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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올해 재개봉 되는 영화들은 유난히도 나의 취향인 작품들이 많았다. 그 많은 영화들을 다 본 건 아니지만, 볼 수 있는 영화에 대해서는 즐거워하며 보고 있고 보지 못한 영화는 OTT를 통해서라도 다시 보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첫 작품인 반지 원정대는 돌비에서 즐겁게 보고 왔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아쉽게도 일정 상 영화관에서 관람하지 못했다. 마침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드디어 나의 '보석함'에 있던 작품 중 하나였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고 있다. 오늘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통한 인간의 관계성에 대하여 글을 써볼까 한다.

먼저, 에반게리온 작품을 보진 않았어도 이 작품으로부터 파생된 것들은 보거나 들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작품을 대표하는 오프닝송인 '잔혹한 천사의 태제'나 '신지, 에바에 타라!' 라는 밈,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에 대한 재밌는 바리에이션 등은 우리 일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990년대에 나온 이 작품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인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무엇으로 인기를 얻은 것일까? 행복하고 낙관적인 주제? 전혀다. 이 작품만큼 차분하게 세상이 멸망해가는 과정을 묘사하려면 정말 힘들 것이다. 등장인물의 관계성? 굉장히 파괴적이다. 타인과 맺는 인간관계는 굉장히 위태롭고 언제 깨질지 모른다. 등장인물의 성장? 이걸 성장이라고 부를지, 역성장이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개인이 가지고 있던 강력한 정신적 불안정이 매 회차를 거듭할 수록 커져가더니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만들어버린다. 화려한 CG 기술이 나타나지도, 액션신이 웅장하지도 않은 그저 싸움만 지속하며 지쳐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담는 이 작품이 왜 사람들로부터 '명작', '클래식'의 평가를 받는 것일까? 나는 이것을 크게 주제와 캐릭터성으로 구분하여 분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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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허망한 사랑, 그 관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첫 작품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된 건 1990년대 중반, 즉 버블경제가 터져 일본에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전세계적으로 평화를 침해한 악으로 규정되었던 일본. 패전의 결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아둥바둥 살았다. 그 결과 20세기 중후반의 일본은 어마어마한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미국의 지위를 넘볼 정도로 국제적 위상과 파워를 가지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패전 이후 약 반 세기 만에 물거품이 되고 지독한 경제 불황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일본인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살기 힘든 이 세상, 너도 나도 모두 힘들고 지쳐버렸다. 각자의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1990년대 중반,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한 사랑 대신 고통을 주는 생활. 그게 지양해야 하는 방향일까?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그 문제에 대하여 'No'를 외친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변질되어 아픔이 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등장인물을 통해 용기를 통해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별한 아내를 만나기 위해 모든 문제의 시작을 만든 겐도, 타인에게 상처받을까봐 무서워 아예 타인에게 다가가지도 못하는 신지, 어머니의 죽음에 의한 충격으로 자존심을 앞세우느라 사랑이 아닌 집착과 분노를 하는 아스카, 아버지를 닮은 나쁜 남자에게 끌려 무너지고 마는 미사토 등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본인의 아픔에 대한 방어 기제로서의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 끝은 파멸일 뿐이었다. 따라서, 오히려 '이러면 안된다'라는 메시지가 보인다. 거의 없는 정상 인물인 이카리 유이, 즉 신지의 엄마이자 겐도의 아내는 불안정 속에서 사랑과 진심을 통해 자신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 그리고 인류의 행복을 꾀한다. 그것이 사라지자 불행이 시작되고 누구 하나 행복해지지 못하는 전개는 그녀가 가진 선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 용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너무나도 살기 힘들고 나 자신도 아파 슬픈 마음과 세상 속에서도 진심 어린 사랑을 용기 내서 하자는 것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음울한 스토리 속 숨겨진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받는다.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한들 여전히 세상은 살기 힘들고 각자의 사정으로 모두가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서로를 향한 진실된 마음은 건강한 관계를 통해 근원적인 행복을 만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신선한 캐릭터: 레이와 아스카

 

신지의 두 히로인, 레이와 아스카. 둘은 정반대의 외모와 성격을 가진다. 차갑고 무감정한 푸른 빛의 단발 레이와 폭발적이고 감정적인 붉은 빛의 장발 아스카. 레이는 무미건조한 행위 속에서 자신의 삶 속 결여되어 있던 주체성을 찾는다. 그리고 끝내 그녀는 본인이 선택한 방향으로 살아낸다. 그러나 아스카는 새침하고 고집스러운(어쩌면 철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자격지심에 의해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간다. 그렇게 파일럿으로써 우수한 결과만을 좇던 아스카는 신지라는 천재 파일럿의 등장에 의해 우수함으로부터 밀려나고, 결국 정신적으로 완전히 붕괴되고 만다.

 

2025년 지금 보면 둘 다 낯설지 않은 설정이다. 조용하고 무뚝뚝하던 사람이 점차 본인의 감정을 주체적으로 표현하거나 또는 자존심으로 살아가던 외강내유의 스타일이 현실의 난관에 의하여 점차 무너지는 전개. 이 유형이 익숙한 것은 다름 아닌 에반게리온이 이것들의 시초가 되어 수많은 후대 캐릭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레이의 외형인 파란 헤어에 적안과 아스카의 성격인 '츤데레'는 애니메이션 속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 많은 후배를 만들어냈다. 지금도 매력적인 이 설정이 90년대 당시에는 얼마나 센세이셔널했을까. 재밌게도, 레이의 외형은 다소 우발적으로 발생하였고 아스카의 성격은 아주 촘촘하게 만들어진 성격이라고 한다. 치밀한 연구와 즉흥적인 아이디어 모두 성공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니,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앞서 소개한 주제와 캐릭터성 외에도 함축된 표현, 종교 및 철학적 사유 등이 매우 복합적으로 녹아있는 작품이다. 이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이라는 후속작으로 이어지며,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표현하고자 한 거대한 스케일과 그 속의 인간 실존적 질문을 구체화해간다. 마침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현재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다. 물론,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보는 것은 많이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한 번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분명 난해하고 쉽사리 호감을 갖긴 어려울 수는 있어도, 한 번 빠지만 이 작품이 주는 심오함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고로, 다음 글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보고 난 이후의 감상평을,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한 감상평을 발전시켜 집대성 시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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