분은 주어진 삶을 후회 없이 항유하려는 태도이면서, ‘미래’가 함의하는 근대적 발전의 서사를 의문시하는 것이다.

 

퀴어 이론가 리 에덜만은 <미래 없음(No future)>에서 ‘대문자 아이’라는 기표를 통해 작동하는 주류 사회의 ‘재생산적 미래주의(Reproductive Futurism)’를 거부하고, 경계를 교란하는 퀴어 특유의 시간성에 주목한다. 이때 에델만의 ‘퀴어 시간성’은 이성애규범적이고 발전주의적인 ‘미래’에서 배제된 비생산적 존재들이 지금 이 순간의 쾌락과 욕망에 집중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리 에덜만의 논의는 현재 퀴어 시간성 논의에서 ‘고전’으로 꼽히며 다양한 비평과 비판적 전유가 뒤따르고 있지만, 규범적 사회에서 이탈한 퀴어의 존재론적 측면에 천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렌트>는 사회 전반의 불안정성을 전제로 질병과 낙인으로 인해 ‘정상성’, 즉 사회적 생애 주기와 규범적 (재)생산에서 이탈(당)한 존재들이 감각하는 ‘오늘’이라는 현재의 쾌락의 가치와 취약성에 기반한 상호 연대를 중시하며, 세 커플과 마크라는 주요 캐릭터들을 포함하여 중간에 등장하는 환자 모임(‘life support’)의 사례처럼 서로를 돌보며 만드는 대안적 친밀성과 새로운 친족(kinship)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조나단 라슨의 메시지와 <렌트>가 흥행했던 사회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렌트>를 보았을때 이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베니를 조롱하는 행위예술가 모린의 ‘Over the moon’과, <렌트>의 문제의식과 저항 정신을 유쾌하게 풀어낸 넘버 ‘라 비 보엠(La vie bohème)’이다. 1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 장면은 베니의 재개발 계획을 비판하는 모린의 퍼포먼스 이후 베니와 개발업자들이 있는 음식점에 진입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소동’이자 ‘축제’다. 보헤미안(의 정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건물주 베니에 맞서 주인공들은 ‘장례식’이라고 명명한 ‘축제’를 통해 베니와 개발업자들을 조롱한다. 이들은 배제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일탈적 성애, 비규범적 젠더 표현, 문화적 아이콘, 약물 등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넘버의 제목이기도 한) ‘보헤미안의 삶’을 찬미한다. ‘라 비 보엠’은 직접적인 가사 외에도 상표나 인물의 언급 등 다소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문화적 기표들의 나열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가사의 특정 요소 하나하나를 깊이 추적한다면 무의미한 내용이 없는 밀도 높은 장면이다. 또한 기성 사회의 질서와 보헤미안의 철학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일탈적 실천을 작품의 핵심 메시지로 전면화하는 정치적 선언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또한 이번 공연에서 유독 주목하게 되었던 장면이 있다면, 먼저 로저와 미미의 첫만남 이후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삶에 대한 견해와 성향 차이 속에서 부딪히는 ‘Another day’의 연출이다. AIDS에 감염된 것을 알게 된 전 여자친구 에이프릴의 자살로 인해 낙담해 있던 로저가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같은 운명에 처해 있더라도 사랑(으로 표현되는 삶)에 직진하는 미미와 마주하는 장면으로, 미래도 과거도 없고 ‘오직 오늘’만 존재한다는 문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며 엔젤과 콜린 커플, 그리고 (감염자는 아니지만) 이를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기 위해 참여한 마크가 있는 HIV/AIDS 환자 모임이라는 또 다른 공간성과 병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간적 병치 속에서, ‘현재’의 삶과 사랑에 충실한 채 살아가는 것은 질병에 의한 죽음이라는 사회적으로 각인된 운명, 혹은 ‘미래 없음’에 저항하기 위한 방법론 중 하나라는 것이 드러난다. 또한 ‘오늘’이라는 현재성이 (미래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 아낌없이 베푸는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엔젤이 부르는 ‘Today 4 u’ 속 당신(콜린)에게 ‘오늘’을 드리겠다는 가사는 자신의 모든 사랑을 주겠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컨택트Contact’는 <렌트>의 뮤지컬 영화 버전에서는 여러 ‘컷’으로 대체된 장면으로, 실제 공연에서만 확인할 수 있고 무대예술만의 독특한 연출이 가미된 고유한 지점이다. 쾌락과 고통의 단어를 포함한 다양한 대사들이 얽히고 흰 천과 다양한 배우들의 실루엣을 통해서 표현되는 장면으로 만약 이를 처음 접하게 된다면 다소 독해하기 어려운 장면으로 느낄 수도 있다. 컨택트는 얽히는 실루엣을 통해 불안과 불쾌의 정동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면서, 자신을 데려가라는 가사처럼 질병의 고통에서 몸부림치는 엔젤의 모습만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며 마지막 콜린의 목소리(‘It’s over’)를 통해 엔젤이 죽었음이 제시된다. ‘컨택트’의 본질적인 의미인 접촉은 감염의 매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과 접촉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의 조건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접촉의 역설은 사회적 삶 속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또한 분산된 단어들과 리듬, 독특한 멜로디, 추상적이지만 분명한 무대 연출을 통해 쾌락과 고통의 공존, 약물에 의한 생리학적 결과로 환원될 수 없고 한 가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처럼 캐릭터들의 질병과 약물과 섹스의 경험이 집합적으로, 그리고 언어화될 수 있는 합리성의 양식에서 이탈하여 드러나는 장면이며, 로저와 미미, 조앤과 모린 등 다른 커플들의 갈등과 추구하는 예술의 방향성에 관한 마크의 내적 갈등 속에서 엔젤의 죽음을 통해 2막의 분위기가 전환되기에 2막 전개에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능한다.

 

최종적으로, 원작인 오페라 <라 보엠>과 뮤지컬 <렌트>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주인공 미미가 마주하는 결말의 차이다. 2막에서 고립과 배제로 인해 죽음과 삶의 경계까지 ‘떠밀린’ 미미가 원작 <라 보엠>과 달리 죽지 않고 단지 정신을 잃었을 때 죽은 엔젤의 환영을 보고 다시 삶을 향유할 기회를 얻는 결말은 이 작품을 ‘해피엔딩’으로 만든다. <렌트>의 결말은 단순한 ‘Happily ever after’, 즉 ‘그래서 모두 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에게는 모두 죽음이 기다리고 있고, 그들의 삶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행복’과 ‘풍요로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ATM 기기를 해킹해서 그 비밀번호를 죽은 연인 엔젤의 이름으로 설정한 콜린이나, 혼자 남겨질 미래를 상상하며 예술이라는 재현의 방법론 뒤로 숨는 마크, 그리고 여전히 불안정한 사랑의 토대 위에서 관계를 이어갈 조앤과 모린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확실성이 주는 안정감보다 불확정성이 수반하는 쓸쓸함에 가깝다. 다만 <렌트>가 알려준 것은 정상성의 궤도에서 벗어난 '하찮은' 삶도 괜찮다는 것이며, 삶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성과 불확실성을 다르게 사유하면서 ‘오늘’을 향유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렌트>의 메시지를 고려한다면, 모든 등장인물들이 모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으로 무대에서 퇴장했던 엔젤이 다시 무대로 돌아올 때 느껴지는 울림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는 ‘Seasons of love’의 가사를 떠올리게 한다.

 

 

 

다시 돌아온 <렌트>를 완성하는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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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렌트>는 신인 등용문이자 스타 배우의 산실로서,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였던 모린 역의 이디나 멘젤(Idina Menzel)과 로저 역의 아담 파스칼(Adam Pascal), 마크 역의 앤서니 랩(Anthony Rapp) 등 다양한 배우들이 <렌트>를 거쳐 스타가 되었다. 이는 한국 라이선스 공연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초연 당시 남경주(로저)와 최정원(미미)을 포함하여 조승우(2007년 로저 데뷔), 최재림(2009년 콜린 데뷔), 김호영(2002년 엔젤 데뷔), 정선아(2002년 미미 데뷔), 민경아(2020년 모린 데뷔) 같은 스타 배우들이 거쳐간 작품이 <렌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렌트>라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이 작품에 참여하여 <렌트>의 핵심 메시지를 표현하고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동화되어 연기하는 배우들이다.

 

이번 <렌트>는 소위 ‘경력직’들과 ‘신예’의 조화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김수하 미미는 2020년 처음 미미로 데뷔를 한 후 미미와의 캐릭터 일치도라는 측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그 실력을 증명한 인물이다. 지난 시즌 <레미제라블> 에포닌과 겹쳐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다시 돌아온 김수하 미미의 ‘Out tonight’은 환상적이었다. 머리를 풀고 글리터를 흩날리면서 자유로움과 해방감, 동시에 모종의 불안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그의 모습은 미미의 현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1막에서의 미미의 불안함은 2막에서 죽음의 경계를 경험하는 미미의 모습으로 이어지는데, 노래와 퍼포먼스의 탁월성 뿐만 아니라 세밀한 감정 연기를 확인할 수 있다. 구준모 베니는 약간은 비열하지만 동시에 ‘찌질’한 베니로서, 극 내부에서 비호감과 친근함을 오가지만 단순한 악역으로만 표현할 수 없는 ‘하찮은’ 매력이 있다. (2막 후반부에 암시되긴 하지만, 이 베니는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돌아와서 부동산 재벌인 장인과 아내를 설득했을 것 같다.)

 

경력직 외에도 새롭게 기용된 배우 역시 각자의 캐릭터 해석을 가지고 작품에 참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태화 마크는 이전 시즌에 참여했던 정원영의 마크를 연상시키는 면모가 있고, 뮤지컬과 더불어 다양한 연극에 참여해 쌓은 연기 내공을 펼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0년, 2023-24년 공연에서 ‘로저’를 맡았던 장지후의 ‘콜린’으로의 캐릭터 변신, ‘Over the moon’에서 나타나는 모린 역 김려원의 통제할 수 없는 ‘컨트롤 프릭’의 매력적인 연기, 그리고 이전에 참여했던 뮤지컬 <이프덴>의 케이트와 그 상대역이었던 ‘앤’이 동시에 연상되는 조앤 역 이아름솔의 연기 (그리고 필모 간의 갭 차이) 역시 또 다른 관람 포인트다. 로저 역의 유태양(SF9)은 아이돌 그룹의 메인 보컬 출신이 아님에도 락 넘버를 무난히 소화해서 놀라웠고, 2020년 참여했던 오종혁의 로저가 연상되는 면이 있다. 그는 음역대가 넓지 않다는 한계가 있지만 앞으로도 이번 로저 캐릭터 같은 자신에게 어울리면서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 역할을 잘 찾아간다면 전반적으로 뮤지컬 장(場)에 정착하지 못한 3세대 이후 (남자) 아이돌 중에서 유일한 반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렌트>에서 유일하게 죽음이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인물인 ‘엔젤’은 자신의 사랑을 주는 것의 가치를 알고, 자신을 향한 혐오에 당당하게 응수하는 캐릭터로서 <렌트>의 정신을 구현하는 중심 인물이다. 엔젤은 ‘Today 4 u’에서 높은 하이힐과 산타복을 입고 화려한 퍼포먼스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번 공연에서 엔젤을 맡은 그룹 2AM의 멤버이자 다양한 뮤지컬에서 활약한 조권은 엔젤이 보여줄 수 있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2023년 말에 개막했던 지난 시즌 <렌트>에서 엔젤을 2002년부터 20년간 맡아온 배우 김호영은 조권에게 자신의 ‘엔젤’ 배역을 ‘물려주겠다’고 선언했고, 이는 데뷔부터 ‘호이엔젤’(김호영)에서 ‘권엔젤’(조권)으로의 ‘연속성’을 함의하는 동시에 <렌트>에도 세대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권과 김호영의 유사성 속에서, 이번 시즌의 조권은 ‘엔젤’로 2024년 한국 뮤지컬어워즈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김호영의 상징성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경력직’으로서의 연륜을 뽐낸다. 지난 시즌에 이어 조권의 엔젤을 다시 한 번 접하면서 직접 보지 못했던 <프리실라>의 ‘아담’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속 조권만의 해석이 들어간 ‘헤롯’ 캐릭터를 보고 싶었고, 다행히 볼 수 있었던 뮤지컬 <제이미>의 초연이 그리워졌다. 2002년부터 약 20년을 이끌어 온 김호영의 ‘엔젤’이 그러했듯, 조권의 ‘엔젤’ 역시 <렌트>의 앞으로의 20년을 이끌어 갈 구심점이 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는 공연이었으며, 뮤지컬 업계를 넘어 KPOP 산업과 예능(버라이어티 쇼) 분야에서 ‘제 2, 3, 4…n의 조권’ 혹은 ‘포스트 조권’으로 꼽히는 신세대 스타들 중에서 실력과 당당함의 차원에서 조권을 능가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뮤지컬 <렌트>에 조권이 참여하는 한, 새로운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매번 <렌트>를 볼 것이다.

 

 

 

한동안은 낡지 않을, 여전히 필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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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렌트>가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올린 이후 약 30년이 지났고, 한국 라이선스 공연이 초연된 2000년 역시 오래된 과거다. 이 작품에서 엔젤을 죽게 만들고, 미미를 삶과 죽음의 경계로 몰아넣었던 HIV/AIDS는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적절한 의료적 관리’와 약물적 조치가 동반된다면 타인을 감염시키지 않을 수 있고 기대수명을 채울 수 있는 질병이 되었다. 즉, 감염 자체가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운명으로 이어지던 <렌트>의 시대적 배경은 2026년 지금 현재 상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고, 이는 <렌트>의 메시지를 ‘시효 만료’라고 인식하는 것에 일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제시되고 있는 불안과 취약성이라는 배경은 여전히 현재 삶의 조건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부의 양극화로 인한 빈곤과 퀴어와 HIV/AIDS 감염자를 향한 혐오와 낙인 역시 존재한다.

 

199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예술가와 소수자의 삶을 다루고 있는 <렌트>가 탈역사적 보편성을 지닌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렌트>에 내재한 사회적 현실과 규범에 대한 문제의식은 현재 사회에도 유효하고, 따라서 <렌트>의 메시지는 더 이상 연대와 돌봄의 공동체를 상상하지 못하고, 배제의 경계선과 낙인이 불안정성을 해결하는 길이라는 환상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과 공명한다.

 

 

“당신이 아무리 HIV에 감염한 사람과 이웃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당신의 몸은 언제나 이미 감염한 몸과 이웃하고 있다. 우리의 몸은 지금 당장 직접 닿아 있지 않다 하더라도, 감염이라는 작용이 매개하는 생명의 의미망 속에 늘 휘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

 

** 서보경, 2023, 『휘말린 날들 -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반비, 389쪽.

 

 

한국 사회에서 HIV/AIDS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연구한 책 『휘말린 날들』(서보경)에서 나타났듯이, ‘연루’는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사회의 조건이면서 ‘공적인 것’과 공동체(성)의 의미를 다시 상상하게 하는 기제다. 이러한 상상력 속에서 뮤지컬 <렌트>의 메시지는 현재 사회의 우리에게 어떠한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사회의 근본적인 불안정성을 마주해야 하고, 배제와 고립에 맞서 연결과 ‘얽힘’을 사유해야 하는 이들에게 시간이 지나도 <렌트>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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