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즐겨보았다.
과거의 애니메이션은 ‘짱구’, ‘원피스’처럼 압도적인 대중성을 갖추지 않는 한, 소수의 서브컬처 향유층이 즐기는 매체로 인식되었고, ‘오타쿠’라는 낙인과 함께 소비되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넷플릭스가 전 세계 콘텐츠를 동시적으로 제공하고,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장르로 자리 매김시키면서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관련 애니메이션 사이트를 직접 찾아가야 하는 등접근 장벽이 높았지만, OTT 서비스의 확산은 이를 크게 낮추었다.특히 짧은 러닝타임과 과장된 액션은 도파민과 자극을 추구하는 현세대에게 잘 맞아떨어졌고,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오타쿠 문화’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개성과 취향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오타쿠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등장했고, 서브컬처 감성을 겨냥한 K-POP 아이돌까지 나타나고 있다.
9월 18일부터 23일까지 CGV 연남점에서 열린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5’는 나에게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인디 애니메이션 영화제라는 특성상 평소 즐겨보던 액션이나 드라마 장르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이를 통해 내가 이해하는 애니메이션의 범위가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올해로 20회를 맞은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이자, 한국의 유일한 독립 애니메이션 전문 영화제이다. 한국 애니메이터들이 이미 높은 역량을 지니고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처럼 국제적으로 유일한 축제가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 놀라웠다.
동동! 발을 구르며, 오늘도 신나게 동화를 쳐내자!
동동! 아침 해가 빛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한다!동동! 작은 북을 울려라, 모두 모여 신나게 놀아보자!
- 서울인디애니페스트 2025 슬로건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독립 애니메이션 작품을 한 군데에서 살펴보고, GV, 세미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이다.
나는 <올리가 희망을 잃다>, <봄날>, <풍>, <화성으로 그리고 귀환>, <낙서>, <문학가>, <향춘>을 보았다.
1. 올리가 희망을 잃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프랑스 작품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3D 배경 위에 평면적인 2d캐릭터와 사물이 얹히는데, 이 서로 다른 차원의 애니메이팅이 공존하며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올리는 도로 위에서 비둘기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후 침대 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마치 침대가 무덤처럼 내려앉는 것처럼 표현된다. ‘구덩이’와 ‘침대’라는 이중적 이미지가 겹쳐질 때, 절망은 공간 그 자체가 된다.
그러나 올리의 상상 친구가 등장하면서 세계는 전환된다. “왜 늘 비둘기만 차를 피해 다녀야 하는가?” 친구의 질문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언뜻 상당히 차갑게 느껴지지만, 올리가 그토록 괴로워했던 것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이후 구름으로 만들어진 상상 친구가 비둘기 모습으로 변해 올리를 끌어올리는 장면이 무척 기억에 남았다. 비둘기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 올리에게 필요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2.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 <문학가>
폐허가 된 도서관 한가운데, 쓰러진 사서 로봇 ‘미아’가 있다. 바닥엔 종이가 흩날리고 벽은 온갖 낙서로 빼곡하다. 창문 사이로 한 장의 종이가 빠져나가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 글은 로봇 미아가 썼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더더욱 유명해진다.
로봇 미아가 일하는 도서관은 폐관을 앞둔 대형 도서관이다. 이용객에게 책의 위치를 알려주고 추천을 건네던 로봇 미아는 폐회식 날에도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그때 한 소녀가 다가와 묻는다. “언니의 이야기는 뭐예요? 언니는 모든 책을 다 읽었잖아요.”
그러나 미아는 소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라는 기계적 응답만 내놓는다. 소녀가 건넨 작은 상자를 남기고 떠난 뒤, 미아는 다시 일상적인 업무를 반복한다.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는 자판기가 들어 있었다. 그때 미아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소녀의 질문을 되새기며, 자신만의 기록을 시작한다. 미친 듯이 글을 써내려간다. 결국 도서관 전체의 벽과 기둥, 천장까지 활자로 가득 덮인다.
이 아이러니한 세계를 그리는 작품을 보며, 나는 순간 모호해졌다. 나 역시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대신 글을 써주는 생성형Ai에 대해 굉장히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아의 글쓰기는 단순한 데이터 조합일까, 아니면 주체적인 이야기의 탄생일까.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론 이 애니메이션을 “비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로 독해하고 싶었다.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고 안내하던 사서 로봇이, 소녀의 질문에 저도 모르게 글을 쓰게 된다. 이 질문은 로봇에게 명령을 한 것이 아니다.
다만 로봇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고심하게 된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인생은 별 볼 일 없다든가,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아서이지, 당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로봇 미아가 무수하게 수집해온 도서관 속 모든 이야기처럼, 당신 안에 당신이 살아온 모든 삶이 들어있다.
미아가 펜을 잡은 것은 아주 사소한 계기였지만, 글을 트는 순간 할 말은 무수하게 쏟아진다.
이외의 다른 좋은 작품이 많았다. 나는 좋았던 작품으로 <문학가>를 꼽았는데, 이 애니 페스트를 메타적으로 비유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수천만 장의 레이어, 수천만 장의 동화 작업, 그것으로 자아내는 이야기.
그것은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귀멸의 칼날, 진격의 거인과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가 ‘장르적으로’ 각광받는 지금, 이 페스티벌은 더더욱 날개를 달고 날아가야 할 중요한 페스티벌이다.
다들 한 번씩 들러, 인디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움을 목도해보는 게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