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내비게이션에서 이 멘트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길을 둘러본다. 길치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의 그런 반응은 불안함을 나타낸다. 길눈이 밝은 사람이 늘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도, 제시간에 가야 하는 상황이 아닌데도 늘 불안해한다. 물론 내비게이션에서 경로를 이탈했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평온하게 있을 수 없겠지만, 나의 그런 반응은 도로 위가 아닌 곳에서도 이어졌다. 사소한 것조차 이탈하지 않으려고 나를 압박했다. 꼼꼼하지 못하고, 덜렁대고, 스스로 부족한 점을 너무 잘 알기에 더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그런 점이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걸 알았다. 오히려 시야와 생각이 좁아지며, 머리는 멍해지고 행동은 뚝딱거려서 실수가 더 잦았다. 실력이나 나만의 매력이 발휘되지 못하기도 했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 완벽하게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엇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튀어 보이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저 보통의 사람들 속에 묻어가고 싶었다. 특히 가족이란 집단 안에서 무난한 사람이었으면 했다. 이상한 점은 동시에 보통의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보통 사람보다 남달라지고 싶었다. 그래야 특별하고 눈에 띄는 글을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 남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는 나는 존재감 1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내가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건 자란 환경 탓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사실 여기에 나의 탓도 있다는 걸 안다. 그걸 서른쯤에 깨닫는 바람에 나는 아직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어리석었던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다. 자신에게 있는 반짝이는 면을 일찍 발견하여 지켜보며 살아온 듯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 사람이 하는 예술은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수림뉴웨이브2026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솔직히 처음에는 큰 관심은 없었다. 일전에 관람 했던 국악 공연은 스토리가 있었기에 관심이 갔지만, 이번 공연은 오로지 연주만 있을 것 같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단순히 관람하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무엇을 느끼고 글에 담을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주제가 ‘엇’이라는 걸 안 순간, 순식간에 관심도가 훅 올라갔다.
수림뉴웨이브는 전통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루는 공연을 관객에게 선사해 오던 공연제다. 수림만의 시선으로 선정한 예술가들에게 실험의 장을 제공해왔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색을 마음껏 칠하고, 그 덕에 관객은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번 공연제는 26년 8월 27일부터 11월 5일까지 진행됐다. 매주 목요일마다 공연했으며, 주제는 ‘엇’이다. 이는 말 그대로 어긋나고 엇갈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자 김혜연의 말에 의하면 예상치 못한 것을 만난 순간 나오는 짧은 탄성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이 두 의미를 종합하여 필자는 어긋나고 엇갈리는 무엇에 놀람과 감동에 엇! 하고 감탄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었다.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건 주제에 담긴 의미뿐만이 아니었다. 수림뉴웨이브의 리플렛은 색이 뚜렷했다. 리플렛마저 주제 ‘엇’에 충실한 듯 보였다. 리플렛은 여행 콘셉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음악 여행을 떠나는 여행 콘셉트로 꾸며져 있었지만, 나는 ‘엇’의 세상을 여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각 공연 소개에는 이번 여행에서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남길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단순히 소개지로만 쓰이고 잊히는 게 아닌, 여행 일기장으로 하나의 기록물이 된 셈이었다. 공연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을 때 가기 좋은 카페들도 소개되어 있었고, 마지막 장에는 “이번 여행이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 되기를” 이라는 문장까지 있어서 공연 리플렛이 아닌, 여행 책 한 권을 읽은 듯했다.
공연은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로 시작됐다. 방지원 장구의 반주와 가야금의 선율이 고요하면서도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장구의 묵직하면서도 명료한 소리가 청아하고 애절한 가야금의 선율을 뒷받침해 주었다. 가야금, 장구, 추임새의 조화로운 소리는 직접 눈앞에서 듣고 본 게 처음이라 새롭게 느껴졌다. 역시 라이브의 힘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일전에 관람했던 공연 콘셉트처럼 블랭크 상태에서 처음으로 산조를 만났지만, 생각보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봤던 가야금 공연과 달리 이번에는 왼손의 움직임이 더 많아서 처음엔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금세 적응됐다. 톡톡 튕기는 음보다 떨리거나 울리는 음이 많았다. 마치 현을 어루만지며 교감을 하는 듯했다.
곡 초반에는 망설임, 조심스러움, 신중함 그리고 어떠한 감정이 억눌리는 느낌도 들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용기를 내어 색을 드러내고, 감정을 표현하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장구의 소리와 추임새에 가야금이 힘을 얻어 매력적인 소리와 리듬을 쏟아내는 것 같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인터뷰 시간에 연주자이자 창작자인 이화영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산조는 서양 음악에 비유하면 모차르트 소나타, 베토벤 소나타처럼 이름을 붙여 나뉜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김죽파류 산조이다. 오른손의 움직임이 많지 않고, 도파민이 팍팍 터지기보다는 잔잔한 곡에 속하므로 요즘 사람들의 취향과 다소 먼 산조라고 한다. 그래서 이 산조를 좋아하고 연주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그녀는 오히려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무언가 말할까 말까 하는 그 느낌도 좋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도 됐고, 놀라움도 있었다. 전자는 도파민 터지는 것보다는 잔잔함 쪽에 끌린다는 부분에서 공감했고, 후자는 곡 해석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블랭크 상태에서 그것도 국악이 아직 생소한 내가 비슷하게 곡을 해석했다는 게 놀라웠다. 이는 내가 해석을 잘했다는 게 아니라, 음악의 위대함에 놀랐다는 의미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모두가 하나가 되고,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음악의 힘을 다시금 느꼈다. 인터뷰를 듣고 다시 연주를 곱씹어 보니 장구의 반주가 다르게 다가왔다. 말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에게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따스해졌다.
평범한 사람도 소유할 수 있는 ‘나’의 테마곡.
두 번째 곡부터는 LISTEN CAREFULLY라는 프로젝트의 테마곡이었다. 사람들의 내면을 담담히 담은 테마곡을 연주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도 상영됐다. 영상에는 이화영 연주자와 그의 지인들이 나눈 대화가 담겨 있었다. 많이 생략된 짧은 영상이었지만, 연출과 짜깁기 편집이 없는 날것의 현장을 보면서 대화 당사자들의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이색적이었던 점은 출연자들이 모두 평범한 일반인이었으며,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음악이 되었다는 점이다. 예전에 모 예능을 보다가 각각의 출연자와 어울리는 곡이 흘러나오면서 뮤직비디오처럼 그간의 일상이 방영된 걸 보았는데 그게 참 부럽고 좋았다. 그 방송 자료가 그 사람에게 추억의 기록물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미디어에 나온 일반인 또는 연예인만 가질 수 있는 테마곡이 평범한 사람도 테마곡을 소유할 수 있다니, 그 자체로 색다른 소식이자 경험이었다.
▶명랑한 바림 : 출연자는 민화 그리기를 배우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된 게 바림이며, 그라데이션을 바림이라고 한다. 그 말을 하는 출연자의 표정에서는 평화와 생기가 어려 있었다. 음악에서도 그런 부분이 잘 담겨 있었다. 소리는 연륜과 깊이가 있지만 리듬감은 매우 톡톡 튀었다. 연주를 들으면서 출연자의 명랑한 기운이 바림처럼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구는 내 집 : 제주도에서 숙박업을 하는 젊은 여성이 나왔다. 그녀는 숙박업을 운영하면서 제일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했다. 쉬익 - 바람 소리 같은 연주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멜로디가 얹어졌다. 그러더니 여러 음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다채로운 선율과 리듬은 각각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음악이 되었다. 이것이 꼭 그 출연자의 이야기 같았다. 아무도 없는, 바람소리와 청소 소리만 들리는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사람 사는 소리로 가득한 집 그리고 공허했던 내면이 교감과 상호작용으로 따스한 온기로 가득해진 게 음악에서 느껴졌다. 위생과 시설이 아닌, 왜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는지 그제야 알았다. 커뮤니케이션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야 숙박객들의 불편을 알 수 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다. 여기엔 위생과 시설은 물론이고 다양한 부분들이 속한다. 결국 그녀가 중요하다고 말한 커뮤니케이션은 그곳을 묵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었다.
▶내 심장의 이름은 준우 : 대화 내용을 보아하니, 이 테마곡의 출연자는 육아에 지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도망쳤는데, 한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은 모양이다. 그 사람의 심장은 자신의 것이 아닌, 아이의 것이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을 깨닫는 과정이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첫 구간이었다. 놋그릇으로 현을 문지르는데, 우리 고유의 음악인 국악과 잘 어울리는 소품이자 주부의 일상을 대표하는 물건으로 현을 문지르니 출연자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놋그릇과 가야금이 만나 나온 소리는 책임감, 지침, 고독의 소리였다. 이어지는 선율 역시 그랬다. 그러다 봄날이 떠오르는 선율과 리듬이 펼쳐졌다. 아이를 향한 자신의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상이 봄날로 변한 출연자의 삶이 떠올랐다. 우울한 분위기의 음악이 순식간에 사랑 가득한 음악으로 바뀌었다.
▶분노의 명상 : 회사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의 말투에서부터 분노가 느껴졌다. 톡, 건드리기만 해도 화산처럼 분노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심지어 현재의 삶에 매우 지쳐 있는 듯 보였다. 이화영 연주자가 그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이에 그는 진짜 하고 싶은 거요? 라며 되물었다. 그러더니 이상한데… 라는 쿠션어를 썼다. 앞뒤 맥락을 생각하면 살짝 무서운 답이 나올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긴장됐다. 그는 “명상이요”라고 했다.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을 뿐더러 상상도 못할 말이라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한계를 넘었다는 의미였다. 사람이 분노의 끝을 아예 넘어서면, 오히려 차분해진다. 정확히는 서늘해진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기에 나는 그 출연자가 매우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었다. 영상이 끝나고, 연주가 시작됐다. 선율이라고 하기 어려운 정체 모를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이때 가야금을 활로 연주하는 걸 처음 봤다. 사회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미 많이 하는 연주 방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처음 본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활과 가느다란 줄이 만나 이상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출연자의 긁힌 마음을 잘 대변했다. 연주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긴장감이 도는 음악이었다. 그러다 점점 평화롭고 유려한 선율과 리듬으로 바뀌었다. 출연자가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명상을 하면서 비로소 평안을 되찾은 흐름을 표현한 것 같았다. 넓은 들판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한 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어오는 바람마저 거칠지 않고 살랑였다. 한 마디로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그가 명상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게 바로 그 평화로운 순간이 아니었을까.
▶무지개 떴다 : 한의사인 그녀는 느닷없이 독일로 떠났다고 한다. 그 이유가 숙박 플랫폼에서 어느 집을 발견했는데, 그 주인의 삶이 매우 좋아 보였다고 했다. 빵을 직접 구우며 소소하지만,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는 주인이 부러웠던 거다. 그래서 그 집이 있는 독일로 떠났고, 그곳에서 자신이 할 게 없으니 가야금을 들고 가 연주했다. 그것이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영상에 나오지 않았지만, 연주를 들으면서 짐작할 수 있었다. 연주 중간에 단조가 바뀌는 것처럼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쓸쓸함, 외로움, 무료함이 느껴졌던 연주가 순식간에 생기발랄해졌다. 연주의 분위기와 선율, 리듬을 감상하면서 그녀의 무채색 세상이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었겠구나라는 짐작이 되었다.
▶化寧; 편안하게 되리라 : 마지막 테마곡의 주인공은 이화영 연주자였다. 친구들과 가야금 연주를 하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시작했지만, 목표를 향해 달려갈수록 도리어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놀고 싶고, 함께하지 못해 외로웠지만 목표가 있기에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과 맞는 음악을 만나게 되고, 그 음악을 무대에서 연주하면서 잊지 못할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화영 연주자가 가야금과 사랑에 빠졌던 첫 순간과 오버랩됐다. 아이의 내면과 같은 순수하고 해맑은 선율과 리듬으로 연주가 시작됐다. 톡톡 튀는 음과 리듬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다 잔잔한 연주가 시작되었다. 첫 부분과 달리 생기는 사라지고, 우울함과 고독만 있었다. 갑자기 연주가 뚝, 하고 끝날 것 같은 불안마저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생기를 되찾았다. 처음처럼 톡톡 튀는 매력이 있고, 밝았지만 다른 음악이었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었다. 전통에서 현대로 넘어간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잘 들어보니 현대적인 흐름 안에서도 전통의 뼈대가 존재했다. 이 곡을 들으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엇나감에도 중심이 존재한다는 것. 중심을 잃지 않고 엇나가는 거라면, 이 또한 아름답다는 것이 이번 공연이 건네는 메시지였다.
원래 6곡의 테마곡의 리뷰를 다 쓸 생각은 없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만 적으려고 했다. 그러나 몇 곡만 뽑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6인의 이야기, 6곡의 테마곡에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로 또는 의도치 않게 엇나가는 상황에서 남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 절벽 끝에서 기어코 희망을 찾고 다시 일어선 이야기, 그만큼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6곡의 테마곡은 각각 박자나 음의 분위기가 바뀌는 구간이 있었다. 그 부분이 극적으로 느껴지면서 6곡이 아닌, 6편의 영화를 관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그대로 말고, 이면에 숨은 보물을 발견하는 시야.
공연이 끝나고 인터뷰 시간이 있었다. 연주자의 이야기를 듣고 출연자 두 분을 모셔서 직접 소감을 들으니 곡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연주를 듣다가 울컥했던 이유도 알게 됐다. 4시간 동안 대화를 했다는데 그만큼 쌓아 둔 마음의 소리가 느껴져서였다. 동시에 연주자의 따스한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인류애가 얼마나 크면 남의 속이야기를 진심으로 오랫동안 들을 수 있을까. 그 마음이 참 따스하고 귀했다.
연주자는 불안과 걱정이 많고 이상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연주자의 가야금도 이상하지만 아름다운 그녀만의 가야금이었다. 민트통, 빨대, 마카다미아 까는 도구 등 정체 모를 것들이 가야금에 장착된 걸 보면서 ‘엇’하고 감탄이 나왔다. 저렇게 많은 장치가 있었는데도 그토록 아름다운 연주를 보여줬다니. 놀라웠다. 이상하지만 아름다운 본인의 가야금을 신이 나서 설명하던 연주자의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등 뒤에서 후광이 보였다. 무대 조명이 아닌 그 사람 자체로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시선, 이면의 것을 보는 통찰력, ‘엇’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넓고 깊은 시야, 누가 뭐라 해도 꿋꿋이 자신의 그런 면을 지킬 줄 아는 것.
재능이었다. 누군가는 그녀의 그런 면을 굳이?, 특이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녀는 예술로 승화했다. 그 덕에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자신만의 국악을 탄생시켰다.
이 공연은 개인적으로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와 비슷한 성향이지만 결과는 너무 다른 그녀와 나를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으나 다시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시행착오를 아직도 겪느라 때때로 갈팡질팡하는 내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경로를 이탈해도 좋다. 오히려 좋은 길로 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