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안정한 사회와 삶 속 예술가인 존의 이야기 – 뮤지컬 틱틱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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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컴퍼니의 뮤지컬 <틱틱붐>(tick, tick... boom!)은 2024년 11월 16일부터 2025년 2월 2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 조너선 라슨(Jonathan Larson)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30살 생일을 앞두고 귀에서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는 주인공 존(John)은 그의 애칭이다. 워크샵 당시 조너선 라슨 본인 주연의 1인극 형식으로 만들어졌고, 1996년 <렌트>의 성공에 힘입어 <틱틱붐> 역시 3인극으로 다듬어져 2001년 5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다. 한국에서 <틱틱붐>은 신시컴퍼니에 의해 2001년 초연되었고, 5연인 2010년 공연 이후 한동안 공연이 올라오지 않다가 2017년 아이엠컬쳐에서 틱틱붐에 참여했던 배우들의 데뷔를 기념하는 일종의 특공으로 올린 후 2024년에 다시 신시컴퍼니에 의해 돌아왔다. 이번 <틱틱붐> 공연은 기존 오프브로드웨이 초연부터 유지해 온 기존의 존-수잔-마이클의 3인극이라는 형태에서 5인의 앙상블을 더 추가해 공연과 극장의 규모를 확장시켰다. 존의 나레이션 같은 대사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틱틱붐> 속에서 수잔과 마이클 역의 배우는 기존의 역할은 물론 중간중간 등장하는 다른 역할들, 예를 들어 카레사와 존의 아버지 같은 캐릭터들로 분하고 앙상블들 역시 마찬가지로 여러 역할을 맡는다.
<틱틱붐>에서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캐릭터인 존은 자신이 작곡한 뮤지컬 작품을 브로드웨이에 올리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 ‘슈퍼비아’의 워크숍에 몰두한다. 30살 생일을 앞둔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심리적인 압박감 속에서 생계를 위해 소호의 식당에서 웨이터로 근무하고, 배우를 그만두고 마케팅 회사에 취직한 친구 마이클의 말을 듣고 미팅을 하기도 한다. 결말 부분에 가서 애인 수잔과의 이별, 친구 마이클의 HIV/AIDS 감염 고백, <슈퍼비아> 워크숍 이후로도 정식 공연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것 같은 상황들에 절망하던 존은 그의 우상이었던 스티븐 손드하임의 메시지를 받고 다시금 삶과 진로에 대한 의지를 다지며 30살의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뮤지컬 <렌트>와의 연결 고리들
뮤지컬 <틱틱붐>은 렌트의 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이야기다. 실제 라슨은 <슈퍼비아> 워크숍 이후 <틱틱붐>, <렌트> 같은 작품의 창작을 진행하지만, 실제 <렌트>의 첫 정식 공연 전 37세의 나이로 요절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렌트>는 대히트를 기록해 ‘렌트헤즈’라는 이름의 팬덤이 성장하였으며, 투어도 진행되고 영화도 만들어질 정도로 그 당시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극 중에서 존은 자본과 상업성, 그리고 전통적인 예술적 관습에 의해 움직이는 브로드웨이를 향한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작품의 기반이 될 락과 뮤지컬이라는 모순적인 형식의 결합이 그 당시의 브로드웨이 기준으로는 ‘실험적’인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조너선의 사후 당시 뮤지컬의 음악에 있어서 전통적 형식을 벗어난 <렌트>가 브로드웨이에서 오래 공연될 만큼 성공한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은 결국 존이 <틱틱붐>에서 던지던 질문과 의문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존의 우상이라고 언급되는 전설적인 뮤지컬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렌트>의 ‘라 비 보엠’에서 언급되기도 한다)의 존재와 존의 작품에 대한 그의 응답은 이 작품을 브로드웨이의 역사, 뮤지컬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더욱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든다.
<렌트>와 <틱틱붐>은 조너선 라슨의 작품 궤적을 알아갈 때 한 작품을 제외하고 다른 하나를 논하기 어려울 만큼 서로 깊게 연관되어 있다. 먼저, 두 작품 다 1990년대의 맨해튼, 즉 뉴욕시에서도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적 특성이 강조되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에서 묘사되는 맨해튼의 풍경과, 그 풍경에서 엿보이는 공통된 에너지와 긴장, 불안과 저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틱틱붐> 속 존과 다른 캐릭터들이 겪는 여러 모습의 균열과 고민 속에서 그들과, 그리고 그들의 여정을 지켜보는 관객이 도달하게 되는 지점은 렌트의 메시지인 ‘오직 오늘 뿐’(no day but today)의 연장선상에 있다. <렌트>와 <틱틱붐> 모두 모두 취약성을 기반으로 하는 불안정한 사회 속 예술가 청년들의 열정과 꿈, 저항 정신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렌트>에서 자신의 친구들이 겪는 일들을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기록하려고 했던 마크와, 죽기 전 곡을 완성하려는(‘one song glory’) 작곡가 로저의 모습에서 <틱틱붐> 속 존이자 원작자 조너선 라슨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친구들의 여러 모습과 뉴욕의 풍경을 비추었던 마크의 카메라 렌즈가, <틱틱붐>에서는 존 자기 자신을 비추었을 뿐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존의 여자친구 수잔과의 갈등과 이별, 싸움(특히, ‘therapy’라는 넘버가 유명하다)의 과정은 렌트에서 관계의 단절과 불화를 겪었던 주요 커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게다가 HIV로 인해 ‘죽어가는’ 존의 친구, 마이클은 <렌트> 속 HIV 바이러스에 걸린 캐릭터 중 특히 공연 말미에 죽음을 맞이하는 캐릭터이자 <렌트>의 메시지를 구현하는 인물인 엔젤을 떠오르게 한다.
전반적으로 <틱틱붐>의 한국 라이선스 공연은 <렌트>와 같은 제작사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전반적인 무대 세트가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렌트> 뮤지컬 버전에서 종종 등장하는 전화 메시지(voice mail)를 극 중에서 전달하는 방식이 유사하다. <렌트> 속 마크와 조앤 같은 캐릭터에게 걸려오는 가족들의 전화 메시지는 존에게 걸려와 안부를 묻는 부모님의 전화와 닮아 있고, 존의 뮤지컬 <슈퍼비아>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에이전트의 전화는 <렌트> 속 마크의 다큐멘터리를 담당하는 방송국 프로듀서인 알렉시 달링의 전화를 연상시킨다. <렌트>에서 유명한 장면인 라 비 보엠(La vie boheme) 속 식당 위 가로로 기다란 탁자의 모습은 존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당과 비슷한 외형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렌트>와 <틱틱붐> 두 경우 모두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제작사가 신시컴퍼니로 같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때, <렌트>의 최근 공연이나 <틱틱붐>의 이번 시즌을 모두 본 관객들이라면 눈치챌 수 있는 숨겨진 연결 고리가 있다. 한국 라이선스 7연 기준, 마지막 장면에서는 <렌트>의 마크를 연상시키는 ‘마크’가 존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남기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는 실제 한국 라이선스 <렌트> 공연에서 마크 역할을 맡았던 정원영 배우의 목소리로, 두 작품 모두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이를 눈치채고 반가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의 미국 뉴욕과 2025년의 한국, 연결
<틱틱붐>을 본 20~30대가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존이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이다. 존은 꿈을 완전히 실현시키지 못했고 그렇다고 생계의 안정성을 유지할 만큼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한 채로 30살 생일이라는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여러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는데, 그 모습이 현재 청년 세대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모습과 무대 밖 현실에는 시간과 공간의 격차가 있지만, 이 둘의 모습은 왜 이렇게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청년 세대의 위기와 불안이 보편화되면서 틱틱붐에서 묘사된 청년의 모습 역시 지금까지 보편적인 청년의 모습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처리즘,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은 단순히 노동의 유연화와 복지의 축소라는 (기존의 케인즈주의적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는) 경제학적 레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영역까지 그 통치성의 대상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틱틱붐> 속 존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1990년대는 미국이 그 이전에 누렸던 경제적인 지위와 초기 근대적인 안정성이 사라진 시대로서, 90년대에 30살이 된(‘30/90’) 청년 세대는 정상성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생애 주기에서 자의적, 혹은 타의적으로 이탈한 세대다.
안정적이며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그것을 유지하지 못해서 자신의 꿈을 택한 존은 식당 웨이터 알바(part-time job)로 연명하며 살게 되었다. 반면 존과 달리 사회경제적 상황과 타협해 ‘이상’ 대신 ‘현실’을 택한 인물, 혹은 꿈을 유예하고 진로를 살짝 비튼 인물은 존과 대비되는 마이클과 수잔이다. 수잔은 원래 꿈이었던 무용수 대신 ‘재능은 없지만 부자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무용 선생이 되고, 마이클은 배우를 포기하고 마케팅 회사에 입사한다. (두 사람은 각각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초록색 드레스, 넓고 멋진 집과 자동차 같은 자본주의 하의 소비경제의 상품과 같이 제시되기도 한다.) 애인 수잔과 친구 마이클은 이 작품 속에서 존의 반대항이자 존에게 상호 교류를 통한 안정을 주는 관계로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둘과 존의 관계는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잔과의 사랑과 죽음을 앞둔 마이클과의 우정처럼 ‘끝’이 예견된 관계다. 후반부로 향할수록 존과 수잔은 서로 간의 꿈 차이, 성향 차이, 그리고 존과 카레사의 관계 등의 이유로 갈등한다. 두 사람의 이별 과정은 수잔은 존과 다른 곳으로 떠나길 원하지만, 존은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은 타이밍의 문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친구 마이클과의 관계의 유한성 역시 마찬가지다. 존이 워크숍 이후 좌절한 상태로 뮤지컬 작곡을 포기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마이클은 자신의 병을 고백하고 존에게 작곡가라는 꿈을 추구하라고 이야기한다. 작품은 절망이 더욱 심화된 상태에서 공원으로 달려나가 피아노를 치는 존을 기점으로 절정을 맞이하는데, 존은 자신의 상황을 마주하고 끝내 다시 살아가기를 택한다. 30살 생일날, 그는 곧 떠날 수잔과 인사를 나누고 마이클에게 자신의 마음과 결심을 이야기하며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이러한 불안정한 관계의 형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현실을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성장의 과정 속에서, ‘미래’가 함의하는 허상의 정상성과 규범성이 아니라 ‘현재’를 받아들이고 향유하는 일탈성을 더욱 강조하는 렌트의 시간성은 원작자 존의 이야기와 맞닿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틱틱붐>의 정치적 동시대성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
안정 궤도에 접어든 것 같이 보이는 마이클의 결말에서도 알 수 있듯, 단순히 이상적 진로를 포기하고 현실과 생계를 택한다고 해서 삶에 항상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취약성과 위기를 피하는 것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틱틱붐> 속에서 묘사되는 맨해튼의 모습 속에서, 종종 언급되는 ‘침묵은 죽음이다’라는 글귀는 이는 HIV/AIDS 단체 액트 업(ACT UP)의 구호이다. HIV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대통령이었던 레이건부터 레이건의 부통령이었지만 뒤이어 대통령이 된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까지, 국정 운영에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하면서 성소수자 혐오적 태도를 취했다. 이 당시 레이건-부시 미국 정부는 HIV/AIDS에 대한 공적인 담론보다 공공의 일을 단순히 개인의 ‘위생’과 ‘방종’의 문제로 돌리며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을 찍는 것에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레이건과 부시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방관한 결과, ‘홀로코스트’로 비유될 정도로 많은 퀴어들이 죽었다. 이는 <틱틱붐> 속에서 마이클이 자신의 감염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인, 그리고 물리적인 ‘시한부 선고’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이 작품이나 <렌트>에서 묘사된 것처럼 20세기 후반 HIV/AIDS 바이러스 사건을 통해 감염자로 지목된 타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별을 초래하고 공공 의료 시스템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사회의 공동체성을 파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퀴어를 포함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전체주의적 극우 정권이 21세기인 지금도 전세계에서 권력을 잡고 그로 인한 해악이 몰려오는 상황 속에서, <틱틱붐>과 <렌트>의 공통감각은 아직도 유효한 셈이다.
HIV와 혐오의 정치라는 한가지 예시처럼, <틱틱붐>은 예술과 동시대적 정치성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존이 관객에게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인 ‘조지 부시’를 꼰대라고 ‘디스’하는 장면은 2024년~2025년 탄핵 정국을 맞이한 한국의 상황과 공명한다. 무대 위의 존이 지금 대통령의 이름을 발화하는 것에 있어서 무대와 객석을 휘감는 긴장은 역설적으로 1990년대의 시간성과 2025년의 시간성을 한 데 묶고, 한 공간 속에 두 시간성이 공존하게 된다. 두 시간성 사이 약 35년이라는 격차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인 정권이라는 공통점 속에서 우회적인 비판으로 기능하는 존의 말은 이 상황이 구성된 여러 맥락을 환기하는 효과적인 풍자의 방식이다.
* 물론 지금은 의학이 많이 발전해서 HIV/AIDS 바이러스는 HIV에서 AIDS로 발전되지 않기도 하고, 에이즈에 걸려도 관리를 하면서 면역력을 유지한 채 일상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
틱… 틱… 붐!
존의 머릿속에 들리는 ‘틱-틱’ 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는 30살 생일을 앞둔 상태에서 존의 ‘이탈’에 대한 (병리적) 자의식이 신체화된 일종의 이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틱-틱 소리는 존의 내적 변화에 호응하듯 ‘붐!’이라는 단어처럼 터지듯이 사라지고, 무대는 위에서 떨어지는 노란 공으로 가득 차며 커튼콜로 전환된다. <틱틱붐>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시계 초침 소리, 즉 ‘시간’에서 비롯된 존의 심리 상태를 은유하는데, 시계 초침 소리인 ‘틱-틱’ 다음의 폭발을 은유하는 ‘붐’(boom!)은 결국 이러한 압박감에서 해방된 존의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폭발은 잔해와 후유증을 남기고 새로운 상태로 전환되는 것이기에, 존은 지금까지 겪은 좌절의 경험과 단절될 것이 예정된 관계를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존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주할 뿐이고, 그게 폭발이자 성장의 동력이 된 것이다. 존의 이러한 성장과 결말은 단순히 존의 독립적인 내적 개선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계된 이들이나 이 사회에 가치 있는 변화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이야기가 끝난 뒤 존이 <렌트>를 쓰고 그 작품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의미한 텍스트로 남았듯이 말이다.
[이다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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