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혜자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것은 작년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였다.
그날은 아침 일찍부터 이미 케브랑리 박물관과 루브르 미술관, 두 개의 대형 전시장을 방문해 마구잡이로 작품을 퍼먹은 상태였다. 소화 시킬 틈도 없이 뮤지엄 패스의 재촉에 못 이겨 마지막 일정 차 저녁에 방문한 퐁피두는 앞선 두 곳보다 현대적인 작품들로 채워져 신선했다.
밖은 어둑하고 전시장은 널널해 조용한 야간 개장의 특혜를 누리던 중, 문득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 눈에 들었다. 어떤 신비로운 빛이 제 자리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아주 고요하고 낮은 질감으로. 하루 종일 수많은 작품을 보며 휘몰아치는 감각들에 지쳐있던 차라 필자는 금세 그 작품 앞으로가 한참을 들여다보았었다.
발걸음을 옮기기 직전에 작품명과 작가 이름을 보았다. 익숙한 성씨, 잘 읽히는 이름을 보니 다름 아닌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공유하는 정신적 유대 같은 게 있나 하는 신기한 마음에 피식 웃고 미술관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필자는 방혜자 세 글자를 기억하고 각별히 관심을 두던 중,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기획 전시를 진행한단 소식을 접하고 서울에서 청주까지 한달음에 내려가 보았다.

방혜자는 1937년 경기도 고양군(현 서울 광진구)에서 태어나, 시와 그림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다 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1950년대 후반 유영국과 김병기의 현대미술연구소에서 수학하며 추상미술에 매료된 채 공부하던 중, 1961년에 국비유학생 1호로 도불했다. 이후 파리와 한국을 오가며 더욱 한국적인 사유와 미에 집중하여 자신만의 ‘빛의 세계’를 구축했고, 2012년엔 ‘한불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 쾌거를 이루었다.
20년가량을 자라온 고국을 떠나 잃어버린 적 없는 무언가를 찾으려 타국으로 가는 일은 작가 내면에 신선한 변화와 슬픔 또한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이방인의 몸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에 집중하는 순간, 유일무이하게 융합된 독창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전시는 빛이 태어나 우주에서 마음으로, 또 마음에서 우주로 퍼져가는 과정을 따라 진행되며 방혜자의 작품 세계를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본격적으로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인트로’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한 점이 있다. 주위는 암막이고, 따라서 중심으로 모여드는 빛줄기는 장엄하고 성스럽기까지 해 빛이란 주제를 곧바로 우리 마음에 가져다 놓는다. 방혜자의 빛과 작품 세계를 한눈에 집약해 놓은 〈빛의 탄생〉의 재현작(2019)으로 관람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빛의 탄생’ 섹션엔 방혜자의 초기 추상회화에서 어떻게 빛이 태동하기 시작했는지를 볼 수 있다. 한국의 자연과 색채가 방혜자의 것으로 승화되어 초기 추상회화를 이루는 작품들은 이국에서 보내는 편지 같기도 하다. 〈지심(地心)〉(1961)
‘하늘과 땅과 손을 잡고’ 에서는 하늘과 땅, 천체와 성운, 우주와 생명이 한 화폭에 조응하며 빛이 목격되기 시작한다. 다양한 마티에르 탐구에 몰두하던 이 시기의 작품에서 원형의 모티프가 등장한다. 흙과 하늘과 우주가 하나 되는 그림 속의 작은 별빛들은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같다.

방혜자 작품의 완숙기라고 생각되는 ‘빛을 심으며’ 구역의 그림들엔 원형의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온 우주 생명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환한 빛이 있다. 마음을 열고 들여다보면 보이는 아주 흰 빛이 있다.
작가의 그림을 보며 이 여자의 마음속에는 어찌 저리 순백의 빛이 있을까 궁금했다. 가만히 보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그 빛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내 안에 빛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고 그 빛은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뜬다. 그리고 우주의 빛과 만난다. 월 텍스트에 기재되어 있듯 정말로 ‘극대’와 ‘극미’가, ‘천지’와 ‘마음’이 만나는 경험이다. 그래서 방혜자의 빛은 물성을 넘어 감각이고, 사랑과 생명과 평화고, 끝내 천지 만물 삼라만상의 악수다.
‘빛으로 태어나는 길’에서는 빛이 퍼져나가거나 응축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다시 말하면 크고 작은 곳곳에 빛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존재하는 느낌이다. 이즈음부터 작가는 캔버스를 세워서 하던 작업을 바닥에 수평으로 놓는 방식으로 바꾼다. 후에 아카이브 공간에서 보게 될 그녀의 작업 영상은 구도자의 수양을 보는듯하다. 마음을 성찰하고 다듬어서 나오는 내적인 빛이 화폭에 흩뿌려져 있다.
빛은 어떤 길을 따라 또 빛으로 이동하는 형상을 띠고 있는데, 별처럼 펼쳐져 있다. 하나하나 다 숨결같다.

마지막 ‘아카이브’는 방혜자와 관련된 기록 자료를 모아둔 공간이다. 박경리 작가와의 서신, 인터뷰 다큐멘터리 등을 상세히 볼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전시 끝의 이런 공간을 좋아한다. 그림을 통해 저 너머에서 소통하던 작가의 삶을 구체적으로 더듬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가 편지에는 무슨 말을 썼는지, 작업 시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됨은 물론 음성으로 작가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이 따를 때도 있다.

초기부터 말년까지의 주요 작품 총 67점과 아카이브 자료 200여 점 등이 총망라 되어있던 전시장을 나와 몇 층 내려가면 ‘명상 기록실’, ‘나의 빛을 찾아서’ 등 연계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다. 작품 세계를 충분히 감상한 후 나의 것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이 되어준다.
결국 방혜자의 작품은 내 마음 안의 빛과 눈 맞추는 일이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빛을 그녀의 그림을 통해 잉태하게 된다. 고르고 골라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이 그 빛이다. 프랑스어 동사로 치면 ‘voir(보이다)’가 아니라 ‘regarder(주시하다, 바라보다)’ 해야 만나는 것이다. 그녀의 그림에서 내 안의 빛이 어렴풋이 번진다.
인트로에서 보았던 시가 생각난다.
마음을 비우고우주의 중심으로 걸어간다텅 빈 가운데아무도 아무것도 없는안으로 가는 길은마음이 깨어나는 길어둠을 다 거두고밝게 피어나는 시작의 길세포 하나하나까지도활짝 깨어나새로 태어나는 길천지에 마음의 빛뿌리며 간다- 「빛을 찾아서」
그때 활짝 깨어나 어둠을 다 거두고 전시장에서 나오는 필자는 자신도 모르게 천지에 마음의 빛을 뿌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