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잊혀진 색의 제조법 [문화 전반]

과거의 색 제조법

by 김유라 에디터
2026.10.02 14:26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물감 박스를 열어보면 수 많은 이름의 색들이 놓여있다. 울트라마린, 에메랄드 그린 등 다양한 색의 이름이 있고 우리는 그 이름을 보면 해당 색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같은 이름의 색이 쭉 이어져왔다 해서 그것이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탄생한 색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이름의 색이지만 그 내용물이 바뀌었다면 과연 같은 색이라고 해야할까? 현대와 같은 합성 방식이 탄생하기 이전의 색들에 관해 알아보자.

       

       


      1. 울트라마린


       

      131.jpg

       

       

      울트라마린은 깊고 선명한 파랑색으로 색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도 한번쯤 들어보았을 만큼 유명한 색이다. 지금의 물감 팔레트에 들어가는 울트라마린은 대부분 합성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미 중세에도 울트라마린 색으로 그려진 그림이 있는데, 당시에는 합성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 색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울트라마린을 만들기 위해서는 ‘라피스라줄리’ 즉 청금석 이라는 광물이 필요했다. 해당 광물은 진한 푸른색 바탕에 금빛 무늬가 그려진 광석인데, 금빛이 적고 푸른색이 강할수록 귀한 취급을 받는다. 이 청금석을 멀디 먼 바다 건너에서 수입하여 곱게 갈고, 그 가루를 접착 성분과 섞으면 울트라마린이 탄생한다. 듣기만 해도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역시나 아주 높은 가격을 자랑했다고 한다. 귀하디 귀한 색이었기에 중세에는 주로 종교화나 성모 마리아 같은 신성한 그림을 그릴 때만 사용되었고, 후에도 너무나 부담스러운 가격 탓에 쉽게 접하기는 어려웠다. 고려에서도 불화를 그릴 때 이 청금석 안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현대에 와서 이 방법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통 방식의 그림을 그리거나, 이런 안료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여전히 라피스라줄리를 이용한 물감을 사용한다. 그러나 분명 과거보다는 현대화 된 제조공정을 사용할 것임에도 고품질의 경우 KG당 수 천만원을 호가한다니 여전히 귀한 물감 임은 분명하다.

       

       


      2. 티리안 퍼플


       

      [크기변환]images (1).jpg

       

       

      티리안 퍼플은 위에 소개한 울트라마린 보다는 낯설게 여기는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이 이름에 특별한 뜻은 없고, 고대 페니키아의 도시 티레(Tyre)에서 이 색상이 생산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색의 최 전성기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 지역에서 티리안 퍼플은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색으로 여겨졌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당연하게도 색을 얻기가 극도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티리안 퍼플은 바다에 서식하는 특정 고둥을 잡는 것부터 시작된다. 고둥을 잡아 껍질을 돌로 내리쳐 깨면 고둥의 살이 나온다. 그 안에서 특정 내장기관을 발라내어 그것들을 끓이고 햇볕에 말린다. 간단히 말했지만 그 단계마다 까다로운 부분이 많고 고둥 한 마리에서 워낙 적은 양만 얻을 수 있었기에 희귀함과 가격만 놓고 보자면 울트라마린 보다 한 수 위인 색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 추정하기로 손수건 크기의 천을 염색하기 위해서도 고둥이 만 마리가 넘게 필요하다고 하니, 당시 이 색을 위해 동원되었을 인력의 규모를 가늠케 한다.

       

      이런 희소성 덕분인지 티리안 퍼플은 황실을 상징하는 색으로 여겨졌다. 처음에는 황제나 엄청난 귀족 정도는 되어야 이 색을 감당할 재력을 가져서 였겠지만, 시간이 좀 흘러서 카이사르는 보라색을 본인만 입었으며 심지어 네로의 경우 자신 이외에 보라색을 입을 경우 처벌하는 법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귀한 핏줄을 가졌다는 뜻의 ‘born in the purple’이 생겨났다고 한다.


      후에 동로마제국이 멸망하며 권력의 이동으로 자연스레 보라색과 그 생산에 대한 열기도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보라색이 귀족의 색이라는 인식은 지금까지도 쭉 이어져 오고있다.

       

       

       

      3. 셀레 그린


       

      141.jpg

       


      과거에는 선명한 초록을 표현하기가 아주 힘들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유지시키는게 힘들었는데, 초록빛 점토가 많이 포함된 ‘녹토’라는 돌을 사용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했으며 그런 경우 시간이 지나면 초록색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단점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며 탄생한 색이 바로 셀레 그린이다. 스웨덴의 화학자 칼 빌헬름 셀레가 발명한 색으로, 자연을 닮은 선명한 녹색에 이전같이 검게 변하는 단점도 없었기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9세기 당시의 수 많은 옷, 벽지, 가구들에 이 셀레 그린이 사용되었으며 왕족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모두 이 색을 사랑했다고 한다. 특히 사랑 받은 것은 벽지로써의 사용이었는데, 집 안에 생생한 자연을 그대로 들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 셀레 그린의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바로 비소 가스를 내뿜는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비소를 연구하다 우연히 발명한 안료였으며, 안정성이 연구된 물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벽지 등에 사용된 셀레 그린은 여러 요인에 의해 아주 쉽게 분해되며 비소 가스를 내뿜었다. 그 때문에 셀레 그린을 사용한 물건을 지니거나 집에 두었던 사람들은 모조리 비소 중독에 걸렸으며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갔다.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나폴레옹 또한 유배지의 벽지에 발린 셀레 그린 때문에 비소 중독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후에 셀레 그린이 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연구에 따르면 아마 1960년대 까지는 남아있던 비소계 안료들이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현대에는 안전하고 값싼 방식으로 위의 색들을 만들어내고 또 사용하고 있다. 큰 생각 없이 이용하던 색들이었는데, 과거에는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거나, 위험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들은 색에 대한 평등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새삼 실감되었다. 당연한 것들이 언제나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다시금 곱씹어 본다.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김유라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스타듀밸리를 플레이하다 [게임]
      2. 02 [에세이] 삼국지: 용과 귤 그리고 최애캐
      3. 03 [Opinion] 인생 첫 그림을 구매했습니다 [문화 전반]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