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18일 금요일,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6 <두루두루>를 관람했다.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여러 흥행작을 접해왔지만, 국내에서 열리는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익숙하게 접해온 상업 애니메이션과는 또 어떤 다른 세계를 보여줄지 기대를 품고 영화관을 찾았다.
올해 22회를 맞은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6은 '여기저기 빠짐없이, 골고루'라는 의미와 함께 각자의 이야기와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축제를 표현한 '두루두루'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렇게 '두루두루' 모인 작품들 가운데, 이날 선택한 프로그램은 <아시아로3>과 <새벽비행2>였다.
국경을 넘어 만나는 이야기, <아시아로3>
<아시아로>는 한국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아시아 지역의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나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각 지역의 문화와 창작자들의 다채로운 표현 방식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중 하나는 중국 시펑 감독의 <눈알>이었다. 눈알 모양의 폐공장 안에서 두 마리의 비둘기가 사랑과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무채색으로 표현된 버려진 공장과 그 안을 살아가는 두 비둘기의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음악 역시 인상적이었다. 폐허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두 존재의 모습과 어우러지며 깊은 감정을 끌어냈다.
두 비둘기가 날아오르고 여러 상황을 겪는 과정에서는 얼핏 거칠게 그려진 듯한 장면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마저 상황과 맞물리면서 의도된 연출처럼 느껴졌다. 장면 하나하나가 음악과 긴밀하게 맞물렸고, 거친 표현까지 작품의 분위기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높은 완성도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팸플릿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기대했던 대만 작가 라이토 로우의 <속세 너머>였다.

대만에서 직접 수집한 꽃과 풀, 씨앗, 흙, 모래, 조개껍질 등을 활용해 대만의 산과 바다를 표현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자연에서 가져온 재료를 사용한 만큼 화면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작품은 짧고 간결하지만 청량한 자연의 소리와 도시의 소음이 어우러지며 시각을 넘어선 풍성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꽃과 풀, 흙과 조개껍질이 움직이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하나의 작은 축제를 바라보는 듯하다. 특히 만물이 다시 깨어나는 듯한 생동감이 인상적이었다. 서로 무관해 보였던 작은 존재들이 움직임을 통해 이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연결되어 저마다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아시아로3>에서 만난 작품들은 문화적 배경과 표현 방식이 서로 달랐다. 그럼에도 이미지와 움직임, 음악을 통해 전달되는 감정에는 국경을 넘어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에서 출발했음에도, 애니메이션이라는 움직이는 이미지 안에서 감정은 하나의 공통된 언어가 될 수 있었다.
이제 막 날아오르는 이야기, <새벽비행2>
<새벽비행>은 아시아 여러 지역의 작품을 만나는 <아시아로>와 달리 국내 신진 작가들의 첫걸음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문법에서 벗어나려는 실험적인 연출과 낯선 소재가 눈에 띄었다. 한편으로는 자막의 싱크가 맞지 않는 등 다소 아쉬움이 남는 작품도 있었다.
현대적인 소재와 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들도 많았다. 때로는 상징이 상당히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만큼 창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과 문제의식 역시 선명했다.
특히 김연우의 <핑거뱅>은 비뚤어진 사랑이 남기는 결핍과 비참함을 감각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상영 내내 시선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연출의 흡인력이 강했다.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상징과 장면 곳곳에서 드러나는 결핍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상영이 끝난 뒤에도 작품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이유다.
김솔비의 <베지터블>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작품의 내용을 이해할수록 불편한 감정이 밀려온다. 시각적으로는 1960년대 코믹스를 연상시키는 볼드한 명암과 색채가 돋보이며, 디자인적인 완성도 역시 눈에 띈다. 하지만 그 화려하고 경쾌한 이미지 안에 담긴 이야기는 비극적이다.

식물인간이 된 아내의 병원비를 감당하던 아버지마저 결국 식물인간이 되고, 아이가 홀로 남겨진다. 비극적인 상황임에도 특유의 그림체 때문에 어딘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밝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비극적인 이야기 사이의 괴리는 오히려 불편함을 더욱 크게 만든다. 어쩌면 그 불편함 자체가 작품이 의도한 감각이 아니었을까.
<아시아로>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출발한 작품들의 문화와 표현을 만나는 시간이었다면, <새벽비행>에서는 신진 창작자들의 독특한 작화와 과감한 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왜 독립 '애니메이션'이어야 했을까
필자는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지만, 지금까지 주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흥행작을 중심으로 작품을 접해왔다. 그렇기에 이번 영화제에서 만난 독립 애니메이션의 모습은 더욱 낯설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대중적인 작품에서도 익숙한 이야기의 구조, 이른바 '마스터 플롯'을 변주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번에 만난 독립 애니메이션에서도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있었다.
익숙한 소재를 낯선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거나, 한국 사회 특유의 정서와 동시대의 문제를 한 작품 안에 담아내기도 했다. 때로는 거칠고 불편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상업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독립 애니메이션만의 표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인물의 결핍이나 불안처럼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과감한 이미지와 움직임으로 형상화하는 작품들을 보면서, 독립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를 생각하게 됐다. 정해진 형식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와 이미지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두루두루' 모였기에 보이는 것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독립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형식 안에 가두기보다 독립보행·새벽비행·랜선비행·아시아로·미리내로 등 여러 경쟁 부문으로 나누어 다양한 작품을 소개한다. 올해 개막작 역시 광고, 게임 IP, AI,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작품들로 구성되며 애니메이션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출발한 나라도, 창작자의 경력도, 그림체도 달랐다. 몇 분 만에 끝나는 작품도 있었지만 어떤 장면은 극장을 나온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두루두루' 모인다는 것은 서로 비슷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가 한자리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