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부터 미술을 싫어했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림, 만들기, 서예 심지어 학급 꾸미기도 잘하지 못했다. 그나마 재미를 붙이고 칭찬도 받았던 건 종이접기밖에 없었다. 내게 미술은 가까워지려야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였다. 성인이 된 후, 동료 따라 샤갈 전을 보러 갔다가 그림 보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림을 보는 것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샤갈의 작품에 빠져들었고, 미술 또는 전시회를 보는 내 시선이 달라졌다. 다음에는 혼자 전시회 관람을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신없는 현실 속에서 그 생각이 묻혔다가 잠시 쉬던 시기에 존재를 드러냈다. 진행 중인 전시회를 검색해 보니, 관람료가 생각보다 비쌌다. 그러다 찾은 게 평일 볼 수 있는 무료 전시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미술관을 찾아 혼자 전시를 관람했고, 전시회 관람이라는 문화에 매력을 깊이 느꼈다. 그 후로 잊을만하면 전시를 보러 갔다. 그림, 사진, 의자 등 가리지 않고 봤다. 평일에 혼자 지하철 타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한 시점도 그때다. 급기야 좋아하는 문화예술 리스트에 전시회가 추가됐다.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뇌를 말랑하게 하는 방법, 좋아하는 문화예술의 리스트를 훑어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전시회 관람’이 시야에 툭, 걸린다. 의기양양하게 끼어있는 모양새가 아직도 어색하다. 난 참 이상한 구석이 있는 듯하다. 더 이상한 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
어느 날, 이상한 선택을 했다. 아트인사이트 측에서 제공하는 문화초대에서 미술 관련 책을 선택했다. 그때 다른 문화초대와는 시간이 맞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선택지도 있었는데 굳이 미술 관련 책을 골랐다. 다행히 쉽게 풀이한 책이라서 교과서보다는 이해하기 쉬웠다. 그래도 어려운 건 매한가지였다. 다른 책에 비해 기억하는 내용의 양도 훨씬 적었다. 글을 작성할 때도 다른 소재보다 어려웠다. 다시는 이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 놓고 3~4번 더 선택했다. 대신 나름대로 생각해 낸 방법으로 책을 골라 처음만큼 어렵지 않았다.
첫 선택을 했을 때,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욕심이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내 방식대로 온전히 작품을 즐기는 데에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내 방식을 좋아했다. 그래도 더 깊고, 넓게 이해하고 싶었다. 어느 순간 알았다.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갈증이었다. 관람할 때마다 ‘내가 놓치는 게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싶어’, ‘도슨트 없이도 좀 더 깊게 감상하고 싶어’라는 생각이 따라다녔다. 그 내면의 목소리는 갈증을 심하게 느끼고 있다고 알려주는 신호였다. 이를 빨리 눈치채지 못했지만, 마음이 반응했기에 결심 해놓고 같은 선택을 반복했다. 실수를 반복한 게 아니라, 선택을 반복할 만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다.
그 결과 마음에 드는 책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을 발견하고 미술과 훅, 가까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를 만나 서양미술의 흐름을 조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운명처럼 서양 미술사가 몽땅 담긴 전시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를 만났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특별전’에서는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서양미술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 하나만으로 400년 서양 미술사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를 읽은 후 전시를 관람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그 책을 읽고 전시회를 관람한 사람으로서 매우 만족도가 높고, 책의 덕을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특히 미술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욱 책을 먼저 읽은 후 전시를 보길 바란다. 전시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8월 31일까지 열린다. 현장 도슨트와 오디오 도슨트가 준비되어 있으니, 취향에 맞게 선택해도 되고 도슨트 없이 관람해도 좋다.
전시장을 들어가면, 플로렌스 필립스 부인과 리오넬 필립스의 초상화가 보인다. 플로렌스 필립스 부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미술관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녀는 남아공과 영국의 금융계 거물들을 설득해 보조금을 지원했으며, 자신의 소장품을 기증했다. 미술관을 지을 장소를 직접 물색하고, 그림을 구매하는 등 꿈을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1910년, 마침내 요하네스버그에 아트 갤러리를 설립하여 꿈을 이루었다. 남편 리오넬 필립스는 아내의 꿈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첫 기증자이기도 하다. 이 특별전의 주인공인 필립스 부부 초상화가 전시장 초입에 있으니 마치 부부의 환대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Seghers, Daniel, Flower in a vase, oil on oak panel, pre-1661, Johannesburg Art Gallery, Republic of South Africa
필리스 부부의 초상화를 지나면,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 테마가 이어진다. 17세기, 부르주아 계급의 사람들이 네덜란드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화가들은 일상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하여 전시된 작품들은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가 많았으며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다니엘 세이거스의 「꽃병에 꽂힌 꽃(1661)」, 게릿 아렌츠 반 뒤어스의 「노인이 노래하면 젊은이는 피리를 불어라(1663)」, 핸드릭 코넬리즈 반 블리엣의 「성 바보 교회의 실내(1665)」이다. 특히 앞의 두 작품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첫 번째 작품은 꽃의 색감과 질감이 입체적이었다. 손을 뻗으면 꽃잎이 만져지고, 코끝에 튤립 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두 번째 작품은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림 속의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노래와 피리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다음 테마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미술’이었다. 1800년대 초기, 유럽에서 낭만주의 운동과 화가들의 작품활동이 활발해졌다. 그 시기에 르네상스로 돌아가려는 미술운동인 라파엘전파가 등장했다. 이에 따라 영국 미술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만큼 라파엘전파는 중요한 존재가 된다. 대표적으로 로세티, 밀레이, 존 브렛등이 있다. 로세티의 죽음과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 스타일이 바뀌는 등 여러 이유로, 서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 테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작품이 많았다. 그중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안더나흐의 해머스타인(1817)」, 존 브렛의 「콘월의 마운트 만(1877)」, 존 싱어 사전트의 「베니스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대성당(1909)」과 「브레너 빙하(1908-1909)」이다. 「콘월의 마운트 만(1877)」은 바위와 절벽, 하늘을 물든 노을, 속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 바다의 표현력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한편으론 부산의 태종대가 떠올랐다. 존 싱어 사전트의 그림은 작가의 섬세함과 사실적인 표현력이 돋보였다. 눈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설산과 그림 모퉁이에 있는 인물, 풍경화와 인물화의 조화, 빛이 성당 건물에 닿아 부서지는 순간을 유려하게 표현한 모습에 정신이 멍해졌다. 작품에 들어가 실제로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에 있던 시기. ‘인상주의 이전,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혁명으로’ 테마가 이어졌다. 풍경화는 다른 화풍에 비해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에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풍경화를 하나의 장르로 만들었다. 이때 귀스타브 쿠르베는 자연주의 화풍에서 사실주의로 발전한다. 쿠르베를 비롯하여 요제프 이스라엘, 장 프랑수아 밀레 등 화가들의 열정적인 작품활동 덕에 서양 미술사는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새로운 물결이 생겼다. 이 테마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컨셉대로 선, 색감, 구도 등이 매우 사실적이었다. 「에트르타 백악 절벽(1869)」은 직접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실제로 보니, 사실적인 묘사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작품에 담긴 절벽은 실제 노르망디 해변에 있는 에트르타 백악 절벽이다. 코끼리 바위를 닮았다고 알려진 만큼, 그림을 보자마자 기다란 코를 아래로 늘어뜨린 코끼리의 모습이 교차했다. 실제 같은 절벽의 표면을 보면서 태종대의 절벽을 가까이에서 보고 압도당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 작품에는 자연이 만든 예술과 인간이 만든 예술이 섞여 있었다.
Sisley, Alfred, Riverside at Veneux, oil on canvas, 1881, Johannesburg Art Gallery, Republic of South Africa
다음은 긴 세월 주목받고 있는 인상주의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테마였다. 처음에는 무시당했지만, 특유의 매력으로 반전을 만들어냈다. 미술계의 인식과 방향을 바꿀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화풍이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클로드 모네의 작품은 물론이고, 에드가 드가, 외젠 부댕 등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명한 작품인 모네의 「봄(1875)」과 에드가 드가의 「두명의 무희들(1898)」도 인상적이었지만, 생각 외로 다른 작품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외젠 부댕의 「트루빌 항구(1893)」, 앙리 팡탱라투르의 「부케」, 알프레드 시슬리의 「브뇌 강가(1881)」였는데, 그 중 마지막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불안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나무와 개성을 뽐내며 뻗은 나뭇가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개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나뭇가지를 보면서 겨울이 되면, 나뭇가지를 평소보다 더 세밀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Signac, Paul, La rochelle, oil on canvas, 1912, Johannesburg Art Gallery, Republic of South Africa
‘인상주의 이후’의 테마가 이어지면서 기대했던 또 다른 작품을 만났다. 폴 시냑의 「라로셀(1912)」이다. 인상주의 이후에는 새로운 기법이 등장했다. 팔레트에 물감을 혼합하지 않고, 본연의 색을 사용하여 점을 찍어내는 기법이었다. 이를 점묘법이라고 한다. 점묘법의 대표적인 작품인 폴 시냑의 「라로셀(19120」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황홀했다. 점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손끝의 강한 힘이 느껴졌고 점마다 다르게 표현된 색감이 신기했다. 모자이크 같기도 했다. 점들은 생각보다 존재감이 뚜렷했다. 그만큼 자칫하면 조화롭지 않을 수 있는데, 멀리서 보면 이질감 없이 완벽한 하나의 그림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강함이, 멀리서 보면 평온함이 느껴졌다.
로댕의 「이브」 조각품을 감상하고, 지하로 내려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 전시장이 나온다. 전시실의 연출이 달라진 것을 보면서 시대 흐름이 바뀌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7번째 테마는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로 전시된 작품에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큰 변화가 일어난 흐름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때 아방가르드(전위예술) 운동이 활발해졌고, 야수파와 표현주의가 등장했다. 이 테마에서는 알베르 글레이즈의 「여인의 초상(1910)」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한 여인의 표정과 세밀하게 그린 옷 주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부분은 조각들을 이어 붙인 것 같은 기법이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눈에 띄지 않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조각들이 보인다. 오린 종이를 이어 붙인 듯했고, 유리 조각처럼 보이기도 했다. 뾰족한 모서리와 여인의 표정은 당시 상황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의 「홍수(1935)」는 전시된 모든 작품 중 가장 여운이 짙었던 작품이다. 발길과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작품이기도 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는 반 고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다. 물감을 캔버스에 바로 바르거나 캔버스 나이프로 문지르는 기법을 사용했다. 강렬함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정말 작품을 마주하자마자 임팩트가 느껴졌다. 드로잉과 색, 표현력 모두 또렷했다. 마을이 잠긴 모습과 물에 비친 나무는 신비스러웠고, 노을로 물든 하늘과 나무를 표현한 부분은 섬세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나이프의 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모두 자기주장이 강한데도 조화로웠다. 홍수에 잠긴 마을을 표현한 게 아니었다면, 언젠가 집에 들이고 싶은 작품 목록에 추가했을 테다.
다음으로 새로운 시대인 ‘20세기 컨템포러리 아트’ 테마와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술 현장’ 테마가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유럽에 있는 화가들이 미국에 가게 되면서 미술의 중심지가 뉴욕으로 바뀌었다. 1950년 중후반부터는 대중매체와 광고 등의 시각 이미지를 미술 영역으로 자리 잡으려는 시도가 드러났다. 영국에서 등장한 팝아트가 미국에서도 확산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워홀의 팝아트 활동으로 오늘날까지 미국의 팝아트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게 됐다. 이전 테마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달라진 분위기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대중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 스타일과 무게감 있는 메시지라는 반전 매력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모든 작품이 매력적이었지만, 로널드 브룩스 키타이의 「인생의 빨간색(1975)」, 케네스 놀란드의 「부러진 반지(1978)」, 셀비 엠부시의 「도시의 척도(1962)」, 앤디워홀의 「요셉 보이스」가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테마에서는 제라드 세코토의 「오렌지와 소녀」, 조지 펨바의 「죄송해요, 부인」, 윌리엄 켄트리지의 「사랑이 충만한 캐스피어」가 좋았다. 노란빛으로 반짝이는 듯한 오렌지와 달리 빛이 보이지 않고 서늘한 눈빛과 그늘진 얼굴의 소녀, 참담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인의 얼굴, 목이 잘린 흑인들의 얼굴이 쌓여있는 모습은 충격과 공포, 슬픔을 느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불편함에 몸이 베베 꼬아졌다. 그럼에도 쉬이 작품 앞을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인종차별을 겪었던 흑인들의 심정이 깃들어있어서다.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다른 나라의 아픈 역사를 들여다보고 위로하고 싶었다.
이 글에 담지 못한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많다. 그 정도로 좋은 작품들이 넘치는 전시회였다. 서양 미술사의 흐름에 따라 작품 구성이 잘 되어 있어 공부도 되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동안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횟수의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아무리 관람객이 많아도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방해가 많이 됐다. 작품의 간격이 좁아서 관람객이 다닥다닥 붙어서 봐야 했다. 평일인데도 관람객이 많아서 충돌까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수다를 떨거나 손짓하면서 감상하는 관람객도 꽤 있었다. 더구나 설명 글이 작고, 조명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서 동선에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보고 싶었던 작품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물에 잠긴 소호」는 꼭 보고 싶었는데 기다리다 결국 못 보고 전시장을 나와야 했다.
이 점은 매우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후회 없는 전시였다. 내게 이번 전시는 특별했다. 책에서 봤던 작가의 속사정을 떠올리며 작품을 감상했다. 다각도에서 작품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나의 미술 취향이 선명해지는 걸 느꼈다. 나의 미술 취향은 극과 극이었다. 평온하고 화사한 분위기와 어둡고 무거운 느낌의 작품에 눈이 갔다.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상상력이 돋보이는 인상주의적인 작품에 마음이 갔다. 무엇보다 섬세한 면이 있거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 좋았다.
미술 취향이 선명해지는 날이 온다는 건,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믿기지 않지만, 기뻤다. 뿌듯했다, 괜히.
미술 시간만 되면 지루해하던 어린 나 그리고 현재의 나를 눈앞에 띄워본다. 같은 사람이 맞나? 이래서 자신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 안다고 안일하게 여기면, 꼭 변수가 생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