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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태초의 심리학자는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 셰익스피어 심리학

불멸의 고전이 그린 인간 본성

by 김승아 에디터
2026.06.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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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냐, 죽음이냐─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것이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꿋꿋이 참아 내는 것인가

아니면 무수히 쇄도하는 고난에 맞서 싸워 기어코 끝장을 내는 것인가. 죽는 건 잠드는 것─

[...] 그것 때문에 망설이게 되지. 바로 그런 이유로

기나긴 고통스러운 삶을 질질 끌고 가지

그게 아니라면 누가 이 세상의 채찍질과 조롱을 견딜까─

 

『햄릿』 3막 1장 64행

 

 

선택의 기로에서 괴로울 때, 종종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떠올려 본다.  “삶이냐, 죽음이냐─그것이 문제로다.” 이 거대하고 본질적인 물음 앞에 서면, 당장 나를 짓누르던 눈앞의 고민은 어쩐지 조금은 덜 까다롭게 느껴지곤 한다.

 

400여 년 전, 종이 위에 태어난 인물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우리를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셰익스피어는 시대를 초월해 살아 숨 쉬는 인물을 창조해 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탄식하고 있을 법한 존재, 그 지독한 괴로움에 우리가 기어이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아르테 출한사에서 펴낸 『셰익스피어 심리학』은 이토록 생생한 인물들의 탄생 배경에 인간 정신을 향한 셰익스피어의 집요한 탐구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현대 심리학의 거장 필립 짐바도(Philip G. Zimbardo)와 로버트 존슨(Robert L. Johnson)은 셰익스피어를 단순한 극작가가 아닌,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정립되기 이전부터 인간의 내면을 해부했던 ‘태초의 심리학자’로 읽어낸다. 

 

저자들은 셰익스피어가 단순히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의 납작한 대상으로 분석되는 것에 반대하며, 그의 작품 속에서 뇌 해부학, 성격, 인지, 감정, 지각, 발달, 의식 상태 등 현대 심리학의 핵심 주제들을 발굴해 낸다.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전형을 보여주는 리처드 3세, 인지 저하 증상을 연상시키는 리어왕, 강박적으로 손을 씻는 맥베스 부인, 그리고 우울과 번민에 사로잡힌 햄릿까지. 그의 주인공들은 단순한 문학적 캐릭터를 넘어, 인간 정신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 연구’로 읽힌다.

 

책은 현대 심리학의 가장 뜨거운 쟁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본성 대 양육’, ‘인간 대 상황’, 그리고 ‘이성 대 감정’이다. 저자는 오늘날까지도 치열한 논쟁거리인 ‘본성 대 양육’의 문제를 셰익스피어가 이미 직관적으로 꿰뚫고 있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성격과 운명이 타고난 유전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는지, 아니면 환경과 교육에 의해 형성되는지에 대한 답을 이미 수세기 전에 예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명작 『폭풍우』 속 ‘문명의 규율에서 벗어난 섬’이라는 공간은 인간 본성을 실험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현대의 거대한 실험실을 닮았다. 오늘날의 사회심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상황이 도덕성에 미치는 근본적인 힘'에 대해 오래전에 셰익스피어가 극적 상상력으로 탐색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주요 쟁점 중에서도 책이 가장 날카롭게 파고드는 대목은 바로 ‘성격인가, 상황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필립 짐바도는 실제로 이 질문을 증명하기 위해 심리학사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논쟁적인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설계했던 인물이다. 그는 평범하고 선량한 개인이 큰 권력을 갖게 되는 상황 속에 놓였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했고, 집단 환경에 던져진 인간이 예상보다 훨씬 쉽게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도덕적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고결한 성품보다 그를 둘러싼 ‘상황의 힘’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짐바도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작품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잣대엔 잣대로』다. 도시를 떠나는 모습을 가장하며 부하 안젤로에게 전권을 위임한 뒤 그의 행동 변화를 은밀히 관찰하는 공작의 이야기는, 짐바도가 설계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셰익스피어는 권력이 통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도덕적 파멸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이 도덕성이 독립된 성격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권력 구조 안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것임을 그 역시도 오래전에 예견한 셈이다. 

 

이 책이 지닌 미덕은 인간 정신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셰익스피어의 시대보다 얼마나 정교해졌는지를 짚어내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셰익스피어 문학이 지닌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증명한다는 데 있다. 과거 광기나 멜랑콜리아 같은 포괄적인 단어로 뭉뚱그려졌던 정신 현상들은 오늘날 우울증, 양극성장애, 조현병, 강박장애 등 세분화된 진단 체계 안에서 명확하게 분류되고,뇌스캔 기술은 뇌의 여러 영역이 지닌 기능적 비밀을 밝혀냈다.

 

그러나 정신질환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그 질환을 앓는 인간이 겪는 ‘실제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즉 불안과 집착, 우울과 광기가 한 인간의 영혼에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 내밀한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일은 여전히 과학이 아닌 문학과 예술의 몫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단순한 문학적 유산을 넘어 인간 정신을 이해하려는 현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의 원천이 된다.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왜 특정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가. 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인간은 과연 자신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은 이 질문들에 셰익스피어는 불멸의 인물들과 마음을 뒤흔드는 대사를 통해 나름대로 자신의 답을 우리 앞에 남겨 두었다. 『셰익스피어 심리학』은 이 영원한 질문들을 따라가며 인간이라는 깊은 심연을 더 지혜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의미있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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