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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알아본다. 웃고 떠들며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지독히도 외로워 보이는 사람을 본 적 있다. 그리고 그런 눈동자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 생각에 외로움은 혼자여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있기에 비로소 자각하게 되는 감정이다. 소외감과는 묘하게 다른, 해소될 수 없는 무언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로 기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영화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서, 혹은 여럿이라서 느껴지는 수많은 외로움과 이를 알아보는 두 사람을 그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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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속 이방인의 외로움이 있겠다. 영화는 도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제는 한물간 영화배우 밥 해리스는 위스키 광고 촬영차 도쿄에 왔다. 샬롯은 사진작가인 남편의 출장을 따라 도쿄에 왔다. 이 미국인들에게 일본어를 포함한 도쿄의 문화는 너무도 낯설다. 촬영장에서 일본인 감독이 요구하는 사항은 길고 복잡해 보이는데, 돌아오는 통역은 짧고 단순하다. 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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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두 사람이라 생기는 외로움이 있다. 샬롯은 철학을 전공하고 이제 막 졸업한 학생이자 결혼 2년 차다. 밥은 샬롯이 지금까지 산 기간만큼을 결혼 생활로 보낸 25년 차 남편이자 아빠다. 겉보기에 샬롯과 밥은 모두 그럭저럭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지만, 상대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없어 외롭다. 샬롯의 남편은 온 신경이 사진 촬영에 쏠려 있다. 호텔에선 피곤한 모습으로 잠만 자고, 아침이 되면 쏜살같이 일하러 나간다. 혼자 남겨진 샬롯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쪽도 소통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결국 체념한 샬롯은 창밖으로 빽빽한 도쿄의 건물들을 바라본다.


밥은 아이 생일도 까먹는 못난 남편이 되어있다. 팩스로 날아오는 아내의 말들, 서재에 놓을 책장이나 카펫트의 색깔을 골라달라는 등의 말들이 더는 흥미롭지 않다. 마음 다잡고 걸어본 전화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리는 아이들과 씨름하는 아내의 목소리, 지금 학교에 보내야 해 바쁘다는 말뿐이다. 이런 건 역시 포르쉐로도 극복이 안 되나보다. 밥은 반짝거리는 야경을 뒤로하고 가만히 혼자 침대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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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중 앞의 외로움도 있다. 큰 전광판에 자기 얼굴이 걸려있고, 자신을 환영해 주는 호텔 직원들이 있다. 가끔가다 ‘그 영화배우’ 맞냐며 말을 걸어오는 젊은이들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과 진정으로 연결되는 느낌 같은 건 있지도 않을뿐더러 애초에 본인이 멀찍이 떨어진 존재란 걸 밥은 알기에 오늘도 자리를 슬며시 피하고 만다. 모두가 나를 알지만 진짜로 아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현대인의 외로움이 있겠다. 이 고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많은 영화가 다뤄왔다. 복잡하고 불 꺼지지 않는 도시에서 붕 뜬 채 방황하는 두 사람은 모두 너무 외롭다. 나만 빼고 다들 열렬히 살아있는 것 같고, 제 갈 길을 찾아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단단히 두 발 딱 붙이고 있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도시는 계속되는데, 둘은 같은 자리에서 맴돌기만 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번쩍이는 전광판, 모든 현대적인 것 사이에서 현대인은 왠지 더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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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샬롯은 도쿄의 하얏트 호텔에 머물며 이런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본다. 난 외로운 사람이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두 사람은 눈빛을 통해 서로의 외로움을 느낀다. 이렇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소통의 부재 속에서 외로운 사람끼리 진정으로 소통하게 된다. 말이 아니라 눈동자와 행동으로, 가끔은 잘못된 소통 때문에 더 외로워지기도 하니까. 밥이 샬롯의 다친 발에 손을 댄다든가, 조용히 서로를 응시한다든가, 신나는 가라오케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복도에서 어깨를 기댄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이 영화의 원제는 Lost in translation, 즉 통번역 과정에서 누락된 말의 의미 일부를 가리킨다. 나는 이때 누락된 것, 그래서 길 잃은 것을 감정이라고 느낀다. 한 사람의 감정이 말을 통해 타인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라캉에 의하면 언어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기표가 완벽하게 하나의 기의에 고정되지 않기 때문에 늘 미끄러진다. 따라서 언어에는 근원적 결핍이 구조적으로 내재해 있다. 그 빈틈과 불안정성으로 인해 사랑이든 외로움이든 그것을 언어로 변환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상실이 일어난다. 그 여분이 바로 lost 된 무엇이다. 타인에게 말로 다 전할 수 없어 남겨진 여분. 이를 한국판 제목에선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번안한 것인데, 위 개념에 빗대어 보면 아주 틀린 번역도 아닌 것 같다. 사랑도, 외로움도, 감정도 그게 다 과연 통역이 되냐고 묻고 있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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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객이 주목하는 마지막 장면의 귓속말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몰라도 된다.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고, 우리 또한 그렇다. 감정은 언어로 전달되는 것이라기보단 아는 것,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 대사가 공개되었다면 분명히 그 감정의 일부는 우리 감각에서 즉시 누락되었을 것이다.


어떤 감정은 언어로 정리할수록 짙어지고 또렷해지는 반면 또 어떤 감정은 발화하는 순간 그 일부를 잃은 채 흐릿해지고 퇴색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주의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끝내 충돌하는 명제일지 모르지만, 두 경우가 늘 같은 사건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밥과 샬롯은 분명 후자에 속한다. 별말 없이도 서로의 외로움을 아는 애틋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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