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국의 신민과 피지배국의 주민은 과연 구조적 불평등을 넘어서 대등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에 주목한 독서모임이 백운시장 동네책방 '생활용품'에서 진행되었다. 최근 부커상을 받아 주목받은 양솽쯔의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1938년 대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여성의 사적 여정은 단순한 감정적 교류를 넘어 양국 사회가 걸어온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진행은 대만 공영방송 PTS 양첸하오 주한 특파원이 맡았다. 그는 2013년부터 서울에 거주하며 남북한과 관련된 다양한 뉴스를 취재하고 이를 중화권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동안 영국방송 BBC 중국어판, 대만공영방송(PTS)의 한국 주재 객원기자로 활동해왔다. 또한 한국에서는 <미디어오늘>과 <한겨레 21>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이태원참사 당시에는 긴급리포트를 발행하여 2023년 아시아출판협회가 수여하는 '아시아우수보도상' 은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는 백운시장 인근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뉴스 브랜드인 kornews를 운영하고 있다.

# 일본인이 쓴 적 없는 일본인의 여행기
『1938 타이완 여행기』은 서사 구조부터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이 책은 일본인 작가 아오야마 치즈코가 1938년 대만을 여행하며 일본어로 남긴 기록을 훗날 한자로 번역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아오야마 치즈코라는 작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일본인이 작성한 일본어 원작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 양상쯔가 처음부터 번역서의 형태를 빌려 창작해낸 허구의 소설이다.
양 기자 역시 강연에서 이 설정을 가장 먼저 강조했다.
“이 책은 실제 번역소설이 아니에요. 번역소설처럼 만든 소설이에요. 아오야마라는 주인공도 실제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고요. 그런데 아오야마가 만나는 대만 친구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했어요. 실제 인물은 양칭허라는 대만 최초의 여성 기자예요. 1936년, 1937년쯤 여성 기자가 거의 없었던 시절에 신문사에 들어가서 사장한테 ‘나는 남성들이랑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던 사람이에요.”
가공의 일본인 여행자와 실존했던 대만 여성의 삶이 한 작품 안에서 마주친다. 소설 속 왕칭허는 아오야마를 안내하면서 대만의 음식과 문화, 주민들의 삶을 소개한다. 두 사람은 이동하는 지역마다 새로운 음식을 찾아 먹는다. 독서모임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음식 묘사가 반복된다"는 반응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낯선 요리를 찾아보며 읽었지만 뒤로 갈수록 음식 설명 부분을 건너뛰었다는 소감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 반복적인 식사 장면은 미식 여행의 단순한 장식 수준을 넘어선다. 소설 속 음식에는 대만을 거쳐 간 여러 집단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다. 복건성 출신 이주민과 하카인, 원주민, 일본인 등 서로 다른 집단이 오랜 세월 한 섬에 살아가면서 음식 문화 또한 단일한 계통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변했다.
양 기자는 소설이 포착한 대만의 핵심적 특성을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했다.
“이 책에 대만의 다양성이 많이 나와요. 민난 사람도 있고, 하카 사람도 있고, 원주민도 있고,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음식도 보여주죠. 많은 외국 사람은 대만이라고 하면 그냥 한족만 생각해요. 그런데 한족도 여러 가지이고 원주민도 있어요. 이 책을 통해서 대만의 다양성을 다시 알게 되는 거예요.”

# 같은 식민지를 다르게 기억하는 이유
이날 강연에서 가장 깊이 있는 토론이 이어진 대목은 한국과 대만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였다. 한국에서 일제강점기는 침략과 강제동원, 민족말살정책, 독립운동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본인 화자가 식민지 대만을 거닐며 자신의 나라를 ‘본국’이라 부를 때 한국 독자가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양 기자가 설명한 대만의 역사적 기억은 훨씬 복잡했다.
“대만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일본 사람이 이렇게 봤구나’ 하고 읽어요.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일본 식민지를 직접 겪은 세대인데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본을 너무 좋아했어요. 일제시대가 제일 아름답고 제일 잘 발전됐다고 기억했어요. 왜냐하면 그 뒤로 이어진 역사가 훨씬 잔혹했거든요. 일본의 탄압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식민지니까 당연히 권력의 차이도 있고 탄압도 있었어요. 그런데 도로가 만들어지고 시스템이 생기고, 그다음에 국민당 시대까지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비교가 되는 거예요.”
양 기자가 거듭 강조한 개념은 ‘비교’였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폭력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려는 취지가 아니라, 청나라 말기와 일제 통치, 그리고 전후 국민당 통치라는 상이한 체제를 연이어 경험한 세대가 과거를 상대적 맥락에서 기억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대만에서는 일본이 패전한 이후 중화민국 정부가 들어섰으며, 뒤이어 국민당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장기간 정치적 탄압이 지속되었다.
강연 중 한 참가자가 대만 노년층의 일본 관련 기억을 두고 “국민당 시기와 비교되기 때문이냐”고 묻자 양 기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비교가 돼요. 일제에 세뇌되어서가 아니라 그 이후 역사와 비교가 돼서 그래요. 국민당이 오기 전에는 중국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어요. 그런데 국민당이 와서 나쁜 일을 많이 했죠. 그래서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는 ‘일제시대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는데 왜 국민당이 온 뒤에는 이런 문제가 생겼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일제시대를 그리워한다고 해서 식민지배가 좋았다는 뜻은 아니에요.”
이 때문에 ‘친일’이라는 단어가 한국과 대만 두 사회에서 지니는 정서적 무게감 역시 같지 않다고 양 기자는 덧붙였다.
그는 한국 생활 도중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를 두고 한국인 친구들과 의견이 갈렸던 경험도 소개했다. 대만에서 어린 시절 이 작품을 보며 전쟁의 비극 속에서 죽어가는 남매의 모습을 보고 눈물 흘렸던 자신과 달리, 한국 지인들은 일본인을 피해자로만 다룬다는 점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때 양 기자는 두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간극을 비로소 실감했다고 밝혔다.
“한국 친구들한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대만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갖는 우호적인 감정을 조금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도 한국 사람들이 왜 일본을 싫어하는지 같이 이해해 줘야 해요. 일본이 대만과 한국을 대했던 방식도 달랐고, 각자 그 이후에 겪은 역사도 달랐으니까요.제가 한국에 와서 『반딧불이의 묘』 이야기를 했을 때도 ‘아, 시각 차이가 이렇게 크구나’라고 처음 깨달았어요.”
동일한 제국의 식민지였다는 공통점만으로 두 사회의 역사적 기억까지 같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내지인·본도인·완생, 한 공간 안의 서로 다른 위치
이러한 역사적 차이를 파악하고 나면 소설 속 아오야마라는 인물도 새로운 각도에서 보인다. 1938년 대만에는 동일한 공간에 살아가면서도 서로 다른 신분적 지위를 지닌 이들이 공존했다. 양 기자는 소설 속 인물 구도를 설명하며 ‘내지인’, ‘본도인’, ‘완생’이라는 세 가지 지위를 제시했다.
내지인은 일본 본토 출신의 일본인을 의미한다. 본도인은 식민지 대만에 살던 대만 주민을 가리키며, 완생은 대만에서 태어난 일본인을 뜻한다.
“당시 대만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요. 첫 번째는 내지인,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 사람이에요. 대만의 한족이나 원주민은 본도인이라고 하고요. 세 번째가 완생이에요. 대만에서 태어난 일본 사람이죠. 1938년이면 이미 식민지가 된 지 40년이 넘었으니까 일본에서 온 관료나 기업인들이 대만에 정착해서 아이를 낳았어요. 그런데 일본 사람인데도 완생은 일본 본토에 가면 차별을 당하기도 했어요. ‘너는 일본어 억양이 왜 이상하냐, 우리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식이죠. 그래서 대만 사람이 겪는 차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했어요.”
주인공 아오야마는 이 가운데 내지인에 해당한다. 식민지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다. 그러나 작가 양솽쯔는 그를 일방적인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만의 음식과 주민들에게 순수한 호기심을 보내며, 때로는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에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모호한 태도는 독서모임에서도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한국 독자들에게 아오야마는 "어느 편에 서 있는가"라는 의문을 남겼지만, 양 기자는 바로 그 점이 대만 독자에게는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오야마는 내지인이죠. 제가 보기에는 상대적으로 좋은 내지인이에요. 그렇게 오만하지 않고, 대만에 와서 ‘이거 신기하다, 이 음식 먹어보고 싶다’고 호기심도 보여요. 일본이 하는 일에 반감을 보이는 부분도 있고요.
그런데 또 일본 산하에서 만들어진 시설을 보고 감탄하기도 하잖아요.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는 ‘이 사람 정체성이 없다,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만 사람의 시각에서는 오히려 ‘이 사람이 재미있네, 이쪽 생각도 있고 저쪽 생각도 있네’라고 볼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인물로 보는 거죠.”

#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결국 문제의 핵심은 아오야마 개인의 성품보다 그와 왕칭허 사이에 놓인 구조적 불평등에 있다.
두 사람은 함께 여행하고 같은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눈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점차 깊은 정서적 교류를 이어간다. 하지만 둘의 관계에서 일본인과 대만인이라는 신분적 지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왕칭허는 일본 교육도 받았고 일본 문화도 잘 이해하고, 도쿄에 가보고 싶다는 동경도 있어요. 그런데 점점 식민지 통치에 대한 반감도 보여주죠. 아오야마한테 마음을 직접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갑자기 표정이 바뀌거나 자리를 떠나기도 하고, 또 몇 시간 뒤에는 돌아와 같이 음식을 만들어요. 갈등하는 거예요. ‘나는 완전히 친구처럼 대하고 싶은데, 나는 지배당한 사람이고 너는 지배하는 사람이다.’ 그런 지위의 불평등이 있는 거죠.”
친밀한 감정이 구조적인 권력관계까지 없애지는 못한다. 양 기자는 이 갈등을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으로 확장했다.
“원주민의 시각으로 보면 먼저 들어온 한족도 식민지 사람으로 볼 수 있죠. 그런데 일본인이 들어온 뒤에는 한족도 다시 식민지배를 당하는 사람이 돼요. 이렇게 권력의 위치가 계속 바뀌어요. 그러면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이 대만에 와서 본도인과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사랑이라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요? 권력이 불평등한 상황에서 두 사람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이 책에서 계속 나오는 문제의식입니다.”
『1938 타이완 여행기』에서 식민주의는 무력이나 군대의 모습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의 방식, 누군가를 설명하고 번역하는 주체, 여행의 주도권과 안내 역할 등 사적인 관계의 세부 요소마다 권력의 작용이 스며 있다.
그러므로 아오야마와 왕칭허의 관계를 단순한 우정이나 연애로 규정하기 어렵다. 서로를 향한 호의가 진실할지라도 두 사람 사이에는 제국과 식민지라는 엄혹한 조건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 식민지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삶
일본인과 대만인이라는 차이와 별개로 아오야마와 왕칭허에게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두 사람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왕칭허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은 1930년대에 남성 기자와 동등한 처우를 요구했다. 오늘날 기준에서는 당연하게 보이지만, 당시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남성과 동일한 조건을 요구하는 행위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소설 속에서도 여성은 결혼 이후 가사와 출산,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규정된다.
“왕칭허가 ‘나는 결혼한 뒤에는 집에서 부엌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하던 일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죠. 당시는 돈이 많은 집의 여성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기 어려웠어요. 아오야마도 대만에서 강연을 하는데 참석자가 거의 다 여성이고 여중, 여고예요. 유명한 작가인데도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잘날 수 있나, 여자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주류였던 시기예요.”
아오야마 역시 주변으로부터 결혼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결혼을 여성의 필연적인 미래로 순응하지 않는다. 왕칭허와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삶을 상상해본다.
양 기자는 이 시기를 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조금씩 변해가는 전환기로 설명했다.
“아오야마는 ‘나는 결혼하지 않아도 되고 왕 씨와 친구든 애인이든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잖아요. 그때 여성의 지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지만 제한은 여전히 많았어요. 새로운 여성주의 사상도 들어오던 시기였고요. 그래서 이 소설에는 식민지의 권력 문제뿐만 아니라 그 시대 여성이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도 같이 들어가 있어요.”
결과적으로 두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는 하나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본인과 대만인이라는 민족적 위치는 대립하지만, 동시에 둘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삶의 궤적을 벗어나려 노력한다. 서로 다른 권력관계가 한 사람의 삶 안에서 복합적으로 교차한다.

#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대만
작품은 아오야마와 왕칭허 사이의 감정에 명확한 명칭을 붙이지 않는다. 우정으로 단정하기에는 깊고, 연애로 규정하면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남는다. 이러한 모호함은 후대의 인물들에게까지 이어진다.
양 기자는 이 관계를 대만 사회의 퀴어 정체성과 연결하여 풀이했다.
“이 책에 계속 나타나는 부분이 여성 간의 사랑이에요. 여성 간의 우호관계뿐 아니라 사랑관계도 어느 정도 형성돼 있죠. 그런데 뒤에 후손들이 나왔을 때도 자기 어머니와 그분의 관계를 정의하고 싶어 하지 않아해요. 동성애는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금기였으니까요.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대만에는 다양한 존재가 있고 풍부한 퀴어 문화와 다양한 아이덴티티가 있다는 거예요. 나는 여자이지만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고, 어느 하나의 신분으로만 나를 규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양솽쯔 작가 역시 공식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한국과 대만의 서로 다른 식민지 기억을 탐구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반면, 대만에서는 거부감과 향수가 복잡하게 공존한다고 짚었다.
이처럼 소설이 단일한 이름으로 정리하지 않는 대상은 두 사람의 관계에 그치지 않는다. 대만이라는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복건계 한족과 하카인, 수많은 원주민 집단이 터전을 잡았고 뒤이어 일본인이 들어왔다. 전후에는 다시 중국 각지에서 온 이들이 섬에 정착했다. 동일한 한자를 사용하면서도 표준 중국어와 대만어, 하카어의 발음과 언어 체계가 확연히 다르다.
# 다른 기억을 이해하는 방법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은 올해 국제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대만이 어떠한 과거를 거쳐 지금의 정체성을 형성했는지 지속적으로 탐구했다. 양솽쯔 작가는 2026년 국제 부커상 수상 연설에서 “문학은 자신이 자라난 토양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취지의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1938 타이완 여행기』이 1938년을 배경으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품 속 대만은 이미 일본 제국의 질서 아래 놓여 있지만 일본 그 자체라고 볼 수 없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깊게 받았지만 중국이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전부 설명되지도 않는다. 한족만의 섬도 아니며,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역사적 기억으로 통일된 사회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식민지에 대한 기억 또한 단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다. 한국 독자가 아오야마의 ‘본국’이라는 표현에서 식민지 권력의 불평등을 즉각 읽어내는 현상과, 대만 독자가 그의 모순된 태도에 흥미를 느끼는 반응은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그 차이를 확인하는 목적은 어느 한쪽의 기억이 옳고 다른 쪽이 틀렸음을 가려내려는 데 있지 않다. 다른 사회의 역사적 기억을 자신의 경험에만 비추어 단정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양 기자가 강연에서 한국과 대만이 서로를 향해 반복해서 당부한 핵심도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대만 사람이 일본에 대해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한국인이 성찰적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만큼, 대만 사람 역시 한국인이 일본 식민지배를 다르게 기억하는 역사적 배경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여행은 아오야마가 대만 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물리적 여정이 아닐 수 있다. 자신에게 익숙한 역사적 기억의 틀을 벗어나, 같은 과거를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의 자리까지 가보는 노력에서 『1938 타이완 여행기』이 독자에게 제안하는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