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은 수천 년 전부터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로서 여겨져 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강철을 비롯해 철을 기반으로 한 합금 없이 생활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견고함과 (열을 가했을 때의) 유연함이라는 이중적인 속성, 그리고 오랜 기간 변함이 없는 내구성은 각종 산업의 주된 재료로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예술 영역에서도 철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다.
갤러리현대에서는 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조각 작업을 해온 존 배(1937년생)의 개인전 《운명의 조우》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70여 년에 이르는 작가의 예술 세계를 망라한다. 1960년대 초반 구상주의에 영향을 받아 제작된 초기 강철 조각을 비롯하여 연대기 별로 주요 철사 조각, 드로잉과 회화까지,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작품 40여 점을 선별하여 소개한다.
존 배는 자신의 작업 과정을 음악과 비유하곤 한다. 이전 음표가 다음 음표와 연결되고, 이러한 연결이 계속 이어나가며 선율이 만들어지듯 작가는 자신의 강철 작업이 점과 점을 이어 무수한 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전시 제목과 같이 운명적으로 조우하는 각각의 점들은 저마다의 선율로 관계망을 형성하며 공간을 점차 채워나간다.
이 때문에 작가의 조각은 한 공간을 엄숙하게, 딱딱하게 차지하지 않는다. 선들의 부드러운 율동은 유기체적인 흐름을 만들며 공간과 조각, 그리고 조각과 조각을 연결한다. 마치 어떤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움직임을 가시화한 것처럼 수많은 점과 구성 요소들이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유동한다.
작품을 보면 작가의 재료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높은 것임이 바로 느껴진다. 〈Involution〉(1974)와 같이 안과 밖이 교차하는 복잡한 구조물은 물론, 〈Great Barrington〉(1985)처럼 단순한 형태임에도 동일한 재료로 서로 다른 양감을 가진 요소들을 공간에 자유롭게 배치하는 작가의 기술력은 고유의 미감과 함께 경이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적 역량만으로는 존 배 작품의 특별함이 완성되지 않는다.
인터뷰에 따르면, 작가는 모든 것들의 재료가 되는 철의 다양성에 주목하였으며, 동시에 노동자의 금속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강하면서도 유연하고 탄력적인 철은 운동선수나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같이 표현될 수 있었으며,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시각적인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싶었던 그는 위상 수학을 탐구하기도 했으며, 과학자든 예술가든 세상과 우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그의 탐구심은 철이라는 매체를 통해 공간에서 시각화되었다. 그의 강철 조각은 ‘가장 형식적인 것에도 개성은 존재한다’라고 말한 바를 눈으로 보여주는 셈이었다.
존 배는 작품은 자신이 완성되는 순간을 알고 있다고 말하며, 아이디어가 있다면 좋고, 없다면 일단 두 조각을 이어붙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전한다. 이는 비단 강철로 조각을 만드는 과정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때, 혹은 지금의 순간에 의구심이 들 때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건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