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담는 그릇, 공간
종지그릇엔 간장이, 밥그릇엔 밥이 담겨있듯, 그릇 안에는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내용물이 담겨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공간은 음식이 담겨있는 그릇과 유사하다. 같은 음식이 한 데 담겨 있는 그릇처럼 특정 공간에는 비슷한 취향과 결을 지닌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간과 사람의 이미지를 결부시켜 떠올리기도 한다. 축구장을 생각하면 유니폼을 맞춰 입은 축구 팬들이 연상되고, 록 페스티벌을 떠올리면 수건을 이마에 두른 채 펜스를 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마니아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처럼.
즉, 공간의 이미지는 평수나 주소와 같은 절대적인 사실보다 특유의 분위기나 얽힌 추억을 통해 생성되고 각인된다. 그러나 모든 공간이 각자의 고유한 무드를 갖춘 건 아니다. 유행하는 공간 마케팅을 위해, 사람을 끌어모아 수익을 내기 위해 소위 잘나가는 공간의 분위기를 모방하는 경우가 흔하다. 새로운 공간은 우후죽순 나타나지만, 기억에 남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난립하는 공간들. 지도 앱을 켜고 원하는 분위기를 정하면 우수수 쏟아지는 몰개성한 장소들 사이에서, 오늘 소개할 장소, 웍바이술0.05는 특별하고 유일한 매력을 반짝이며 이태원의 밤을 빛내고 있다. ‘여기 들어오면 예술가가 됩니다.’라는, 흥미롭지만 선뜻 이해하기는 힘든 문구를 내건 채.

나는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고 있고, 영화를 만들고, 소설을 쓰며 예술을 탐닉하는 삶을 살아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남들에게 나를 ‘예술 하는 사람’으로 소개한 적은 없다. 작년 말, 예술인 네트워킹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예술청을 찾았을 때에도 내가 찍었던 영화 이야기나 썼던 소설 이야기 따위는 일절 하지 않았다. 별 볼일 없다고 여겼기에 낯 부끄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예술인’의 세상으로 나를 편입시키기엔 그들과 나 사이에 두터운 장벽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예술인들이 모인다는 공간으로 소개받았던 웍바이술0.05은 공간에 들어서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꽤 난도가 높은 장소였다. 미술가, 힙합 댄서, 배우, 싱어송라이터…. 심지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예술까지. 공간에 입성하기 전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예술가들의 존재는 나의 삶과 상당히 이질적일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 지어버렸다. 앞서 말했듯, 나는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이지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염려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나는 먼 존재인 예술가들을 눈앞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걱정도 되었지만, 설레기도 했다. 향유자로서 특별한 대상인 예술인들과 만나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향유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웍바이술0.05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예술인이고, 당연히 그 안에서의 관계는 모두 예술인과 예술인의 만남이었다. 이 굴레에서 나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곳에서 경험한, 잊지 못할 순간들을 통해 그동안 나의 머릿속에 박혀 있던 생각이 얼마나 얄팍하고, 심지어 삶에 심히 해로운 것인지도 알아차리게 되었다.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웍바이술0.05는 예술인이어서 모이는 공간이 아니었다. ‘여기 들어오면 예술가가 됩니다.’라는 입구의 문구처럼, 그곳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공간이었다. 세상 속에서 어떠한 삶을 사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고려되지도 않았다.

감상을 먼저 늘어놓느라 소개가 다소 늦었다. 웍바이술0.05은 와인바 겸 예술을 주제로 다양한 모임이 열리는 공간이다. 이 소개 문구에서 방점은 ‘다양한’이다. 정말 다채롭고 섣불리 내용을 예상할 수도 없는 모임들이 열린다. 와인 마시면서 시 쓰는 모임, 대방어 그리면서 방어회 먹는 모임, 연애 상담소를 운영하는 모임 등…. 다 적을 수 없기에 이것으로 줄이지만, 이외에도 웍바이술0.05은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모임들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여유로운 예술가로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본 기자는 감미롭고 소중한 공간인 웍바이술0.05의 무한한 매력이 독자들에게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간 운영자인 키키 디렉터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웍바이술0.05가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와 예술 공간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던 키키 디렉터의 속내를 지금부터 함께 들여다보자.
“Save people’s lives” 예술이 사람을 구하는 공간, 웍바이술0.05
키키 디렉터의 대행을 맡아 줄 조나단군
안녕하세요 디렉터님, 공간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마침, 잘됐네요. 어제 찾아온 외국인 손님이 정의를 내려줬어요. 와인을 마시다가 옆에 놓인 기타를 보고 퉁기기 시작하더라고요. 소리를 조금씩 내보더니 이윽고 연주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노래까지 한 곡 했죠. 노래를 마친 그 친구가 제게 묻더라고요. 저에게 이 공간을 왜 만들게 되었냐고요.
저는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을 말했죠. “내가 스트레스를 예술로 푸니, 다른 사람도 예술을 즐기며 살아갔으면 좋겠다.”고요. 그러더니 이렇게 대답했어요. 세이브 피플스 라이프.
세이브 피플스 라이프?
네. “Save people’s lives.” 그 친구가 저한테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했다고 했어요. 이 말을 듣고 나니 공간의 정의가 재정립되었어요. 인생을 구한다는 거창한 의미까지는 아니어도, 예술을 통해 타인을 돕는 공간이 바로 웍바이술0.05인 것 같아요.
공간의 이름을 왜 웍바이술0.05(workbysoul0.05)로 지으셨나요?
‘워크 바이 술.’ 일을 술에 의해 한다. 라는 뜻이에요. 제가 밤마다 와인을 마시며 일하거나 시를 쓰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웍바이와인이라는 이름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와인은 다른 술을 포함하지 못하니까 웍바이술로 정했고, 술을 영혼을 담아 발음한다는 의미로 ‘sool’이 아닌 ‘soul’로 적기로 했죠.
뒤에 붙은 숫자는 원래 0.03이었어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는 혈중알코올농도 0.03에서 따온 숫자였는데요. 영화 [어나더 라운드]를 보고 난 이후 0.05로 바꿨어요. 중년 남자 선생님들이 혈중 알코올 농도 0.05가 되면 삶의 활력을 되찾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음주 수업을 하는 이야기인데요. 설득력 있는 논리여서 가게 이름에 넣기로 했어요.
진행했던 예술 모임이 아주 많은데 그중에 애정 가는 모임이 있으신가요?
첫 번째 모임이었던 와인 마시며 시 쓰기 모임이에요. 와인과 시. 모두 제가 좋아하는 두 가지라 애정이 갔던 것도 있지만, 공간을 열고 첫 모임이라 더 떨렸던 것 같아요. 나 말고 와인을 마시며 시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아 걱정했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 거예요. 사람도 많고 처음이라 덜덜 떨면서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만족도가 좋아서 다행이었어요. 그때부터 차근차근 성장했으니, 첫 모임이 가장 기억에 남게 되네요.
운영하면서 힘들었던 점도 있나요?
아무래도 워크인 손님이 많지 않으니,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힘든 점이에요. 그래서 점심에 핫도그도 팔아보고, 운영시간도 늘리려고 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공간의 강점인 모임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웍바이술0.05에서는 주기적으로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필 더 소울' 전시회를 열고, 수익을 공유한다.
필 더 소울이라는 기획전을 주기적으로 여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수익의 일부를 예술인들과 나누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나누는 건가요?
수익이 많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나누려고 노력해요. 다른 곳은 ‘벽 장사’라는 이름으로 예술가들에게 돈을 받고 그림을 걸어주거든요. 예술가가 돈을 내고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했고, 한계를 깨고 싶기도 했어요.
웍바이술0.05는 그림과 와인을 페어링하는 방식을 사용해요. 손님이 어떤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면 그 작품과 페어링 된 와인을 주문하는 거죠. 그러면 손님이 지불한 금액에서 10퍼센트가 그림을 그린 원작자한테 가요. 예술가에게 작품 활동의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고, 실제로 수익이 돌아가기도 하죠.
공간의 흥행과 더불어 예술가와의 상생도 신경 쓰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도 옛날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예술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예술가들이 얼마나 어렵게 작업하는지 아니까요. ‘프랑스 홈스테이’라고 웍바이술0.05의 주력 콘텐츠가 있어요. 프랑스 할머니와 유학생들이 모여 밥을 먹으며 즉흥으로 연기하는 모임이에요. 프랑스 할머니가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 네덜란드인 유학생을 모두 차별하는 상황에서 유학생 역할인 참여자가 자유롭게 대응하는 게 주된 내용이죠.
이 중에 프랑스 할머니 역은 실제 배우를 고용해요. 유명 배우는 아니고 단역 배우예요. 이분들은 연기라는 예술 활동 특성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어서 다른 일을 같이하기가 힘들어요. 촬영이나 연극이 잡히면 바로 일을 그만둬야 하니까. 이러한 점을 고려한 콘텐츠가 ‘프랑스 홈스테이’에요. 참여자들은 배우들의 리드로 부담 없이 즉흥 연기를 펼칠 수 있고, 배우들은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으니까요. 예술가와의 상생이 좋은 모임으로 연결되니 자연스럽게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이런 모임을 계획할 때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대부분 제 경험에서 따온 모임이 많아요. ‘술 마시며 시 쓰기’는 저의 개인적인 취미였고, ‘프랑스 홈스테이’는 제가 프랑스에서 유학했을 때의 일화에서 따온 거예요. 와인과 작가를 페어링하는 것도 몇 년 전부터 혼자 생각했던 마케팅 방식이죠. 이 외에는 비즈니스나 마케팅 관련해서 강연도 보고, 책도 보면서 모임이나 공간의 셀링 포인트를 구상하죠. 아침에 경제 신문을 읽는 것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이 많은지 쉽게 알 수 있거든요.

웍바이술0.05에서 진행된, 와인을 마시며 드로잉하는 모임
평범한 직장인에서 예술 공간 디렉터가 되기까지, 디렉터 키키의 소망
현재도 본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직장을 다니다가 웍바이술0.05를 열게 된 이유가 있나요?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요. 3년 전 일이었는데, 직장 동료였던 친구가 먼저 진급해 상사가 된 적이 있었어요. 원래는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상사가 되자 저를 옥죄기 시작하더라고요. 원래 친구여서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 같아요. 본래 남에게 휘둘리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반복되는 가스라이팅에 휘둘리게 된 거죠.
충동적으로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생각해 보니 집이 1층이라 실천은 못 했지만….(웃음) 아무튼 이 역경을 이겨내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어요. 밤마다 미친 듯이, 한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그렸어요. 이렇게 1년을 보내니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되더라고요. 친구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많이 가라앉았어요.
이때 그림 작업에 열중하던 작업실이 이태원에 있었어요. 그 작업실에서 지인들을 모아 작은 영화 감상회를 열곤 했었죠. 열어보니 반응이 좋았어요. 여기서부터 사업 구상이 시작된 거죠. 예술 활동을 마음껏 열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 와인과 작품을 연계하는 갤러리. 사람들이 자유롭게 음악하고 그림을 그리고, 그러면 술 한 잔 주면서 위로하는 이미지…. 이런 기획을 머릿속에 그리다가 결국 실행한 거죠.
그림 작업에 열중하던 중 사람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뭘까요?
제가 예술을 통해 고난을 이겨낸 만큼 다른 사람도 치유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예술이 정말 필요해 보였어요.
대학 시절에는 영화감독을 꿈꿨다고 알고 있어요. 아직도 영화 제작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나요?
맞아요. 20대 때 영화를 공부하러 프랑스에 가기도 했죠.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어요. 영화를 세 편 정도 만들었는데 독특한 재미는 있었지만 깊이가 없었거든요. 이후에 한국에 들어와 심리학 공부를 하고, 석사까지 딴 뒤에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써보려 했어요. 이 시점에서 현실의 벽에 부딪혔어요. 돈이 필요했고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해야 했죠. 이때 결심했어요. 40살이 넘으면 영화를 찍자고요. 이제는 훌쩍 넘었으니 올해가 지나기 전에 본격적으로 찍어보려고 합니다.
창작 활동, 직장 생활, 공간 운영 등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하고 계신데요. 체력 관리나 시간 배분이 까다로울 것 같아요.
맞아요. 개인 생활이 아예 없어요. 취미 생활을 누리거나 여유를 가지며 드라마 볼 시간도 없죠. 퇴근하면 여기(웍바이술0.05)에 와서 일하고, 주말엔 아이들 보고. 그런데 이렇게 생활한 지 1년이 넘어가니 이제는 적응됐어요. 남들이 집이나 밖에서 쉴 때 저는 제 공간을 꾸리며 여가 생활을 보내는 거죠. 포기해서 슬프다거나 힘들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이전의 삶과 비교했을 때도 지금이 훨씬 행복해요.
웍바이술0.05과 함께 한 예술인들이 나중에 이 공간을 어떻게 기억했으면 하나요?
이곳에서 자주 공연했던 분 중에 래퍼 재영아이(@jaeyoungeye)가 있어요. 이분이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굉장히 노력해요. 가수잖아요. 이 친구가 성공했을 때, 시상식 같은 높은 자리에서 이 공간을 언급해 줬으면 좋겠네요. 어렸을 때 웍바이술0.05에서 마음껏 노래도 부르고 다른 예술인도 많이 만나면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요. 다른 사람도 예술적 성취를 이뤘을 때 이 공간을 다시 돌아봐줬으면 좋겠어요.

앨범 수록곡을 선보이는 래퍼 재영아이(@jaeyoungeye)
지구의 예술이 화성에 닿을 때까지
키키 디렉터님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요?
가끔 그런 상상을 해요. 일론 머스크에게는 화성에 가는 계획이 있잖아요. 먼 훗날 이 계획이 실현되어 사람들이 화성으로 넘어간다면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이때 화성에서 제가 기획한 이런저런 예술 활동을 하는 거죠. 스트레스도 풀고,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이처럼 많은 지구인이 예술과 삶을 접목한다면 분명 화성에 갔을 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영화 [마션]을 보면 사람들이 우주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살아가잖아요. 예술도 마찬가지예요.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예술을) 해야 해요. 그냥 하는 거예요. 손재주가 좋아서 그림을 그리고, 춤을 잘 춰서 춤추고 그런 게 아니에요. 누구든 상관없이 밥 먹듯이 해야 하는 거예요.
종교 같네요. 마치.
그렇죠. 이걸 종교처럼 만들어야 해요. (웃음)
웍바이술0.05에서는 정말 많은 예술 모임이 열려요. 디렉터님이 생각하는 예술의 범주가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예술을 해야 한다고는 했지만, 모든 것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요. 제가 생각하기엔 결과물이 있어야 해요. 도출하는 형식은 천차만별이더라도요. 시가 될 수도 있고 그림이 될 수도 있는데, 나로부터 무언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분들이 이곳을 찾았으면 좋겠는지.
예술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는 뜻이죠.
예술은 밥 먹듯 하는 것
인터뷰를 진행한 날에도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청년들이 팀을 꾸려 기획한 연기 모임이었다. 장마철이라 하늘이 뚫린 듯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참여자들은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젖은 바짓단을 여미며 웍바이술0.05의 문을 열었다.
평소 가슴 깊은 곳에 숨긴 감정을 몸짓과 입을 통해 내보이는 것이 모임의 목적인 듯했다. 긴 테이블에 둘러앉은 참여자들은 어색한 소개를 나누고, 내면의 이야기를 연기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 틈이라 긴장한 탓인지 멀리서 엿본 그들의 연기는 다소 딱딱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는 초심자의 미숙함일 뿐이었다. 그들은 어느새 능숙한 배우가 되어있었고, 솔직한 감정을 실어 능숙한 연기를 펼쳤다.
참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예술을 매개로 함께 걸어가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지켜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이 공간과 내가 공유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공간이 내게 안겨준 경험들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절대 시도조차 해보지 않을 행위였으니까.
길거리 공연에 열중하는 예술인들을 마주할 때면 신기한 사람을 본 것처럼 흘깃 눈길을 주거나 SNS에 올릴 심산으로 핸드폰을 꺼내 촬영하던 것에 그치던 내가 이곳, 웍바이술0.05에서 10년 만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생애 처음으로 즉흥 댄스를 췄다. 왜 그런 용기가 샘솟았는지는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포근한 공간이 용기를 북돋아 주었는지, 친절한 사람들이 힘을 보태주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물은 선명했고, 나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춤을 추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되었다고. 이 공간에서는 길거리 공연자나 유명 페스티벌 헤드라이너처럼, 나도 나름의 예술인이라고.
물론 아직 당당하게 주장하지는 못한다. 예술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 되기엔 내공이 한참 부족한 병아리일 뿐이니까. 그러나 쭈뼛쭈뼛 이야기를 꺼내는 것 정도는 가능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이 글에 적은 내용처럼, 용기 내어 예술을 만져보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의 간극을 조목조목 읊으며 예술을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예술인이 되는 것, 예술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쉽다. 고통을 이겨내며 태어났고, 역경을 견뎌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정답이 웍바이술0.05의 가게 겉면에 대놓고 적혀있지 않는가. ‘여기 들어오면 예술가가 됩니다.’라고. 그저 들어서면 된다. 문을 여는 순간, 당신도 예술가가 될 것이다.
모든 지구인이 예술가가 될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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