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은 차갑고 단단하다. 무겁고 날카로우며, 빛을 받으면 번쩍인다. 철이라는 재료를 떠올릴 때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이처럼 몇 가지의 익숙한 속성이다. 그러나 존 배의 조각 앞에서는 이 관점이어긋나게 된다. 철사가 촘촘하게 이어진 표면은 금속보다 직물에 가깝게 보이고, 단단한 구조물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여겨진다. 멀리서는 가볍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용접 자국과 재료의 무게가 선명하다. 철이 다른 재료로 바뀐 것은 아닌데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26년에도 존 배의 조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뉴욕 갤러리현대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는 《Meditation: Myth and Memory》가 11월 28일까지 진행 중이다. 2024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존 배: 운명의 조우》에서 선보였던 〈Risen, Fallen, Walken〉(1987)을 떠올리면, 그의 조각에서 재료와 공간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분명해진다. 과거의 작업과 현재의 작업을 나란히 놓으면 존 배가 오랜 시간 철을 다루면서도 이를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묶어두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난다.
철을 다시 바라보는 일
〈Risen, Fallen, Walken〉은 짧은 철사들을 하나씩 용접해 만든 구조물이다. 촘촘하게 이어진 철사와 그 사이의 빈 공간은 레이스나 직물의 표면처럼 보인다. 빛을 받은 금속도 흔히 생각하는 철의 광택보다 매트한 질감에 가깝다. 가까이 다가가면 용접 자국이 드러나면서 재료의 물리적 무게가 돌아온다. 멀리서 보았을 때의 가벼움과 가까이에서 확인되는 무게가 하나의 조형물 안에 함께 놓여 있다.
작가의 작업 방식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존 배는 서울에서 태어나 1949년 미국으로 이주했고,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산업디자인과 조각을 공부했다. 1965년에는 27세의 나이로 프랫 인스티튜트의 최연소 교수로 임용되어 2000년까지 가르쳤다. 그는 프랫에서 조각뿐 아니라 음악과 과학, 수학 등 여러 분야를 연결해 가르쳤고, 이러한 관심을 자신의 작업에도 이어갔다. 대표적인 작업 방식은 가늘고 짧은 철사를 손으로 용접해 하나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공간 속의 드로잉’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의 조각은 덩어리를 깎아 형태를 만드는 일보다 선을 이어 공간 안에 형태를 그려가는 일에 가깝다.
〈Risen, Fallen, Walken〉은 이 제작 방식이 작품의 의미와도 연결되는 사례다. 이 작품은 프랫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교수의 정서적 어려움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한 것으로 소개된다. 제목의 세 단어가 암시하듯 작품은 한쪽으로 고정된 형태라기보다 일어섬과 넘어짐, 걷는 움직임 사이에 놓여 있다. 두 기둥은 마치 걷고 있는 다리처럼 보인다. 어느 쪽을 앞에 두느냐에 따라 무릎을 굽혀 무게를 견디는 순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막 한 발을 내딛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쪽에 시작점을 정하기 어려운 구조는 조형물을 하나의 완결된 자세로 붙잡기 어렵게 만든다. 제목의 ‘걷기’는 실제 움직임을 재현하기보다 형태가 한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는 감각에 가깝다.
이 작품 앞에서는 관객의 몸도 개입한다. 한 자리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덩어리였던 철사들이 옆으로 이동하는 순간 서로 다른 선과 틈으로 분리된다. 가까이 다가가면 멀리서는 드러나지 않던 용접의 흔적이 나타난다. 뒤로 물러서면 수많은 철사가 하나의 리듬을 가진 구조로 합쳐진다. 작품의 형태가 달라진다기보다 그것을 구성하는 선과 빈 공간의 관계가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한쪽을 보는 순간 다른 쪽은 시야에서 물러나고, 몸을 움직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구조가 나타난다. 조형물은 한 번에 파악되는 하나의 이미지라기보다 관객이 움직이는 동안 여러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 경험은 ‘철의 물성’을 생각하는 방식도 바꾼다. 물성을 철이 가진 고정된 성질의 목록이라고 생각하면 존 배의 작업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철은 여전히 단단하고 무겁지만, 놓인 방식과 빛, 주변 환경, 관객과의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든다. 철 사이의 빈 공간은 막힌 벽과 달리 시선과 공기를 통과시킨다. 짧은 철사들이 반복적으로 연결된 표면은 금속보다 섬유나 피부처럼 다가온다. 물성은 재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놓이고 지각되는 순간 드러난다.
철은 어디까지 철인가
앞에서 언급했듯, 존 배의 철이 흥미로운 것은 익숙한 속성만으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철은 차갑고 단단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지만 그의 조각을 충분히 말해주지는 않는다. 멀리서 레이스처럼 보이는 철, 피부처럼 느껴지는 철, 살아 있는 것처럼 공간을 차지하는 철은 기존의 속성만으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철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고 있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우리가 철을 몇 가지 익숙한 이미지로 미리 규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작품이 낯설어진 까닭은 우리가 철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방식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존 배가 위상학에 관심을 두었다는 사실은 이런 조각의 구조와도 연결된다. 철사로 이루어진 구조는 내부를 완전히 가두지 않는다. 선과 선 사이의 틈을 통해 안과 밖이 계속 연결되고, 내부는 외부의 공간과 분리되지 않은 채 드러난다. 조형물을 이루는 것은 철만이 아니다. 철이 놓이지 않은 자리,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과 공기, 관객의 시선까지 함께 형태를 만든다. 작품과 주변 공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조각을 바라보는 일은 동시에 그 주변을 바라보는 일이 된다.
철과 공간 사이에서
이런 특징은 2026년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Meditation: Myth and Memory》에서도 이어진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 놓인 〈Heaven and Earth〉(2024)는 하나의 점에서 선이 시작되고, 선이 형태로 이어지며 주변 공간으로 뻗어나가는 구조를 보여준다. 재료를 이어가는 동안 다음 선의 방향이 결정되고, 앞서 만들어진 부분과 주변의 공간이 이후의 형태에 영향을 준다. 존 배의 조각에서 철사는 형태를 만드는 재료이면서 동시에 형태가 어디로 나아갈지 결정하는 선이 된다.
존 배의 조각 앞에서는 자꾸 걸음을 옮기게 된다. 한 자리에서 본 형태를 완전히 믿기 어려워서다. 멀리서는 가볍던 철이 가까이에서는 무거워지고,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구조가 다시 유기적인 표면처럼 보인다. 한쪽에서 보았을 때의 시작점은 반대편으로 돌아서면 사라진다. 조형물과 조형물 사이가 아니라 철과 공간 사이에서 형태가 만들어진다. 대상이 변하는 것인지 관객의 시선이 변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나누기도 어렵다.
존 배의 조각에서 중요한 것은 철을 다른 무엇으로 보이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작품은 철을 철답게 만드는 몇 가지 속성만으로는 철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 그의 철사는 차갑고 단단한 재료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멀리서 보았던 레이스와 가까이에서 만난 용접 자국, 철 사이에 남은 빈 공간과 그것을 바라보기 위해 움직이는 몸은 하나의 조형물 안에서 동시에 존재한다.
철은 끝까지 철로 남아 있다. 작품 앞에서 한 걸음 움직이고 나면 그 철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워진다. 어쩌면 존 배의 조각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은 무엇인가’보다 ‘우리는 대상을 얼마나 쉽게 안다고 생각하는가’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철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재료에 새로운 의미를 덧씌우는 일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