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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그깟 고추가 뭐길래 - 옥상 밭 고추는 왜 [공연]

재개발의 시간과 삶의 시간이 어긋나는 곳에서

by 이수진 에디터
2026.10.0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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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정말 고추가 문제인가 싶었다. 오래된 빌라 옥상에서 한 노인이 키우던 고추가 사라졌고, 누가 가져갔는지도 안다. 돌려받거나 사과를 받으면 될 것 같은 사건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일 때문에 시위를 시작하고, 이웃들이 하나둘 끼어들고, 결국 빌라 전체가 들썩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그깟 고추가 뭐라고.

       

      그런데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를 보고 나면 그 문장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고추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고추를 ‘그깟 것’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눈다. 돈과 집, 미래처럼 크고 현실적인 것 앞에서는 작은 텃밭이나 누군가의 자존심, 오래된 이웃과의 관계 같은 것들이 쉽게 뒤로 밀려난다. 하지만 사람의 삶은 언제나 크고 중요한 것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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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담기는 한 사람의 세계

       

      광자가 옥상에서 키우는 고추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팔아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농사법을 가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손이 많이 간다. 진딧물이 잎과 꽃에 달라붙으면 광자는 그것을 손으로 하나하나 문질러 떼어낸다. 그렇게 키운 고추를 이웃과 나누기도 한다.

       

      나는 이 장면이 오래 남았다. 무언가를 손으로 직접 돌본다는 행위가 요즘의 삶에서는 점점 낯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용을 계산하면 사 먹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광자에게 중요한 것은 고추의 시장가격이 아니다. 그것을 심고 기다리고, 벌레를 떼어내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을 바라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몇천 원어치 채소에 불과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루를 움직이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고추를 훔친 사건은 단순한 절도보다 조금 더 복잡하게 다가온다. 무엇을 빼앗았는지는 그것의 가격만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된 물건 하나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이나 매일 같은 시간에 걷는 산책길, 몇 년째 다니는 동네 가게처럼 사람에게는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어쩌면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함부로 사소하다고 말하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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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연극을 단순히 광자와 현자의 선악 구도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현자에게도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현자는 상고를 졸업한 뒤 산전수전을 겪으며 돈을 모았고, 어렵게 입주권을 마련했다. 다른 곳에도 투자하며 재개발을 기다린다. 그에게 절약과 부동산은 단순한 욕망이라기보다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가깝다. 아끼고 버티고 모으며 살아온 시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신과 같은 세대가 그렇게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회도 가능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재개발은 그에게 단순히 집값이 오르는 사건만은 아닐 것이다. 평생 자신이 선택해온 삶의 방식이 마침내 보상받는 순간에 가까울 수도 있다.

       

      문제는 같은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낡은 빌라는 하루빨리 허물어야 할 자산이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고추를 심고 살아가는 생활의 장소다. 같은 건물을 보면서도 한 사람은 미래의 아파트를 보고 다른 사람은 지금의 옥상을 본다. 어느 쪽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허상이 아니다.

       

      결국 광자가 세상을 떠나고 외국에 있던 아들이 돌아와 재개발 동의서에 서명하면서 재개발은 현실에 가까워진다. 삶이 사라진 자리에 개발의 조건이 충족되는 이 과정은 묘하게 씁쓸하다. 도시가 변하는 일에는 언제나 더 나은 미래라는 명분이 있지만, 그 미래가 도착하기 위해서는 지금 존재하는 무언가가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건물만 철거되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유지되던 생활의 방식과 관계, 기억도 함께 사라진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사이에 있는 사람들

       

      연극 속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 하나를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현태와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나서지만, 그들 역시 자신이 주장하는 가치와 언제나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권리를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소비에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어떤 문제에는 누구보다 예민하면서 다른 문제에는 무심하다. 말과 행동 사이에는 언제나 약간의 틈이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읽었던 UN의 무급 인턴 이야기가 떠올랐다. 2015년 제네바의 UN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하던 뉴질랜드 청년은 비싼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텐트에서 생활했다. 당시 UN의 인턴십은 임금뿐 아니라 주거비나 교통비 등의 지원도 제공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인턴십을 그만두었다. 인권과 평등, 노동의 가치를 세계에 이야기하는 조직에서 정작 돈이 없는 청년은 경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생활비를 감당하며 무급으로 일해야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그런 기회를 감당할 수 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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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UN이 이야기해온 인권과 평등의 가치가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런 사례에서 사람과 조직이 얼마나 쉽게 모순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본다. 우리는 옳다고 믿는 가치가 있어도 삶의 모든 선택을 그 가치에 맞추지는 못한다. 환경을 걱정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더 저렴한 서비스를 찾는다. 공정한 기회를 지지하면서도 나에게 유리한 기회 앞에서는 그 구조가 얼마나 공정한지까지 매번 따져보지는 않는다. 어떤 문제에서 정의롭다고 해서 삶 전체가 정의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모순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믿는 모든 가치가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다.

       

      현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과거만 놓고 보면 악착같이 살아온 한 사람의 생존기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한 푼 두 푼 모아 자신의 것을 마련한 사람에게 절약은 자부심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아끼고 버텨왔기에 지금의 자신도, 지금의 사회도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확신이 다른 사람의 삶과 맞부딪치는 순간, 누군가에게 그는 궁상맞고 표독스러운 사람이 된다. 자신의 미래를 지키겠다는 마음은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작은 세계를 짓밟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한 사람 안에서 이 두 모습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연극에서 누가 좋은 사람인지보다 사람을 한 문장으로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더 많이 생각했다. 우리는 모순이 없는 사람이어서 어떤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가진 채로도 무엇이 옳은지 계속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정상이라는 말은 누구의 기준으로 만들어지는가

       

      그런 점에서 동교는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정상적인 삶’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안정적인 회사생활을 거부하고, 그 선택 때문에 가정 역시 흔들리며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 동교가 현태의 행동에 함께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깟 고추’라며 지나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쓰고, 결국 마지막까지 사건에 개입해 사과를 받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모습을 보면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회사에 다니고, 돈을 모으고, 부동산을 마련하고,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것은 사회가 인정하는 꽤 정상적인 삶이다. 반면 아무런 경제적 이익도 없는 남의 고추 문제에 끼어들어 시위하는 행동은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효율적인 삶이 반드시 좋은 삶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반대로 사회의 일반적인 경로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타인과 세계를 대하는 방식까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람의 삶을 평가할 때 너무 쉽게 직업이나 돈, 가족의 형태 같은 외부의 기준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극 속 인물들은 그런 기준을 계속 흐트러뜨린다.


       

      “세상이 망가지는 건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극을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결국 여기에 있었다. 세상이 정말 작은 잘못 하나 때문에 망가지는지는 모르겠다. 고추 몇 개를 훔친다고 사회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모든 사소한 잘못에 거대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도 피곤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일들은 사소하기 때문에 더 쉽게 허용된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들 이 정도는 하니까, 굳이 문제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넘어가는 순간들이 쌓인다. 현태와 동교가 붙잡고 있는 것은 어쩌면 고추 자체가 아니라 그 경계일 것이다. 무엇까지 그냥 지나쳐도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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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 질문은 앞서 떠올렸던 모순의 문제와도 이어진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말과 삶 사이에 어느 정도의 틈을 가지고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그 틈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 정도쯤이야’라고 넘길 수도 있고, 잠깐 멈춰 내가 믿는 것과 내가 하는 일이 왜 달라졌는지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어쩌면 세상이 망가지는 순간은 거대한 악이 등장할 때보다, 그런 작은 틈들을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르기 시작할 때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모든 일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문제를 외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만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요하지 않다’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전혀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

       

      <옥상 밭 고추는 왜>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장면도 빠르게 전환된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산만하게 흩어지는 듯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 역시 한 빌라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다. 같은 주소를 공유한다고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저마다 살아온 시간이 있고 지키려는 것이 있으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하다고 믿을 만한 이유도 있다. 현실 역시 그렇게 수많은 사정이 한 공간에서 부딪치며 움직인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에도 나는 현자를 완전히 미워하기 어렵고, 현태와 동교가 완전히 옳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광자의 고추가 무엇을 상징한다고 하나로 정의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이루는 작은 질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남았다.

       

      어쩌면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거창하게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내게는 ‘그깟 것’인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옳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 사이에 생기는 작은 틈을, 그저 ‘그깟 것’이라고 넘기지 않는 일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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