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헌터헌터? 그거 옛날 만화 아니야?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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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만화로 원피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헌터헌터는 원피스와 달리 뭔가 진입장벽이 높아서 계속 보는 걸 미루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부터 연재된 만화인데도 이상하게 헌터헌터가 더 옛날 작품처럼 느껴졌다. 원피스는 이제 최종장에 들어섰는데, 헌터헌터는 스토리 진도에 비해 연재 텀이 길어서 옛날 만화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이제 밥친구로 가볍게 볼만한 20분짜리 작품도 없을뿐더러 작가의 허리디스크로 인한 긴 휴재 끝에 재연재를 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미루고 미루던 헌터헌터를 보게 됐다.
옛날에는 헌터바이헌터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이제 헌터헌터로 부르는 것 같은 분위기라 처음에는 헌터헌터라는 말이 어색했다. TOMORROW X TOGETHER도 투모로우바이투게더로 부르는데 HUNTER X HUNTER는 왜 헌터헌터로 부르지? 딱히 큰 상관도 없고 나도 헌터헌터로 부르고 있지만 아직도 미약한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ott에 올라와 있는 건 2011년에 방영된 리메이크작이고 헌터헌터를 제대로 즐기려면 1999년도에 방영된 구작으로 보라는 말에 일단 검색했다. 20년도 더 전에 나온 구작이 과연 인터넷에 남아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검색했는데 어떤 친절한 사람이 유튜브에 자막까지 있는 구작을 무려 고화질로 아카이빙 해둔 걸 찾아서 볼 수 있었다.
올해 유행했던 티라미수 케이크 음악을 배경으로 춤을 추던 캐릭터가 헌터헌터 주인공이었다니. 도대체 무슨 캐릭터길래 티라미수 케이크에 맞춰서 춤을 추는 영상이 있을까 했는데 딱히 관련은 없어보였다. 하필 헌터헌터를 제대로 보기 전에 본 틱톡 영상이 저런 거라 괜히 보는 내내 생각나는 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헌터헌터 초반은 좀 지루한데 그 부분만 넘어가면 재밌어지니까 견디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차 위기가 몇 번이고 찾아왔다. 진짜 재밌어지는 거 맞나? 너무 잔잔한데 그래도 이것만 견디면..이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봤던 것 같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 봐도 되는데 내 선택으로 보는 거면서 꾸역꾸역이라는 말이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꾸역꾸역 봤다.
그런데 정말 딱 주인공인 곤이 헌터시험을 응시하러 가는 부분까지 지루했다. 본격적으로 헌터시험을 치는 부분부터는 도파민이 터진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실감하면서 봤다.
20년도 더 전부터 연재된 애니메이션이니 여기서부터 나오는 내용들은 스포일러로 치지는 않겠다.
헌터헌터 스토리라인은 크게 헌터시험-천공격투장-요크신시티-그리드아일랜드-키메라앤트-회장선거-암흑대륙 편으로 나눠진다. 레오리오, 크라피카, 키르아가 동료라는 이름으로 묶이면서 한 팀으로 헌터라는 자격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헌터 시험까지는 소년 만화적이면서 적당히 개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헌터 시험 이후 요크신시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게 그 헌터헌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크한 분위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특히 요크신시티 편은 키메라 앤트 편과 함께 명작이라고 꼽는 스토리라인 중 하난데 크라피카가 헌터가 되려고 하는 목적인 환영여단이라는 강력한 빌런이 등장하는 편이라 꿈과 희망도 없는 분위기가 더 고조된다. 이 편은 특히 구작의 셀 애니메이션과 연출, 각자의 동료와 엮인 상황에서의 크라피카와 환영여단 멤버인 파크노다의 심리 묘사 삼박자가 다 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그리고 미워할 수 없는 환영여단 멤버들까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구작으로는 딱 요크신시티 편까지만 봤다. 이후 그리드 아일랜드 편 일부까지 올라와 있어서 조금 보다가 이게 뭐지 싶은 작화에 댓글을 보니 작화 감독이 바뀌어서 이때부터는 없는 셈 치고 리메이크작으로 넘어가서 보라는 댓글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반강제로 넘어간 리메이크작은 작화부터 시작해 기존 성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어색해서 한동안 낯을 가렸다. 곤과 키르아는 더 어려지고 레오리오는 길어졌으며 크라피카는 못생겨졌다. 그리드 아일랜드 편부터는 레오리오, 크라피카의 비중이 거의 없는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후 키메라 앤트, ‘개미편’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충격적인 이야기의 연속이라 밥 먹을 때는 보지 않았다. 밥친구로 보려고 시작했는데 밥 먹을 때 못 본다는 게 웃기지만.
꽤 오래된 만화이기도 하고 유명한 만큼 여기저기 레퍼런스(를 빙자한 표절)로 쓰여 헌터헌터가 오리지널임에도 헌터헌터가 진부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년만화라는 장르에서 기대되는 클리셰가 나올 것 같은 순간에서 헌터헌터는 항상 클리셰를 부수는 행보를 보여줬다. 특히 키메라 앤트 편에서 그런 장면이 많이 나와서 괜히 헌터헌터 보고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이라고 평가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키메라 앤트 이후 회장 선거까지가 애니메이션화 됐고 이후 암흑대륙 편부터는 만화 연재분 밖에 없다. 20년 넘게 연재된 분량을 한 달도 안 돼서 다 봤다.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작품인데 연재 텀이 너무 길다는 게 아쉽다. 작가의 건강 문제 때문이라 그저 건강하게 끝까지 연재해달라고 비는 수밖에. 헌터헌터 그거 옛날 만화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유튜브만 있어도 볼 수 있으니 꼭 봤으면 한다. 댓글은 중요한 스포일러가 꽤 있으니 주의하길.
[신민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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