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순한 코미디 뮤지컬처럼 보이지만 2 - 썸씽로튼 [공연]
-
뮤지컬 <썸씽로튼>(something rotten)은 2015년 처음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이지나 연출가의 지도 속에 2020년 라이선스 초연, 2021년 재연이 올라왔다. 이 작품의 막이 열리면 엘리자베스 1세가 집권했던 르네상스 시기를 배경으로 르네상스의 아름다움과 찬란한 문화를 찬미하면서 시작된다. 르네상스가 낳은 문학과 작가들 중 셰익스피어(윌리엄 셰익스피어, 줄여서 윌)이 마치 스타처럼 묘사되며 등장하는 가운데 닉 바텀은 자신의 극단에서 있었던 윌이 성공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글을 쓰는 동생 나이젤 바텀과 함께 극단을 이끌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닉의 아내 비아는 남편 닉을 대신해 남장을 하고 일을 하는 등 생계를 책임지고, 청교도 목사 제레마이어의 딸 포샤는 아버지가 악마의 산물로 여기는 문학을 즐기며 나이젤과 사랑에 빠진다.
닉은 풀리지 않는 답답함에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를 찾아가는데, 전설의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조카라는 또 다른 노스트라다무스는 미래에는 노래를 부르며 연기도 하는 ‘뮤지컬’이라는 공연형식이 인기 장르가 될 것이라며 에언해준다. 이때 닉의 극단에서 만들어진 작품 <흑사병>(the black death)이 공연된 후 클레펨 경이 후원을 중단하고, 써야 한다는 압박을 받은 닉은 다시 노스트라다무스를 찾는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닉에게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품들(차기작) 속 요소들을 무작위로 ‘스포’하고, 노스트라다무스가 보이는 대로 뱉은 말을 착각한 닉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후원 아래 ‘오믈릿’이라는 뮤지컬을 준비한다. 이때 매너리즘과 슬럼프를 겪으며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셰익스피어는 닉이 노스트라다무스를 통해 자신이 미래에 쓸 작품을 표절할 것임을 알게 되고 닉의 극단에 토비라는 이름으로 분장을 하고 잠입하게 된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소환하기
<썸씽로튼>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닉이 ‘오믈릿’이라는 뮤지컬을 공연하고, 공연 도중 윌은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닉과 노스트라다무스, 샤일록을 비롯한 극단 사람들은 유대인 샤일록이 공연에 투자를 했다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청교도 근본주의자 제레마이어에 의해 법정에서 잡히는 신세가 되고 참수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남장을 한 변호사 비아가 그들을 변호하고, 셰익스피어가 증인으로 참여해 결국 참수형은 신대륙인 아메리카 대륙, 즉 미국으로의 추방으로 감해지게 된다. 포샤 역시 자신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뛰쳐나와 나이젤과 함께 떠난다. 미국에서 그들은 닉과 나이젤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어 흥하고, 닉의 극단에서 나온 작품은 ‘최초의 뮤지컬’로 이름 붙여진다. 따라서 이 작품은 뮤지컬의 탄생에 대한 상상력을 펼치고, 뮤지컬이라는 공연이 처음 만들어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묘사함으로써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문법을 상대화하며 웃음을 유발하는데, 뮤지컬이라는 장르 그 자체를 다룬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가 미래의 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들을 말해주는 넘버인 ‘A musical’에서는 유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고전 뮤지컬로 꼽히는 <코러스라인>,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애니>, <렌트>, <맘마미아>, <시카고> 등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의 멜로디, 가사, 소재, 안무, 소품을 패러디하고, 특히 한국 라이선스에서는 한국에서 유명한 뮤지컬인 <킹키부츠>, <지킬 앤 하이드>나 한국 창작 작품인 <서편제> 등을 연상시키는 대목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작품 내에서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를 지시하고, 뮤지컬의 ‘시작’을 (가상이라 하더라도) 선언하며, 지금까지의 뮤지컬 작품들을 한 데 모아 무대 위에서 재현한다는 점에서 메타적이다. 또한, 뮤지컬의 역사를 ‘시작부터 지금까지’ 발전 순서대로 소환하며 장르의 권위성을 찬미하는 대신, 여러 뮤지컬을 오마주와 패스티쉬(혼성모방), 패러디로 구분하기보다는 그 모호함을 살려서 묘사하고, 각 작품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공연 연도 순서 같은 선형적 기준 대신 혼종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유쾌하고 ‘포스트모던’한 즐거움을 준다.
셰익스피어 작품과의 연관성 속 개그 포인트
그리고 이 작품 속에서는 실제 셰익스피어 작품 속에서 많이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언어적 아이러니 같은 언어유희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삶이 너에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영미권의 속담을 ‘삶이 달걀을 준다면, 만들어 오믈렛’으로 변용하기도 하고, 넘버 <’Bottom’s gonna be on top’>는 닉과 나이젤의 성이 ‘bottom’ (아래쪽)이라는 것에서 착안해 그들의 현재 상태와 대비되는 ‘top’(위쪽)으로 향하고 싶은 그들의 열망을 표현한다. 또한 기존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등장하는 어구에 대한 무한한 패러디가 등장한다.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를 셰익스피어(윌)이 쓴 가명 ‘토비’를 이용해 ‘토비 혹은 안토비’로 패러디하거나, <햄릿>에서 햄릿이 삼촌 클로디어스가 장악한 왕실에서 선왕의 유령을 만나러 갈 즈음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와 근위병과의 대화에서 나온 대사이자 이 극의 제목이 되는 뭔가 썩었어(‘Something rotten’)는 닉과 나이젤이 만든 뮤지컬 ‘오믈릿’에서 썩은 달걀을 지칭하며 하는 대사가 된다.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니라’라는 햄릿이 자신의 어머니인 거트루트 왕비가 선왕의 죽음 이후 삼촌 클로디어스의 아내가 된 것에 위화감을 느끼며 하게 되는 독백인 (여성혐오적인 것으로) 유명한 대사도 뮤지컬 ‘오믈렛’에서는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계란이니라’로 패러디된다. 흥미롭게도, '밥벌이'도 못하는 닉과 나이젤 형제 대신 남장을 하고 생계를 책임지며 '오른팔'(right hand man)이 되겠다는 닉의 아내 비아의 모습은 '레이디 멕베스'나 <말괄량이 길들이기> 속 캐서린으로 대표되는 셰익스피어의 여성관과 정반대에 있어 보인다*.
더 재미있는 점은 <썸씽로튼> 속에서 윌(셰익스피어)은 노스트라다무스에 의해 ‘스포’된 미래에 나올 자신의 히트작을 그대로 써먹은 닉과 나이젤이 쓴 뮤지컬 <오믈릿>, 그리고 포샤가 제레마이어에 의해 강제로 가두어진 뒤 슬픔에 빠져 쓴 대본(이것이 <햄릿> 속 여러 구절인 것으로 밝혀진다)의 영향을 받아(사실상 표절) 후에 <햄릿>을 집필하게 되었음이 암시되며, 비아가 남장을 하고 변호사로 등장해 남편을 구하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베니스의 상인>을 썼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닉의 극단에 돈을 대어 준 예술을 사랑하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캐릭터는 <베니스의 상인>이 연상되며**, 각자의 가족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나이젤과 포샤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희극 <한 여름밤의 꿈> 속 젊은 연인들과 닮아 있다. 이 외에도 희곡 <십이야>, 시 소네트 등의 수많은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썸씽로튼>을 보기 전에 <햄릿>을 비롯한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접했다면 친숙함에서 오는 반가움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원본 없는 문학
이처럼 <썸씽로튼> 속에서 여러 많은 요소들은 셰익스피어의 저작 속 이름이나 장치, 구도 등을 차용함으로써 극 속 윌(셰익스피어)이 닉과 나이젤을 통해 경험하거나 알게 된 것들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후기 작품들을 작성한 것처럼 제시된다. 즉, 윌은 닉이 미래의 자신의 작품을 노스트라다무스의 불완전한 능력을 투과하여 보고 만든 <오믈릿>과, <오믈릿>의 영향 아래 있던 나이젤이 사랑에 실패하고 만든 비관적인 <햄릿>과 그 문장들, 그리고 <오믈릿>으로 인해 발생한 재판의 상황과 그 결말을 참고하여 <햄릿>을 포함한 자신의 이후 작품에 사용한다. 이는 ‘표절’인가? 그렇지만 애초에 이야기의 모든 시작이 "윌 자신의 미래 작품"이라면, 윌이 만들어낸 텍스트는 ‘원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이 작품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는 ‘원본’ 없는 복사본의 결과이자, 복사본과 복사본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노스트라다무스를 통해 닉이 참고한 미래에 등장하는 뮤지컬 무대의 경우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생성된 문화 산물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포인트가 된다. 예를 들어 <오믈릿>에서 햄릿의 클로디어스와 비슷한 구도에 있는 주인공의 삼촌(토비로 변장한 윌이 연기하는 배역)이 ‘스카’라는 점은 <라이언킹> 속 클로디어스에서 따온 역할인 심바의 삼촌 스카를 연상시키는데, <라이언 킹> 자체가 <햄릿>을 참고했다는 점은 더더욱 예술에서 ‘원본’이 가지는 낭만주의적 권위를 훼손함은 물론 <라이언 킹>이 등장한 현대의 시간성과 <햄릿>이 발표되기 전 16세기 르네상스 문화가 범람하던 영국의 시간성을 비틀면서 병치하는 효과를 낳는다***.
유명한 넘버 ’will power’에서 대중들이 윌을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라며 (덕질하듯) 찬미하는 가사를 바라본다면 천재 작가의 독창성만을 강조하는 낭만주의의 산물인 천재 작가의 ‘진정한’ 재능만으로 글이 탄생한다는 통념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윌이 지독한 매너리즘에 시달리는 2막의 장면(‘Hard to be bard’)은 창작에 있어서 저자의 재능만을 강조하는 전통과는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글쓴이의 노력은 신의 선물이 아니라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대적으로 현대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것만 같다.
또한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방대한 상호텍스트성은 문학 혹은 예술 작품이 다양한 사회적인 맥락들의 복합체이자, 합작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흥미롭게도, 스트랫포드 출신의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셰익스피어의 존재를 의심하는 문학사적, 그리고 역사적인 논쟁이 생긴 이유는 실제로 ‘일관성’이 없는 셰익스피어의 글은 극단을 통해서 많은 이들과 교류하면서 여러 작가들의 공동집필의 산물로 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휘나 배경과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발달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표절’ 역시 빈번한 일이었다. 초반에 나이젤이 쓴 <리처드 2세>를 훔쳐서 유명해진 윌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닉의 모습과, 후반부 나이젤이 쓴 <햄릿>을 훔치려고 하는 윌의 모습이 여기에 해당된다.
서구에서 학문이나 장르라는 한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신이 내린 재능’으로 꼽히는 인물이 셰익스피어와 모차르트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히트작들을 성공시킨 다음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토비 벨치라는 가명을 쓴 채 변장을 하고 미래 자신의 작품을 표절한 바텀 형제를 또 표절하러 가는 윌의 모습은 흥미롭다. 즉, <썸씽로튼>은 재능에서 기반한 범접할 수 없는 천재성 대신 천재라는 대중적 인식을 유지하기 위해 (표절을 포함해서) 온갖 짓들을 다 하는 윌은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천재를 통해 위대한 작품이 탄생한다는 우리의 통념을 철저히 깨부순다. 셰익스피어가 영문학계에서 차지하는 절대적인 위상과 권위를 생각해본다면, 이는 서구 지성사의 근간에 있는 지배적인 질서와 그 권위를 단지 유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효과적으로 전유하고, 전제된 인식론적 위계가 내포하는 '원본'의 실재성에 대한 확고한 환상을 전복하게 되는 것이다*****.
* 물론 그 점이 이 극이 젠더의 측면에서 비평적으로 호평을 받는다는 것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비아의 가정에 대한 헌신은 마치 (비아 본인이 극 중에서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던) <베니스의 상인> 속 남편을 위해 남장을 하고 변호를 했던 포샤가 그 시대에 해석된 방식처럼 여겨질 위험이 있다.
** 이때, 샤일록은 닉에게 윌이 자신을 딴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데 닉은 샤일록에게 윌이 당신을 좋은 이미지로 그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맥락으로 응수한다. 그리고 미래의 것들에 대한 환상이 범람하는 극 중 상황에서 샤일록은 나치와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말을 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속 주인공의 살을 자르려는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썸씽로튼>에서 단지 예술을 사랑해서 후원을 했던 샤일록 캐릭터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심지어 재판 당시 <썸씽로튼> 속 샤일록은 바텀 극단의 일원이라서 억울하게 닉과 죽을 위기에 놓인 피고인이었다!),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캐릭터가 홀로코스트를 낳은 유럽 내의 유대인 혐오의 역사 속 유럽인들에 의해 형성된 유대인의 이미지를 논하는 것에 있어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 르네상스라는 시대성 역시 의미있는 설정이다. 르네상스는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이며, 눈부신 과학과 문학의 발전과 새로운 문물을 찬양하고 과거의 것은 외면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여러 형태로 잔존한다. 예를 들어 주술적 존재로 등장하는 토마스 노스트라다무스는 주류가 아니다. 이 작품 속 주제를 펼치기 위한 시대적 배경의 설정 자체가 후기 근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올만하다.
**** 김태원, 『셰익스피어는 가짜인가? - 음모론 시대의 원저자 논쟁』, 2015, 서강대학교출판부.
***** 이 지점은 프랑스의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가 개념화한 ‘저자의 죽음’에 대한 담론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텍스트 비평과 수용에서 저자가 가지는 절대적인 위상을 거부하고 독자의 능동성을 포함한 다른 요소를 강조하는 흐름이다. 기존의 텍스트 해석에 있어서 저자의 의도만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비평에서 텍스트가 생산해낼 수 있는 다의적인 ‘의미’들을 더욱 중시한다.
[이다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