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찾아다닌지 15년이 넘으니, 주변에 전시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들과 대화하던 중에 전국에서 개최되는 전시 중에 가고 싶은 전시는 어떻게 정하는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이었지만 사실 스스로에게도 물어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보고 싶은 전시’라는 마음만으로 시간이 가능한 시즌이라면 단순히 보러 가는 정도였는데, 어떤 기준으로 보고 싶은 전시가 되는 것일지 생각하다 보니 ‘작가’로 정리됐다. 인상 깊게 남은 전시들은 모두 한 작가의 생애를 작품을 따라 알아볼 수 있는 전시들이었다.
이번에 본 전시도 그러하다. 콜롬비아에서 태어나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으로 세계를 누빈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전시가 8월 3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2015년 이후 같은 미술관에서 11년 만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국내 첫 공식 대규모 전시회다. 2023년 작고한 작가의 작품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전시라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페르난도 보테로(1932-2023)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보테로는 생애에 걸쳐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보테리즘’이라 불리는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중에서 회화, 조각, 드로잉, 정물, 투우, 서커스 연작에 이르는 총 112점의 주요 작품들이 이번에 한국에 모였다. 그의 그림과 조각들은 전 세계 다른 어떤 작품과 구별되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볼륨의 특별함을 지녔다.
전시는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눈길을 끄는 작품이 많아 모든 작품 속 이야기를 듣고 보려면 넉넉한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각 섹션에서 매력적인 작품들에 심취하여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섹션에 다다른다.
하나의 방에 마치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공간 연출이 되어 있는 마지막 <서커스> 섹션은 보테로가 2006년 멕시코의 작은 어촌 마을 시와타네호에서 서커스단을 본 후로 흥미롭게 작업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가 본 서커스 공연을 옮겨 놓은 듯한 전시장에서 여유를 가지며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앞 세션들을 보며 보테로의 화풍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보테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 상태로 전시를 보러 갔는데, 처음 그의 그림 앞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감정은 유쾌함이었다. 첫 섹션 <변주>가 고전 거장들의 그림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품들인 영향도 있다. 명작에서 옮겨온 보테로의 그림 속 인물들은 익숙한 모습보다 커다랗고 둥글며, 어딘가 느긋해 보인다. 발레리나, 가족, 성직자, 공원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까지 그의 캔버스 안에 들어온 존재들은 모두 놀랍도록 친근한 모습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그림이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일상적인 우리의 삶과 닮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의자에 앉아 있고, 옷을 갈아입고, 강아지를 들고 있고, 축제를 즐기는 편안한 모습의 사람들이 특유의 풍만함으로 전시장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삶도 보테로의 화폭에 담기면 모든 어려운 상황도 하나의 작품으로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은 유쾌한 힘이 있다.
보테로의 작품은 대단한 것을 크게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평범한 것을 크게 바라보는 그림에 가깝다. 사소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것들을 커다랗게 그려 넣으며 그 존재가 세상에 있는 의미와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삶, 식탁 위의 과일, 손에 쥔 악기 하나도 그의 그림 안에서는 충분히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크지 않다. 오히려 평상시에 중요하다고 느껴지던 건 그대로인데, 주변이 커진 것 같은 그림들이다.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좋은 예로 기타가 있다. 기타의 통은 부풀어 동글한 모양이지만, 울림 구멍은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모양이다. 이것은 보테로가 처음 지금의 화풍을 갖게 한 에피소드와 관계가 있다. 만돌린을 스케치하던 어느 날 보테로는 울림 구멍 위치에 잉크를 실수로 떨어트리며, 의도치 않게 익숙하지 않은 만돌린을 그리게 된다. 실수 하나로 만돌린이 폭발하는 것 같은 모습이 된 것을 본 보테로는 지금의 풍요로움의 관능미가 느껴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게 된다.
“예술에서 양감은 관능이라는 특정한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는 회화가 관대하고, 감각적이고, 육감적이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 페르난도 보테로
이런 스토리를 알고 보면 충만하게 부풀어진 외형과 함께 보이지 않던 작은 것들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그림 속 인물과 사물은 모두 부풀어 오른 듯한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그 부피에 비해 표정은 무척 평온하다. 큰 부피의 과일을 뚫고 나온 귀여운 얼굴의 애벌레도 눈에 들어온다. 작은 디테일과 함께일 때 날카로운 칼도, 용맹한 개도 더 대비적으로 둥글고 단단한 형태로 친근하게 느껴진다. 동글한 형태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이 있다.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매력을 양적 풍만함에서만 찾는 시간이 지나고 전시가 끝날 무렵의 영상을 보면서 그의 진가를 확인했다. 그의 작품은 유쾌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치열함이 있다. 보테로가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는 보테로 유머 스타일은 결코 느슨하지 않다. 화면 안의 모든 형태는 수없이 그가 존경한 1400년대 이탈리아 인상주의 작가 작품들을 난방도 없는 시설에서 수없이 연습하고 공부한 계산된 모습이다.
보테로가 추구하는 볼륨의 미학에 조각이라는 작업 방식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확인한 후, 1973년부터 무려 1년간 그림을 쉬며 조각 기술을 배우고 작품 제작에 몰두한 그의 활동도 인상적이다. 그는 당시에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미 작가로 이름을 알린 후에, 다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실력을 쌓아가는 선택을 내리는 그의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삶의 태도는 본받을 만한다.
그렇게 보테로는 이미 회화 작품들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던 때에 정동 주물 공장들이 모인 이탈리아 어딘가에 머물며 조각의 가장 전통적 방법부터 배워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에게 조각 작품이 있은 줄 전혀 모르고 전시를 왔는데 어디서 본 적 없는 가장 매끈하고 통통한 형태의 조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빛을 받아 더 반짝이는 자태에 그 부피를 손으로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가득 들었지만, 미술관의 규칙을 지켜야 했기에 참을 수 있었다.
인물들의 배치와 시선, 작가와 관객 사이에 묘한 긴장감을 만드는 표정 없는 얼굴도 유쾌해도 우습지 않은 그의 작품 스타일을 만든다. 보테로 화폭 속 인물들은 부드럽지만 정확하고, 친근하지만 만만해보이지 않다. 이것이 내가 보테로에게 느낀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인물들의 무표정은 감정이 담긴 얼굴보다 인물의 상황에 더 집중하게 한다.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지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지난 베르나르 뷔페의 전시 이후로 1년 사이에 다시 깨닫게 했다.
전시 처음에 만나는 그의 자화상으로 시작되는 이번 전시는 보테로만의 양적 풍만함으로 표현되는 유쾌함과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전시를 볼수록 그의 단단하고 치열했던 여정에 관심이 간다.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지만, 부모님의 지지를 받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아이가 꿈꾸던 세상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이 보인다.
"예술가는 자신의 고향과 삶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나의 뿌리는 콜롬비아다.
그곳의 풍요로운 자연과 사랑, 음악, 정치, 그리고 그 역사를 형성해 온 권력의 구조 안에 있다.
나는 작업에서 기억을 탐색하고, 그것을 새로운 생명과 색채, 과장된 형태로 다시 창조해 왔다.
내가 그리는 모든 것은 나의 유년 시절의 세계를 반영한다.
그것은 일종의 향수이자, 나의 예술을 관통하여 중심적 주제가 된 집념이다.
비록 60년 이상의 시간을 뉴욕과 유럽 등지의 해외에서 보냈지만,
나에게 영감을 준 것은 언제나 라틴 아메리카였다.
나는 절대적으로 내 조국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 페르난도 보테로
그는 작품 활동을 하는 35년간 동료 작가들의 미술 작품을 수집했다. 2000년에 그의 고향인 메데인의 박물관에 자신의 아파트가 텅 비도록 많은 예술 작품을 기증했는데, 기증하며 이야기한 유일한 조건은 미술관 입장료가 무료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고향이 더 이상 마약 카르텔의 도시가 아니라 평화의 도시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국을 위해 두 미술관 만들었다. 그는 이것이 행복한 인생의 보람이라고 했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고, 고전 거장들의 그림을 보고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고, 조각 기술 배우러 떠나는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던 그의 용감한 선택들이 모두 그의 고향 콜롬비아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온전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언제 어디서 머물고 있던지 그의 마음은 고향에 향해 있었다는 생각에 벅찼다. 미술과 조국을 향한 보테로의 순수한 사랑을 112점의 주요 작품으로 확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