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나는 서브컬쳐 애호가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와 애니를 즐겨 봤고, 오프닝곡과 엔딩곡을 섭렵했으며, 웹툰, 웹소설, 게임, 성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잡다하게 덕질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비슷하다. 여전히 게임을 하고, 만화를 보고, 관련 소식들을 찾아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서브컬쳐’ 판을 둘러싼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름부터가 ‘sub’-culture, 우리말로 번역하면 ‘하위’ 문화. 인터넷상에서는 속된 말로 양지가 아닌 ‘음지’로 불리던 바로 이곳이 어느 순간부터 문화계의 노다지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은 오타쿠가 아닌데도 SNS 등에서 반응을 끌기 위한 보여주기식으로 오타쿠인 척을 한다는 ‘패션 오타쿠’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서브컬쳐를 대중에게 ‘도둑맞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기피의 대명사인 오타쿠를 일부러 따라하는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이제 이들은 더 이상 비주류 장르나 특정 집단만의 문화가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극장 관객 수 1위에 오르고, 만화 주제가가 공중파에서 소개되고, 버추얼 아이돌이 음악 방송에 출연하고, 게임 행사에 몇십만 명의 사람들이 몰리고, 대중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 모든 것들을 문화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 이제는 ‘포스트-서브컬쳐’의 시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반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이퍼 알고리즘’을 주제로 했던 <울트라백화점 Vol.1>의 성황에 힘입어 최근에는 ‘포스트 서브컬쳐’를 주제로 하는 Vol.2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것도 양지의 대명사, 백화점의 태를 빌려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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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백화점 Vol.2-포스트 서브컬쳐>는 ‘서브컬쳐’란 무엇인가를 소개하는 그런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들 떠올리곤 하는 애니나 만화 같은 것만을 한정적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음악, 서적, 영화, 패션 등 일반인들이 미처 서브컬쳐라고 생각지 못하는 분야들까지 폭넓게 끌어들여 그들을 총 세 갈래의 관람 형태로 나누었다.

 

관람객들은 처음 전시회장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순차적으로 FINDER, COLLECTOR, CUSTOMER의 영역을 지나게 된다.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의 목적은 동일하다. 이제 더 이상 주변부에만 머물지 않게 된 서브컬쳐의 달라진 의미를 각인시키고, 관람객들이 지금껏 쌓아온 자신만의 취향을 이번 전시로 말미암아 스스로 탐색하게 하는 것이다.

 

 

 

FINDER :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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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에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 우리는 FINDER, 즉 탐구자가 된다. 직관적인 이름 그대로다. 길게 뚫린 복도와 그 안을 가득 메운 다양한 서브컬쳐 플랫폼들이 준비해둔 주제들을 읽으며 우리는 그들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읽는 나에 대해 탐색하게 된다.

 

060mag, 닷슬래시대시, 세탁소 매거진 등 총 아홉 팀이 참여한 이 서브컬쳐 스트릿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흥미로운 문장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읽지는 않는데 SNS에 책 사진만 올리는 과시적 독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명분 없는 협업: 에반게리온은 어디에’, ‘내가 듣는 음악이 더 우월하다는 착각’ 등 평소 서브컬쳐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머릿속이 번뜩일 포인트가, 이러한 이슈를 몰랐던 사람이라면 생각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쏟아져 내린다.

 

 

 

COLLECTOR : 취향의 선택



마치 책의 프롤로그가 1장으로 넘어가듯이, ‘나’에 대해 파악을 마치고 스트릿을 벗어나면 음악, 서적, 영화, 패션 4종류로 이루어진 COLLECTOR 구역이 시작된다. 이 역시 직관적인 이름 그대로다. 이제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모으는 수집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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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음악을 다루는 비사이드 레코즈(B-SIDE RECORDS)에서는 국카스텐, 데이브레이크, 페퍼톤스, LUCY 등 16개의 아티스트 팀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곳에서는 음악을 단순히 기존의 장르만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이것을 누가, 왜, 어떤 태도로 만들었을까.’ 이번 전시가 서브컬쳐 전반에 걸쳐 던지는 대범한 질문이 레코즈 구역에서도 주요하게 떠오른다.

 

아티스트의 음악들은 획일적인 장르 대신 사랑, 청춘, 열정, 연대 등 감정을 주제로 분류되고, 각 음악에 대한 아티스트들의 생각과 추억이 담긴 메시지들이 함께 펼쳐진다. 그들이 어떤 태도로 이 음반을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알게 된 후에는 바로 해당 음악을 직접 들어볼 수 있도록 플레이리스트와 헤드셋도 같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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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유유, 허블 등 출판사와 서점이 모이는 텍스트 에비뉴(TEXT AVENUE)는 문장의 거리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이름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유물, 습관, 재미, 정체성 등 각자가 서적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한 단어로 내세운다. 관람객들은 마음이 끌리는 키워드를 만나고 그 안으로 들어서서야 자신을 사로잡은 크리에이터가 누구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야말로 진정한 ‘취향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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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씨어터(REVIEWER’S THEATER)는 조금 색다르다. 독립영화와 그들을 바라보는 10인의 리뷰어의 관점이 함께 소개되어 있다. 영화와, 영화를 보는 리뷰어와, 그 리뷰어를 보는 나라는 삼중구조가 이루어져 있는 공간이다. ‘리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흔히 사람들에게 장르의 일종으로 생각되지 않지만, 이 역시 엄연한 문화의 한 축이다. 전문적으론 서평이나 평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중의 한가운데에서 살짝 빗긴 서브컬쳐 문화계에서는 시장의 논리보다는 자신만의 굳건한 취향을 가진 애호가들의 선택이 더 주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이곳에서 리뷰어들은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씨어터는 처음 들어설 때부터 마치 고급스러운 영화관을 떠올리게끔 한다. 붉은 벨벳으로 장식된 좁은 복도 가득 다섯 개의 독립영화의 포스터들과 감독의 소개가 붙어 있고, 안으로 들어서면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공간 속에 마치 액자처럼 걸린 영상들과 가지런히 준비된 리뷰어들의 아이디어가 만찬장처럼 우리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공간을 거닐며 마음에 드는 영화를 선택하고, 티켓을 들춰보며 자신의 시선과 공명하는 리뷰어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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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더 리얼 부티크(THE REAL BOUTIQUE)는 특이하게도 옷을 전시해둔 패션장이다. 어두웠던 영화관을 나오면 곧바로 새하얗게 꾸며진 밝은 부티크가 눈 앞에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새롭고 생소했던 구역이다. 매거진, 책,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일반 패션이 아닌 ‘서브컬쳐로서의 패션’은 퍽 생소한 존재다. 티셔츠 하나가 단독으로 벽에 걸려있기도 하고, 뜨개질 도구가 프레임 속에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이들에겐 책의 표지나 영화의 포스터처럼 한눈에 이름과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만한 징표도 없다. 이 옷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존재인지 알기 위해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전시에 집중해 참여하게 된다.

 

 

 

CUSTOMER : 소유의 단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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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는 내내 마음에 드는 것들을 충분히 모았다면, 이제 그것들을 ‘소유’할 때다. 울트라 스토어(ULTRA STORE)는 쉽게 말하면 굿즈샵이다. ‘수집한 감각, 소유로 완성하는 태도’. 스토어를 들어가기 전 적혀있는 이 짧은 문구가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공부의 마지막 단계가 배운 지식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인 것처럼, 수집을 소유로 연결하면 내가 발견한 메시지와 감각들이 나의 일상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곁에 두고 나면, 영영 잃어버릴 일이 없다.

   

어쩌면 글을 읽는 내내 혹자는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왜 하필 ‘백화점’일까? 서브컬쳐를 다루는 전시고, 참여형 전시라면, 더 활기찬 컨셉이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울트라 백화점>의 전체적인 구조를 되짚어보면, 사람들은 전시장 안에 들어서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어떤 물건이 있는지 살피고, 그중 마음에 드는 걸 발견해 집어 들고는, 마지막으로 구매까지 마친다.

 

이건 그야말로 개개인에 맞춰 준비된 완벽한 ‘취향의 백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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