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2023 문화예술 결산 [문화 전반]

한 해를 되돌아보며
글 입력 2023.12.31 14: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했던 순간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순간은 기억이 난다. 아버지께서는 내 나이 무렵에 피아노곡들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인터넷 곳곳에서 피아노 음원들을 다운받은 후 cd를 여러 장 구워놓으셨고, 내가 어릴 적부터 그 cd를 가끔씩 차 속에서 틀어주셨다.

 

그렇게 모인 cd들과 cd 플레이어는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한 동시에 물려받게 되었다. 아버지의 오래된 cd에 담긴 이름 모를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는 경험은 나에게 일종의 보물찾기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트랙이 넘어갈 때마다 내가 아는 유명 연주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꼽아가면서 연주자가 누구일지 추측해보는 놀이를 했다. 그러다가 음악의 음파를 바탕으로 앨범을 찾아주는 앱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접해 cd의 트랙들을 하나하나 검색해본 순간,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감명 깊게 들었기에 당연히 저명한 연주자의 연주라고 생각한 곡들이 전부, 이름도 모를 연주자의 연주였기 때문이다.

 

음악계에서는 이런 걸 블라인드 테스트라고 지칭한다고 들었다. 연주자의 명성이 아니라 연주만을 가지고 음악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려놓았던 당시의 경험이 지금까지도 내게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좋은 연주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연주가 아니라 내 마음에도 와닿는 연주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경험 때문인지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나만의 줏대를 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더불어 다양한 연주자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내가 클래식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해서 나를 더욱 빈번하게 공연장으로 이끌었다. 특히 올해는 대학 입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많이 부여받은만큼, 자투리 시간을 모아 틈틈이 공연장이나 미술관에 방문했던 것 같다. 12월의 마지막 날, 올 한 해를 결산하는 의미에서 지금까지 관람한 공연, 전시 및 학회 등에 대하여 짧은 생각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그림11.png

 

 

2023.01.28.

KBS 교향악단 / 피에타리 잉키넨 / 선우예권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 말러 교향곡 5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정의했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공간에서 구하지 않고 사고의 규제로부터 구함으로써, 거대한 우주가 인간을 삼켜 버리더라도 인간이 사고로써 우주를 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말러의 음악을 들으면서 문득 위의 구절들이 떠올랐다. 그 어떠한 존재보다도 장황하면서도 심오한 그의 곡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주보다 거대한 부피를 지닌 채 관객을 덮쳐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02.10.

국립심포니 / 다비트 라일란트 / 한수진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 베토벤 교향곡 5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흐의 음악은 명료하면서도 촘촘한 구조를 지녀 완전하고 성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선율이 쉼없이 반복 및 변주되며 옥죄어오기에 오묘한 섬뜩함을 주는 것 같다. 한수진의 앵콜을 들으며 바흐의 음악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2023.02.14.

정경화 / 케빈 케너

브람스 / 그리그 /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여태까지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고, 어릴적 나에게 꿈을 주셨고, 여전히 존경하는 연주자와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 날의 기억들은 마음속 내밀한 구석에 저장해둔 채 두고두고 꺼내서 보고싶다.


 

2023.02.24.

박지일 / 최석진 / 현석준

오펀스

아트원 씨어터


 

어떤 대상이 버려졌다는 것은, 그것이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23.03.07.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 정명훈

브람스 교향곡 1번 / 2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브람스가 그려내는 음표들은 단단하고 중후하지만, 그렇다고 청중을 날카롭게 찌르지는 않는다. 그의 음악은 아무리 크게 들어도 귀가 아프지 않을 둥긂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구현하는 브람스의 교향곡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락하고 유려했다. 모든 음들이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며 소리가 두꺼우면서도 부드럽다고 느껴졌다. 소리들이 정처 없이 떠다니지 않고 바닥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채 사방으로 뻗어가는 것 같았다. 공연을 보는 내내 잊기 어려운 순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3.03.21.

윤철희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순간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


 

연주자와 청중이 즉흥에서 허물없이 대화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2023.03.24.

홍의연 /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등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


 

음악을 기록하는 방식의 모호성이 연주자들의 다양한 해석을 보장한다고 느껴졌다. 공연을 보기에 앞서 Shlomo Mintz의 도이치 그라모폰 레코딩으로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을 예습했는데, 음반으로 들었을 때에는 곡의 분위기가 어딘가 섬칫하고 불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홍의연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는 달랐다. 분명 섬뜩함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음에도 환상적인 포장지가 섬칫한 내용물을 슬쩍 감춘 것 같았다. 더 이상 이 곡이 스릴러 영화의 음악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애증이 뒤섞인 치기 어린 사랑을 그려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모호함으로 인하여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에 음악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3.03.31.

서울시향 / 오스모 벤스케 / 엘리나 베헬레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 교향곡 2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굳건한 결의가 느껴지는 음악이었다.

 

 

2023.04.02.

임선혜 / 세바스티안 비난트

모차르트 가곡 등

거암아트홀


 

18세기 모차르트 시기의 악기를 고증해서 제작했다는 포르테 피아노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악기의 울림은 적은 편이지만, 소리결이 투명하고 순수하게 느껴졌다. 마치 어린 아이가 건반을 두드리는 것처럼 소리가 중력을 거스른 듯 했다.

 

 

2023.04.06.

국립심포니 / 다비드 라일란트 / 양준모

말러 뤼케르트 가곡 / 브람스 교향곡 4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말러의 가곡 중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네〉라는 곡이 유독 슬프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물리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죽음마저도 조명하지 못하는 가사의 내용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타인을 향한 무관심이 당연시되고 누군가를 향한 관심이 간섭의 화살로 여겨지는 시대 속에서 특정 존재는 기억되지 못한 채 망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프로이트는 상실한 대상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상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해 애도가 불가능한 상황을 우울(melancholy)이라고 제시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울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2023.04.07.

노은경 / 이정아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가 다소 어렵게 느껴졌지만, 해당 곡들을 애써 이해하기보다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두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음악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폭력일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나의 방식대로 대상을 규정짓는 것이고, 이는 대상의 고유성을 묵살시키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내가 음악을 이해하는 순간 음악은 변화 가능성을 잃게 될 것이며, 그것은 음악을 단조롭게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둠으로써 음악이 더 큰 가능성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작게나마 바라본다.

 

 

2023.04.18.

서초교향악단 / 배종훈 / 이경숙

하이든 교향곡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반포심산아트홀


 

모차르트의 음악을 떠올렸을 때 상상되는 생기 넘치는 가벼운 느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주가 군더더기 없이 정직하면서 묵직해서 마치 연로 배우의 담담한 독백을 듣는 것 같았다. 연주를 들을 때마다 그것이 누구의, 그리고 어떤 시기의 연주인지에 따라 항상 새로운 감정들이 피어오르는 것 같다. 나도 내가 애정하는 일에 여든 살까지 매진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시간이었다.

 

 

2023.04.25.

브레멘필하모닉 / 마르코 레토냐 / 임지영 / 문태국

브람스 이중 협주곡 / 교향곡 4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푸가에서는 쫓는 주체와 쫓기는 주체가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타이밍이 달라도 지향점은 같은 모습이 우리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유사한 것 같다.

 

 

2023.04.27.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과

프란츠 리스트의 음악 세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도서관


 

연주에 완전히 몰두해있는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면, 무의식의 세계에 빠지는 게 어떤 기분일지 정말 궁금해진다. 같은 시공간에 존재함에도 무언가 얇은 막으로 세계가 분리된 기분이 든다.

 

 

2023.05.01.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

국립현대미술관


 

내 정서와는 조금 다른 전시였다. 잔인한 장면에 중간에 헛구역질이 나왔는데, 친구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작가가 만족스러워 할 것 같다는 농담을 던져서 웃음이 터졌다.

 

 

2023.05.11.

서울시향 / 마르쿠스 슈텐츠 / 박재홍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 바그너 반지

롯데콘서트홀


 

니벨룽의 반지는 서서히 드러나는 오케스트라 소리로 시작된다. 마치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이, 어둠의 시간이 지나자 주변 풍경들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새들이 한 마리씩 지저귀기 시작하고, 작은 시냇물이 생동감 넘치게 흐르며, 울창한 침엽림 사이로 햇볕 조각이 새어들고, 눈이 녹아 땅의 사이사이로 흡수되며, 그렇게 만물이 느리게 개벽한다. 선율이 점점 짙어지고 분명해짐에 따라 멈춰있던 세상이 움직인다. 마치 거대하고도 무력했던 어둠이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처럼 느껴지도록, 음악은 그토록 웅장하면서 광활한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그너의 음악은 언제나 거시적인 세계를 노래한다고 느낀다.

 

 

2023.05.16.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어떤 곡이 음악적으로는 화려하더라도 그 내면은 공허할 수 있음을 느꼈다. 악보에 적힌 복잡한 화음과 쏟아져내리는 음표들은 역설적으로 비어있고 외로운 마음 상태를 보여준다. 마지막 악장의 박차고 나가는 종결부가 언뜻 보기에는 영웅적이지만, 오히려 마음속이 복잡하고 뒤죽박죽함에도 일단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다소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023.05.19.

글로리아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비올레타는 코르티잔으로서 향락의 삶을 살다가 알프레도에게 사랑을 느끼고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기 직전 알프레도의 사랑을 확인하고는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은 채 죽음을 맞이한다. 어쩌면 그녀가 용서한 것은 알프레도가 아닌 자기 자신이며, 더불어 그녀가 사랑을 확인한 대상 또한 알프레도가 아니라 알프레도를 사랑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함으로써 자기 구원을 실현한 것 아닐까.

 

 

2023.06.30.

서울시향 / 미하일 플레트뇨프 / 선우예권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롯데콘서트홀


 

쇼팽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1번보다 먼저 작곡했지만, 1번을 더욱 마음에 들어 했기에 순서를 바꾼 채 발표했다고 한다. 1번의 정제된 표현도 좋지만, 그보다는 2번의 날것 그대로의 표현이 더욱 매력적이라고 느껴진다.

 

 

2023.07.05.

조성진

브람스 소품 / 라벨 거울 / 슈만 교향적 연습곡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언젠가 이종열 조율사님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난다. 조율사님은 조율이 타협하는 과정이라고 묘사하시면서, 음 하나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모든 음들에게 이 음이 설 자리를 물어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해당 인터뷰를 보면서 상대성이란 타자와의 관계를 신경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성이 그 어떤 환경에서도 불변하는 것이라면, 상대성은 내가 무엇을 기준점으로 삼는지에 따라 항상 변화한다. 한 음이 어떤 음을 바라보는지, 그리고 한 연주자가 어떤 작곡가를,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음악을 바라보는지가 음악의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결국 우리의 시선 그 자체는 음악을 만드는 요소이며, 음악이라는 것은 관계의 형성을 통해서만 도출될 수 있는 예술이다.

 

 

2023.07.06.

루돌프 부흐빈더

베토벤 함머클라비어 등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갑자기 조명이 달빛같아 보이고, 드문드문 보이는 관객이 윤슬같아 보이고,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나의 장례식에서 연주되길 바라는 음악'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함머클라비어 3악장이기를 바라게 되었다.

 

 

2023.08.02.

쥬세페 토르나토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CGV


 

생각해보면 음악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절대적으로 훌륭한 음악이란 존재하지 않는 걸 넘어서, 애초에 음악은 절대적인 조건들로 이루어지지조차 않았다. 일례로 음악의 박자는 심장 박동이나 걸음걸이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모두의 신체 속도가 같을까? 바그너의 무조음악은 화음의 경계를 흐려서 청중이 불협화음을 오히려 화음처럼 착각하게 만든다고 배웠다. 그렇다면 음의 조화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연주회에서 지휘자가 행하는 손짓의 빠르기에 따라 전체 연주의 길이는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음악의 길이는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결국 음악이란 모든 조건이 불분명한 가운데에서, 정해지지 않은 것들을 정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3.08.22.

SAC 오케스트라 / 안토니오 멘데스

말러 교향곡 5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본공연을 관람한 것이 아니라 리허설에 참관했다. 지휘자님의 묘사 방식이 다소 추상적이라고 느꼈는데, 그러한 요구에 맞추어 단원들이 자유자재로 음색을 바꾸는 것이 신기했다. 다음번에는 본공연까지 감상하여 리허설과 본공연이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

 

 

2023.08.23.

백건우 등

슈만 피아노 사중주 / 쇼송 협주곡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의 계절에 잘 어울리는 공연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쇼송의 음악은 처음 들어봤는데, 서정적인 선율이 잠깐씩 등장하지만 이내 날카로운 불협화음으로 변화하는 지점이 세련되었다고 느꼈다.

 

 

2023.08.26.

한희준

슈만 환상소곡집 / 드뷔시 전주곡 등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연주하는 순간에는 자신에게 온전히 몰두하고, 박수받을 때에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 연주자를 보며 자신의 일을 애정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더불어 나도 좋아하지만 잘 모르는 일을 업으로 삼아도 될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좋아하는 일에는 금전적 부담을 느끼기 싫어 취미로만 향유하고자 했는데,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는 시간이었다.

 

 

2023.08.26.

서울시향 / 얍 판 츠베덴

라벨 볼레로 등

국립중앙박물관


 

청명한 날씨와 청명한 음악이 잘 어우러졌다.

 

 

2023.09.01.

KBS 교향악단 / 정명훈 / 한재민

하이든 첼로 협주곡 /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예술의전당 콘서트


 

어릴 때부터 나의 삶을 관조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지녀왔다. 나의 관점에 매몰된 채 과도하게 감정이입하기보다는, 먼발치에서 나 자신을 응시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들과 욕망들을 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항상 느끼곤 한다. 그들은 아무리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은 채 나를 따라온다.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흘려보내는 일인 것 같다. 마치 피뢰침이 전기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더라도 상처받지 않고 그것을 땅까지 안전하게 전달하는 것처럼, 내 정신 또한 일시적으로 내 충동을 매개한 후 그것을 정신 바깥으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마음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너무나도 우울하기에 아름답지 못한 감정마저도 음악으로 아름답게 승화하는 작곡가들의 방식이 배우고 싶어졌다.

 

 

2023.09.12.

서울시극단

카르멘

세종문화회관 M 씨어터


 

낭만주의는 언제나 닿을 수 없는 것을 추구한다. 그들은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방하며, 그러한 그리움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러나 해당 연극은 이상 세계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우리의 인생을 성찰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세계가 허상일뿐더러 부질없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원작 오페라에서 카르멘과 돈 호세가 지닌 이상이 얼마나 매혹적인지에 비중을 둔 채 극이 진행되었다면, 해당 연극은 이상이 좌절되었을 때 인간이 느끼는 허탈감과 비애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극을 재해석했다. 그럼으로써 동경하는 세계를 추구하는 행위가 때로는 불합당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의심을 우리에게 심어주고 있다.

 

 

2023.09.17.

국립심포니 / 옥사나 리니우 / 세르게이 하차투리안

하차투리안 바이올린 협주곡 /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전쟁 중인 두 국가가 예술을 통해서 잠시나마 화합하는 모습이 따뜻했다.

 

 

2023.09.20.

한양 레퍼토리

버닝필드

한양대학교 블랙박스 씨어터


 

아래의 구절이 떠오르는 연극이었다.

 

[서정은 언제 아름다움에 도달하는가. 인식론적으로 또는 윤리학적으로 겸허할 때다. 타자를 안다고 말하지 않고, 타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고, 타자와의 만남을 섣불리 도모하지 않는 시가 그렇지 않은 시보다 아름다움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서정시는 가장 왜소할 때 가장 거대하고, 가장 무력할 때 가장 위대하다.] -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에서 발췌

  

 

2023.10.06.

영국 내셔널갤러리

거장의 시선

국립중앙박물관


 

미술 사조의 독특한 점은 관례에 대한 저항마저도 결국 관례에 포함된다는 모순성인 것 같다. 기존의 미술을 비판하며 등장한 새로운 시도들은, 예술의 기득권층에 의하여 하나의 새로운 사조로 분류된 채 결국 예술의 범위 안으로 편입되게 된다. 예술이 아니라고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제작된 작품마저도 결과적으로는 예술을 발전시켰다는 점은 어딘가 씁쓸함을 남긴다. 

 

 

2023.10.08.

유니버설 발레단

돈키호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발레에서는 자기 확신이 중요한 것 같다. 동작을 하기에 앞서 표정에 불안이 스치거나 주저하는 기색이 보이면 곧바로 밸런스가 무너졌다.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면 더 넘어지게 되는 역설을 지녔을뿐더러 마음의 평정을 잡는 방법을 깨우치게 한다는 점에서 정신 수양과도 유사하다고 느꼈다. 더불어 클래식과는 다르게, 음악이 전부 끝나지 않았더라도 언제든지 박수를 줌으로써 무용수를 격려하는 발레만의 호응 문화가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2023.10.21.

음악미학연구회

한국창작음악연구 학술포럼

서울대학교 종합연구동


 

서로 다른 문화를 융합한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양상을 지닌다. 첫 번째는 갈등을 해소하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씨에르는 불화 개념을 제시하며, 근본적으로 일치할 수 없는 것들의 대립과 차이를 지향해 불협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화합이라고 제시한다. 이와 같이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역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이 융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이때 대립으로 인한 거부감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보편성을 담보하는 과정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문화를 융합하는 두 번째 방식은 두 문화의 결합 결과를 하나로 단정하지 않은 채 미정의 상태로 정의하는 것이다. 문화의 변모 가능성을 인정한 채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서 문화의 동력 및 유동성을 인정하는 것은 문화 융합을 대하는 또다른 올바른 태도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현대 사회는 우리가 올바르게 문화 융합을 실천하고 있는지, 혹은 문화 병존에 불과한 시도를 행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단절이 부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융합이라는 주제를 다각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23.12.16.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그림이 따뜻하고 몽환적이어서 마치 사랑스러운 엽서 일러스트들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약간은 묘한 지점도 존재했다. 작가는 현재의 자신을 그림의 풍경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모든 그림은 항상 건너편 건물에서 관망하는 듯한 시야로 그려졌으며, 이러한 거리두기로 인해 그림이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을 동경할뿐더러 그 일상을 담아내려고 시도하고 있음에도 스스로가 그 일상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 나에게는 모순처럼 다가왔다.

 

 

2023.12.17.

국립발레단

호두까기인형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사람의 마음속에서 저렇게도 순수하고 동화적인 세계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슬펐다. 눈부시게 파란 풍경이 벅찼다.

 

 

2023.12.29.

서울디자인재단

New Heritage / 럭스

DDP 뮤지엄


 

브레히트에 따르면 우리는 대상을 낯설게 느낌으로써 사회 현실에 숨겨진 구조적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변혁할 의지를 다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론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대상의 낯선 모습을 마주한다는 행위 자체가 순수한 기쁨과 설렘을 주기도 한다. 전시를 관람하며 일상적인 물건의 낯선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일상에 대한 이해가 풍요로워졌다. 각 대상에 관한 나만의 정의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관점에 맞춘 채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시각을 일상에서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그 이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앞으로 다른 예술 작품과 다른 관계를 맺어 또 다른 지혜를 얻는다면 일상을 이해하는 나의 태도가 또 변화하리라 기대한다.

 

 

 

에디터 고은샘.jpg

 

 

[고은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