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각, 좋아하시나요? [미술]

연약하고도 사라져가는 조각에 대한 찬사
글 입력 2023.05.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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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좋아하시나요?


라는 물음에, 다들 어떻게 대답할까? 누군가는 잡티 하나 없는 그리스 고전 양식의 하얀 석고 조각을 떠올리고 있을 수 있고, 누군가는 광화문 광장의 견고한 이순신 동상을 떠올릴 수도 있겠고, 또 누군가는 집에 있는 몇몇 귀여운 오브제들을 생각해 낼 수도 있겠다. 


조각은 사실 고전적인 미술 장르이면서도 동시에 자유분방한 성격이 있기에 그 이름만큼 다양하다. 다만 오늘날 조각은 전통적 조각의 틀을 많이 깨오면서 나아오게 된 형태이다. 조각의 변천만큼, 오랫동안 조각과 관련한 전시는 늘 있었으나, 전통적 장르를 현대적 흐름으로 끌고 온 조각은 동시대까지도 인기가 많다. 단단하고 완벽해 보이던 조각은 경계를 무너뜨리며 그만의 우주를 확장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조각’들을 보며 다소 딱딱하던 나의 조각관, 예술관 역시 넓어졌다. 


‘어떤 조각’ 중에 속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스코틀랜드의 현대 갤러리에서 접한 Jann Haworth의 1967년 작품 < Old lady 2 >는 다소 특별했다. 영국 팝예술 운동의 선구자이면서,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의 개척자이기도 한 이 작가의 작업은 실제 할머니들과 비슷한 신장의 조각 할머니를 만들었다.


알록달록하게 할머니를 감싸고 있는 천들에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간다. 피부 역시 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천으로 이루어진 말랑한 조각, 구부정한 자세는 흔히 공공 영역에 있는 조각의 이미지와는 반대이며, 거리감보다는 유대감을 느끼도록 한다. 이름도 모를 할머니 조각상에 더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아마, 사람의 속성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과 비슷한 천 조각들을, 그 연약한 천의 겹들이 모여 만든 수수한 강함을, 그런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작가의 조각엔 위대한 역사 속 인물이 아닌, 각자의 삶 속 진정한 영웅들이 대상으로 존재한다.

 

‘조각’ 자체가 가진 딱딱한 고정관념을 부드럽게 녹이는 작업은 또 있다. 신미경 작가의 <번역 시리즈>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다. 단단한 그리스 고전 조각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녹아내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향긋한 거품을 내며 사라지는 ‘비누’라는 일상적인 재료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조각을 두어, 씻겨져 허물어져 가는 인물의 표정까지 담는 <화장실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는 전통적 조각이 가졌던 역사적 권위를 완전히 해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때 그의 조각과 나의 거리감은 0으로 수렴한다. 즉 작가는 편향적일 수 있는 역사적 맥락을, 인간의 눈으로 오역이라 여길 수 있는 요소들을 바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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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조각의 권위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조각은 어때야 하는가 등 질문을 던지는 이러한 시도들은 결국 다시 관점에 관한 이야기를 내포한다. 예술로서 조각은 정해진 틀을 찾지 않는다. 그저 틀에 대한 결론이 아닌 질문을 할 뿐이다.

 

그 질문들이 쉽게 오만해질 수 있는 인간의 편협한 시야에서 탈출하도록 이끌었다. 이 연약하고도 사라져가는 위 두 작품 앞에서, 나는 스스럼없이 조각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당신은 어떤 조각을 좋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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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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