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TV 속의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나는 2분 후 미래의 나야. 넌 지금 2분 후의 미래를 보고 있어. 이 TV는 미래를 보여주는 타임 TV야.”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번 주 로또 1등 당첨 번호를 물어볼 것인가? 내일 어떤 주식 종목이 오를지 물어볼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과 결혼하게 될지 물어볼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런 질문은 다 소용이 없다. 잊지 마시라. 이 타임 TV에는 ‘2분’이라는 제한이 있다.
그럼 이제 당신은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타임 TV를 통해 2분에서 더 2분 뒤, 그보다 더 2분 뒤, 또 그보다 더 2분 뒤... 이렇게 더욱 먼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황당하고도 기발한 물음에 가장 유쾌한 답을 내놓는 영화가 있다.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은 2020년 제작된 일본의 SF 영화로, 7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타임 루프를 주제로 짧고 굵게 진행되는 소동극이다.
‘드로스테 효과’란 한 화면 속에 동일한 화면이 작게 삽입되어 재귀적으로 무한 반복되는 효과를 일으키는 기법을 뜻한다. 양쪽으로 거울이 달린 엘리베이터에 섰을 때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안쪽으로 무한히 반복되어 보이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드로스테 효과’는 네덜란드의 코코아 브랜드인 ‘드로스테(Droste)’의 포장지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번 영화에도 그 포장지 디자인이 상징처럼 등장한다. 단순한 상표 이름을 넘어, 고작 2분이라는 짧은 시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무한히 확장되는 이 영화의 리듬을 가장 완벽하게 요약하는 키워드인 셈이다.
TV 속의 TV 속의 TV를 타고, 무한히 확장되는 2분의 시간

주인공 ‘카토’는 한 건물 1층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기타를 연주하고 밴드에 열정을 갖고 있는 평범한 남성이다. 그는 우연히 건물 2층에 있는 자신의 방 TV와 1층 카페의 TV가 2분의 시간 차를 두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아챈다. 카페의 TV는 지금으로부터 2분 후의 미래를 보여준다. 카토는 얼떨떨해하지만, 카페 직원과 카토의 지인들은 엄청난 발견이라며 저마다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고 들뜬다.
하지만 그들은 곧 ‘2분 후의 미래를 보는 것’의 한계를 맞닥뜨리게 된다. 2분으로는 로또 당첨 번호도 알 수 없으며,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을 방법도 알 수 없다.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고자, 2층 방의 TV와 1층 카페의 TV를 마주 보게 만들어 과거와 미래가 끝없이 연결되는 ‘드로스테 효과’를 만들어낸다.

‘TV를 통해 2분 후의 자신을 만난다’는 설정은 분명 참신하다. 그러나 이 설정만으로 한 편의 영화를 견인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감이 있다. 하지만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은 참신한 설정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인물들과 예상 못 한 돌발 상황을 연이어 등장시키며 설정의 힘을 키우고 70분간 유쾌하게 달려간다. 일본 코미디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따뜻함이 돋보이는 본 작품은 초반 장면에서 지루함을 느끼던 관람객도 후반에는 주인공을 응원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거대 자본도, 특수효과도 필요 없는 '원테이크'의 마법

왓챠피디아 등의 감상평에서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을 두고 일본의 원테이크 좀비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이하 ‘카멈’)를 떠올리는 관객이 다수 확인되었다. ‘카멈’을 매우 좋아하는 필자 역시도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을 즐겁게 관람하였다. ‘카멈’은 전문 영화 제작사가 아닌, 극단 겸 영화학교의 워크숍 개념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 역시 일본 교토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극단 유럽기획’이 야마구치 군타 감독을 필두로 제작하였다. 본 작품의 제작비를 위해 진행된 크라우드 펀딩은 모금 하루만에 목표액을 모두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 영화인이 아닌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든 작품이라서일까?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은 거창한 특수효과나 거대 자본 없이도 관람객을 소리 내어 웃음짓게 만든다. 빌라 건물 안에서의 한정된 전개와 아이폰 촬영, 의외로 SF의 문법을 따르는 요소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끝나는 엔딩까지. 엔딩을 본 후에 뒷맛 없이 깔끔하고 유쾌하게 극장 문을 나설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나 눈에 띄는 원테이크 촬영 기법은 관람객이 카페 안에 함께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며 몰입감을 높이고, 영화의 위트와 통통 튀는 매력을 강화한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미래의 과거가 아니야

카페 직원과 지인들이 2분 후의 미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생각하며 환상에 부푼 것과 달리, 주인공 카토는 미래를 본다는 행위에 시종일관 저항감을 드러낸다. 내가 지금의 나로서가 아닌, 미래에 종속된 ‘과거’가 되어 미래가 이끄는 대로 휘둘리게 되는 것을 염려해서다. 실제로 등장인물들은 2분 후의 미래를 봐버린 이상, 2분 후의 자신은 그 미래를 거스를 수 없는 ‘인과율’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미래를 알게 되는 것은 나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좋은 일일까? 아니면 나의 자유의지를 묶어 놓는 족쇄일까? 이것에 대한 주인공의 답은 영화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출발하여 귀엽고 유쾌한 SF 활극을 보여주다 종극에는 현재와 미래, 그리고 자유의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며 마무리되는 영화,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은 다가오는 8월 18일 정식으로 개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