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좋아하시나요?
라는 물음에, 다들 어떻게 대답할까? 누군가는 잡티 하나 없는 그리스 고전 양식의 하얀 석고 조각을 떠올리고 있을 수 있고, 누군가는 광화문 광장의 견고한 이순신 동상을 떠올릴 수도 있겠고, 또 누군가는 집에 있는 몇몇 귀여운 오브제들을 생각해 낼 수도 있겠다.
조각은 사실 고전적인 미술 장르이면서도 동시에 자유분방한 성격이 있기에 그 이름만큼 다양하다. 다만 오늘날 조각은 전통적 조각의 틀을 많이 깨오면서 나아오게 된 형태이다. 조각의 변천만큼, 오랫동안 조각과 관련한 전시는 늘 있었으나, 전통적 장르를 현대적 흐름으로 끌고 온 조각은 동시대까지도 인기가 많다. 단단하고 완벽해 보이던 조각은 경계를 무너뜨리며 그만의 우주를 확장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조각’들을 보며 다소 딱딱하던 나의 조각관, 예술관 역시 넓어졌다.
‘어떤 조각’ 중에 속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스코틀랜드의 현대 갤러리에서 접한 Jann Haworth의 1967년 작품
아마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과 비슷한 천 조각들을, 그 연약한 천의 겹들이 모여 만든 수수한 강함을, 그런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작가의 조각엔 위대한 역사 속 인물이 아닌, 각자의 삶 속 진정한 영웅들이 대상으로 존재한다.
‘조각’ 자체가 가진 딱딱한 고정관념을 부드럽게 녹이는 작업은 또 있다. 신미경 작가의 <번역 시리즈>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다. 단단한 그리스 고전 조각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녹아내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향긋한 거품을 내며 사라지는 ‘비누’라는 일상적인 재료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조각을 두어, 씻겨져 허물어져 가는 인물의 표정까지 담는 <화장실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는 전통적 조각이 가졌던 역사적 권위를 완전히 해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때 그의 조각과 나의 거리감은 0으로 수렴한다. 즉 작가는 편향적일 수 있는 역사적 맥락을, 인간의 눈으로 오역이라 여길 수 있는 요소들을 바로잡고 있다.
그러므로 조각의 권위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조각은 어때야 하는가 등 질문을 던지는 이러한 시도들은 결국 다시 관점에 관한 이야기를 내포한다. 예술로서 조각은 정해진 틀을 찾지 않는다. 그저 틀에 대한 결론이 아닌 질문을 할 뿐이다.
그 질문들이 쉽게 오만해질 수 있는 인간의 편협한 시야에서 탈출하도록 이끌었다. 이 연약하고도 사라져가는 위 두 작품 앞에서, 나는 스스럼없이 조각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당신은 어떤 조각을 좋아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