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서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기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여러 사회적, 경제적 요인 때문에 1인가구가 주를 이루고 있고 이는 대부분 청년층이다. 이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온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러다보니 관계를 맺고, 가족을 이루고, 집단을 형성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뒷전으로 밀린지 오래다. 이는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다. N포 세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많은 청년 세대가 짊어진 짐이다.
단절과 고립이 청년과 서울을 나타내는 키워드가 된 2026년. 그래도 사람은 사람을 만난다. 아니, 만나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누군가는 옷과 음식과 잘 곳만 있으면 살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묻겠지만, 그렇다면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종이 차지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사람을 만나며, 사회를 이루며 생존했다. 이 명제를 우리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현재형으로 바꿔보면, 우리는 살기 위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문장이 된다. 그러면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야 하냐는 질문이 꼬리를 물 듯 이어질 것이다. 머리가 아프니 고민은 여기까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명쾌한 답 대신 물음만 남기는 건 필자도 딱히 좋아하진 않으니까-
홍대와 신촌을 잇는 동교동. 봄이면 녹음이 지고,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풍경을 가득 메우는 거리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 서울의 밤을 밝히고 있다. 낮에는 카페, 저녁에는 인연이 맺어지는 모임 장소. 통창 너머로 봄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연플레이스의 최지훈 대표를 만났다.
연플레이스 최지훈 대표 / @_yeonplace
상경, 사회초년생, 외로움. 내 안의 키워드로 만든 브랜드, 연플레이스
안녕하세요 대표님. 자기 소개 및 연플레이스 브랜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물리치료사로 일하다 사람을 연결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최지훈입니다. 현재 연플레이스라는 이름으로 파티룸, 카페, 혼술바 등 여러 공간과 파티, 독서회 등 다양한 대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요즘 시대에 외로움을 덜고, 결이 맞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연을 맺을 수 있는 ‘대화 중심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인연이 맺어지는 공간이라는 취지를 들으니 연플레이스라는 이름이 더욱 와닿는 것 같아요. 대표님께서 연플레이스를 만들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원래 제 고향이 속초인데, 물리치료사로 일하기 위해 홀로 서울에 올라와 직장을 구했어요. 친구들끼리 자주 만나 놀았던 대학교 생활과 달리, 사회생활은 이전의 삶보다 많이 단조로웠어요. 새로운 사람을 자주 만났던 대학교 시절과 달리, 매번 같은 사람을 만나니까요. 그래서 독서를 시작했어요. 책을 좋아해서 읽은 건 아니었고. 정말 할 일이 없어서 읽었어요.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책을 전혀 읽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독서 모임 플랫폼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혼자 책을 읽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책을 읽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처음 모임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됐어요. 플랫폼에는 독서 이외에도 다양한 모임이 있었는데, 저는 그 중 파티 모임에 눈길이 갔어요. 재미도 있었거니와 몇 번 참여하다 보니 ‘이거 내가 직접 해도 잘할 수 있겠는데?’라는 의욕이 생겼거든요.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나요?
사실 제가 물리치료사 할 때도 손으로 치료하기보다 입으로 치료했어요. (웃음) 농담이고. 제가 떠드는 걸 좋아하고, 공감을 잘해서 말솜씨가 좋아요. 그래서 호스트가 진행하는 걸 보고 내가 해도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제가 잘하기도 하고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본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도 큰 매력을 느꼈어요.
돌아와서, 처음에는 작은 파티룸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크기가 작다 보니 제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저는 더 많은 사람이 연결되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이유로 큰 파티룸을 만들었고, 대관이 잘되는 덕분에 2호점, 3호점까지 늘어났죠. 공간이 늘어난 건 좋았지만, 어떻게 운영할지가 다음 고민이 되었어요.
여러 콘텐츠를 모임에 녹여내 보았지만, 답은 가장 저다운 모습에 있었어요. 저는 속초 사람이고, 속초는 관광지로 유명하잖아요. 사람들을 모아 속초 여행 모임을 열었어요. 불멍도 하고, 바비큐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로컬 맛집도 소개해 주니 참가자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이와 더불어 제가 홀로 상경해서 외로움을 달랬던 독서도 대화 모임의 주제로 안성맞춤이었어요. 그렇게 여러 모임을 운영하며 얻은 노하우로 지금까지도 대화 모임을 이어오고 있고, 최근에는 예약 없이 즉흥적으로 편하게 들러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혼술바도 합정에서 운영하고 있어요.
연플레이스 모임을 자세히 보면 각각 이름이 있어요. 필연, 해연, 잔연. 각각 무슨 뜻이고, 어떤 형식의 모임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모임 이름은 저희 브랜드 이름에서 따온 ‘연’자와 각 모임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글자를 결합했어요.
필연은 우연 같지만 분명이 올 인연
해연은 하루 끝 저절로 마음이 풀리는 시간
잔연은 끝에 남는 잔잔하고 오래가는 마음의 여운
이런 의미입니다. 모임 소개를 하자면, 필연은 저희가 가장 처음부터 운영하던 모임이에요. 60명 내외로 다양한 사람들과의 연결을 모토로 하고 있는데요. 솔직한 내면을 편하게 끌어내기 위해 반말 모드로 진행합니다. 이와 더불어 나이와 직업도 비밀인데요. 나이와 직업을 먼저 알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편견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모두가 어울리고 친구가 되어 돌아갈 수 있는 모임이 필연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60명 이상이 모이는 모임이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이런 분들을 위해 20명 내외의 소규모 모임도 진행중인데요. 이 모임이 바로 해연입니다. 해연은 밀도 있는 대화를 원하는 분들이 많이 찾습니다. 도란도란 모여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소주나 맥주보다는 위스키나 칵테일을 곁들여 깊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분위기로 구성했습니다.
마지막 잔연은 취중독서회에요. 독서회라는 말이 낯설게 들리시는 분들은 20명 내외로 진행되는 독서 모임이라고 여겨주시면 됩니다. 하루의 마무리를 독서와 함께하는 잔잔한 모임인데요. 30분 ~ 1시간 정도 자유롭게 책을 읽은 뒤에 하이볼과 치즈 플래터를 곁들이며 각자 마음에 담아놓은 문장들을 나누는 모임이죠. 조금의 취기는 자연스러운 감정과 내면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잔연은 항상 깊고 감성적인 대화로 가득해요. 무엇보다 이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은 통창뷰와 독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에요. 신촌과 홍대를 가로지르는 동교동의 밤은 어느 책과도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잔연은 콘텐츠 중 독서를 메인 주제로 해요. 다른 주제들 중 독서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책을 잘 읽지 않던 사람이었어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었고, 모임 브랜드를 만들고 난 이후로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독서를 멈추지 않았죠. 이렇게 여러 책을 읽어가던 중, 문득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졌어요. 혼자 읽었을 때는 책을 덮고 잠에 들면 내용이 금방 머릿속에서 날아가지만, 느낀 점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으니까요.
그리고 결이 맞는 사람을 확인하기에 가장 좋은 게 책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책 장르가 겹친다면 자연스레 좋아하는 분야도 비슷할 거고요. 아,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로도 비슷한 사람이 많이 모이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이 깊은 분들이 잔연에 많이 오시고, 대화의 결도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공간 분위기가 굉장히 좋을뿐더러, 음식도 다른 모임과 달리 다채롭게 구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공간과 음식 메뉴를 기획할 때 신경썼던 부분이 있으신가요?
제가 공간과 음식에 대한 기준이 좀 높아요. 제가 책을 읽었을 때 만족스러운 공간, 제가 먹었을 때 맛있는 음식을 참가자들에게 제공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희 직원들에게 죄송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자주 메뉴를 디벨롭하며 바꾸거든요. 제가 먹는 거에 조예가 깊어서 그런가 까탈스럽기도 하고요.(웃음)
조도와 공간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에요. 사람들은 실내에서 모임을 갖지만, 통창이 있으면 개방감이 느껴져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눠도 답답함을 느끼지 않거든요. 여러 모임을 다니면서 추가하고 싶었던 요소들, 그리고 저의 개인적 취향이 결부된 것이 연플레이스 모임 공간과 음식들이라고 생각해요.
연플레이스를 운영하면서 보람찼던 점이 있나요?
모임에서의 만남이 일회성으로 끝날지, 아니면 인연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저희 모임에서 만나 연인을 넘어 부부사이가 된 분들도 계시죠. 저는 이런 연락을 받았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연인이 되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끼리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간다는 소식에 큰 보람을 느끼죠. 인생네컷 사진을 보내오거나, 정기적인 모임 사진을 보내줄 때 이 일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연플레이스를 운영하며 힘들었던 일을 말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상경하기도 했고, 모임 브랜드를 운영하다보니 역설적으로 친구가 많이 없어요. 그리고 사람들의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외로움이라는 키워드를 계속해서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제가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더군요. 이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며 이겨내려고 하지만 쉽진 않네요.
그리고 최소 인원이 모이지 않아 모임이 열리지 않을 때 가장 마음이 아파요. 저도 그렇지만 저희 팀원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하거든요. 회의할 때면 열정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참가자들을 위해 어떤 콘텐츠가 필요할까 늘 고민해요. 이렇게 열심히 기획한 모임이 열리지 않을 때 저희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연플레이스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제가 항상 연플레이스 인스타그램에 넣는 문구가 있어요. 바로 ‘다정한 사람’입니다. 연플레이스에 오시는 분들의 직업은 직장인, 대학생, 사업가 등 정말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대화의 결이 부드럽고 상대를 존중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주십니다.
연플레이스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가 있나요?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 인연을 선물하고 싶어요. 만약 누군가의 일상이 집-직장의 반복이었다면 연플레이스에 다녀간 이후로는 소중한 사람과 다채로운 세상을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건조한 일상 속에서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과 다시 만나 저녁을 먹는다던지, 다 같이 모여 여행을 간다던지. 이런 일상 속에서의 특별함을 심어주고 싶어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상하고 있는 게 많긴 해요. 열명 정도 모여서 저녁 다이닝을 함께 즐기는 공간을 기획중이고요. 제가 속초 사람이다보니 고향에 모임 공간을 만들어 속초 여행 온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신나게 놀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도 싶네요.
예술을 향유하는 아트인사이트 구독자들께서 이 인터뷰를 재밌게 읽고 계실 것 같은데요. 대표님도 평소에 예술을 즐기시는 편인가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전시를 자주 보러가는 편이에요. 최근에 본 전시는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이었는데요. 죽음에 관한 전시에요. 모임 브랜드를 운영하는 일이 외로움을 직시하고 다루는 일이다보니 고통과도 밀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를 좀 깊게 탐구하기 위해 전시를 보러 다녀왔습니다.
가장 좋았던 전시회는 2024년에 열렸던, [유토피아:노웨어, 나우 히어]였어요. 전시에서 본 문장들이 정말 공감이 됐고, 연플레이스 인스타그램을 꾸밀 때 큰 영감을 받았죠. 일상에서 대화를 나눌 때도 전시의 문장들처럼 따뜻하게 말하다보니 그 당시에는 저도 많이 다정해졌던 것 같아요.
앞으로의 연플레이스는 어떤 모습일까요?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처음 만난 사람이 인연으로 남는 모임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겁니다. 무엇보다 연플레이스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희 모임에는 내향인 분들이 정말 많이 와요. 그렇다보니 연플레이스는 누군가 방치, 소외되는 걸 정말 경계하죠. 연플레이스 직원들이 다정하게 챙겨주고, 다른 참가자들과 연결을 시켜주니 다들 부담 없이 방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를 포함한 직원들 모두가 모임에 진심이다보니 저희와도 친하게 지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잠깐 들렀다가 오래 남는 인연을 만들어가는 공간.
연플레이스가 만들고픈 내일입니다.
연플레이스 최지훈 대표 / @_yeonplace
연플레이스 인스타그램 @_yeonp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