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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알파'는 어떻게 가족의 기상이 되었나 [영화]

병과 낙인, 그리고 사랑이 모래가 되어 흩어지는 과정

by 황지윤 에디터
2026.09.1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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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어로 '기상'이라 불리는 조각이 있다. 중세 무덤 위에 죽은 자의 모습을 본떠 만든 이 돌 조각상은, 눈을 감은 채 영원히 누워있는 자세로 조각된다. 산 사람이 아니라 이미 떠난 이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역설적으로 기상은 그 사람을 위한 애도가 채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말은 정신분석학에서, 해소되지 못한 트라우마가 다음 세대의 몸 위에 그대로 얹혀 전이되는 과정을 설명할 때도 종종 빌려 쓰인다. 죽은 자를 위한 돌이 산 자의 몸에도 새겨진다는 것이다.

       

      줄리아 뒤쿠르노는 신작 '알파'는 바로 이 개념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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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개념을 알고 나면 '알파'가 유독 다르게 읽힌다. 영화는 감염된 몸이 서서히 대리석으로 굳어가는 정체불명의 병을 중심에 놓는다. 그런데, 극 중 묘사되는 이 병은 단지 몸을 돌로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굳어버린 몸은 끝내 부서지고 그 자리에는 모래만 남는다. 조각이 되었다 다시 먼지와 같은 입자로 되돌아가는 것. 영화가 그리는 병의 모습은 결국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와 겹치는 듯하다.

       

       

       

      병보다 빠르게 퍼지는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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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가 처음 마주하는 굳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것이다. 병은 혈액을 매개로 전염되며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 풍경은 그 시대에 실재했던 공포, 에이즈를 둘러싼 낙인의 역사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 느껴지기도 한다.

       

      알파 역시 실제로 감염되었는지와 무관하게 의심을 받는 순간 이미 다른 존재로 취급된다. 병이 몸을 굳히기도 전에 시선이 먼저 관계를 돌로 만드는 것이다. 그 굳음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영화는 또 다른 지형에 가닿는다.

       

      알파의 가족이 사용하는 베르베르어, 그리고 붉은 사막. 이들은 알제리계 이민자이자 베르베르족의 후예이다. 붉은 바람 때문에 물을 마셔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은,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몸으로 익힌 이들의 지혜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손으로 할머니는 아민을 쓰다듬고, 훗날 알파를 쓰다듬으며 세대를 건너 반복된다.

       

      하지만, 그 손길조차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남지는 않는다. 아민은 훗날 그 손길을 폭력적이었다고 기억하는 반면 알파에게 남겨진 것은 좀 더 다정한 잔상에 가깝다. 같은 손길도 누가 기억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는 사실은, '알파'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과 닮아 있다.

       

      관객이 스크린을 통해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 현재인지, 과거의 사건인지, 혹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회상인지 영화는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모호함 자체가 이 영화의 방식이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의 누군가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이미 조금씩 다른 형태로 굳어버린다는 것.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장면들 사이에는 색의 결마저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 시간대의 전환이 단순히 이야기의 순서를 알려주는 장치가 아니라, 감각적으로 역시 다른 층위임을 관객에게 알리는 셈이다.

       

      병이 몸 위에 남긴 자국들처럼, 기억도 화면 위에 흔적을 남기는 듯 '알파'는 진행된다.

       

       

       

      손에서부터 이어지는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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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의 끝에서, 알파는 또 다른 굳음을 만난다. 다섯 살 알파에게 손바닥 위 무당벌레를 보여주던 아민의 모습은, 영화 후반부에 다시 한번 반복되며 작품 전체를 요약하는 대구처럼 기능한다.

       

      중독, 그리고 누군가를 속이며 이어온 관계들. 아민은 떳떳하지 못한 것들을 쥐고 살아온 사람이지만, 정작 알파를 대하는 방식에는 거짓이 없다. 줄리아 뒤쿠르노는 이 영화 역시 결국 사랑에 관한 탐구라고 말한 적이 있다. 타인으로 시작한 두 사람이, 병을 통해 애정을 느끼는 과정이 알파와 아민 사이에서 되풀이된다.

       

      관계가, 뿌리가, 수치심이 저마다 다른 속도로 돌이 되어가는 동안 영화의 편집은 이 세 겹을 하나로 묶는다. '알파'는 과거와 현재, 환영까지 끊임없이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장치가 아니라 기상이라는 개념 자체를 스크린 위에 구현하는 방식이다.

       

      해소되지 못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다음 세대의 몸 위에, 다음 장면의 화면 위에 그대로 얹힌다.

       

       

       

      모래가 되어 다시 내려앉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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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마지막. 화면은 붉은 사막 같은 풍경을 비추어낸다. 조각상처럼 굳어버렸던 병은 그렇게 부서져 모래가 되고, 바람은 그 모래를 다시 흩날리게 만든다.

       

      이 장면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기상이 본래 영원히 한 자리에 머무는 돌이기 때문이다. 무덤 위의 조각상은 누군가 대신 애도를 끝내주지 않는 한 그 모습 그대로 굳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알파'는 그 단단한 돌조차 끝내 모래가 되어 흩어지는 장면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병도, 낙인도. 대물림된 수치심도 처음에는 영원히 몸에 박힐 것처럼 새겨지지만, 이 영화는 그것이 끝내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만 남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모래가 되었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고, 바람이 불 때마다 다시 누군가의 몸 위에 내려앉을지 모른다. 다만 돌덩이처럼 한 자리에 굳어 무언가를 짓누르는 대신, 함께 흩날릴 뿐이다.

       

      알파가 물려받은 것은 그래서 완전한 해방도, 굴레도 아니다. 형태를 바꾸며 계속 이어지는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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