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필연을 믿는다.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미 발생한 일들은 모두 어떤 이유가 있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지나온 사건들을 돌아볼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의미에서 필연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인생을 살면 어떻게 되는가.
오늘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어떠한 이유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 된다. 가보고 싶던 식당에 예약 없이 들어갔는데 마침 테이블이 하나 남아 있었던 것도, 버스에서 유난히 친절한 기사님을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던 것도,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에서 불합격을 받은 것도 다음으로 향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단계가 된다.
좋은 일에 이유를 붙이는 것은 쉽다. 어려운 건 나쁜 일이다.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나아갈 것을 예상하고 달려갔던 길이 갑자기 막혔을 때, 내가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는 그 상황이 되어 봐야 알 수 있다. 이것에도 이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지 섣부르게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긍정적인 생각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이다.

혹자는 궁금해질 수 있다. “정말 모든 일에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나간 일에 이유를 만들어 붙이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필연은 세상의 법칙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거를 견디기 위해 한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실제로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왜 일어났는지 오랜 시간 알아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나는 필연을 믿는다. 필연을 믿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이 믿음은 모든 일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일어난 일을 아무 의미 없는 사건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하나의 태도에 가깝다. 이 태도에 대한 생각을 몇 년 전 단기 해외 인턴십을 떠나면서 강하게 갖게 되었다. 처음 발 디딘 후 6개월을 살게 된 미국에 비로소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점들이 이어져 있었다.
중학교 영어 시간에 보여주신 미국 하이틴 드라마 한 장면이 나의 인생에 중요한 사건이 될 줄 몰랐다. 호기심에 그 드라마를 직접 찾아본 이후 주인공도 아니었던 인물을 연기한 배우를 좋아하게 됐다. 그 배우를 좋아하며 자연스럽게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했다. 그를 따라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그가 좋아하는 만화들과 친해졌다. 그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 받기 영어로 된 기사와 영상 등을 접하는 일이 많아지며, 영어가 일상이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도 같은 배우를 꾸준히 좋아하긴 했지만, 당장의 대학 진학에 집중하느라 좋아했던 과거 영상들만 간헐적으로 찾아보는 정도에 머물렀다. 오랜 입시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받았다. 9월 모의고사 성적으로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던 학교를 수능 성적으로 떨어졌고, 돌고 돌아 결국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늦게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분명한 실패처럼 느껴졌다.
대학에 들어간 뒤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수업은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내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등록금이 아까웠다. 가족과 상의하며 고민 끝에 처음 휴학을 선택했다. 계획에 없던 시간이었다. 오직 나의 세상만 멈춰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생각하다가 잠들기도 했다.

그저 좋아하는 배우에게서 시작된 사소한 관심이었다. 그것이 처음 해외 인턴십에 관심으로 이어졌다. 친한 친구들보다 늦은 시작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실패가 해외 인턴십을 운영하는 학교를 만나게 했다. 혼란함을 핑계로 나약한 회피를 한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인생에 일어난 이 작은 사건들 덕분에 이후 내 삶이 달라졌다. 바보 같다고 여겼던 달라진 시간표는 2년 후 내가 해외 인턴십에 지원할 수 있는 시기와 맞아떨어졌다.
지원 과정에서도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기적을 향한 점들은 계속됐다. 면접을 앞두고 코로나에 걸렸을 때 학교는 오프라인 면접 외에 간절했던 나에게 온라인 면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후 본사 면접까지 감사하게도 잘 마치고, 출국을 앞두고는 건강상의 문제로 계획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마주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가지 못하는 건 아닐지 생각했다. 이 문제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결국 나는 그곳에 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중학생 때 그 배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입시에 실패하지 않아서 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코로나로 인해 휴학하지 않았다면? 그때 면접의 기회를 줄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면? 건강상의 문제까지 해결되지 않았다면? 이 중의 하나라도 달랐다면 나는 그곳에 갈 수 있었을까.

물론 답은 알 수 없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그곳에 도착했을 수도 있고, 아예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것을 하나의 결과를 향해 달려온 필연이라고 증명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 처음으로 ‘Connecting the Dots’라는 말을 온몸으로 이해했다.
점은 지나온 뒤에야 연결된다. 앞을 보면서 점을 연결할 수는 없다. 지금 내가 찍고 있는 점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에 올라서 뒤를 봤을 때 내가 실패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조차 더 큰 성공을 위해 필요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시에 실패했던 시간도, 계획에 없던 휴학도, 코로나로 멈춰 있었던 시간도, 출국할지 못할지 두려워했던 순간 중에 하나라도 없었으면 현재의 내가 서있는 곳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터 성공도 실패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물론 무언가 실패한 날이면 여전히 속상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왜 나는 이런 모습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그 순간을 인생의 최종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이유를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지금의 실패가 다음 선택을 바꿀 수도 있고, 그 선택이 생각하지 못한 길로 나를 이끌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 생각에 막다른 길로 향한다고 생각될지라도 우선 새로 주어지는 열린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내가 믿는 필연은 정해진 미래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 후회 없이 선택하며 지나온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 일이 나에게 무엇으로 남을지는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하며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점으로 만들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 * *
오늘도 내게 생긴 좋은 일에 감사하고,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실패 앞에서 너무 빨리 결론 내리지 않는 것. 지금은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하나의 점도 언젠가 뒤를 돌아봤을 때 다른 점과 이어져 하나의 선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요즘 나의 목표다. 우리는 매일 아직 목적지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멈춰 있지 않고 움직인다면 그 미래가 내가 바라고 그리는 모습으로 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나는 필연을 믿는다. 정확히 말하면, 내게 일어난 일은 내 인생에 모두 필요한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