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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기괴하고도 따뜻한 위로 -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만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주제는 무엇일까

by 윤지원 에디터
2026.01.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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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고 난 감상편을 작성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글을 쓴 것을 후회한다. 정확히 말하면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보기 전에 성급히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분석하려고 한 행위가 경솔하다고 느낀다.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전에 썼던 비유를 빌리자면 '참신함'이 엄청났지만,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이해를 할 시도조차 머뭇거리게 만든다. 도대체 이 만화는 말하고 싶은 게 뭘까, 표현하고자 하는 건 또 뭘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장면이 뭘 얘기하는 걸까, 필자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보면서 정말 많은 물음표를 띄웠다. 그래서, 두 가지 배경을 통해 이 영화를 분석하는 글을 작성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는 '사도'와 '90년대 일본 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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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 과연 적일까


 

'사도'는 <에반게리온>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빈번하게 나온다. '사도'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류가 지구에서 번영하기 전, 저 멀리 외계 행성에서 자손을 번창시키고자 했던 생명체가 있었다. 그 행성을 벗어나 지구에 도착한 생명체는 본래 자신의 자손을 지구의 주인으로 만들었어야 하지만 두 번째로 이 행성에 도달한 또 다른 생명체에 의하여 생명체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당연히 그 생명체와 자손들은 본래 자신의 것이어야했던 지구를 가지고 싶어할 것이며, 지금 지구를 정복하고 있는 불청객의 자손 '인류'를 공격하게 된다. 따라서 레이, 신지, 아스카는 에반게리온을 타고 그 생명체의 자손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 출동하게 된다. 그 생명체가 '아담'이고 아담의 자손이 '사도'다. 아담에 뒤이어 지구에 도착한 종족이 '릴리스'고 인류는 릴리스의 자손인 '릴림'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 사도라는 것, 과연 무조건적인 악일까? 우리는 타인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므로 한 번 사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태초가 선택하고 가장 먼저 자리잡았던 이 행성에서 평온하게 살아갔어야 할 그들이지만 갑작스러운 릴리스의 등장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되었다. 당연히 빼앗긴 권리를 찾으려 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공격받아야 할까? 인간이 저지르는 행위가 오히려 더 악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그 사실을 밝혔다. 먼저 아담과 릴리스는 같은 종족이다. 단지 아담의 자손은 '생명의 씨앗'을 얻은 생명체이고 릴리스의 자손은 '지혜의 씨앗'을 얻은 생명체인 것이다. 즉, 본질적으로는 아담이나 릴리스나 사도나 릴림이나 형태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종족이라는 것이다. 그 말인 즉슨,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전개는 동족상간을 저지르는 행태에 대한 과정이고 그 안에 내재된 인물들 간의 갈등, 자기파괴적인 인류보완계획 등은 결국 인간이 최종적인 적이라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18번째 사도는 결국 인간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보면 <에반게리온>은 한없이 비극적이다. 특히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결국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모두 하나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수순이 된다. 그럼에도 신지와 아스카는 살아난다. 모두 하나로 녹여버리는 LCL이라는 용액에서 그들은 자신이 살아가고자 할 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형체를 가지고 부활 아닌 부활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게 폐허가 되어버리고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지만 삶에 대한 의지 속에서 그들은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것만큼 모순적이게도 희망적인 장면이 없다.

 

사실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기독교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다. '사도'라는 말이나 극 중 내내 보이는 십자가의 형상이나 모두 기독교의 것을 차용하였다. 기독교에서 사도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 그의 가르침을 배우고 전파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에반게리온>의 사도는 결국 인류(그것도 똑같이 사도였던, 좀 더 해석을 이어가자면 사도의 잠재력이 모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다고 해석해보았다. 적, 그것은 내면의 자신일 수도 있는 법이다.

 

 

 

2. 90년대 정서 - 파괴


 

저번 글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제를 설명할 때 90년대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한 삶의 어려움에 대해 작성하였다. 이번에는 배경보다 조금 더 정서적인 측면에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분석해보겠다.

 

무너지는 시대에서 노년층은 버블 경제로 구축한 돈이라도 사용하였다면 청년층에겐 정말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혹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지금까지 누리던 풍족함은 온데 간 데 없고 실업자가 되거나 가정의 경제 상황이 매우 곤란해졌다. 찬란하던 과거가 지나고 칠흑같은 현재가 도래하니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건 기대가 아닌 절망과 좌절이 위주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IMF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처럼 일본에서도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일찍 현실에 비극이 찾아왔다.

 

당시 상황을 잘 표현해주는 건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극장가에 걸렸던 시기의 일화가 있다. 1997년, 지브리의 <모노노케 히메>도 개봉하였는데 당시 <모노노케 히메>의 슬로건은 '살아라'. 그러나 그 글귀가 적힌 <모노노케 히메>의 포스터 옆에 걸린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포스터 속 슬로건은 '모두 다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였다. 이런 황당하고도 당황스러운 대비는 뜻밖에도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청년층의 깊은 혼란이 외부에 있으므로 그대는 살아내라고 표현한 <모노노케 히메>와 그 어둠이 내면에 있으므로 그 마음을 공감해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결국 어두운 시대에 힘든 삶을 겪는 청년층을 위로하고자 하였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그런 현실을 반영하듯 모든 캐릭터의 내면이 뒤틀려있다. 그러나 그 뒤틀림이 허구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이다. 필자는 아스카를 예시로 들고자 하는데, 아스카는 어머니의 칭찬을 위해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본인의 삶의 방향을 에반게리온 파일럿으로 정해 잘해내고자 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아스카는 에반게리온 파일럿의 능력이 아예 없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과는 별개로 강력한 경쟁자와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명랑만화였으면 아스카가 그 슬픔과 분노, 무기력을 이겨내어 밝은 얼굴로 살아갔을 테지만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는 아스카가 진심으로 자신의 어둠을 극복해내자마자 치명적인 공격을 받고 죽어버린다. 그 암울함은 당시 일본에 만연해있던 우울함과 닮아있다. 어쩌면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군상을 <에반게리온> 속 캐릭터에 반영하면서 관객들이 자신만의 스토리를 캐릭터에 이입해 공감할 수 있도록 한 게 아닐까.

 

모든 것이 파괴되었지만 결국 의지만 있으면 살아낼 수 있다 라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통치, 정치적 과도기를 통해 이미 혼란스러움을 겪었던 전후 세대 사람들이 보내는 청년층에 대한 위로일 수 있다. 결국 기괴함 속 따스함을 가진 것이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어둡고 모호한 결말로 끝이 난다. 차라리 멀티버스마냥 비슷한 시기를 전혀 다른 엔딩으로 끝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그것이 당황스러워도 훨씬 유쾌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주제를 어렴풋이라도 -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테니 자신만의 해석으로라도 - 이해하게 된다면 결국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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