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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그 아이 [도서/문학]

창비 시절 시집 「도넛을 나누는 기분」, 아이였던 나를 함께 나누며 함께 달래며

by 최승윤 에디터
2026.09.1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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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때를 떠올려본다. 특정 학년의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거나 학교 행사나 축제와 같은 특별한 날이 떠오를 수도 있다. 혹은 사물함의 모양처럼 단순하고 일상적인 것을 기억할 수도 있다.

       

      「도넛을 나누는 기분」을 읽다가 여러 번 멈춰섰다. 그 시들을 통해 건드려지는 기억들이 있었다. 특히 가장 선명하게 그려지던 순간은 조퇴를 했던 날이다. 조퇴를 하고 신발 주머니를 평소보다 얌전히 손에 쥔 채 집으로 돌아가던 길. 텅 빈 놀이터, 그 안에 햇빛이 내리쬐던 시소, 지나가는 행인 하나 없던 고요한 풍경이 어린 나의 마음에 남았다. 그 때 느꼈던 평화는 지금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돌이켜보면 내게도 찰나의 깨달음이 왔다 갔다.

       

      어린 시절 집은 항상 엄마가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학교를 향해 집을 떠날 때도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올 때도 언제나 엄마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조퇴를 하고 돌아온 날 집에 아무도 없었다. 초등학생의 내가 빈 집에 홀로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마도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분이 이상할 수는 있어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유사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자유롭다는 느낌. 시선도 소리도 없이 고요하고 편안한 곳. 자주 아팠지만 밤마다 샤워기 호스 앞에서 울었지만 무사히 지나갔던 시간들이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감각만큼은 무사하다.


       

      조퇴하는 날 

      황인찬 


      집에 돌아오니 너무 조용했고 


      불 꺼진 

      거실이 낯설었어 


      가족들이 없는 집 


      혹시 누가 죽었나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열린 창 사이로 들어오는 빛과 바람

      커튼이 흔들렸고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 물어보았지 


      소파에 잠깐 누웠다가 티브이를 켰는데 

      본 적 없는 방송들 모르는 이야기들뿐 

      다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 


      혼자가 된다는 게 

      이렇게 안심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지

       

       

      텔레비전 전원을 켰을 때 오후 두 시에는 어떤 방송들을 하는지 채널을 돌려보았던 기억도 난다. 처음 보게 된 낮 시간대 텔레비전 채널 속에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건강 관련 방송들이 방영되고 있었다. 소파에 드러누워 뜨거운 숨을 뱉으면서, 그 티비 소음을 배경삼아 잠이 들었다.

       

      그러므로 어떤 시들은 유년을 다듬어 시로 전하고, 그 시로 하여금 자신 안에서도 그 유년을 더듬어보게 된다. 찾는 것이 아닌 불시에 찾아진다.

       

      그러다보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때로는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모습들을 놓아주는 순서가 온다. 나를 이해하고 구해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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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에서 출판된 ‘도넛을 나누는 기분’은 스무 명의 시인들이 적은 청소년 시들을 묶은 앤솔러지다. 청소년 독자들을 상정하고 쓰인 작품들은 청소년이 화자로 등장할 수도 있고 청소년 때의 기억을 발판 삼아 가공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떤 이에게 청소년기는 일 년 전 일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이십 년 전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기를 반드시 통과해 현재의 나로 오게 되었고 그 상처의 순간이 지금 나의 머뭇거리는 마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막힘없이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보편성과 깨달음을 가진 목소리들이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순간들이 여기에 있고 여기를 살피다보면 자꾸 열네 살의 나와 열 여덟 살의 나와 마주친다. 이 시집에서는 나를 너무 많이 만난다. 그렇게 계속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현재로 와있다.

       

      책을 읽으면서 청소년 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했다. 그냥 시도 아니고 동시도 아니고 어째서 청소년 시여야 할까. 청소년기를 돌아보면 가장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자유로울 수도, 따라서 법적인 책임도 스스로 질 수 없다보니 수 많은 제약이 생긴다. 선택과 경험이 제한되는 삶이다. 그 안에서 생각은 멀리 뻗어나가지 못한다. 볼 수 있는 세계도 부딪칠 수 있는 벽도 빠르고 좁다. 그곳에서 고통에 빠진 나를 구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서진 영혼을 방치하게 된다. 어쩌면 자신이 고통에 빠져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황인찬의 시작노트에는 이런 말이 적혔다. ‘내가 십 대였을 무렵, 나는 나의 것이 아닌 마음을 기울여야 했다. 청소년 퀴어를 위한 문학 작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정의내릴 수 없는 저마다의 이상함에 눈을 뜨게 됐을 때 외로움은 찾아온다. 그 불안함에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것이 청소년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이 안에는 나만의 것이라 생각했던 지나치게 예민하고, 못되고, 무언가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것만으로 내 약점은 건드려지고 그래서 통증을 감각하게 된다면 모호하게 느껴졌던 그 감각의 정체를 마주하게 될 수 있다. 어떤 통증은 치료만이 완전한 해답이 아니라 그 통증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 출발지점을 짚어보는 것만으로도 일정 부분 해소된다. 그리고 그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적당한 아픔은 함께 가져가고 싶은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설명하거나 납득시킬 수 없는 사정에 대한 애틋함이 조금씩은 모두 우리 안에 남아있다.


       

      주머니 

      신미나 


      못생긴 내 손 

      뭉툭하고 굵은 내 손 


      남들이 볼까 봐 

      부끄러워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너는 내 손을 끌어다 

      주머니에 넣었지 


      주머니 속은 새 둥지야 

      너의 어두운 마음도 

      슬픔도 품을 수 있어 


      어두운 데서도 

      네 슬픔이 훤히 보인다 


      네가 끌어다 쥔 내 손 

      작고 못생긴 내 손 


      주머니 안에서 따뜻했지 

      새알을 쥔 것처럼 두근거렸지

       

       

      누구나 자신만 아는 못생긴 마음이 있다. 추하고 창피해서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 말이다. 청소년기에는 유달리 당당하지 못하고, 약점이 들킬까 전전긍긍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것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평생을 불안해하고 겁에 떨며 살았다고 하여 영원히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단 한 번이라도 반드시 괜찮아지는 변곡점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은, 치부로 생각해서 꽁꽁 감춰왔던 점을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그 사실을 그 자체로 인정받게 될 때다. 대단한 반응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지, 하고 별 일 아니라는 듯 받아들이는 것. 그 따스한 포용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곁을 지켜줬다. 언제라도 나를 찌르는 상황들 속에서 그 믿음은 내게 큰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주머니의 따뜻함을 나도 이제는 안다.

       

      새알은 아직 부화 전이다. 그 알 속에 있는 아이는 추후 나오게 될 세상에서 얼마나 무궁무진한 삶을 펼칠까. 품는다는 것은 보통의 사랑으로는 이뤄내기 어렵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내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꼴 보기 싫은데 하물며 남의 것이라면 더욱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 사람까지 품어준다는 것. 그 사랑과 인정을 경험하고 약점으로부터 해방된 한 사람은 이제 또 새로운 사랑을 갖게 된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 손을 끌어와 자신의 주머니에 품어줄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사랑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그 마음을 흉내에서 그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온기는 하루 아침에 거머쥘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을 때 내쳐지지 않는 경험이 쌓이면서 어느새 차츰 마음 속에 따듯한 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던 때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성인 이후의 시기에도 쉽지 않은데 청소년기에는 당연히 그렇다. 돈도, 시간도, 사람도 그 어느 하나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 하물며 먹는 것이나 쉬는 것조차도 말이다. 그러므로 문학의 힘을 많이 느낀다. 혼자만의 것이라 생각해 끙끙 앓던 장면들을 조각조각 만나게 된다. 조각들을 주워나가다보면 지구의 이방인처럼 느껴졌던 나라는 존재가 조금이라도 이 세계에 포용되고, 이해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분명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지만 나의 이야기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지만 나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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