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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직접 만들기에 돌입할 수 있으면 어떨까. 밖은 춥고, 겨우 발 디딘 지하철엔 사람이 너무 많다. 머리 위를 오가는 대화는 시끄럽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면 어디 한 구석에 처박혀 나만 아는, 포근하지만 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만 싶다. 그런 현대인들을 위해 새로운, 아니 돌아온 트렌드가 있다. 사람이 너무 많은 건 싫고, 쉽게 버려지는 것도 싫다면. 가능하면 자기효능감을 채워주는 행위를 하고 싶다면. 그렇다면, 뜨개질을 하는 게 좋겠다!

 

‘할머니 코어’, ‘니팅 힙’과 같은 단어가 mz세대를 비롯한 젊은 세대의 취향으로 자리 잡았다. 서촌의 나무들은 핸드니팅 브랜드 ‘댄싱그랜마’와 ‘시네코 스튜디오’의 협업 프로젝트 <2025-2026 서촌 얀바밍*>으로 손뜨개 옷을 입었다. 연희동의 대표적인 뜨개샵 ‘바늘이야기**’는 어느덧 연희동 데이트 필수 코스가 되었고, 자신을 ‘뜨개인’이라고 소개하는 이들 또한 그 수가 늘었다. 어느 유명 아이돌은 직접 뜨개질한 옷을 착용하고 무대 위에 오르기도 했다.


*얀바밍: 공공장소의 차가운 구조물(가로수, 난간, 동상 등)에 털실로 뜬 옷을 입히는 거리 예술, 혹은 공공 미술 활동.

**바늘이야기 연희점: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가길 15

 

뜨개질은 도대체 어떻게 우리 삶에 스며들게 된 걸까. 아니, 사실은 처음부터 있었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던 게 아닐까.

 

 

 

‘귀여운 할머니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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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026 서촌 얀바밍> 프로젝트를 협업한 ‘댄싱 그랜마’는 “귀여운 할머니를 꿈꾸며”, “할머니가 될 때까지 쓰고 싶은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누군가 직접 손으로 만들었기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뜨개 작품은, 근래에 빈티지가 성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풍스럽고 어딘가 뿌듯한 멋이 있는 아이템이 된 셈이다.


하지만, 겉멋만 있다면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세간에서는 뜨개의 유행이 빠르고 자극적인 디지털 문화에 대응한 반동이자, 슬로우 라이프를 ‘힙한 것’으로 여기는 MZ 세대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쓰고 싶은” 물건을 만든다는 브랜드의 말처럼 어느 뜨개인의 마음 또한 항상 그럴 것이다. 직접 만든 것을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누군가에게 전해졌을 때 배로 전달되는 애정. 그런 것들이 오래오래 뜨개질로 남는다.

 

 

 

일상 속 뜨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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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열풍은 사람들이 뜨개를 손쉽고 빠르게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니, 사실 유행이 먼저였는지 보급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각설하고, 요즘은 간편하게 뜨개질을 시작할 수 있도록 실과 각종 도구, 도안과 만드는 영상까지 포함된 뜨개질 키트가 성행한다. 한 번의 방문으로 뜨개질 기초와 작품 완성까지 배울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는 물론이다. 가성비의 천국 다x소엔 뜨개질 용품 상점 못지않은 장비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단돈 몇천 원에 완성하는 나만의 코스터, 모자, 목도리, 북 커버까지. 한 번 보면 알고리즘을 점령하는 각종 영상은 따라 하기에 간편하고 재미있다.


그렇게 좁혀진 뜨개와의 거리에, 뜨개질 자체의 생산성마저 따지자면 시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동시간, 여유시간, 휴대폰에 집중하는 대신 뜨개질을 한다면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것은 물론, 완성작도 생기는 셈이다. 어디 뜨개질을 하는 시간만 그런가. 음악이나 영상을 틀어두고 뜨개 작업을 하는 뜨개인들도 많다. cgv는 뜨개질을 하며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상영관의 조도를 조절한 <뜨개 상영회>를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일부 지점에 한해서 진행하고 있다. 자리 잡고 수행해야 하는 취미를 넘어, 일상과 ‘동시에’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이 뜨개의 큰 매력인 것이다.

 

 

 

뜨개질로 자아 표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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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지하철이나 사람 많은 공공장소를 멍하니 걷다 보면, 사람들의 가방에 하나둘씩 매달린 귀여운 모습들이 눈에 띈다. 손뜨개로 만든 네잎클로버, 각종 과일이나 동물, 캐릭터를 본떠 짠 키링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겨울이라면 더욱 자주- 사람들이 끼고 다니는 액세서리나 가방을 유심히 살펴보자. 유독 뿌듯한 표정으로 개성 넘치는 소품을 자랑하는 이가 있다면, 뜨개인이거나 뜨개를 사랑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뜨개를 시작해 보고 싶은 사람일지도!


뜨개질은 단순히 만드는 것과 완성품을 전달하고 갖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안을 찾고, 도안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 직접 치수를 재고 만드는 과정까지가 모두 뜨개질이다. 사람들은, ‘요즘 MZ들’은 그곳에서 자아표현을 실행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패턴을 조금 더 가미하고, 손에 힘을 주고 풀며 원하는 모양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까지의 마음은 남들이 아닌 자신을 위한 자아 표현의 수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오만 것에 관심을 두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에디터 역시 최근에 헤어밴드를 뜨기 시작했다. 줄바늘*을 구매한 것조차 처음이었고, 예전에 네잎클로버를 10개 넘게 만들다 질려서 그만둔 이후로는 코바늘** 조차 들지 않았으니 왕초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더군다나 에디터는 중학생 때 가정 시간 수행평가로 물건을 넣을 수 없는 파우치를 만들어낸, 손재주 없는 사람, 일명 ‘똥손’이다. 상상한 것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열 명 중 아홉 명이 망설이는 이유는 아마 ‘나는 이런 걸 못 만들어’와 같은 마음 때문일 테다. 에디터 역시 그랬으니까.


*줄바늘: 두 개의 대바늘 끝에 케이블이 연결된 형태의 뜨개질 바늘. 막연히 ‘할머니 뜨개질’을 상상했을 때 할머니가 들고 계시는 바늘이 그것이다.

**코바늘: 끝이 갈고리 모양으로 굽어있는 1개 형태의 뜨개질 바늘.

 

지금 뜨고 있는 헤어밴드는 아직 형태조차 잡히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면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실을 10번이나 풀었고, 꼬였다가 묶였다가 풀리기를 거듭했던 털실은 다시 털실 뭉치에 돌돌 말려 다시 뜨개질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코가 빠지고, 털실이 풀리며 잘못된 상황에 처했을 때의 짜증은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글이 끝나면 에디터는 다시 뜨개질을 시작할 것이다. 하나는 기어코 만들어내겠다는 오기이든, 이걸로 나를 표현해 보고 싶다는 자신감이든, 나머지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집념이든. 우리를 뜨개질에 돌입하게 만드는 마음은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뜨개질은 갖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허용한다. 상상만 하던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마주할 뿌듯함과 행복감을 상상해 보라. 그 뜨개의 과정에서 무언無言과 무상無想을 마주할 우리의 모습까지도.



사진 출처: 시네코 스튜디오 공식 인스타그램, 바늘이야기 공식 홈페이지, 르세라핌 사쿠라 인스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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