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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비슷한 듯 다른 두 여성 서사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희곡 '인형의 집' [영화]

그건 당신과 나 두 사람이 완전히 변하는 거예요.

by 권혜선 에디터
2026.10.0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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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연극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골몰하다가 두 가지를 동시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무엇을 적을지 생각하다가, 좋아하는 여성 서사 작품들이 떠올랐다. 세상에는 수많은 여성 서사 작품이 있다. 잘 만든 작품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오늘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여성 서사를 지닌 두 작품을 만나보려고 한다. 바로 연극으로 종종 만날 수 있는 희곡 <인형의 집>과 계속해서 사랑받고 있는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다.

       

       

       

      I. 여성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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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곡 <인형의 집>과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대표적인 여성 서사 작품이다. 두 작품은 여성 주인공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려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제도적 억압이 사건의 본질적 원인이다. 다시 말해 ‘가부장적 제도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여성의 여정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한계와 억압’이 공통으로 다루어진다.


      <인형의 집>의 ‘노라’는 남성 중심의 제도 속에서 ‘보호’라는 이름의 ‘종속’ 아래 살아온 여성이다. 노라는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보호를, 그리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보호를 받았다. 본가정에서 다른 가정으로 넘어가 상대가 바뀔지언정 ‘여성’으로서의 역할은 그대로 대물림된다. 그녀는 이것이 남성이란 주인의 ‘인형’으로 살아가는 삶임을 깨닫고, 자신이 몸담아온 ‘인형의 집’으로부터의 탈출을 결심한다. 이를 통해 입센은 여성이 엄마나 아내로 살아가기 이전에 '나'의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당시 대부분의 결혼은 사랑으로 맺어지는 ‘선택’이 아니라 가문의 ‘요구’와 사회적 ‘거래’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로 상품화되고, 이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여성은 경제적 자립의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권력은 비대칭적 구조를 유지했다.


      그런 의미에서 ‘린데 부인’은 독립적인 생계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입센은 사회상을 반영하면서도 이 사회가 단편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 고민의 결과가 상반된 인물의 등장이다. 린데 부인과 노라는 다른 성격과 결말을 보여준다. 린데 부인은 독립적인 생계가 가능했지만 크리그스타와 결합(결혼)하기를 원했고, 노라는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했지만 헬메르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탈출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엘로이즈’는 결혼이라는 가부장적 제도 속에서 결말이 정해진 사랑을 경험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여성들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경험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 끝을 결혼으로 귀결시키며 제도적 한계를 묘사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사회와 사랑 사이에서 사회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현실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앞서 <인형의 집>의 린데 부인이 그나마 독립적인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던 반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시대의 귀족 여성은 결혼이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마리안느 역시 화가로 활동하기는 하나,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아버지의 이름으로’만 작품을 출품해야 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여성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이 인정받은 것이라곤 보기 어렵다.

       

       

       

      II. 내 삶을 내가 선택할 권리 - 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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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두 작품 모두 여성들이 억압을 겪는 근본적인 원인은 결혼 자체라기보단, 여성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생존할 선택지가 적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다. 그럼에도 <인형의 집>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여성들은 인생에서 자기만의 결정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 노력한다. 두 작품에서 ‘노라’와 ‘엘로이즈’는 각자 자기 삶에 대한 결정권을 발휘한다.


      <인형의 집>의 노라는 “나 자신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집을 나간다. 이러한 탈출은 ‘물리적 탈출’과 동시에 ‘자아실현의 결심’을 외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엘로이즈는 결혼을 거부하지는 못하지만, 마리안느를 뒤돌아보게 함으로써 사랑을 기억으로 간직할 것을 선택하며 ‘내면의 주체성’을 그린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돋보이는 또 하나의 지점은 ‘지위고하를 막론한 여성들의 우정’이다. 엘로이즈, 마리안느, 소피 세 여성은 계급, 나이, 배경의 차이를 넘어 서로를 돌보고 함께 노는 편안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남성의 존재와 영향력이 배제된 자유로운 시공간을 일시적으로 제공하며, 그 속에서 이상적인 여성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지 알려주고 있다. 소피의 낙태 장면에서도 제도가 제공하지 않는 권리를 여성들이 스스로 마련하고 선택하면서 ‘평등하고 자율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III. 여성이 살아온 시대와 그들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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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에서 각 작품의 주인공인 ‘노라’와 ‘엘로이즈’를 시대적 배경의 관점에서 ‘초기 태도 - 갈등/변화 - 결과’의 순서로 비교해 보자.


      <인형의 집>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의 유럽(노르웨이)이다. 당시에는 여성의 법적, 경제적 권리가 제한되었으므로 남편의 동의 없이 여성이 홀로 금융 활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는 노라가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게 된 원인이며, 그로 인해 협박을 당하게 된 이유다. 노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이 남성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여성의 주 역할은 ‘아내’와 ‘어머니’가 유일했다.


      초반의 노라는 결혼생활과 가정에 만족하며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 그랬던 그녀는 차용증 위조 사건을 통해 남성의 동의 없이는 '여성 혼자서' 법적 행위가 불가능한 현실을 마침내 깨닫고, 크로그스타의 사례에서 ‘죄 없는 자도 처벌받는 사회의 불합리함’을 인지한다. 또한 린데 부인을 통해 홀로 서는 여성의 대안을 발견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남편 헬메르가 체면과 명예만을 우선시하며 자신을 ‘인형’ 취급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이로써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그녀는 가부장적 제도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나며 진정한 탈출에 성공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18세기 말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엘로이즈는 귀족 가문의 여성으로, ‘귀족 여성’은 가문과 재산의 결합 수단이었다. 엘로이즈의 언니가 결혼을 거부하며 죽자 그 자리가 고스란히 엘로이즈로 대체된 상황이 그 사례다. 당시 여성에겐 개인의 선택권이 전혀 없다시피 했고, 결혼과 연애 모두 가부장적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엘로이즈는 깨달음을 얻는 변화를 겪은 노라와 달리 처음부터 억압적인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언니의 대체품’으로 결혼을 강요하는 가문과, 남성과 화가가 자신을 대상화하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그리고 마리안느와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과 자유를 경험하며 갈등한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사랑과 자유를 기억으로 간직하지만, 결혼 제도라는 틀을 벗어나진 못한다. 영화가 아무 조건이 없는 공간에서 여성들이 욕망과 감정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여전히 여성을 가로막는 것은 ‘사회적, 제도적 현실’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두 인물의 삶과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노라는 남성을 떠나 제도를 벗어나면서 ‘나 자신’의 가치 회복을 추구한다. 엘로이즈는 내면의 주체성을 지녔고 이를 지켜내지만, 결국 제도 안에 남게 되면서 가부장제의 견고함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 노라는 점진적으로 ‘인식’이 변화해 탈출을 실행했고, 엘로이즈는 처음부터 억압을 자각했지만 ‘구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탈출과 내면적 저항의 차이일 뿐, 두 인물 모두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자세를 지녔다.

       

       

       

      Fin. 이 서사의 유효성은 아직 비극이 아닐 수 있다. 변화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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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21세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19세기 말에 쓰인 당대를 배경으로 한 희곡 <인형의 집>은 여전히 공감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양상이 조금씩 변화하더라도 여성 억압의 뿌리는 여전히 잔존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여성의 욕망과 주체성은 제약을 받고 남성-여성의 부당한 권력관계는 지속된다.


      그러나 동시에 좌절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18세기에 부당함을 ‘감내’하던 여성이 19세기에는 ‘탈출’을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현재에는 그 이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여러 모습의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지고 있지만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나아지고 있다.


      <인형의 집>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그건 당신과 나 두 사람이 완전히 변하는 거예요.”


      우리는 두 작품을 통해 여성이 자기 결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다만 그 실현 방식은 조건과 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 이때 ‘여성 서사’는 여성이 스스로 자기 인식과 변화 요구에 동참하게 만들고, 여성과 남성 모두가 구조에 대해 성찰하도록 촉구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 인권을 위한, 사회를 위한 좋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 그래서 여성 서사는 여전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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