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뭐야?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대답한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색깔 등을 말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취향은 정말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던 걸까?
누군가의 추천 때문에 좋아하게 된 것도 있고, 우연히 경험한 것 때문에 좋아하게 된 것도 있고, 시간이 지나며 변해버린 것도 있다. 취향은 내가 발견하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선, 그 답을 찾기 위해 내 취향들을 하나씩 떠올려봤다.
즉흥형에서 계획형으로
살아가면서 변한 취향
나는 꽤나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대충대충 사는 사람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미리 준비하기보다는 닥치면 어떻게든 해내는 쪽이었다. 어릴 적 방학숙제도 마찬가지였다. 방학 내내 고이 모셔두었다가 개학 일주일 전부터 급하게 시작하곤 했다. 그렇다고 대충 끝내는 것은 또 싫은, 이상하게 완벽주의적인 면이 있어서 밀린 숙제도 어떻게든 끝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그렇게 개학 직전에 몰아서 한 방학숙제로 상까지 받은 걸 보면, 당시의 나는 계획은 없었지만 결과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계획이라는 것을 세웠던 순간은 아마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하교 후 혼자, 신전 떡볶이 집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주문해서 먹을지 머릿속으로 하나씩 정리했었다. 남들은 참치마요 컵밥을 먹을 때 나는 꼭 참치샐러드 컵밥을 골랐고, 떡볶이는 중간맛에 치킨링과 오뎅튀김까지. 당시 대략 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상하게도 그때의 기억은 선명하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계획하는 재미’를 알게 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내게 해야 할 일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동아리 일정도 있었고, 대회도 있었고, 교회 일정과 친구들과의 약속도 생겼다. 하나씩 기억하고 있다가 그때그때 처리하기에는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 결국 나는 하나씩 적어두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조금씩 즉흥적인 사람에서 계획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지금의 나는 여행을 가면 분 단위로 일정을 짜고, 이동시간을 계산하고, 심지어 횡단보도 순서까지 미리 외워두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아마 꽤나 답답해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가며 수많은 경험을 하고, 그 안에서 내가 편안하고 즐거운 방식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 그렇게 발견한 방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나만의 취향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살아가며 변한, 첫 번째 취향.
나의 애니 취향
타인의 권유로부터 발견한 취향
두 번째 취향은 애니메이션이다. 정확히 말하면 『 진격의 거인 』이다.
처음부터 내 스스로 찾아본 작품은 절대 아니다. 정말 주변 사람들이 너무 추천해서, 진짜 너무 너무 너무 추천해서 보게 되었다. 하나같이 “진짜 재밌다”, “이건 꼭 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렇게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잔인한 것을 잘 보지 못한다. 결국 호기롭게 1화를 틀었다가 징그러운 그림체와 잔인한 장면을 보고 그대로 중도하차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이상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겨버렸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것을 접점으로 나는 말 그대로 진격의 거인에 진심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필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입시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작품이 너무 재미있었던 것일까. 나는 엄청난 과몰입을 시작했다. 예상치 못했던 전개가 나올 때마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고, 한 주 한 주 후유증에 시달렸다. 너무 감명받은 나머지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열심히 영업했다. 이미 본 친구에게 또 추천하고, 아직 안 본 친구에게는 꼭 보라고 설득했다. 그렇게 시즌 1, 2, 3을 뒤죽박죽으로 다시 보고 또 봤다. 심지어 시즌마다 작품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어떤 때는 내용이 너무 심오하고 슬퍼서 한없이 가라앉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벅차고 희망적인 장면에 마음이 들떴다. 작품 하나를 보면서 감정이 이렇게까지 널뛰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처음 이 작품을 내게 건네준 것은 내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된 것은 온전히 나의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취향이었던 것이 나의 경험을 거치면서 어느새 나만의 취향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취향은 꼭 혼자 발견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에게 건네준 하나의 경험이, 내가 살아가면서 나만의 취향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으니까.
아직까지 『 진격의 거인』을 능가하는 내 취향의 애니메이션은 만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조금 웃긴 일이다. 1화에서 도망쳤던 작품이 결국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남아 있으니. 사람 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취향이라는 건 우연히 내 앞에 놓인 것을 몇 번이고 경험해보며 비로소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보고 있었다, 내 인생 과일 무화과
어느날 갑자기 생긴 취향
나는 달달한 과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처음 무화과를 접했을 때도 그저 ‘감성 음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장하게 생겨서 감성 카페 디저트에 자주 등장하지만, 내가 먹어본 무화과에서는 풀 맛만 나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매력이 있길래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찾아 먹는 걸까.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다. 그랬는데... 그런 나의 생각을 작년 어느 카페가 단번에 바꿔놓았다. 그날 카페에서 시즌 메뉴로 나온 무화과 디저트를 처음 먹었는데, 정말 황홀했다. ‘이게 무슨 맛이지? 내가 알던 무화과가 이게 맞나?’ 내가 알고 있던 무화과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은은한 풀 향 사이로 달달한 맛이 퍼졌고, 부드러운 요거트와 어우러지니 그 조합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아, 무화과가 이렇게 맛있는 과일이었구나.
나는 그동안 무화과의 진짜 매력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이제는 무화과가 나오는 계절만 기다린다. 여름이 지나고 무화과가 보이기 시작하면 괜히 반갑고, 올해는 벌써 두 박스째 구매다.

신기하게 무화과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단 한 번의 경험이 내가 알고 있던 취향을 완전히 뒤집어놓았고, 이젠 무화과가 나오는 계절만을 기다린다. 살아가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그 경험 하나가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한 번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내가 몰랐던 나의 취향 하나를 발견한다.
처음 만난 능소화
우연히 만난, 하나의 기억으로 생긴 취향
그날까지 능소화라는 꽃이 있는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이사를 온 후 어느 새벽, 평소에는 잘 다니지 않던 길로 걷게 되었는데 어쩌다 우연히 그 길에서 정말 커다란 능소화 벽을 마주쳤다. 정말 수많은 능소화가 벽을 따라 빼곡하게 피어 있었다. 새벽이슬이 꽃잎에 맺혀 있었고, 가로등 불빛을 받은 꽃들은 어둠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고 예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된 꽃이었다. 이름도 몰랐던 꽃인데, 이상하게 그 장면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조용한 길, 이슬을 머금은 꽃들, 가로등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나던 색깔까지. 그래서 지금도 능소화를 보면 그날의 새벽이 떠오른다. 꽃을 보는 순간 그때의 공기와 거리, 빛까지 함께 생각난다.

이것 역시 내가 발견한 취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하다. 내가 능소화를 찾아다닌 것도 아니고, 예뻐서 좋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다. 그저 우연히 마주친 하나의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고, 그 순간이 내 기억 속에 남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꽃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는 사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과 함께 기억된 순간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능소화는 내게 단순히 좋아하는 꽃이 아니다. 평소라면 걷지 않았을 길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아주 조용하고 아름다운 새벽의 기억이다. 그래서 매년 능소화가 피는 계절이 오면 그날의 새벽도 함께 돌아온다.
사랑에도 취향이 있을까
아직 발견하지 못한 취향
그렇다면 사람에 대한 취향도 있을까.
나는 문득 어떤 사랑을 하는지를 ‘취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주변을 보면 무언가를 정말 죽을 듯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생기면 몇 년을 한결같이 좋아하고, 좋아하는 작품이 생기면 그 세계를 끝없이 파고든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마음을 아끼지 않고, 엄청난 집념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런 사랑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빠졌을 때도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할 만큼 깊이 빠져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내 주변에 정말 좋아하는 것이 생겼을 때 그것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했다. 내가 직접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누군가가 무언가를 죽을 만큼 사랑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을 조금은 함께 느낄 수 있어 나는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 대리 감정을 느끼며 만족했다. 그렇다면 이것도 사랑에 대한 나만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싶은지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나는 무언가를 온 마음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끌린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가장 솔직한 나의 사랑 취향인지도 모르겠다.

정작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에 대한 답은 아직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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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을 하나씩 들여다보니, 취향이라는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것은 경험하면서 바뀌었고, 어떤 것은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고, 어떤 것은 우연한 순간에 발견했다. 그리고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취향도 있다.
취향은 내가 발견하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쩌면 둘 다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을 만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때로는 마음을 바꾼다. 그렇게 지나온 경험들이 하나둘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결국 취향은 나를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을 보여주는 흔적인지도 모른다. 살아가며 만들어내고, 발견하고, 사랑하다보면 그것은 비로소 나의 취향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